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오백 년 전, 규슈 기쿠치 집안의 신하 가운데 이소가이 헤이다자에몬 타케쓰라라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이소가이는 무공으로 이름을 떨친 선조에게서 무술에 뛰어난 천성과 역량을 자연히 물려받아 어린 나이에 이미 검도, 궁도, 창술에서 스승을 능가했고, 장래에는 대담하고 뛰어난 무사가 되리라 여겨졌다. 에이쿄우의 난에서는 여러 차례 무공을 세워 대단한 명예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쿠치 가문이 멸망하고 나자 이소가이는 주군 없는 몸이 되었다. 물론 다른 다이묘를 모시는 것은 간단했지만, 이소가이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공을 세우려고 한 적이 없는 사무라이로 그 마음을 이미 죽은 주군에게 바쳤기 때문에 세상을 버리고 출가하기로 했다. 그는 머리를 깎고 가이료라고 이름을 바꾼 뒤 행각승이 되었다. 하지만 승려의 옷을 입었어도 그의 몸속에는 늘 사무라이의 혼이 깃들어 있었다. 왕년에 어떠한 위험에도 까딱없이 빙그레 미소 짓던 이소가이는, 지금도 여전히 고생을 전혀 겁내지 않았다. 어떤 날씨, 어떤 계절에도 거룩한 불법을 설파하며 행각을 계속하여 다른 중들이 가지 않을 땅에까지 설법을 하러 갔다. 당시는 동란의 시대라 가도를 혼자 걷는 것은 설령 승려의 몸일지라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으로 긴 여행에 나섰을 때 가이료는 가이국을 방문했다. 산속을 걷던 도중,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인적 드문 곳에서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그는 노숙을 하기로 했다. 길바닥에 마침 알맞게 풀이 자란 곳이 있기에 거기서 누워 자려고 했다. 그는 수행 삼아 고생을 즐겨했다. 더 나은 게 없으면 풀 한 포기 없는 바위를 침상으로 썼고, 소나무 뿌리도 적당한 베개가 되었다. 그의 몸은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양, 밤이슬이나 비, 서리나 눈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가이료가 드러눕자마자 손에 도끼를 들고 장작거리를 떠멘 남자가 지나갔다. 나무꾼은 가이료가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자 걸음을 멈추고는 잠자코 지켜보다가, 자못 놀랍다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런 곳에서 홀로 주무시다니 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이 일대에는 가지각색의 것들이 수도 없이 출몰합니다. 그런 털 짐승들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아니, 아니오.”
가이료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나는 온 나라를 떠돌아다니면서 수행하는 몸,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탁발승입니다. 짐승의 먹잇감은 되지 않을 거요. 사람을 호리는 여우니 너구리같은 유의 짐승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인적 드문 벽지는 내가 즐겨 찾는 곳이니, 그런 땅이 명상에는 딱 좋지요. 한데서 자는 것도 익숙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마음가짐도 되어 있습니다.”
“이런 데서 잠을 청하다니 스님은 참으로 대담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이었다.
“이 일대는 뒤숭숭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군자는 위험한 곳에 가까이 가지 않는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여기서 주무실지 말지 다시 생각해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제 집은 너무나도 누추하고 허름한 곳입니다만, 부디 지금 함께 가주십시오. 변변한 식사도 대접해드리지 못하지만, 적어도 지붕은 있습니다. 거기라면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쉬실 수 있을 겁니다.”
