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이 심란 합니다.
무언가 발을 담그지 말아야 할 곳 한 가운데 서있는 기분도 들고,
전혀 의도치 않게 어떤 일에 휘말려든 찜찜함도 나고 그렇습니다.
평소 저희 모친이 저에게 해주셨던 말씀중에
"귀신 얘기나 영가 얘기 함부로 하지 마라. 지네 얘기 하면 관심 가져 준다고 좋아해서 그 사람 주위로 쓸데 없는 영가 꼬인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자꾸 죽은 사람 얘기 꺼내서 좋을거 하나 없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해 주셨거든요.
그래서 쓸데없는 장난을 치다가 모친에게 들켜서 야단도 참 많이 맞았습니다.
제가 군대 있을 당시에 내무반에서 동전 귀신이 유행 하던 적이 있었지요.
지금 생각 하면 참 유치 하지만 그때는 혈기왕성하고 시커먼 남정네들이 내무반 안에서 할게 없으니 그런 짓이라도 하고 놀며 시간을 보내던 적이 있었어요.
한참 내무반에서 동전 귀신 놀이를 하고 집에 외박을 나갔는데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머니가 소파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때 어머니 머리맡에 가서 "어머니 저 왔어요" 라고 말씀 드리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 나시는 거예요.
그러시더니 갑자기 "너, 요즘 어디서 뭔 짓거리 하고 다니냐?" 며 야단을 치시는 겁니다.
"무슨 짓거리? 군바리가 무슨 짓거리를 하고 돌아 다녀요? 삽질밖에 더 했겠어?" 라고 말씀 드리는데
갑자기 부얻에서 팥을 한웅큼 주워 오시더니 저에게 팥으로 강 스매싱을 날리시는 겁니다. ㅜㅜ
그리고 소금을 쥐시더니 현관 문을 열고 한웅큼 뿌리시더군요.
제가 갑자기 왜 그러시냐고 여쭤보니 소파에서 주무시고 제 목소리가 들리는데 제 뒤로 뭔가 시커먼게 달려서 들어 오더래요.
그 느낌이 음산하고 기괴해서 재가 또 어디 다니면서 뻘짓하고 돌아 다녔나? 라고 생각 하셨답니다.
우리는 흔히 영가를 본다거나 귀신을 본다면 싸잡아서 '신내렸다' 라는 무지몽매한 정의를 내리는데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불가에서 는 여러가지 정의를 하죠.
경전을 많이 공부 했다거나, 식이 맑다거나 등등의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 하고 있습니다.
성함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동국대 총장을 지내신 어떤 스님의 글에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이 아니라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책 이었습니다)
'식을 맑게 하고 3년 공부를 하면 전생이 보이고 3년 공부를 하면 현생이 보이고, 3년 공부를 더하면 내세가 보인다' 라는 글귀를 본적이 있습니다.
어쨋건 이 얘기는 이번 주제와 별 상관이 없으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가 절에 왔다갔다 하다 겪게된 이야기 들도 들려 드리겠습니다.
각설하고,
그날 백뚱이 그러더군요.
"오빠는 오빠가 왜 탤런트 언니랑 만났는지 모르지" 라길래
"왜 몰라 내가 채팅방 만든 죄로 만났지" 라고 말했습니다.
"ㅋㅋ 오빠 사람 인연 이라는게 그렇게 단순한거 아냐" 라고 하더군요.
"그럼 니가 재 굿 같은거나 재한테 붙어있는 나쁜 귀신한테 천도제 같은거 좀 해주면 돼겠네"
"뭐, 내가 그렇게 할수 있는건 아니고………." 라고 말을 하다가 갑자기 절 보면 씨익 웃는 겁니다.
아, 써글뇬 무섭게.
다시 머릿속이 실타래 처럼 뒤헝클어 지기 시작 합니다.
"아뭏튼 오빠, 사람은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한테 본능적으로 끌리기 마련이야 나중에 알게 될거야" 라고 알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더니 제 팔짱을 끼며 얘기 합니다.
