1980년대 전남 완도 및 장도 등 섬을 답사한 주강현씨의 책을 보면 “송징”이라는 장군을 모시고 있었는데 2000년도에 가보니 송징에서 장보고로 바뀌었다고 한다.
20년만에 송징에서 장보고로 바뀌었다.
현재 장보고가 사회적으로 각광받고, 해양수산부에서 장보고 재단을 만들고, 다양한 장보고 현양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동안 모셔지던 바다영웅 송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인 자격을 잃고 느닷없이 장보고로 바뀌었다니...
(송징은 원래 장보고인데, 신라에서 장보고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기에 내놓고 장보고를 모실수가 없어 송징으로 이름을 바꿔 모시게 된 것이라는 궤변도 등장했다.
작가는 1990년대 이래 송징의 의미는 격하되고 장보라라는 “새로운 신화”가 느닷없이 그 자리를 넘보기 시작하여, 장보고의 시대적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오랫동안 숭배되어온 민중영웅은 끝내 쫓겨나고 거짓 신화가 창조된것이다..세상에!
영국의 역사학자 홉스봄이 이론화한 “만들어진 전통의 개념”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설명하는데 매우 유용할 것이다.
참고로 박정희 시대의 이순신장군, 전두환 시대의 세종대왕, 김대중 시대의 장보고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하면서 “정치적”으로 귀착한 것은 아닌지..
송징은 조만간 완벽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매스컴도 청해진과 장보고, 유력일간지는 장보고 특집 등)
훗날에는 장보고가 만들어진 전통 20세기 말기의 행위들이 당당히 사서에 기록되고, 새로운 구전으로 이어져서 새 전통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
원하는 송징과 장보고 구별만 간단하게 올려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강진현조에 ..송징이라는 자가 무용이 절륜하여 활을 쏘면 60리 밖까지 나갔다. 활시위가 끊어진즉 피가 흘렀다..
그책에 송징이 완도사람이라는 것, 활과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그리고 19년 뒤인 당대의 문인 1549년 석척 임억령이 해마다 무명의 장군신을 받들고 굿을 하게 된 내력을 읊은 장편 서사시 (송대장군가)를 통해서 출현한다.
1899년 완도군읍지에 송징을 서술하면서 장보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보고와 송징이 각각 시기를 달리하여 분명히 신라, 고려 인물로 그려지는바, 장보고(신라)와 송징(고려)은 전혀 별개의 인물로 나타남니다.
이정도면 "청해진은 완도가아니었다"에 나온 리프들 답변 다 해준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