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문, 혹은 기억의 소중함 제목 백년보다 긴 하루 (혹은 기억을 상실한 노예 만꾸르뜨 전설/ 아나-베이뜨 묘지에 얽힌 전설) 영문제목A Day Lasts Longer Than 10 Years 혹은 The Myth of the Mankurt 원문제목 И дольше века длится день
■ 사로제끄 사막은 ‘스텝의 잊혀진 역사책’이다. 츄안츄안(Zhuan Zhuan) 부족은 스텝의 다른 부족들을 잔인하게 정복했다. 그들은 생포된 젊은이들의 머리를 빡빡 밀고 ‘사리’라고 하는 암낙타의 유방 가죽(낙타 한 마리에서 다섯 개가 나온다)을 모자처럼 씌운다. 그런 다음 포로의 손발을 묶어 족쇄를 채우고, 머리를 땅에 대지 못하도록 큰칼을 씌운 채 풀 한 포기 하나 없는 사막으로 데려가서 살을 태우는 태양 아래, 물도 음식도 주지 않고 내놓는다. 가죽이 마르면서 접착제처럼 머리를 옥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들은 끊임없이 비명을 지른다. 아무리 강한 사내라도 그런 비명을 끊임없이 듣다 보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고문이 된다. 사나흘 간 고문이 계속되면 대여섯 명 중에서 고작 한둘만이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들 그는 이미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뻣뻣하고 잘 구부러지지 않는 머리카락이 자라다가 낙타 가죽에 막혀 거꾸로 머리를 파고들기 때문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결국 모든 기억을 송두리째 잃고 말기 때문이다. 츄안츄안 부족이 노린 것도 그것이었다. 기억을 상실한 노예 - 그들은 자기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머니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한마디로 스스로 인간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노예 만꾸르뜨가 되는 것이다. 어떤 노예 주인에게든 노예가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두려움이지만, 이것도 만꾸르뜨에게는 예외였다. 그들은 살아있으되 이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만꾸르뜨의 원래 부족도 자기 동료가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아예 찾기를 포기하고 만다. 찾아봐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는 그저 몸만 살아있는 시체, 좀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졸라만이라는 청년이 그렇게 살아남았다. 자신의 이름도, 가족도, 부족도 그 어떤 과거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츄안츄안 부족이 시키는 대로 복종할 따름이었다. 졸라만은 한적하고 너른 초원에서 양을 쳤다. 졸라만의 어머니 나이만-아나가 혹시나 하고 그를 찾아갔다.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졸라만을 만났지만, 졸라만이 어머니를 기억할 리 없었다. "너는 졸라만이야. 나는 네 어머니고. 네 아버지가 네게 활 쏘는 법을 가르쳤어. 너는 명궁이야. 그러다 츄안츄안 부족이 왔고, 어머니는 낙타를 타고 도망쳤다.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만꾸르뜨가 되었음을 알고 울부짖는다. - 저들이 네 머리를 집게로 호두를 깨듯이 짓누르고, 말라 가는 낙타 가죽의 더딘 뒤틀림으로 네 두개골을 조이며 너의 기억을 앗아 갔을 때, 공포에 질려 눈물로 채워진 네 안구에서 눈을 뽑아내려고 그 보이지 않는 고리고 네 머리를 조였을 때, 사로제끄의 타는 목마름이 너를 찢는데도 하늘에서 네 입술을 축일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을 때, ㅡ 그때 네게는 어찌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준 태양이 우주 만물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럽고, 무지막지하고 사악한 것이 아니었겠느냐?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네 비명이 사막을 가득 채웠을 때, 밤낮으로 애타게 신을 부르고 몸부림치며 헛되이 하늘의 도움을 기다렸을 때, 네 고통 받는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가래로 숨길마저 막히고 네 발작으로 뒤틀린 몸의 역겨운 배설물로 더럽혀졌을 때, 그 더러운 오물에 빠져 이성을 잃고 구름 같은 파리 떼에게 시달리며 뜯어 먹힐 때 ㅡ 그때 네가 어찌 마지막 숨을 몰아 이 버려진 세상에 우리들 모두를 태어나게 한 신을 저주하지 않았겠느냐? 어둠의 그늘이 고통으로 갈가리 찢긴 네 영혼을 영원히 덮어 갈 때, 억지로 부서진 네 기억이 지난날과의 연상을 영원히 잃어 갈 때, 거친 몸부림 속에서 네 어미의 모습과, 네가 어릴 적 뛰어놀던 산중의 개울물 소리를 잊어 갈 때, 네 황폐한 의식 속에서 네 자신의 이름과 네 아버지의 이름을 잊고 네가 둘러싸여 자랐던 사람들의 얼굴이며 네게 얌전히 미소 짓던 처녀의 이름마저 희미해져 갈 때 ㅡ 그때 너는 어찌 바닥 모를 망각의 구렁텅이 속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고작 이런 날을 살게 하려고 너를 자궁 속에 품었다가 신의 빛 속으로 내질렀다며 가장 지독한 욕설로 네 어미를 저주하지 않았겠느냐?(p.142) 츄안츄안 부족은 졸라만에게 “저 여자 누구냐”고 물었다. 졸라만은 “자기가 내 어머니라 하더라”고 대답했다. 츄안츄안 부족은 졸라만에게 활과 화살을 주며, 다음날 또 여자가 오면 쏴 죽이라고 명령했다. 다음날 졸라만의 어머니 나이만- 아나가 다시 나타났다. 졸라만은 활을 겨눴다. 어머니는 쏘지 말라고 했지만,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고, 나이만-아나는 죽고 말았다. 나이만-아나가 죽을 때 그녀의 머리에서 하얀 스카프가 떨어져 내려 하얀 새가 되어서 이렇게 지저귀면서 날아갔다. “네가 누구 자식인 줄 아니? 네가 누구지? 네 이름이 뭐지? 네 아버지는 도넨바이였어. 도넨바이, 도넨바이, 도넨바이, 도넨바이...” 사로제끄 사막에서 밤이면 날아다니는 그 새는 도넨바이로 알려지는데, 나그네들이 나타나면 가까이 다가가서 이렇게 속삭인다고 한다. “네가 누구 자식인 줄 아니? 네가 누구지? 네 이름이 뭐지? 네 아버지는 도넨바이였어. 도넨바이, 도넨바이, 도넨바이, 도넨바이...” 나이만-아나가 묻힌 곳은 아나-베이뜨, 즉 ‘어머니의 안식처’라는 뜻의 묘지로 불리게 된다.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에서 주인공 예지게이가 오랜 동료인 까잔갑 노인을 묻으러 가는 곳이 바로 그 아나-베이뜨인 것이다. 선정의의 ■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문이 무엇일까. 물론 세상에는 아주 잔인한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고문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육제적 고통과 아울러 정신적 고통을 병행하는 고통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고통이 아닐까. 중앙아시아의 소국 키르기스스탄의 정신적 지주였던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에 등장하여 세계의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 준 고문이 바로 그런 사례가 될 것이다. 나이만-아나는 그 고문을 받은 끝에 모든 기억을 상실한 채 좀비와 같은 중가르의 노예로 전락한 자기 아들에게 살해당한다. 이 전설은 매우 잔인하지만, 사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고문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의 소중함, 고향과 어머니의 사랑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요로운 삶을 산다 해도 기억이 없으면 인간은 무엇이겠는지, 이 전설은 다시 한 번 우리 현대인에게 묻는 것이다. 아울러 이 전설은, 키르기스 민족의 집단적 상황(소연방 해체 이후 부딪친 조속한 국가 정체성의 확립 문제)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이, 한 개인을 넘어서서 민족의 특정한 집단적 기억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새삼 강조하고 있다. 소설에서 인간보다 더 발달한 외계의 선진문명에 접속하는 것을 차단하고 방해하는 위성들의 존재 역시 ‘기억’과 관련하여 의미를 지닌다. 특기사항 ■『백년보다 긴 하루』를 이용한 키르기스 설화, 민속 연구 논문 Mauren E.C. Pritchard, B.A., LEGENDS BORNE BY LIFE: MYTH, GRIEVING AND THE CIRCULATION OF KNOWLEDGE WITHIN KYRGYZ CONTEXTS ■ 만꾸르뜨(Mankurt)라는 용어는 자신의 문화적 뿌리와 기원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오늘날에는 구소련 독립국가연합에서 자신의 모국어나 문화를 기피하고 러시아어나 러시아문화만 고집하는 이를 지칭하기도 한다. 터키에서는 서구문화에 전적으로 침윤된 이를 가리키기도 한다.
