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별에서 온 그대? 생 제르맹 백작

KIEL공방 작성일 14.01.27 1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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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제르맹 백작(Count Saint Germain)

18세기에 활약했던 수수께끼의 인물. 전설에 따르면 18세기 당시 2000살이라고 주장하였고 현재까지 살아있다고 전해진다.


1) 개요

18세기 유럽에서 활동한 궁중인, 모험가, 발명가, 연금술사,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아마추어 작곡가. 혹은 희대의 사기꾼. '생 제르맹'이라는 이름 또한 '거룩한 형제'라는 뜻이라서 본명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데다가, 또다른 이름으로 '마스터 라코지(Master Rakoczi)' 또는 '마스터 R'이라고 불린다. 라코지는 헝가리의 영웅의 이름이다.


2) 출현

1704년 경에 프랑스의 작곡가 장 필립 라모((Jean Philippe Rameau)가 그와 만난적이 있다. 그 당시 생 제르맹 백작의 외모는 45세에서 50세 사이라고 하였다.

라모아 제르지 백작부인 또한 1710년 무렵 베네치아에 있던 백작의 나이는 50세쯤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생 제르맹 백작은 1660년경에 출생한 것이 된다. 그런데 그는 1737년에서 1746년 사이에 페르시아와 영국, 빈 등에 머물렀다. 이때가 8, 90세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1749년에는 파리에 도착하여 루이 15세와 퐁파두르 후작부인을 만났으며, 1756년에는 인도에서 목격되었다. 1762년에는 성 페테르스부르크의 쿠데타에 참가하고, 이후로는 프랑스의 샹보르성에서 연금술과 화학실험에 종사한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그리고 1768년에는 베를린에 있었고, 그 다음해는 이탈리아, 코르시카, 튀니스를 여행하였으며, 1770년에는 러시아 해군이 이탈리아에 입항했을 때 오를로프 백작에게 초대를 받기도 했다. 이때 그는 러시아 장군 복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1770년대에는 독일에 체류하면서 샤를 왕자와 함께 프리메이슨과 장미십자단 일에 종사하였으며, 1780년에는 런던의 왈시 사가 생 제르맹 백작의 바이올린곡을 출판했다.

독일의 에케른푀르데의 교회에는 "소위 생 제르맹 및 웰돈 백작. 1784년 2월 27일 사망. 3월 2일 매장"이라는 기록이 있다. 1710년에 50세로 보이는 생 제르맹 백작을 보았다는 라모아 제르지 백작부인의 말을 믿으면, 그는 124세 정도에 죽은 셈이 된다. 그런데 그 다음해 그는 어떤 프리메이슨 모임에 출석하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을 가만히 응시하는 모습과 1793년 10월 16일 마리 앙투아네트가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에 의해 처형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생 제르맹 백작이 목격된다.

또 한 백작부인은 1821년에 그를 빈에서 만났다고 말했으며, 주 베네치아 프랑스 대사도 그후 산마르코 광장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3) 평가

생 제르맹 백작의 친구이자 제자인 헤세-카셀의 샤를 왕자는 그의 저서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 중의 하나"로 생 제르맹 백작을 추켜세웠으며, 주브뤼셀 오스트리아 대사인 코벤츨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존경할 수 있는 결백하고 착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하였다. 한편 프리드리히 대왕은 생 제르맹 백작을 "이해할 수 없는 남자"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장 필립 라모는 "생 제르맹 백작은 이상한 인물이다. 그는 무섭도록 화제가 풍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이야기에 깊숙히 빠져들고 만다. 그와 이야기 하고 있으면 마치 내가 시간을 초월한 세계에 사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하였다.

네덜란드에서 카사노바를 만나기도 했는데 카사노바에게 있어서 생 제르맹 백작은 엉터리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회상록에서 "이 기괴한 인물은 사기꾼, 엉터리의 원조적 존재로 본인의 나이가 300세이며 만병통치약의 제조법에 통달했으며 삼라만상은 자기의 손 안에 있다는 따위, 또 다이아몬드석(石)을 용해할 수 있다는 등 식은죽 먹이로 떠벌인다. 다만 그의 허풍, 뻔뻔스러운 거짓말, 여러 가지 이상한 버릇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위험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는다." 라고 하였다.