간청이 너무나도 친절했고 별다른 뜻은 없는 듯 보였기에, 가이료는 이 조심스러운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둘은 함께 바위에 기어오르고 나무뿌리를 타며 좁고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따라 걸어, 마침내 언덕 위 넓고 트인 곳으로 나왔다. 보름달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작은 초가집이 있고, 안에는 등불이 켜져 있었다. 나무꾼은 오두막 뒤편 헛간으로 안내했다. 가까운 시내에서 물을 끌어댄 홈통이 있었다. 두 사람은 거기서 발을 씻었다. 헛간 건너편은 채소밭이고, 그 앞은 삼나무 숲과 대나무 숲이었다. 숲 너머로 한 줄기 폭포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어딘가 높은 데서 떨어지는지, 물줄기가 달빛 아래서 길고 흰 옷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안내해준 나무꾼과 함께 가이료가 오두막에 들어서자 네 사람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은 방 안에서 화로에 손을 쬐고 있었다. 네 사람은 승려를 향해 낮게 머리를 숙이고 매우 공손히 인사했다. 이런 산속에 있는 가난한 이들이 이렇게 인사를 똑바로 하는 것을 보고 가이료는 내심 생각했다. ‘참 예의바른 사람들이다. 예의범절을 잘 아는 사람에게 배운 적이 있는 게 분명해.’
그리고 모두가 주인이라고 부르는 나무꾼 쪽을 보고 가이료는 말했다.
“아까의 친절하신 말씀도 그렇고, 댁에 계시는 분들의 정중한 응대도 그렇고, 당신은 원래 나무꾼으로 태어나신 분은 아닐 듯합니다. 옛날에는 신분이 높으셨던 게 아닙니까?”
나무꾼은 웃음을 띠고 말했다.
“실로 그러합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이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무예로 다소나마 이름을 떨친 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제 신상 이야기는 영락한 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제가 지는 죄로 제 몸을 망친 거지요. 그 옛날, 어느 다이묘를 모시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책을 맡아 왔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색을 탐하고 술에 빠져들어, 벌컥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그만 몇 번이나 무자비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제멋대로인 소행 때문에 가문이 끊겼을 뿐더러, 많은 사람들을 비명의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대가로 이 나라에서 저는 사람 눈을 피하고 세상에서 숨어 사는 몸이 되었지요. 지금은 그 거듭된 악행을 속죄하고 가문의 이름을 다시 떨치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방법은 이제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도 가능한 한 길을 잃은 나그네를 돕고, 참회에 참회를 거듭하여 모쪼록 과거에 지은 죄의 인과를 끊고 싶은 마음입니다.”
가이료는 이 훌륭한 결심을 듣고 기뻐하며 주인에게 말했다.
“아니, 아니, 인간은 고통스러울 때 자칫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후일에는 정도를 걷고 싶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는 것이지요. 악한 자일수록 일단 착한 마음을 먹으면 더 선해질 수 있다고 경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당신이 착한 심성을 가졌으리라는 것은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부터 좋은 운이 열리기를 바랍니다만, 오늘밤은 소승이 당신을 위해 밤새 독경염불하여 효험이 있기를 빌고 싶습니다.”
이리하여 과거에 지은 죄의 인과를 끊어줄 것을 약속하고, 가이료는 주인에게 인사한 뒤 물러나고자 했다. 주인은 승려를 꽤 작은 옆 별실로 안내했다. 방에는 이미 이불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지만, 가이료만은 등불에 의지하여 경을 읽기 시작해 밤늦게까지 계속 염불을 외웠다. 그러던 그는 자기 전에 한번 바깥의 야경을 보려고 별실의 창을 열었다. 대단히 아름다운 밤이었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으며 바람도 없었다. 휘황한 달빛이 지면에 날카롭고 어두운 잎사귀 그늘을 자른 듯이 떨어뜨리고, 이슬은 구슬처럼 반짝반짝 마당 전체에서 빛나고 있었다. 귀뚜라미나 방울벌레가 우는 소리가 맑고 시원하게 울려 퍼졌으며, 폭포 소리도 밤이 깊어감에 따라 점점 깊어지는 듯했다. 가이료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목이 말랐다. 그는 집 뒤쪽에 물이 나오는 홈통이 있었음믕ㄹ 떠올리고 거기까지 가면 다른 사람에게 수고를 끼치지 않고 물을 마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별실과 옆 방 사이의 장지를 조용히 열었다. 그리고 등불에 비춰보니 다섯 사람이 누워 있었다. 그런데 목이 없었다.
순간 가이료는 섬뜩하여 꼼짝 못 한 채 서 있었다. 살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피가 없다는 것, 목이 없지만 잘린 흔적도 없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아하 싶었다.