■ [참고] 만꾸르뜨화 혹은 만꾸르뜨주의(Mankurtisation or Manqurtism)를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각국의 정체성 확립 과정에서 소비에트 시절의 과거 역사를 돌이켜보며 사유한 논문 MEHMONSHO SHARIFOV, THE SELF BETWEEN POLITICAL CHAOS AND THE NEW POLITICAL “"ORDER”" IN TAJIKISTAN, Transcultural Studies, 2-3 (206-2007). htp://www.schlacks.com/downloads/TS23/Sharifov.pdf ■ 나이만(乃蠻, Naiman): 10-13세기 알타이산맥 근처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한 투르크계 부족. ■ 실제 이 전설의 공간적 배경은 사로제끄 사막과 스텝으로서 그곳의 원주민은 키르기스인이 아니라 까자흐(카자흐스탄)계 민족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전설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키르기스인 소설가 친기즈 아이뜨마또프 때문임을 감안하여, 키르기스 편에서 다룬다.
활용사례■ [영화] MankurtUSSR, Turkmenistan/ Turkmenfil'm Studio, 1990/ Color, 86 minutes Director: Khodjakuli Narliev Screnplay: Maria UrmatovaBased on: The Day Lasts More Than a Hundred Years by Chinghiz AitmasatovCinematography: Nurtai Borbiev Composer: Redjep Redjepov Cast: Tarik Tarjan, Maia Aimedova, Yilmaz Duru, Khodjakuli Narliev, Maisa Almazova. htp://en.wikipedia.org/wiki/Mankurthtp://www.pit.edu/~filmst/events/TurkmenFilmSeries/mankurt.htm ■ [영화] Манкурт (Mankurt) (동영상 전9편) htp://www.youtube.com/watch?v=2c9PAeYOuQ8&feature=related이하■ [애니메이션] Legend of Mankurt - 물질문명과 마약에 찌든 현대인을 현대판 노예 Mankurt에 비유한 애니메이션 (동영상)
연관정보 ■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2000) 특히 pp.138-163.- 36 -
아나-베이뜨 묘지에는 츄안츄안 족이 사로제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포로가 된 전사들을 눈뜨고는 볼 수 없이 잔인하게 다루었던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 자체의 역사가 서려 있었다. 이웃 나라에 노예로 팔려 간 사람들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조만간 그들은 도망을 치든가 해서 자기네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츄안츄안 족에게 걸려든 노예들에게 소름끼치는 고통-희생자의 머리 위에 <시리>를 씌우는-을 가함으로써 기억을 말살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이 운명은 전쟁에서 사로잡힌 젊은 남자들 몫이었다. 우선 먼저 포로들의 머리가 면도날로 철저하게 밀리고 남은 머리칼은 한 올 한 올 뿌리까지 뽑힌다. 그 일이 다 끝나면 츄안츄안 족의 솜씨 좋은 백정이 근처에 있던 어미 낙타를 죽여 가죽을 벗겨 내기에 앞서 털이 숭숭한 묵직한 유방부터 도려낸다. 그런 다음 그것을 몇 조각으로 나누어 아직 더운 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면도로 박박 민 포로의 머리에다 씌운다. 그러면 그것은 당장에 씌워진 자리에 접착제처럼 들러붙는데 그 모습은 어찌 보면 오늘날의 수영 모자와도 비슷했다. 그리고 이어서 끔찍한 형을 겪게 되는데 그런 형을 당한 사람은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죽거나 또는 과거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린다. - 살아남더라도 그는 과거의 삶을 기억할 수 없는 <만꾸르뜨>라는 노예가 되는 것이다.
유방 하나에서 떼어 낸 가죽으로는 다섯 개나 여섯 개의 <시리>가 만들어진다. <시리>가 씌워진 뒤에 형을 선고받은 사람에게는 각각 족쇄가 채워지고 땅에 머리를 대지 못하도록 목에 큰 칼이 씌워진다. 그런 상태에서 포로들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 영혼을 찢는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려간다. 그런 다음 그들은 손발이 모두 묶인 채 살을 태우는 땡볕 아래서 물도 음식도 없이 풀 한 포기 없는 맨 땅에 넘겨뜨려진다. 그 고문은 사나흘 동안 계속된다. 그리고 포로들이 아직 살아 있을 동안 같은 부족 사람 중에서 누군가가 그들을 도와주려고 할 경우에 대비하여 희생자들에게로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증원된 순찰병들이 배치된다. 그러나 포로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시도는, 사방이 다 트인 스텝에서는 어떤 움직임이라도 당장에 알아볼 수가 있기 때문에 자주 벌어지지는 않는다. 만일 나중에 누군가가 츄안츄안 족의 손에 넘어가 <만꾸르뜨>가 되었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때는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도 그를 구하려거나 몸값을 치르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리 희생을 시켜 본댔자 그것은 고작 모습만 그대로인 살아 있는 시체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그런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나이만 부족의 어머니는 단 한, 전설에 나이만-아나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부인이었다. 사로제끄의 전설은 그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로부터 아나-베이뜨-어머니의 안식처-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그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하도록 허허벌판에 버려진 사람들은 대부분이 사로제끄의 땡볕 아래서 죽어 갔고 다섯 명이나 여섯 명의 사람들 중에서 단지 한두 사람만이 살아남아 <만꾸르뜨>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굶주림으로도, 더구나 목이 타서 죽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머리에 씌워진 낙타의 생가죽이 말라 가면서 죄어드는 압력으로 죽어 가는 것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햇살 아래서 <시리>는 사정없이 수축하여 노예가 될 사람들의 박박 밀린 머리에 죄어드는 쇠테처럼 압박을 가한다. 게다가 다음날이 되면 희생자들의 박박 밀린 머리에서 머리칼이 자라기 시작하는데 뻣뻣하고 잘 구부러지지 않는 아시아 인들의 머리칼은 낙타의 생가가죽 속으로 파고들었다가 대개는 굳어 버린 가죽을 뚫지 못하고 뒤쪽으로 구부러진다. 그리고 더욱 더 극심한 고통으로 가하면서 사라의 머리 가죽 속으로 다시 파고든다. 이 마지막 시련이 희생자를 기억 상실과 죽음의 고비로 몰아가는 것이다.
5일째가 되어서야 츄안츄안 족은 포로들 중에 누가 살아남았는지를 보려고 벌판으로 나온다. 그런 고통을 받은 포로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살아 있으면, 만족한 결과가 얻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생존자에게 물을 주고 결박을 풀고 적당한 기간 동안 기력을 회복시킨다. 그렇게 해서 얼마 후에는 기억을 강제로 빼앗겨 버린 <만꾸르뜨> 노예가 생겨나는데, 그런 노예는 기억을 박탈당하지 않은 건강한 노예보다 열 곱은 더 쓸모가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는 어쩌다 싸움이 벌어져 <만꾸르뜨> 노예가 하나 죽으면 그 손해에 대한 배상은 기억을 박탈당하지 않은 자유인에 대한 배상의 세 배로 한다고 정한 법률까지도 있었다.