4) 생 제르맹 백작의 제자

생 제르맹 백작은 세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18세기 3대 신비주의자인 생 마르텡, 메스메르, 칼리오스트로이다. 하지만 이들은 생 제르맹 백작의 발끝도 쫓지 못하고, 제 나이대로 운명을 맞이하는 등 불로불사에 대해서 자세히는 가르쳐주지 않았던것으로 보인다.

한편 생 제르맹 백작에게는 시종이 한명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을 시기에 생 제르맹 백작이 갈릴리에 있는 가나에 결혼에 참석했다고 주장하기에 다른사람들이 시종에게 그에대해서 묻자, 시종은 "나리는 제가 한세기 동안만 그 백작의 고용살이로 있었던 것을 망각하는군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즉, 제자가 아니라 시종이 생 제르맹 백작의 불사의 비밀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다.


5) 정체에 대한 논란

생 제르맹 백작이 한말 중 유명한 "나는 긴 시간 동안 우주를 날아다녔다. 천체들은 내 주위에서 회전했으며, 지구는 내 발밑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또 어느 때인가는 "아주 멀리 떨어진 육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동안에 시간을 빠져나왔다"는 그가 진짜 외계인이라는 설을 못박는 말로 유명하다.

항간에는 사기꾼이 아니냐는 설이 대두되지만, 그가 시민들 눈 앞에서 납을 금으로 바꾸는 일을 한 것으로 보아서 대다수가 그를 진짜 연금술사로 인정한다. 실제로, 당시 금을 판별하는 곳 마저 진짜 금이라고 하였으며 생 제르맹 백작은 대충 주변에 있는 금속을 금으로 만들어 재산을 부풀리는데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6) 이후 행적

1822년에 자신의 지인에게 인도에 간다는 말만 남기고는 히말라야 산맥의 은둔소에서 85년간 속세를 떠나 수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39년에 한 미국의 비행사가 티베트에서 생 제르맹 백작이라고 밝힌 중세 무렵의 옷차림을 한 유럽인의 승려를 만나게 된다.

다시 속세로 내려온 생 제르맹 백작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윈스턴 처칠에게 잇따른 조언을 하였고 처칠은 독일의 나치의 공습에 대비해 영국의 공군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정계에서 무시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독일의 나치가 영국을 공격하며 처칠의 말이 맞아떨어지자 윈스턴 처칠은 영국정부로부터 다시금 해군 장관에 임명되었고 이후 총리를 지내며 영국 본토 항공전을 막아내어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다.

최근 별에서 온 그대를 보다가 예전에 비애리님이 올리신 생재르맹 백작 글이 떠올라 올려보네요^^



비애리님 글 원문 - 신비한 생재르만 백작

프랑스의 생제르망 백작은 지금도 유럽에서는 불로불사의 인간으로 간주되며
여러 가지 신비한 일화를 많이 남기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의 생애는 출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고 아직도
그가 생존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의 출생에 관하여 맣은 논란이 있는데 일부의 사람들은 그가 프트란실바니아의 지배자였던
프란시스 라코치 2세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또 스페인 찰스 2세의 미망인이 낳았다든지, 포르투갈의 유대인의 아들이라는 등등의 설이 분분하지만
확실히 입증될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단 그는 5개 국어에 능통했고 학문,예술 분야 에서도 뛰어났기에 예술가의 자식이
아니냐는 설도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그는 1740년 경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던 전력이 있고
1750년대에 루이 15세와 그의 정부인 마담 퐁피두와(루이15세의 정부로 12년간 프랑스를 좌지우지 한 여자)
의 추천으로 사교계로 진출하였다고 합니다..

생제르망 백작은 학식과 재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뛰어났다고 알려집니다.
바이올린 연주나 화가, 연금술, 화학 등등의 다양한 재주를 과시하여 일약 사회적인 명사가 된
그는 특히 자신이 연금술로 만들어 냈다는 보석을 뭇 여성들에게 아낌없이 뿌려대 신망을 얻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생제르망이 현자의 돌(엘릭서-연금술사가 꿈꾸는 궁극의 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에는 '불가사의한 이방인에 관한 일화'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탁월하고 고귀한 연금술사로서의 명성을 가지고 독일에서 프랑스로 왔다.
그는 비밀의 가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만능약이기도 했다.
이 이방인이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의 끊없는 지출이 이러한 소문을 뒷받침했던 것 같다.

