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집에 들어가서 일단 책상에 앉아서 주섬주섬 책을 정리 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우리 집안으로 누가 스윽 들어 가는거야. (여름이니 현관 문을 항상 열어 놨어)
그때 이미 우리 아버지가 아직 귀가를 안하셨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나 미란이가 들어 간줄 알았어.
평소 미란이가 우리 집에 오면 부모님께 먼저 인사하고 우리 누나들하고 수다 떨고 그랬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미란이가 우리집 으로 오려면 내방쪽 복도를 지나와야 하기 때문에 책상에 계속 앉아 있는 내가 모를리 없지.
그래서 아버지가 들어 오셨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순간 복도 엘리베이터 쪽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거야.
뚜벅뚜벅 소리가 우리 집 방향으로 계속 나길래 누가 오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가 내 방 창문 앞에서 고개를 스윽 내미는데 미란인거야.
“어? 어? 너 또 어디 갔다와?” 라고 내가 당황해서 물었더니 미란이가 더 벙찐 표정으로 되묻는다.
“무슨 소리야? 나 이제 들어 오는데. 마중 좀 나와 달라니까 집에 있으면서 마중도 안나오냐?”
와, 이거 갑자기 무언가 쏴 하게 공포감이 밀려 오면서 머리가 띵한거야.
그럼 좀 전에 내가 데리고 온 애는 누구지?
내 팔까지 잡았던 그 아이는 누구고 내가 생생하게 맡았던 그 샴푸 냄새는 뭐지?
내가 놀란 토끼 눈이 되서 멍하게 쳐다 보고 있는데 “조금만 기다려 나 옷갈아 입고 올게” 라며 자기 집으로 가더라구.
그 때부터 아주 미치 겠는 거야.
사람들은 보통 환청이나 환영 같은걸 보면 ‘아, 이건 환청 이구나’ ‘저건 착각이구나’ 라고 생각 한다잖아.
그런데 아냐.
내 그때 경험을 돌이며 보면 그게 착각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가.
그러면서 그럼 내 주위에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착각인지 내 인지능력의 모든것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
그리고 그때쯤 글에는 기재가 안되 있지만 이상한 일들을 더 많이 겪고 있었거든.
제일 심한게 환청 이었지.
그때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건강한 남자 아이 였기 때문에 ‘술’ 때문 이라거나 병으로 인한 ‘허약함’ 이라는 따위의 이유가 있을수 없었어.
아무튼,
뭔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느낌이 든 나는 그럼 아까 집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누군지 안방으로 가봤어.
그런데 아무도 들어온 사람이 없는거야.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시고 누나들은 자기 방에 있고.
온 몸에 소름이 올라 오고 아주 미치 겠더라구.
내 방으로 와서 창문을 닫고 있었어. 너무 무서워서.
한 여름인데 왜 그리 춥던지.
조금 있다가 미란이가 내방으로 건너 왔어.
집에 오자마자 우리 누나방에 가서 뭐라뭐라 좀 낄낄대고 잡담을 하더니 내방으로 건너온다.
얘가 토끼 눈이 되서 방구석에 앉아 있는 날 보더니 왜 그러냐는 거야.
말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얘기했지.
“나, 사실 아까 밖에서 너 기다리다 너랑 같이 들어왔어”
그런데 그 말을 내가 해 놓고도 현실감이 너무 떨어 지는거야.
이상한건 미란이가 그 말을 듣더니 심각한 표정이 되더니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야.
더 무섭게 시리.
그렇게 한 참 골똘히 생각 하더니 입을 연다.
“나도 사실 요즘 이상한 일들을 많이 겪는다” 라는 거야
“주로 어떤 일?” 내가 잔뜩 쫄은 목소리로 되물었지.
그러니까 무표정 하게 다시 말하는거야.
“나 미루 아줌마 자주 본다.”
온 몸에 피가 꺼꾸로 솓아 오르는거 같았어.
그 동안 동네 주민들에게 ‘미루엄마’ 라는 이름을 꺼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에 가까웠거든.
그렇게 도망치고, 도망쳐서 망각의 기억속에 꼭꼭 싸매뒀던 공포감이 한번에 확 밀려 오더라구.
그러면서 내가 몇일 전 착각 했다고 느꼇던 미루 엄마의 모습이 생각도 나고.
‘그게 내 착각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겹치면서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거지.
“미루 아줌마를 봤어?” 라고 내가 물었어.
그때 차마 사실 나도 봤다고 말을 못 하겠더라구.
“처음에는 그 아줌마가 자주 부르던 노래 소래가 언젠가부터 들려. 난 내가 잘 못 들은줄 알았거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부른다 거나. 근데 그게 아냐”
“그게 아니면?”
“가끔, 그 아줌마 밤에 그 노래를 부르면서 복도를 돌아 다녀”
나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할말을 찾지 못했어.
누군가 내 방 창문에서 씨익 웃으면서 우리를 쳐다 보고 있을 것 같은 공포가 온 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데다 좀 전에 우리 집 안으로 스윽 걸어 들어간 그 정체도 뭔지 무서운 거야.