<만꾸르뜨>는 자기가 누구였는지, 언제 어느 부족으로부터 왔는지는 물론, 자기 이름조차 몰랐고, 그의 어린 시절과 어머니 아버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는 자기를 인간으로 인식할 수가 없었다. 자아에 대한 이해를 모두 박탈당한 <만꾸르뜨>는 주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점이란 이점은 다 갖춘 노예였다. 그는 말 못하는 짐승이나 마찬가지여서 주인 말에 절대 복종이었고 안전했다. 또 절대로 도망 같은 것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느 노예 주인에게나 가장 두려운 것은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노예들은 그 하나하나가 잠재적인 반란자였다. 그러나 <만꾸르뜨>는 예외였다. 그는 반란을 일으키자는 어떤 선동에는 절대적으로 무관심했고 지극히 단순해서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두어 둘 필요도, 감시할 필요도, 심지어는 어떤 나쁜 생각을 품고 있다는 의심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만꾸르뜨>는 개처럼 주인만을 알아보았고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맹목적으로 기꺼이, 그리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해냈다.
<만꾸르뜨>에게는 아주 더럽고 힘든 일 아니면 엄청난 참을성이 요구되는 가장 지겹고 따분한 작업이 맡겨졌다. 오직 <만꾸르뜨>만이 한 떼의 낙타들 외에는 어느 것과도 친구가 되지 못하고 완전히 격리된 채 사로제끄의 끝없는 정적과 공허를 견딜 수 있었다 또 그는 혼자서 일꾼 몇 사람 몫을 할 수 있었지만 필요한 것은 다만 음식을 주는 것뿐이었고 그렇게만 해주면 그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교대해 줄 사람도 필요 없이 스텝에 나가 있을 수가 있었다. 그는 혼자 있기를 무서워하지 않았고 부족한 것이 있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만꾸르뜨>에게는 주인의 명령과 지시가 무엇보다도 더 중요했다. 그리고 음식과 스텝에서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옷만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포로를 복종시키려면 그저 누군가의 목을 자른다거나 다른 위해를 가해 겁을 주는 편이 훨씬 더 쉬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츄안츄안 족은 그러는 대신 포로의 기억을 말살시키고 그의 이성을 파괴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유일무이한 자신으로 남아 한 인간과 함께 할, 그리고 육신과 함께 죽어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수 없는 정신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기로 했다. 이 야만의 가장 잔인한 형태는 인간이라는 신성한 존재를 잠식했던 유목민 츄안츄안 족의 어두운 과거로부터 되살아났다. 그들은 노예에게서 살아 있는 기억을 제거해 버리는 방법을 찾아냈고 그런 식으로 인간에게 상상할 수 있거나 상상할 수 없는 해악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해악을 끼쳤던 것이다. <만꾸르뜨>로 변해 버린 아들을 보고 나이만-아나는 괴로워하며 미칠 듯한 슬픔과 절망 속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저들이 네 머리를 집게로 호두를 깨듯이 짓누르고, 말라가는 낙타 가죽의 더딘 뒤틀림으로 네 두개골을 조이며 너의 기억을 앗아갔을 때, 공포에 질려 눈물로 채워진 네 안구에서 눈을 뽑아내려고 그 보이지 않는 고리로 네 머리를 조였을 때, 사로제끄의 타는 목마름이 너를 찢는데도 하늘에서 네 입술을 축일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았을 때, - 그때 네게는 어찌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준 태양이 우주 만둘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럽고, 무지막지하고 사악한 것이 아니었겠느냐?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네 비명이 사막을 가득 채웠을 때, 밤낮으로 애타게 신을 부르고 몸부림치며 헛되이 하늘의 도움을 기다렸을 때, 네 고통 받는 몸에서 뿜어져 나온 가래로 숨길마저 막히고 네 발작으로 뒤틀린 몸의 역겨운 배설물로 더럽혀졌을 때, 그 더러운 오물에 빠져 이성을 잃고 구름 같은 파리 떼에게 시달리며 뜯어 먹힐 때 - 그때 네가 어찌 마지막 숨을 몰아 이 버려진 세상에 우리들 모두를 태어나게 한 신을 저주하지 않았겠느냐? 어둠의 그들이 고통으로 갈가리 찢긴 네 영혼을 영원히 덮어 갈 때, 억지로 부서진 네 기억이 지난날과의 연상을 영원히 잃어 갈 때, 거친 몸부림 속에서 네 어미의 모습과, 네가 어릴 적 뛰어 놀던 산중의 개울물 소리를 잊어 갈 때, 네 황폐한 의식 속에서 네 자신의 이름과 네 아버지의 이름을 잊고 네가 둘러싸여 자랐던 사람들의 얼굴이며 네게 얌전히 미소 짓던 처녀의 이름마저 희미해져 갈 때 - 그때 너는 어찌 바닥 모를 망각의 구렁텅이 속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고작 이런 날을 살게 하려고 너를 자궁 속에 품었다가 신의 빛 속으로 내질렀다며 가장 지독한 욕설로 네 어미를 저주하지 않았겠느냐?」
이 이야기는 츄안츄안 족이 남쪽 지방에서 아시아 유목민들을 몰아내고 북쪽으로 쳐 올라가고 있던 그 시기로부터 전해 내려온다. 사로제끄를 손에 넣고 오랫동안 그 지역을 장악하면서 그들은 지배하는 영토를 늘리고 더 많은 노예를 얻을 목적으로 끊임없는 전쟁을 치렀다. 처음엔 그들은 불시에 기습을 감행하여 사로제끄 근처의 지역에서 남자들은 물론 여자고 아이들이고 닥치는 대로 잡아갔다. 그러나 낯선 침략자들에 대한 저항은 점점 드세어졌고 싸움은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츄안츄안 족은 그들이 사로제끄에서 얻었던 것을 포기할 생각은커녕 그와는 반대로 넓게 펼쳐진 스텝에서 그들의 세력을 확고히 하는 데 혈안이 되어 갔다. 그들 편에서 보자면, 그 지역의 부족들은 자기네들의 땅을 잃고서도 순순히 참으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었고, 조만간 침략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리라고 결의를 다질 것이었다. 크고 작은 싸움에서 양측 모두 얻기고 하고 잃기도 했지만, 이 끝없는 소모전의 와중에서도 이따금씩은 평온한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평온한 시기들 중의 어느 한때에, 짐 실은 낙타들을 끌고 나이만 땅을 찾아왔던 몇몇 대상들이 차를 마시며 앉아 있다가 자기네들이 어떻게 여러 우물에서 츄안츄안 족 사람들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사로제끄 스텝을 지나왔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곁들여서 사로제끄 한복판에서 만났던, 꽤 많은 낙타들을 돌보는 젊은 목동의 이야기도 꺼냈다. 대상들은 그에게 말을 붙였다가 그가 <만꾸르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튼튼하고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그런 운명을 겪었다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언젠가 한때는 그도 다른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밝고 떠들어 대기 좋아하는 젊은이였을 것 이었다 그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이제 겨우 턱수염이 돋아났고 대체로 보아 용모도 훌륭했다. 그러나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그는 마치 갓 태어난 아이 같았다. 그 불쌍한 젊은이는,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이름은 물론 자기의 이름조차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츄안츄안 족이 자기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또 자기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에게 어떤 질문을 하건 그는 <그렇다>, <아니다>라는 대답밖에는 하지 않았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내 머리에 단단히 들러붙은 모자를 움켜쥐고 있었다. 