“이거 요괴에 홀렸거나, 그게 아니면 로쿠로쿠비의 집에 유인되었거나 둘 중 하나구나. 『수신기』라는 책에는 로쿠로쿠비의 몸뚱이를 발견하여 그 몸뚱이를 다른 곳에 옮겨놓으면 머리가 원래의 몸에 두 번 다시 붙지 못한다고 되어 있었지. 또 머리가 돌아왔을 때 몸뚱이가 다른 곳에 옮겨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공포에 질린 나머지 머리가 세 번 땅에 떨어지고 세 번 공처럼 튀어 오르며 괴로워하다가 절명한다고도 했다. 만일 이게 진짜 로쿠로쿠비라면 어차피 좋지 못한 일을 꾀하고 있음이 틀림없어. 그렇다면 『수신기』의 가르침에 따라도 전혀 개의할 것이 없지.”
가이료는 주인의 양 다리를 잡고는 창가로 끌고 가 밖에 내던졌다. 그러고 뒷문으로 돌아오니 빗장이 걸려 있었다. 목은 열려 있는 천정 창문을 통해 밖에 나간 게 분명했다. 가이료는 조용히 빗장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당 건너편 숲으로 향했다. 과연 숲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이료는 나무 그늘 사이로 옮겨가며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살며시 다가갔다. 마침 적당한 곳에 몸을 숨기고 나무 뒤에서 엿보니 머리들이 보였다. 확실히 머리 다섯 개가 주위를 뛰어다니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땅을 기어다니거나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레를 붙잡아 연신 그것을 먹어댔다. 잠시 후에 주인이 먹던 것을 멈추고 말했다.
“오늘밤의 저 행각승은 온몸에 살이 올라 있더군. 그걸 잡아 먹으면 분명 배부르겠지. 그런데 그만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 덕분에 중에게 내 후세의 행복을 위해 경을 읽게 하고 말았어. 아무리 그래도 독경중일 때는 다가갈 수가 없다. 기도를 하고 있으면 건드리지도 못하지. 하지만 곧 아침이다. 이제 잠이 들었겠지. 누가 집에 가서 상황을 보고 오너라.”
곧장 한 젊은 여인의 머리가 펄쩍 날아올라 박쥐처럼 가뿐하게 집 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머리는 잠시 후에 돌아와 완전히 동요한 듯 갈라진 목소리로 갑작스러운 변고를 알렸다.
“어찌 된 일인지 행각승은 별실에 없었습니다. 나가버린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난처하게도 주인님의 몸뚱이 또한 없습니다. 어디로 갖고 갔을까요?”
이 말을 전해듣는 주인의 머리는 달빛 아래에서도 확실히 보였는데 오싹한 모습이었다. 두 눈을 무시무시하게 부릅뜨고 머리털은 거꾸로 섰으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어서 입에서 비통한 통곡 소리가 새어나오더니 머리는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었다.
“몸뚱이가 딴 데로 옮겨진 이상 이제 합체할 수는 없ㄷ사. 죽을 수밖에 없어. 이는 분명 그 행각승의 소행이다. 죽기 전에 그 중에게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 잡아먹을 테다. 그렇지, 저기에 있다. 저 나무그늘에 숨어 있어. 어디 봐라, 저 살찐 겁쟁이 중놈이!”
그렇게 울부짖자마자 주인의 머리는 다른 네 사람의 목을 거느리고 느닷없이 가이료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이 중도 힘 센 호걸, 그는 적당한 어린 나무를 뽑아들고 자세를 취하더니 달려드는 목을 차례차례 쳐냈다. 그 기세가 격렬하기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네 사람의 목은 결국 달아났지만, 홀로 남은 주인의 목은 쳐내도 쳐내도 집요하게 가이료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고는 마침내 왼쪽 소매를 물고 늘어졌다. 가이료는 재빨리 그 상투를 붙잡고는 머리를 세게 때렸다. 머리는 그래도 소매를 물고 늘어진 채 놓지 않았으나 이윽고 긴 신음소리를 내고는 잠잠해졌다. 결국 죽은 것이다. 허나 그 이빨로 소매를 여전히 물고 있었고 가이료의 힘으로도 그 턱을 풀 수가 없었다.