소문이 커지자 당시의 프랑스 대신이 이를 의심하여 그의 비밀을 밝히려 했고
그는 생제르망이 어디로부터 송금을 받고 있는지 조사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현자의 돌이 어디서 생기는지 그 출처를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비밀을 밝히려는 그 고관의 의도는 매우 사려 깊고 현명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수수께끼만 더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2년 동안 감시하였지만, 생제르망은 평상시와 같이 생활하며 모든 것을 현금으로 지불했는데,
그 동안 프랑스에 있는 그에게 들어온 송금은 일체 없었다.]

생제르망 백작이 연금술사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는 애인인 귀족부인 라모아 제르지의 하녀에게
저택을 사줄만큼 씀씀이가 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문도 돈을 벌데도 없는 그가 어디서 그런 많은 돈이 났는지는 지금도 수수께기 입니다..


생제르망은 일부 귀족들 앞에서 변성실험(금속을 다른 물질로 바꾸는 연금술의 한 종류)을 하여
보통의 주화나 은화를 금으로 변화시키기도 하고,
왕이나 외교관에게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며 큼직한 다이아몬드와 보석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파리의 자택에서 마련한 연회에서는 보석을 디저트 접시에 담아 참석한 귀족들에게 선물로 주었다고도 전해지죠.
한번은 어떤 공작부인의 청에 못이겨 생명의 약이 든 작은 병을 주었는데,
그것이 술인줄 알고 마셔버린 하녀가 몰라보게 젊어졌다는 믿기지 않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게다가 그가 더 신비한건 그가 불사의 능력을 가졌다고
추정 되기 때문입니다..


생제르망의 애인이였던 라모아 제르지 백작부인의 회상록에 의하면,
1710년 무렵 베네치아에 있던 생제르망의 나이는 50세쯤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1660년경에 출생한 것이 되죠.

그런데 그는 1737년에서 1746년 사이에 페르시아와 영국, 빈 등에 머물렀다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7, 80세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이지만 오히려 더 젊어 보였다고 합니다..

이후에 1749년에는 파리에 도착하여 루이 15세와 퐁파두르 후작부인을 만났으며,
1756년에는 인도에서 목격되었습니다.
또 1762년에는 성 페테르스부르크의 쿠데타에 참가하고,
이후로는 프랑스의 샹보르성에서 연금술과 화학실험에 종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1768년에는 베를린에 있었고, 그 다음해는 이탈리아, 코르시카, 튀니스를 여행하였으며,
1770년에는 러시아 해군이 이탈리아에 입항했을 때 오를로프 백작에게 초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때 그는 러시아 장군 복장이었고 외모는 변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1770년대에는 독일에 체류하면서 샤를 왕자와 함께 프리메이슨과 장미십자단 일에 종사하였으며,
1780년에는 런던의 출판상인 왈시 사에게 찾아가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곡을 출판 하도록 했답니다.

독일의 에케른푀르데의 교회에는 "소위 생제르망 웰돈 백작.
1784년 2월 27일 사망. 3월 2일 매장됨"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1710년에 그가 50세까지 함게 했다는 라모아 제르지 백작부인의 말을 믿으면,
그는 124세 정도에 죽은 셈이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그는 프리메이슨 모임에 당당히 출석 했다고 합니다.

1787년에는 프랑스 루이 16세 앞에 나타나서는 지금처럼 사냥만 하고 다니면(루이 16세는 사냥과 열쇠 수리외엔 전혀
다른일엔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2년뒤엔 비참하게 목이 잘릴거라고 말하고 사라 졌다고 합니다..
그후 2년뒤인 1789년 시민 혁명이 발발하며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는 사형 당합니다..

또 한 라모아 제르즈의 증손녀인 엘리메아는 1821년에 생제르망 백작을 빈에서 만났는데 할머니는 편안히 가셨냐고 물었다고 했습니다,
주 베네치아 프랑스 대사도 같은 해에 산마르코 광장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기록 했습니다


생제르망의 친구이자 제자인 헤세 카셀의 샤를 왕자는 그의 저서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 중의 하나"로 생제르망을 추켜세웠으며,
주브뤼셀 오스트리아 대사인 코벤츨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존경할 수 있는 결백하고 착한 영혼의 소유자"
라고 하였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프로이센의 국왕)은 생제르망을 "이해할 수 없는 남자" 라고 말하였으며,
프랑스의 볼테르(프랑스의 작가이자 계몽 사상가)는
생제르망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결코 죽지 않는 남자" 라고 평하였습니다.

현대 심령학 에서는 생제르망이 불로라기 보다는 시간 이동을 자유로이 할수 있다는 능력을 가진것
같다고 추정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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