비록 그러는 것이 못된 짓이기는 해도, 사람들은 때때로 그런 불행을 비웃었다. 또 머리에 군데군데 사람의 피부 속으로 낙타 가죽이 끼여 들어간 <만꾸르뜨>들이 있다는 사실까지도. 그런 <만꾸르뜨>에게는 가장 지독한 형벌이 머리에 김을 쐬겠다고 해서 겁을 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머리를 만지려고 하면 미'친말처럼 대들었다. 그리고 낮이건 밤이건, 심지어는 잠을 자면서도 그 모자를 벗지 않았다. 그런데 대상들의 말을 따르자면, 이 <만꾸르뜨>는 제정신을 잃어버리기는 했어도 내내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경계하는 눈길은 낙타 떼가 풀을 뜯고 있는 곳에서 대상들이 비켜 설 때가지 그들을 쫓고 있었다. 그때 낙타 끄는 사람 하나가 낙타를 타고 떠나기에 앞서 그 <만꾸르뜨>에게 농담을 한마디 던지기도 했다. 「우린 앞으로 먼 길을 가야 돼, 누구한테다 네 안부를 전해줄까? 어떤 처녀에게? 하지만 어디서 살지? 말해 봐! 어쩌면 우린 네게서 스카프를 한 장 받아 가지고 그 처녀에게 전해줄 수도 있어.」 그 <만꾸르뜨>는 한참 동안 탁타 끄는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매일 밭마다 나는 달을 보고 달은 나를 봐.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얘기를 알아듣지 못해. 저기 위에 누가 있는데...」 대상들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천막집에 있던 한 여인이 그들에게 차를 내 왔다. 나이만-아나였다. 사로제끄 전설에서는 그녀가 이 이름으로 전해 내려온다. 손님들이 거기에 있는 동안 나이만-아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누구도 그녀가 대상들의 이야기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또 그녀의 안색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대상들에게 이 젊은 <만꾸르뜨>에 대해서 몇 가지 묻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미 말해진 것 이상을 알아내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녀는 침묵을 지킬줄 알았고 놀라움을 억누를 줄도 알았다. 마치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다친 새이기라도 한 것처럼 점점 더 커가는 놀라움을... 그때쯤 이야기는 뭔가 다른 주제로 옮아갔다. 누구도 그 <만꾸르뜨>의 운명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 불행은 세상에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이만-아나는 그녀의 가슴을 온통 휘저은 두려움을 이겨 내려고,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그 다친 새가 정말로 자기 몸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오래 전부터 반백이 된 머리에 쓰고 있던 검은 스카프를 내려 얼굴을 가렸을 뿐이었다. 상인들은 제 갈 길로 낙타를 몰고 떠났다. 그 뒤로 잠 못 이루는 밤 동안 나이만-아나는 사로제끄 사막 한가운데로 그 <만꾸르뜨> 목동을 찾아가서 그가 자기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끈덕지게 따라붙는 무시무시한 생각이-어렴풋한 예감으로 오랫동안 감추어져 왔던, 들었던 대로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지 않았을 거라는 의구심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리고 물론, 끊임없는 두려움과 고통과 의심으로 괴로워하기보다는 아들을 두 번 장사지내는 편이 더 나을 것이었다. 그녀의 아들은 사로제끄에서 츄안츄안 족과 벌였던 어느 전투에서 죽었다. 그보다 한 해 먼저 나이만 부족의 유명한 인물이었던 아버지를 잃은 뒤,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처음으로 싸움에 나갔다 죽은 것이었다. 물론 전사자를 전쟁터에 버려두도록 되어 있지는 않았다. 시신을 집으로 모셔 오는 것은 같은 부족 사람들의 의무였다. 그러나 이 젊은이에 대해서는 그러기가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그 싸움에 같이 참가했던 많은 전사들이 전해 준 말은 이러했다. 그들이 적과 교전하고 있을 때 그녀의 아들이 그가 타고 있던 말의 갈기 위로 넘어졌는데 그 짐승은 전쟁통의 소란에 흥분하고 놀라서 달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가 안장에서 떨어졌지만 한쪽 발이 등자에 걸려 있어서 그 짐승의 한쪽 옆구리에 그대로 매달렸는데, 그 때문에 말이 더욱더 놀라서 숨을 거둔 시체를 끌고 전속력으로 스텝을 질주해 갔다. 게다가 그 말은 설상가상으로 적이 장악하고 있는 영토 쪽으로 달아나 버린 것이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투에 참가해야 되었던 그 격렬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와중에서도 부족 사람 둘이서 말을 붙잡아 시체를 거두어 오려고 뒤쫓아 갔다. 그렇지만 계곡에 매복해 있던 한 패의 츄안츄안 족 기마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들을 가로막았다. 한 사람이 화살에 맞아 죽었고 또 한 사람은 심하게 부상을 당해서 같은 부족 사람들과 다시 합류할 수 있기도 전에 말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나이만 부족에게는 습격을 당한 것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측면 공격을 개시하려던 츄안츄안 족의 매복 장소를 알 수 있게 되었으므로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나이만 부족 사람들은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 서둘러 퇴각했다가 다시 진격해 들어갔다. 물론, 그때쯤엔 아무도 그들의 동료이자 나이만-아나의 아들인 젊은이의 운명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에는 다시 말에 오를 수 있었던 부상당한 나이만 전사는 나중에 자기가 나이만-아나의 아들이 탔던 말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결국 그 짐승은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나이만 부족의 전사들은 그의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흔적도, 말도, 무기도, 또 그 밖의 다른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설령 그가 부상만 당했을 뿐 죽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 무렵 같이 건조한 계절에는 갈증이나 피의 부족으로 스텝 어딘가에서 죽었을 것이었다. 나이만 부족 사람들은 그를 애도했고, 인적 없는 사로제끄 스텝에 그들의 젊은 동료가 묻히지 못한 채 누워 있다는 것을 슬퍼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여자들은 나이만-아나의 천막집에서 울부짖으면 남편들과 형제들을 비난했다. 「독수리들이 그의 뼈에서 살을 쪼고 제칼들이 그의 뼈를 훑었어요. 이런 일이 있은 뒤에도 당신들은 어떻게 감히 머리를 들고 돌아다닌단 말인가요!」 그렇게 해서 나이만-아나에게는 텅 빈 세상에서의 공허한 날들이 흘러갔다. 그녀는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는다는 사실은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아들이 전쟁터에 버려진 채 누워 있으며 그의 시신이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에 번민이 가시지 않았다. 그 어머니는 끊임없이 떠오르는 끔찍한 생각들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그럼으로써 슬픔을 누그러뜨려 줄 만한 친구 하나 없었다. 그리고 신 한 분만 빼놓고는 누구에게 의지 할 데도 없었다. 