"오빠 추운데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리 술이나 한잔 더 하러 가자"
그녀에게 팔을 잡힌채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제가 말했습니다.
"너 솔직히 말해봐? 술이 목적이냐? 내 몸땡이가 목적이냐? 한번 달라는 거지?"
라고 말하자 살짝 저를 흘겨 봅니다.
"어휴, 말하는 것 좀 봐 저질"
"저질은 지금 니 대가리에 들어가 있는게 저질이지. 너도 번호표 받고 기다려. 지금 나한테 한번 달라는 애들 순번대기표 들고 강남역 앞에 줄서 있어. 너 지금 받아가면 143번이야. 원래 145번인데 두명은 줄서서 기다리다 지쳐서 시집가서 143번이야ㅋㅋ"
"아휴, 관둬라 관둬. 드럽게 비싼척 하네"
라며 제 팔을 휙 뿌리치더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세웁니다.
택시 문을 열더니 뭔가 생각 났다는듯 뒤돌아 서서 말하 더군요.
"오빠 참, 내가 인심써서 말해 주는데 당분간 물 조심해."
엉? 물? 뭔 물?? 이 북풍한설 몰아 치는 엄동 설한에 내가 수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나이트 물인가? 라는 개떡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녀가 한마디 더 합니다.
"그리고 오빠 싫어도, 조만간 나한테 다시 연락 하게 될거야"
라는 알수 없는 말을 남기고 총알택시를 타고 총알처럼 사라 집니다.
햐~ 이거. 나쁜 뇬……………쌍금탕 같은 뇬…………뭔 말을 해주려면 다 해주던가.
안 준다고 삐지는 밴뎅이소갈딱지 같은 뇬.
시간이 늦어 한산해진 방배동 거리에 연말의 분위기를 알리는 조명등이 반짝 거리는데 그 가운데 혼자 서서 멍하게 넋이 나가 백뚱이 사라져간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서서 생각하고 있자니
채팅방의 어떤 일정한 주파수가 우리를 모이게 만들었나? 라는 생각도 얼핏 들고,
아니면 어떤 강력한 인연의 끈이 있었나? 내가 알지 못하는 전생 같은거?
라는 생뚱한 생각도 들고 참 심란해 지더군요.
그때 이런 저런 감정들을 제외 하고 탤런트에게 드는 감정은 사실 측은함이 가장 컸습니다.
아니,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측은함에서 애잔함으로 감정이 전이 되던 시기 였던것 같습니다.
애는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걸 솔직하게 얘기 했을까?
또 대체 어떤 일들을 숨기고 있나?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뭔가 찜찜함이 계속 남는 거예요.
무언가 찜찜함과 공포심은 사라지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내가 무언가를 해결 할수 있는것도 없고.
머릿속이 정돈 되지도 않고 그래서 한동안 그 친구들의 전화나 문자를 좀 피했습니다.
부딪혀서 이길수 없다면 해결 방법이 뭐가 있겠습니까?
비겁하지만 잠시 도망 가는게 제일 이지요. (36계 줄행랑)
그 이후부터 문자 답장도 잘 안 해주고 전화오면 좀 바쁘다 그러고 그런식 으로 나름 거리를 두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발신자 번호 서비스가 아직 시작 하지 않을 때 였거든요.
아마 제 기억에 그 당시에서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발신자 번호 표시 서비스가 시작 된걸로 기억 합니다.
어느날 퇴근 시간을 조금 남겨두고 전화가 온거예요.
일단 전화를 받았죠.
지금처럼 발신자 서비스가 되거나 했으면 받지 않았을 텐데.
"오빠 뭐해?"
라고 말을 하는데 탤런트 였습니다.
"어? 어…..나 회사지 지금 일하는데?"
"그래? 그럼 나 오빠 회사 앞인데 오빠 언제 퇴근해? 늦더라도 나 이 근처에서 기다릴게"
라고 말하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뚝' 끊습니다.
하 이거, 난감 하더군요.
'늦더라도 기다린다는' 말에 어떤 결기 같은게 느껴 지길래 일단 만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빨리 일을 정리하고 나갔습니다.
