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초등학교 때 친구 얘기야.
바로 옆집에 살아서 아침마다 같이 학교에 가던 친구가 있었어. 그 날도 마찬가지로 친구네 앞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애가 오늘 따라 넋이 빠져있는 거야. 자세히 보니까 식은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더라고.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자기가 오늘 꾼 꿈 얘기를 해주는 거야.
친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똑 같은 꿈을 꿨대. 되게 착한 할머니가 자꾸 꿈에 나와서 언제나 밥상을 거하게 차려주고
배부르게 먹게 했다는 거야. 그 할머니 인상이 어찌나 좋은지, 꿈에서였지만 할머니와 많은 얘기를 나누고 밥을 맛있게
먹었대. 신기한 건 그렇게 꿈에서 밥을 먹고 일어나면 실제로 밥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다는 거야.
이 친구는 실제로 외할머니랑 단 둘이 살았어. 그런데 어느 날, 외할머니가 평소랑 다르게 등굣길에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신신당부를 하더래.
“니, 오늘 누구 따라 가면 절대로 안된데이. 진짜 안된데이.”
친구는 황당했지만 걱정 말라며 외할머니를 안심시키고 학교에 갔대. 그리고 그 날 하루 종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밤에 잠이 들었대. 그런데 또 인상 좋은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 밥을 차려주더래. 그래서 거하게 먹고 있는데, 그 할머니가
갑자기
“어디 좀 같이 가자.”
라고 하더래. 생각 없이 따라 가려다가 아침에 외할머니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이 났대. 친구가 손을 놓으면서 안 간다고
거절했더니, 그 할머니 얼굴이 순식간에 무섭게 변하더래. 그러더니 친구의 목덜미를 잡고 계속 어디론가 끌고 가더래.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도저히 도망쳐 나올 수가 없었대. 무서워 죽겠는데, 외할머니가 아침에 했던
말이 생각이 났대.
“만약에 꿈에서라도 어데 끌리가면은 당황하지 말고, 벽이나 기둥 같은 데 머리르 세게 쳐박으모 꿈에서 깬디. 아랐제?”
그 말을 생각하자마자 앞에 나무가 보이더래. 그래서 거기에 머리를 박으려고 딱 들이미는 순간 갑자기, 그 할머니가 친구
머리 끄댕이를 잡아 당기면서
“니 이거 누가 가르쳐줬노? 느그 할매가 가르쳐주드나?”
라며 빙그레 웃더래. 결국 꿈에서 못 벗어나고 계속 끌려가는데, 문득 그 할머니의 지팡이가 보이더래. 그래서 그 지팡이에
죽을힘을 다해 머리를 박고는 꿈에서 깨어났다는 거야.
아침부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소름 끼치고 무섭더라고. 그 날 하루 종일 멍하니 있던 친구는 그 다음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걱정이 돼서 집에 찾아가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거야. 그렇게 한 달 후, 친구에게 먼저 전화가 왔어.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걱정되고 궁금한 마음에 한 달음에 달려갔지.
한 달 만에 본 친구는 못 본 새에 비쩍 말랐고, 사뭇 분위기가 달라졌었어. 무엇보다 마냥 실실 웃기만 하는 거야. 정말 미친
것처럼. 집에 들어섰더니 친구가 나를 끌고 어느 방 앞에 데려갔어.
“야, 우리 할머니 바바라. 미쳤디.”
라며 미친 듯이 웃는 거야. 그 방을 무의식적으로 봤어. 1평 남짓한 방에 빛 한 줄 들어오지 않는 암흑 속에서 친구네
외할머니가 계속 허공을 보며 빌고 있었어. 정말 공포스러운 얼굴로.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내가 가르쳐 준 거 아니야. 정말 아니야. 잘못했어. 잘못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