그 끔직한 생각들을 모두 떨쳐 버리려면 아들의 죽음을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도리밖에는 없었다. 그런 다음에는 누구라서 운명의 뜻을 거역하려 들겠는가? 무엇보다도 그녀는 아들의 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 말은 부상을 입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놀라서 달아났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전쟁터로 나갔던 다른 말들처럼, 그 말도 얼마쯤 뒤에는 등자에 발이 얽힌 제 주인의 시신을 끌고서 제가 늘 뛰어 돌아다니던 눈에 익은 장소로 돌아왔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것은 분명히 처참한 광경이겠지만, 적어도 그녀는 손톱으로 얼굴을 찢고 마침내는 하늘에 계시는 신이 그녀의 울음소리에 지칠 때가지 한탄을 늘어놓으며, 아들의 시신 위에서 울부짖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 말 못할 의심들을 더 이상 가슴 속 깊은 곳에다 묻어 두지 않고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 희망 없는 삶에 연연하여 붙잡고 늘어지기보다는 어느 때라도 죽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삶을 마감할 준비를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그가 탔던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부족 사람들이 점차로 그 전쟁을 잊어 가기 시작하고 있었음에도 나이만-아나는 여전히 의구심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전쟁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얼마쯤 시간이 흐르고 나자 마음에 덜 사무치게 되었고 차츰차츰 잊혀져갔지만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초연하게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생각은 쳇바퀴 돌듯이 돌고 또 돌았다. 그가 탔던 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마구는 어디 있고 또 무기는? 그런 것들을 언뜻 보기만 했더라도 그녀는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 말이 붙잡힐 만큼 지쳤을 때 츄안츄안 족이 사로제끄 어딘가에서 그 말을 사로잡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훌륭하게 마구가 갖춰진 말은 상당한 전리품이 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등자에 걸려 끌려간 그녀의 아들을 어떻게 했을까? 그를 묻었을까? 아니면 들짐승들이 찢어발기도록 내던졌을까? 또 만일 어떤 기적 같은 일이 생겨서 그가 살아 있었다면? 저들은 그를 한칼에 베어 죽였을까? 아니면 땅에서 숨을 거두도록 끌어 내렸을까? 그렇다면... 그녀의 의혹에는 끝이 없었다. 물론 장사꾼들은 그들이 사로제끄에서 만났던 젊은 <만꾸르뜨>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 자기네들의 이야기가 고통 받는 나이만-아나의 영혼에 불을 붙였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겠지만, 그녀의 가슴은 이제 불안한 예감으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 <만꾸르뜨>가 그녀의 잃어버린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실하게 강하게 그녀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자기가 이 <만꾸르뜨>를 찾아가서 그가 잃어버린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마음이 평온해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이만 부족이 여름 동안 사는 스텝 가장자리의 언덕들 사이에는 돌바닥에 조그만 개울들이 흐르고 있었다. 나이만-아나는 사로제끄의 적막 속으로 길을 떠나기에 앞서 밤새도록 거기에 앉아 콸콸대며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사막으로 혼자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가장 친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일지리라도 그 계획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녀가 오래 전에 죽은 아들을 찾아 나설 수 있을까? 그리고 만일 어떤 우연으로 그가 아직 살아 있지만 <만꾸르뜨>로 바뀌었다면, 공연히 가슴을 찢으려고 그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꾸르뜨>란 단지 겉모습, 예전 사람의 껍데기에 불과했으므로... 떠나기 전날 밤, 그녀는 몇 번씩이고 천막집 밖으로 나와 귀를 기울이고 정신을 집중시키고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밤중의 달이 고르고 은은한 빛으로 온 세상을 채우며 구름 없는 하늘에 높이 걸려 있었고, 달빛 아래로는 여러 채의 하얀 천막집들이 시끄러운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개울 둑 옆 언덕 기슭에 커다란 새 떼들이 홰를 튼 것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마을 밖으로 양 떼들을 모아 둔 곳과 좀 더 멀리 말무리가 풀을 뜯고 있는 계곡들로부터 개 짖는 소리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을 가까이에 있는, 울을 친 목양장 옆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계집아이들의 목소리가 귀에 먼저 들어왔다. 그 노랫소리에 나이만-아나는 가슴이 찡해졌다. 그녀가 기억할 수 있는 나이만 부족은 그녀가 이곳으로 시집을 온 이래 해마다 여름이면 그곳에 머물렀었다. 그녀의 온 생애가 그런 곳들에서 보내졌던 것이다. 집안이 번성해 가면서 그들의 천막집은 네 채-한 채는 요리를 위해, 또 한 채는 손님들을 받기 위해, 그리고 두 채는 생활하고 거주하기 위해-로 불어났었다. 그러나 츄안츄안 족의 공격을 받고 난 뒤에는 그녀의 천막집만이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한 채뿐인 천막집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그 전날 밤, 그녀는 여행할 채비를 미리 갖춰 두었다.
그녀는 식량을 꾸려 쌌고, 사로제끄를 질러 가다가 우물을 찾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물을 더 길어다 두 개의 가죽부대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천막집 옆에는 그녀의 희망이자 길동무인 하얀 암낙타 아끄마야가 매어져 있었다. 만일 그녀에게 튼튼하고 발 빠른 아끄마야가 없었다면 그녀는 감히 혼자서 적막한 사로제끄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 해에 아그마야는 새끼를 낳지 않고 두 번째의 새기를 낳은 뒤에 쉬는 중이어서 타고 여행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상태였다. 호리호리한 몸에 튼튼한 다리, 그리고 굳센 발바닥, 그 낙타는 아직 무거운 짐에 시달리거나 나이가 들어 몸이 망가지지 않았고 한 쌍의 튼튼한 혹에다 힘차고 억센 목 위에는 잘생긴 머리가 보기 좋게 얹혀 있었다. 그리고 항상 썰룩이는 코는 길을 갈 때면 숨을 들이쉬느라 나비의 날개처럼 가볍게 벌름거렸다. 한마디로, 하얀 암낙타 아끄마야는 한 때의 범상한 짐승들 이상 가는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발 빠르고 힘 좋은 낙타 한 마리를 손에 넣기 위해, 사람들은 살쪄 가는 어린 짐승들을 수십 마리라도 내놓으려 할 것이었다. 그 낙타는 나이만-아나가 지닌 마지막 보물-그녀가 예전에는 부유했다는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나머지 것들은 손에서 씻겨 나간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결국, 그녀가 뒤에 남겨 둔 것은 그녀의 의미-이제 그녀가 찾아 나서려는 실종자, 즉 그녀의 아들을 위한 40일간의 추모 기도-뿐이었다.