만나서 어디로 갈까? 라고 이야기 하다 또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방배동 카페 골목으로 향했습니다.
일단 밥을 먹자고 얘기하니 그냥 술 먹을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술을 먹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는데
남자친구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몇일전에 결국 헤어졌다는 거예요.
저번에 둘이 보자고 했던것도 그런 문제들로 의논하고 얘기도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던건데 여차여차 하다 그렇게 넷이 모이게 됐고 그래서 말을 못 꺼낸 거랍니다.
이때 탤런트와 같이 있으면서 얼굴에 화상입은 여자에 대해 물어볼까 말까 굉장히 망설 였었습니다.
그런 일련의 일들이 최근, 혹은 몇 년전에 일어난 일이고, 그리고 설령 그런 일 들을 탤런트도 알고 있다면 스스로도 굉장히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단 입을 다물고 있었죠.
그런데 평소에 넷이 만나면 술도 많이 먹지 않던 아이가 굉장히 빨리 마시는 겁니다.
거의 '흡입' 수준으로 들이 붓는 거예요.
사실 저는 대충 몇잔 흉내만 내다 슬쩍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슬슬 건배하고 같이 원샷까지 해야 한다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 합니다.
그런데,
아……..젠장
그렇게 소주 병이 한병, 두병 늘어가니 이게 웬일인지 탤런트가 점점 여자로 보이기 시작 하는 거예요 (알코올의 힘은 귀신보다 위대합니다.)
넷이 있을때는 서로 장난치고 낄낄대느라 몰랐는데 의외로 둘이 오래 있어보니 생각도 많이 바르고 생활력도 강하고 그렇더군요. 하물며 늘씬하고 이쁘기 까지 한데 가슴은 비……….아, 이건 아니고.
그렇게 둘이 꽤 많이 마셨던 것 같습니다.
알코올도 들어 갔겠다.
슬슬 여자 향이 코를 간지럽혀 오겠다.
그 때 이미 탤런트만 보면 느끼지던 공포심은 이슬방울 속으로 익사해 가고 있었죠.
1차 자리를 파하고 슬슬 일어나 밖으로 나왔는데 둘이 서있으니 기분이 야리꾸리 한겁니다.
먹을만큼 먹어서 배도 부르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탤런트가 "오빠 추워" 라고 말하길래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걷는데 애가 큰 키와는 달리 어깨가 갸날퍼서 한팔에 쏙 안기는 거예요.
어휴 야…………….이거 정말.
샴푸 냄새는 슬슬 코를 간지럽히고. 코에 침, 코에 침…
"이제 어디로 갈까?" 라고 말하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니
혹, 비…비…비디오 방이 보이는 겁니다.
근데 이게 막상 비디오 방 가자는 말이 안 떨어지는 거예요.
그때 시간이 열시도 채 안된 시간 이었는데 그때 '비디오방 가자' 라고 얘기하면 남자들 목적은 결코 비디오가 아닌 거잖아요.
아 씨, 이거 머리 아프게 갈등하기 시작 합니다.
다른 일반적인 여자애 들 같았으면 그냥 쿨하게
"야, 비디오나 한편 때리러 가자"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텐데,
탤런트 얘한테는 뭐랄까, 쉽게 다가가고 행동 할수 없게 만드는 포스 같은게 있었기 때문에 계속 망설여 지더군요.
'비디오 방 가자 그럴까? 아냐 그럼 얘가 날 음흉하게 보지 않을까? 아냐 비디오 보러 가자는게 뭐 어때서? 아냐 그래도 비디오 방은 비디오 보는데가 아니잖아? 응? 에이 뭐. 세상이 다 그런거지.응?응? 말이나 한번 해봐?'
둘이 같이 걸으면서 뭐 이딴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남자답게 큰 맘먹고 말을 했어요.
"우….우리…저….저…앞에 있는……비……비디오방…….아, 무…물론...영화만 보……...주물럭은…ㅎㅎ………."
"오빠 우리 저기 있는 모텔가서 방 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