가이료는 머리를 소매에 매단 채 집으로 돌아왔다. 로쿠로쿠비 넷이 안에서 한데 모여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멍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몸뚱이에 돌아가 있었다. 넷은 뒷문으로 들어오는 가이료를 보자마자, “중이다, 중이다”하고 외치고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앞문으로 뛰쳐나가 숲속으로 혼비백산 달아났다.
동쪽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슬슬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가이료는 잡귀들이 어두울 때에만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소매를 물고 늘어진 머리를 찬찬히 바라보니, 얼굴은 피와 진흙투성이였고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가이료는 “이 무슨 꼴인가, 귀신 모가지가 기념품이라니!”하고 소리 높여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얼마 안 되는 짐을 꾸려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가이료는 이렇게 여행을 계속하여 이윽고 시나노의 스와에 접어들었다. 그는 소매에 머리를 대롱대롱 매단 채 유유히 걸었다. 길을 가던 여자는 정신을 잃었고, 아이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소란스러워졌으나 포리―당시에는 경찰을 이렇게 불렀다―가 마침내 나타나 승려를 옥으로 끌고 갔다. 포리들은 처음부터 가이료가 사람을 죽였고, 피해자가 죽기 직전에 범인의 소매를 물고 늘어진 거라고 믿었다. 가이료는 어땠는가 하면, 취조를 해도 대답도 않은 채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는 옥에서 하룻밤을 밝힌 후 재판을 담당하는 관리 앞으로 끌려갔다. 행각승쯤 되는 이가 왜 소매에 머리통을 달고 다니는가, 자신의 범행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건 어떤 이유에선가 소상하게 밝히라.
이 말을 들은 가이료는 껄껄 웃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머리를 소매에 매단 것은 제가 아닙니다. 제 스스로 물고 늘어진 것이지, 제가 시킨 게 아닙니다. 게다가 애당초 저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목이 아니라, 귀신의 목입니다. 또 제가 귀신을 때려죽였다고는 해도 그 때문에 피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제 몸의 안전을 위해 마땅히 경계를 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가이료는 요괴를 만난 대목에 이르러서는 또 껄껄 홍소하였다.
그러나 재판소의 관리들은 이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행각승을 약삭빠르고 교활한 악한으로 간주하고는, 그의 말이 관청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분노했다. 관리들은 그 이상 추궁하지 않고 그를 이 자리에서 당장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다른 이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노인 관리가 있어 취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더니 천천히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우선 목을 꼼꼼히 조사해보기로 합시다. 아직 저 목이 누구의 것인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소. 만일 이 행각승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목 자체가 그 증거가 될 것이오. 목을 여기로 가져오시오.”
가이료가 승복을 벗었으나 머리는 여전히 소매를 깨문 채 옷자락에 매달려 있었고, 그 모양 그대로 관리들 앞에 놓여졌다. 나이 든 관리는 머리를 몇 번이고 돌려가며 요모조모 살펴보다가 목덜미에 기묘한 붉은 자국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노인은 다른 관리에게 그것을 가리켜 목이 칼로 잘린 기미가 어디에도 없음을 모두에게 주지시켰다. 과연 목덜미는 잘렸다기보다 낙엽이 줄기에서 떨어진 듯 매끈했다. 나이 든 관리는 천천히 일동에게 말했다.
“행각승의 말은 참으로 명백하네. 이것은 로쿠로쿠비야. 『남방이물지』에 보면 ‘로쿠로쿠비는 목덜미에 붉은 자국이 있다’고 나와 있지. 지금 이 목덜미에도 자국이 있네. 붉게 칠한 게 아님은 여러분이 확인한 그대로일세. 이런 요괴들이 옛날부터 가이국 산중에 존재한다는 것은 소문으로는 들은 바 있었지. 그렇다고는 하나 귀공은”하고 가이료를 향해 나이 든 관리는 말했다.