나이만-아나는 그때까지도 엄청난 피로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멀리서 찾아온 나이만 부족 사람들까지 모두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추모식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새벽녘에 그녀는 지체 없이 떠날 준비를 차렸다. 그러고는 문턱을 넘어서려다 생각에 잠겨 문기둥에 기대 선 채, 잠든 마을 주위로 눈길을 던지다가 천막집을 나섰다. 아직도 보기 좋은 몸매와 예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나이만-아나는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매고 있었다. 그것은 긴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하는 관례였다. 그녀는 통 넓은 바지에 부츠를 신었고, 헐렁한 상의에다 조끼를 받쳐 입은 위에다 어깨 둘레로 느슨하게 숄을 걸쳤다. 그리고 머리에 두른 하얀 스카프는 끝부분이 뒷덜미에 쑤셔 넣어져 있었다. 그녀는 밤사이에 하얀 스카프를 쓰기로 작정했었다. - 결국, 그녀가 살아 있는 아들을 보려고 기대한다면, 무슨 이유로 상복 차림을 하고 떠나야 할까? 또 만일 그녀의 기대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도, 검은 스카프로 머리를 덮은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그 시간쯤에는 새벽빛이 그녀의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얼굴에 서린 깊은 슬픔의 흔적-그 어머니의 슬픈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살들-을 가려 주었지만 그녀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살아가리라고 생각, 아니 짐작이라도 해보았었을까? 그러나 이제 그녀는 자신의 모든 용기를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속삭이듯 기도문의 첫 번째 구절을 외웠다. 「천지간에 알라신만이 계시니.」그 구절은 마음속에 새긴 채 그녀는 결연히 낙타에게로 가서 앉으라고 명했다.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끄마야가 천천히 자세를 낮춰 가슴을 땅에 대였다. 나이만-아나는 재빨리 낙타 등을 가로질러 몇 개의 가방을 걸쳐 놓고는 안장에 올라 뒤꿈치로 낙타를 재촉했다. 아끄마야가 다리를 쭉 벋치고 일어서면서 제 주인을 땅 위로 높이 들어올렸다. 이제 아끄마야는 제 앞에 여행길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나이만-아나의 출발을 알지 못했으므로, 잠이 덜 깨서 연신 하품을 해대는 그녀의 시누이집 하녀 외에는 아무도 그녀를 전송하지 않았다. 그 하녀는 전날 저녁에 나이만-아나에게서 친척들을 만나 보러 갈 예정이며 그 다음에는 순례자들을 만나게 되면 자기도 그 사람들 틈에 끼어 성자 야사비의 신전에서 기도를 드리러 킴차크 땅까지 갈 것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받지 않기 위해 되도록 일직 떠나려는 것이었다. 마을을 빠져나와 얼마쯤 간 뒤에 나이만-아나는 사로제끄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전도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아무런 암시도 주지 않는 그 텅 빈 사막으로... 이제 하얀 낙타 아크마야가 평탄한 사로제끄며 계곡들을 따라 걷기 시작한 지도 한참이 지났다. 그 낙타는 이제 단조롭게 푸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며 발굽 스치는 소리도 거의 없이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 주인은 뜨거운 사막을 빨리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낙타를 재촉했다. 그녀와 낙타는 밤이 내리고 난 어떤 외딴 우물에 당도했을 때에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사로제끄 어딘가에서 눈에 띌 거대한 낙타 떼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났다. 몇 키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 붉은 사토질의 말라꿈지샵 지역인 그 벼랑으로부터 멀지 않은 여기, 이곳에서 대상들은 지금 나이만-아나가 찾고 있는 양치기 <만꾸르뜨>를 만났었다. 그녀는 벌서 이틀 동안이나 츄안츄안 족과 맞닥뜨리게 될까 봐 가슴을 조이며 말라꿈지샵 근처를 헤매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어디를 가보아도 그녀는 단지 텅 빈 스탭과 신기루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번은 그런 신기루에 속아 첨탑과 성벽들이 공중에서 흐늘거리는 어떤 도시를 향해 먼 길을 돌아가기도 했었다. 어쩌면 그녀는 거기, 노예 시장에서 아들을 찾아내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들을 그녀 뒤에, 아끄마야에 태우고 나서 쫓아올 테면 쫓아와 보라고 도망을 칠 수도 있을 텐데... 사막에 나가 있기란 괴로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신기루가 그처럼 현실 같아 보이는지도 모르지만...물론 사로제끄에서는 단 한 사람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거기에서는 사람이 한 알의 모래와도 같았다. 그러나 만일 그가 넓은 지역에서 풀을 뜯는 한 떼의 가축들을 데리고 있다면 조만간 멀리서라도 짐승을 한 마리쯤 보게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다른 짐승들도 눈에 띌 것이었다. 그리고 가축 떼가 있는 곳에 그 목동도 같이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 나이만-아나의 바람이었다. 나중 일은 어떻게 되더라도. 그러나 아직까지 그녀는 어디에서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벌써 가축 떼들이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몰려갔거나 츄안츄안 족이 낙타들을 모두 키바나 부하라로 팔러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목동이 그렇게 멀리 먼 곳에서 다시 돌아올까? 그녀가 근심과 의혹으로 시달리다 못해 마을을 떠났을 때, 그녀에게는 단 한 가지 꿈-비록 아들이 <만꾸르뜨>일지라도 살아 있는 아들을 만나 보겠다는-밖에는 없었다. 만일 그가 아무것도 기억 못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해도 그녀의 아들이기만 하다면, 다만 살아 있기만 하다면... 그것은 운명에 물어 보아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사로제끄로 깊이 들어갈수록, 그래서 얼마 전에 대상들이 지나다 만났다는 그 목동이 있음직한 곳으로 접근해 갈수록, 그녀는 정신이 불구가 된 아들을 보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점점 더 마음이 산란해졌다.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짓눌려 그녀는 그 <만꾸르뜨>가 자기의 아들이 아니라 다른 어떤 불행한 사람이기를 신께 기도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이제 그녀의 아들은 없으며 더 이상 살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이만-아나는 이 <만꾸르뜨>를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나서 그녀의 의심이 헛된 것이었다는 확신을 얻으려고 계속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만일 그런 확신만 얻게 된다면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운명이 정해 준대로 나머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더 다시 그녀는 사로제끄에서 다른 누가 아니라 그녀의 아들을 찾아내려는 갈망으로 압도되기 시작했다. 그 대가가 어떠하더라도... 그런 상반된 생각들과 씨름하면서 경사진 능선을 막 지나던 참에 그녀는 별안간 넓은 계곡 전체에 걸쳐 한가히 풀을 뜯는 수많은 낙타들을 보게 되었다. 살쪄 가는 갈색의 낙타들이 조그만 덤불들과 가시식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순을 뜯어 먹고 있었다. 나이만-아나는 아끄마야에 전속력으로 박차를 가했다. 처음엔 그녀는 마침내 목동을 찾아냈다는 기쁨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나중에는 갑자기 무서워졌고 오싹하는 전율이 등줄기를 스쳤다. 어쩌면 <만꾸르뜨>로 변해 버린 아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너무도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다시 기뻐졌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마음속에서 무슨 생각이 일고 있는지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풀을 뜯는 짐승들은 거기에 있었지만 목동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히 그는 어딘가 가까운 곳에 있을 것이었다. 바로 그 때 계곡 건너편에서 어떤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거리가 꽤 멀었으므로 나이만-아나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 목동은 한 손에는 길다란 지팡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가 타고 다니는 낙타-짐이 담긴 바구니들을 싣고 바로 그 뒤에 서 있는-의 고삐끈을 쥔 채 눈 위에까지 꽉 덮어 씌워진 모자 밑으로 그녀가 다가오는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며 서 있었다.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서 아들임을 알아보았을 때, 나이만-아나는 자기가 어떻게 낙타에서 내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떨어지듯 뛰어내렸겠지만 그런 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얘야, 이 녀석아! 너를 찾아서 이 근방을 다 돌아다녔어!」 그녀가 아들에게로 달려갔다. 「나다, 네 에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발을 구르면서 처절하게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술은 아무리 억누르려고 애를 써도 열병에 걸린 듯이 마구 떨렸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도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그대로 서 있으려고 무심한 아들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억눌려 있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울고 또 울면서 눈물 고인 눈으로 젖어서 들러붙은 머리칼 틈새로, 덜리는 손가락 사이로 아들의 낯익은 모습을 응시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서 여행길에 덮어쓴 먼지를 훔쳐내는 동안 내내 아들이 자기를 알아보리라는 헛된 기대로 그의 눈길을 붙잡으려고 하면서... 분명히 그것은-자기 어머니를 알아보기란-너무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머니의 출현도 그 아들에게는 아무런 감동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의 태도는 마치 그녀가 자주 거기로, 날마다 스텝으로 그를 보러 오기라도 하는듯한 그런 기색이었다.