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인이던 시절, 내 직속 후임은 어딘지 모르게 음침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한 마디로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 녀석이었다. 나는 가끔 후임에게 화를 내거나 손을 댄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후임은 아무 소리 없이 기분 나쁜 눈으로
나를 쳐다 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후임과 함께 새벽 경계 근무를 나갔다. 나는 후임에게 ‘좀 잘 테니까 망 잘 보고, 순찰 오는 거 같으면
깨워라.’며 초소 한 쪽 구석에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상한 기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후임은 초소
입구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왜 망을 보지 않았냐며 후임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늘 아무 말 없던 후임이
평소와 달리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구타를 하는 건 내 쪽인데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그 때, 다음 경계 근무자가 교대를 위해 다가왔다. 그들을 보더니 후임은
갑작스레 내 손목을 잡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막사 화장실로 날 끌고 가더니 그제야 멈췄다. 나는 무슨
짓이냐며 또 손찌검을 하려다 새하얗게 질린 후임의 얼굴을 보고 손을 내렸다.
“아까 병장님이 잠에 드시고 망을 보는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서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병장님 옆에 어떤 여자가 칼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는데, 병장님이 일어나셨고… 그런데… 아니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습니
다… 그 여자가 칼을 들고 병장님 뒤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죽여줄까? 죽여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