“나 요즘 너무 무서워서 내 방에서 혼자 잠도 못자” 라고 미란이가 말하더니 한숨을 쉬더라구.
그러면서 미란이가 그동안 자기가 겪었던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놀랐어.
언젠가 복도에서 누가 미루엄마 가 자주 부른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대.
처음에는 아련하게 ‘내가 잘못 들었나?’ 하는 정도로 들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조금씩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더래.
그 말을 듣다보니 미란이가 나한테 ‘너는 무슨 소리 안들리냐?’ 고 물어 봤던게 생각났어.
설마 그 무슨 소리가 미루엄마 노래 소리 일거라고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지.
그러다가 어느날 늦게까지 밖에서 공부를 하다 12시쯤 집으로 오는 길에 우리 층 엘리베이터에서내리자 마자 또 그 노래 소리가 들리더라는 거야.
복도에는 아무도 없고 대부분 집은 시간이 늦어 현관 문이 닫혀 있었는데 유독 그날은 미루네 집 현관이 열려 있더래.
공포감에 얼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한발 한발 집으로 가다가 미루네집 앞을 지나면서 슬쩍 미루네 집을 봤는데,
자기는 분명히 봤다는거야.
미루네집 마루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미루 엄마를.
미루네 집 거실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서 빙글빙글 돌며 걷고 있더래.
“근데………”
미란이는 겁에 질린 채로 말을 이어 갔어.
“글쎄 나랑 눈이 마주 쳤는데 웃고 있더라. 분명 그 때 그 집에 불이 꺼져 있었거든. 근데 웃으면서 날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정확히 보이는 거야.”
그렇게 우리 방에서 둘이 소근 거리며 얘기 하고 있는데 방에서 주무시고 계시던 어머니가 내 방앞으로 오시 더라구.
“니네 이 시간에 둘이 뭐하냐?” 라며 잠이 반 깨신 목소리로 물어 보셨어.
물론 이상하다거나 둘이 뭔가 수상한 짓 한거 아니냐는 뉘앙스로 물어 보시는게 아니라
그냥 둘이 밤 늦은 시간에 뭔가 속닥속닥 대니까 오셔서 물어 보신가야.
“아니 그냥 얘기하고 있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둘러 댔어.
“근데 아까 누가 내방에 들어 왔었니?” 라고 어머니가 물어 보시는거야.
“아니 내가 방 앞까지 가긴 했는데 들어 가진 않았는데” 라고 말하니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그래? 자고 있는데 뭐 시커먼게 들어와서 방을 한바퀴 휘 돌고는 나가더라. 잠결에 난 또 니 아버지 오신줄 알았더니”
그 말을 듣는데 오싹 한거야.
뭐가 들어 오긴 들어 왔었구나.
그러면서 문득.
아까 내가 마중 나갔다가 데리고 왔던 미란(?)이가
‘조금만 기다려 너희집 으로 갈게’ 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나는거야.
그러더니 뜬금없이 어머니가 거실로 나가시더니 향을 피우시더니 테이프로 불경을 트신다.
그리고 염주를 꺼내 같이 염불을 중얼중얼 따라 하시는 거야.
그때 확실히 뭔가 느껴졌어.
어머니가 뭔가 보셨구나.
무언가 내가 모르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구나.
우리 모친이 웬만한 스님 뺨(?) 치시는 분이라 가끔 내가 이해 못할 정도의 신비한 일을 자주 보여 주셔.
그게 아니고서는 자정이 다되가는 시간에 향을 피우고 염불을 외우시는 행위를 할리가 없으시거든.
마루에서는 어머니가 계속 염불을 외우고 계시는데 미란이가 그러는거야.
“야 그래도 아줌마가 불경 틀어 놓으니까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ㅋ”
야 얘는 속도 좋다 싶었다.
나는 쫄아서 말도 안나오는데.
“너는 지금 안무서워?” 내가 물었어.
미란이가 그러더라 “무섭지. 근데 처음 미루 아줌마 봤을 때 보다는 뭐. 그 때는 정말 기절 하는줄 알았다” 라고 하는거야.
그래서 내가 “처음 봤던게 언젠데?” 라고 물었어.
“그 일 있기 며칠전에 처음 봤었지. 엘리베이터 10층에 서고 문 열리는데 그 앞 계단 아래쪽에서 누가 고개만 내민채 씨익 웃으면서 쳐다 보고 있는거야. 난 또 멍청 하게 익숙한 얼굴이라 대놓고 인사 까지 했다. 그런데 집에 오다가 생각 해보니까 미루 아줌마 더라구. 나 그날 무서워서 엄청 울었잖아”
그 말까지 듣고 나니까 머리가 너무 혼란 스러웠어.
이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착각 인건지도 모르겠고.
그 전에 내가 봤던 미루 아줌마도 환상이 아니구나.
내가 들었던 그 노래들도 나만에 환청은 아니었구나.
막 그런 생각이 들면서 무서워 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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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지쳐서 5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