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 왜 울고 있는지조차 묻지 않았다. 느닷없이 그 목동이 자기의 어깨에서 그녀의 손을 떼어 내더니, 그가 타고 다니는 짐 실린 낙타들이 장난을 치다가 너무 멀리까지 달아나는 일이 없도록 해두려는 다른 쪽에 있는 낙타들에게로 걸어갔다. 나이만-아나는 있던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손에 묻고서 고개도 들지 않고 흐느껴 울었다. 그러다 있는 힘을 다 짜내어 평온하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아들에게로 걸어갔다. <만꾸르뜨>가 된 그녀의 아들은 생각도 감정도 없는 눈길로, 덮어쓴 모자 아래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 바람으로 거칠어지고 검게 탄 그의 메마른 얼굴에 잠깐이나마 희미한 미소가 스쳐 갔다. 그러나 그의 눈길은 어느 일에건 철저한 무관심을 보이면서 여전히 무심한 채로 남아 있었다. 「앉거라, 얘기 좀 하자꾸나.」 나이만-아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들은 땅에 앉았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어머니가 물었다. <만꾸르뜨>는 고개를 저었다. 「저자들이 널 뭐라고 부르지?」 「만꾸르뜨」 그가 대답했다. 「그건 지금 너를 부르는 이름이고, 하지만 옛날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겠니? 네 진짜 이름을 기억하려고 해봐.」 <만꾸르뜨>는 잠잠했다. 그러나 나이만-아나는 그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미간에 구슬땀이 맺혔고 그의 눈이 안개 서린 듯한 표정으로 채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와 과거 사이에는 그가 건널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네 아버지 이름이 뭐지? 또 네 이름은? 너 어느 부족 출신이지? 어디서 태어났지? - 그걸 알겠니?」 하지만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저자들이 네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그의 어머니가 속삭이듯 물었다. 그녀의 입술이 한 번 더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하면서도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이 슬픔도 결코 그 <만꾸르뜨>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저자들이 네 땅, 네 재산, 아니 네 생명까지도 앗아갈 수 있겠지만.」 그녀가 울면서 말했다. 「하지만 누가 감히 네 기억을 망가뜨렸으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느냐? 아아, 신이시여! 당신이 정말로 계시다면 어째서 사람들에게 그런 힘을 주셨나요? 세상에 이처럼 엄청난 죄악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그 말을 한 뒤에 그녀는 <만꾸르뜨>가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태양에 대해, 신에 대해, 그녀 자신에 대해 저 유명한 회한의 말들을 남겼다. 오늘날까지도 사로제끄의 역사가 거론될 때면 사람들이 아송하곤 하는 그 말들을.그러고 나서 그녀는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멘 보따시 올겐 보즈 마야 뚜리빈 껠립 이스께긴 ... (나는 새끼를 읽고 밀짚으로 채워진 새끼낙타의 가죽 냄새라도 맡으러 찾아온 어미낙타 ...).」
다음에는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적막하고 끝없는 사로제끄에 오래도록 메아리 친, 가슴을 찢는 울부짖음이 끝없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 울음도 <만꾸르뜨>가 된 그녀의 아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마침내 나이만-아나는 그녀의 아들에게 그가 전에는 누구였고 지금은 누구인지를 떠올려 주려면 자꾸 묻기만 하는 것 보다는 알려 주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네 이름은 졸라만이야. 그런 이름 들어 봤니? 너는 졸라만이야. 네 아버지 이름은 도넨바이였고. 너 분명히 네 아버지는 기억하겠지? 네 가 어렸을 적에 그분은 네게 활 쏘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 나는 네 어머니고 너는 내 아들이야. 너는 나이만 부족 출신이고, 알아듣겠니? 너는 나이만 부족 사람이야.」
나이만-아나가 그런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아주 무관심하게, 마치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마치 풀숲의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것처럼-서 있었다.
그러나 나이만-아나는 그녀의 아들에게, <만꾸르뜨>에게 물었다. 「네가 여기로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몰라.」 그게 대답했다. 「그게 낮이었니, 밤이었니?」 「몰라.」
「너 누구하고 얘기하고 싶니?」 「달하고. 하지만 우린 서로 알아듣지 못해. 저기에 누가 있어.」 「너 가지고 싶은 건 뭐냐?」 「내 머리에다 돼지꼬리(변발). 우리 주인처럼.」 「저자들이 네 머리에다 무슨 짓을 했나 좀 보자.」 나이만-아나가 그에게 손을 뻗쳤다. 만꾸르뜨가 재빨리 펄쩍 뒤로 물러나더니 모자를 감싸 쥐고 어머니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순간저그로 자기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바로 그때 멀리서 사람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낙타를 타고서 그들 쪽으로 오고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 나이만-아나가 물었다. 「나한테 먹을 걸 갖다 줘.」 그녀의 아들이 대답했다. 나이만-아나는 겁이 났다. 츄안츄안 족 사람이 그녀를 보기 전에 재빨리 숨어야 했으므로 그녀는 낙타를 앉히고 안장 위로 올라탔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곧 돌아올 테니까.」 그녀가 다짐을 두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무관심한 모습일 뿐이었다.
나이만-아나는 곧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풀을 뜯는 짐승들 사이로 낙타를 타고 가다니! 그러나 이미 때가 너무 늦어 있었다. 낙타 때 족으로 다가오고 있던 그 츄안츄안 족 사람은 틀림없이 하얀 암낙타를 타고 멀어져 가는 그녀를 보았을 것이었다. 그녀는 풀을 뜯는 짐승들 사이로 몸을 숨기며 걸어서 멀어졌어야 했다.
낙타들이 풀을 뜯는 곳으로부터 얼마쯤 멀어진 뒤에 나이만-아나는 향쑥이 무성하게 자란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낙타에서 내린 뒤에 아끄마야를 계곡 바닥에 남겨두고 벼랑을 다시 기어 올라가서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랬다-그 사람은 그녀를 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내 낙타를 재촉해서 쫓아왔을 리가 없었다. 그 츄안츄안 족 사람은 창과 활로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사방을 둘러보며 하얀 낙타를 탄 사람-그는 그녀를 똑똑히 보았었다-이 어는 곳으로 사라졌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는 어느 쪽으로 쫓아가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서 이쪽저쪽으로 우왕좌왕하다가 마지막에는 계곡 아주 가까운 곳에까지 다가왔다. 나이만-아나가 아끄마야의 주둥이를 스카프로 동여매 놓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만일 그 낙타가 울음소리를 냈더라면 그걸로 끝장일 것이었다.
벼랑 가장자리에 자란 향쑥 덤불 뒤에다 몸을 숨긴 나이만-아나는 그 츄안츄안 족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보잘것없는 낙타를 타고 지나가면서 이쪽저쪽을 살피고 있었는데 얼굴은 잔뜩 살이 쪄서 부풀어 있었고 머리에는 양끝이 접혀 올라간, 배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 뒤에는 두 겹으로 땋은 검고 윤기 없는 변발이 늘어져 있었다. 등자를 딛고 일어서서 활시위를 당긴 채 이쪽저쪽 둘러보며 눈알을 번뜩이는 그 츄안츄안 족 사람은 사로제끄를 침략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을 노예상태로 몰아가고 그녀의 집안에 말할 수 없는 불행을 안겨다 준 원수들 중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무기도 하나 없는 여자인 그녀가 어떻게 그 사나운 츄안츄안 족 전사를 대적할 수 있을까? 그녀는 정말로 무엇 때문에 이 사람들이 그토록 잔인해지고 노예의 기억을 말살시킬 정도로 야만스럽게 되었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츄안츄안 족 사람은 이쪽저쪽으로 달려왔다 달려갔다 하다가 이내 낙타 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때는 이미 저녁이라서 해는 졌지만 붉게 타는 석양이 한동안 스텝에 걸려 있었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어둠이 내렸고 밤의 고요가 내려앉았다. 나이만-아나는 불쌍한 <만꾸르뜨> 아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스텝에서 온밤을 혼자 보냈다. 아들에게로 돌아가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츄안츄안 족 사람이 낙타 떼와 함께 밤을 보내려고 머물러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노예 상태로 남겨 둘 것이 아니라 그를 설득하여 함께 데려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 애가 지금은 <만꾸르뜨>일지라도, 그래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같은 부족 사람들 사이에 있게 된다면 텅 빈 사로제끄에서, 츄안츄안 족 사람들 밑에서 목동 노릇을 할 때보다는 훨씬 더 나아질 거야. 그것이 나이만-아나를 재촉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그려는 자식을 노예 상태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눈에 익은 환경에서는 그의 정신이 되돌아올 것이며, 그는 어린 시절을 기억할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나이만-아나는 다시 아끄마야에 올라탔다. 그리고 오랫동안 멀리서 주위를 맴돌다가 낙타 떼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낙타 떼는 밤사이에 얼마쯤 옮겨 가 있었다. 낙타 떼를 찾아내자, 그녀는 한동안 근처에 츄안츄안 족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자 아들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졸라만! 졸라만! 나다, 에미다!」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가 기뻐서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지만 그녀는 곧 그가 단지 어떤 목소리에 반응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이만-아나는 또다시 아들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다.