“참으로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겁이 없는 법사로군. 아무래도 보통 행각승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네. 오히려 무사에 적합한 분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사무라이셨는가?”
“짐작하신 대로입니다.”
가이료는 대답했다.
“행각승이 되기 전에는 오랫동안 무기를 들었던 몸입니다. 그때에는 사람이건 귀신이건 두렵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이소가이 헤이다자에몬 타케쓰라라는 이름으로, 규슈의 다이묘를 모셨습니다. 들어보신 분도 있으시리라 여깁니다.”
그 이름을 듣자 감탄 소리가 관헌에 울려 퍼졌다. 진작부터 이소가이의 이름을 알고 있던 사무라이가 그곳에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판장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벗이나 되는 듯이 가이료를 둘러쌌다.
관청 사람들로서도 이제 무사에 대한 상찬의 정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예를 다해 가이료를 다이묘의 저택에 모셨다. 가이료는 다이묘에게 곡진한 환영과 대접을 받은 데다가 떠나기 전에는 상당한 포상까지 받았다. 그는 이 덧없는 세상에서 승려에게 허락된 온갖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목은 어찌 되었나 하면, 역시 기념으로 삼고 싶다는 익살을 섞어 가이료가 소매에 매단 채 길을 떠났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 목이 어떻게 되었는지 덧붙여 말씀드리겠다.
스와를 나서고 하루 이틀이 지난 후, 가이료는 노상강도를 맞닥뜨렸다. 노상강도는 산 속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옷을 벗어놓고 가라고 했다. 가이료는 곧 옷을 벗어 그것을 내밀었다. 노상강도는 그때서야 비로소 소매에 매달려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대담무쌍한 위인이긴 했으나 놀라서 법의를 내던지고 뒤쪽으로 펄쩍 뛰어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외쳤다.
“너, 대체 너는 그러고도 중인가. 나보다도 사악하구나. 나도 사람을 몇이나 죽였지만, 목을 소매에 매달고 걸어다닌 적은 없다. 너는 보아하니 우리들의 동료, 그것도 매우 뛰어난 동료가 아닌가. 거 참, 놀랍다. 그런데 이 목은 아무래도 겁줄 때 쓰기 딱 좋아 보이는군. 그놈도 넘겨주면 내 옷 말고도 다섯 냥을 주지. 어떠냐?”
가이료는 대답했다.
“그렇게 바란다면 양보하겠지만, 이건 사람의 머리가 아니다. 요괴의 머리야. 이놈을 사서 훗날 번거로운 일이 생겨도 내가 속였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게.”
“하하, 재미있는 중이다.” 노상강도는 홍소했다. “너는 사람을 죽이고도 모자라 농까지 치느냐. 하지만 내 말은 진담이다. 여기 내 옷과 돈이 있다. 그럼 목은 받아가마. 허나 말이다, 그런 장난을 치는 데 무슨 득이 있지?”
“그러면 가져가거라.” 가이료는 대답했다. “나는 농담한 게 아니다. 농담을 하는 것은 네 쪽이지. 너는 돈까지 주고 요괴의 목을 손에 넣으려 하는 게다. 더할 나위 없는 미친 짓 아닌가.”
가이료는 큰 소리로 웃고 다시금 여행길을 서둘렀다.
이리하여 노상강도는 목과 옷을 손에 넣고, 얼마 동안 길가에서 귀신중으로 분하여 악행을 일삼았다.
그러나 스와 근방에 왔던 그는 이 목에 얽힌 실화를 듣고 로쿠로쿠비의 악령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는 게 아닌가 하여 재앙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도적은 목을 원래 있던 곳에 돌려놓고 몸뚱이와 같이 묻어주자는 기특한 마음이 들어 가이국 산속의 쇠락한 오두막을 찾아갔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고 몸뚱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목만 숲 뒤편에 묻고 묘석을 세운 뒤 로쿠로쿠비의 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렸다. 어느 이야깃꾼의 말에 따르면, 그 묘석은 ‘로쿠로쿠비의 무덤’이라 하여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