「네 이름을 기억해 보거라.-제발 네 이름을 기억 좀 해봐라!」 그녀가 애원했다. 「네 아버지 이름은 도넨바이였어. 너 그걸 모르겠니? 네 이름은 <만꾸르뜨>가 아니라 졸라만이야. 그건 <여행길에 신의 도움으로>라는 뜻인데 우리는 네가 나이만 부족이 이주하는 동안 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지어준 거야. 네가 태어났을 때는 모두들 사흘 동안 여행을 중단하고서 기뻐하고 축하를 해주었지.」
그런 말에도 <만꾸르뜨>가 된 그녀의 아들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무의식 속에서 기억이 섬광처럼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그녀는 굳게 닫혀진 문을 두드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녀는 같은 말을 몇 번씩이고 되풀이했다. 「네 이름을 알겠니? 네 아버지 이름은 도넨바이였어.」 그러고 나서 그녀는 아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기의 물을 나누어 준 뒤에 자장가를 불러 주기 시작했다. 그는 그 노래를 좋아했다. 그녀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그의 검게 탄 얼굴에 생생하고 따뜻한 표정이 잠깐씩 스쳐 갔다. 그의 어머니는 그곳을 떠나자고, 츄안츄안 족을 떠나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다시 아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만꾸르뜨>는 어떻게 해야 자리를 털고 갈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낙타 떼들은 어떻게 하고? 아니-그의 주인은 그에게 언제나 낙타 떼들과 함께 있으라고 했었다. 그것이 그가 들은 말이었다. 그는 다른 곳으로 떠날 수가 없었다. 낙타들을 남겨 두고는... 다시, 또다시 나이만-아나는 아들의 망쳐진 기억이라는 문을 부수려고 애썼다. 「네가 누구 아들인지 기억해 보겠니? 네 아버지 이름이 뭐지? 네 아버지는 도넨바이였어.」 나이만-아나는 그렇게 헛된 노력을 들이면서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낙타 떼들 저편으로 낙타를 탄 츄안츄안 족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에서야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기억했다. 이번엔 그는 훨씬 더 가까이 와 있었고 그녀를 붙잡을 생각으로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나이만-아나는 지체 없이 아끄마야에 올라탔다. 그러나 바로 그때 다른 방향에서 역시 낙타를 탄 두 번째 츄안츄안 족이 나타났다.
나이만-아나가 아끄마야에 박차를 가해 그 두 사람 사이를 빠져나갔고, 발 빠른 하얀 낙타 아끄마야는 소리를 지르고 창을 던지고 하면서 맹렬히 뒤쫓아 오는 츄안츄안 족들을 따돌리고 도망쳤다. 그들은 도저히 아끄마야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들의 보잘것없는 낙타로는 점점 더 뒤처지는 것이 당연했다. 한편 아끄마야는 잠시 숨을 돌려 기력을 되찾은 뒤에, 놀라운 속도로 추적자들을 벗어나 나이만-아나를 태우고서 사로제끄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나이만-아나로서는 화가 난 츄안츄안 족들이 돌아가서 그 <만꾸르뜨>를 얼마나 잔인하게 때렸는지를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만꾸르뜨>가 했던 말을 이 말뿐이었다. 「그 여자가 우리 엄마라고 했어.」 「그 여자는 네 엄마가 아니다. 네겐 엄마 같은 건 없어, 거 그 여자가 뭣 하러 왔는지 알아? 그걸 알아? 그 여자는 네게서 모자를 벗겨 내고 네 머리에가 김을 쐬려는 거야!」 그렇게 그들은 불쌍한 <만꾸르뜨>에게 겁을 주었다. 그 말은 듣자 <만꾸르뜨>는 핏기를 잃고 검은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가 모자를 꽉 움켜쥐면서 양 어개 사이로 목을 움츠리고 겁에 질린 동물처럼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겁낼 거 없다! 이리 와. 이걸 잡아!」 좀 더 나이 든 츄안츄안이 그의 손에 활과 화살을 들려주었다. 「자 겨냥해!」 그리고 나서 젊은 츄안츄안이 그의 모자를 하늘 높이 던져 올렸다. 화살은 그 모자를 꿰뚫었다. 「저것 봐!」 모자 주인이 놀라서 외쳤다. 「아니-네 손은 아직 기억을 잃지 않았구나!」 둥지에서 쫓겨난 새처럼 나아만-아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모르고 사로제끄의 그 지역을 맴돌았다. 만일 츄안츄안 족이 그녀의 아들과 함께 낙타 데를 모두 다른 곳으로 몰아간다면? 만일 그들이 <만꾸르뜨>를, 그녀의 아들을 그녀가 갈 수 없는 곳으로, 그들 자신의 낙타 떼들이 있는 곳 근처로 보내 버린다면? 또 만일 그들이 그녀를 쫓아와 붙잡으려고 한다면? 갖가지 추측에 잠긴 채 그녀는 몸을 숨기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기쁘게도 츄안츄안 족 사람들이 가축 떼가 있는 곳으로부터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그들 중 한 사람은 그녀 가까이로 낙타를 타고 지나갔지만 주위를 둘러보지는 않았다. 한참 동안 나이만-아나는 아들을 지켜보다가 그들이 멀리 사라지자 아들에게 돌아가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을 함께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지금 어떻게 되었고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라도, 운명이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은, 그의 적들이 그를 멸시하고 경멸하는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노예 상태로 놓아두지 않을 것이었다. 나이만 사람들에게 침략자들이 사로잡힌 <지니뜨>들을 어떻게 불구로 만들어 놓았는지, 또 그자들이 그들을 어떻게 학대하고 그들에게서 어떻게 이성을 빼앗아 버렸는지 알게 해야 돼. 내 아들의 모습을 보여 주어서 그들을 분기시켜 무기를 들게 해야 돼. 이건 단지 땅에 관한 문제가 아니야. - 땅은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있으니까. 츄안츄안 족이 저지른 죄악을 그냥 넘길 수는 없어. 그자들과 접해 보지 않은 이웃사람들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아들을 함께 데려가려면 어떻게 그를 설득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나이만-아나는 아들에게로 돌아갔다. 거대한 사로제끄에는 이미 어둠이 갈리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주는 또 다른 밤이 계곡들과 언덕들 위로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다가서면서, 불그스름한 황혼의 색조를 띠며 내려앉고 있었다. 하얀 암낙타 아끄마야는 수많은 가축들이 있는 곳으로 제 주인을 가뿐히 안락하게 실어 날랐다. 기울어 가는 저녁 햇살이 낙타의 두 혹 사이에 앉은 그녀의 모습을 똑똑히 드러냈다. 나이만-아나는 내내 경계를 풀지 않은 데다 극도로 불안해서 창백하고 굳은 표정이었다. 그녀의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얼굴의 주름살, 불안해하는 표정은 그녀의 끝없는 고통을 지켜본 증인인 사로제끄의 황혼과도 같은 그녀의 눈에 서린 표정 그대로였다. 가축 떼가 있는 곳에 당도하자 그녀는 풀을 뜯는 짐승들 사이를 지나면서 사방을 두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이 있는 기척은 없었다. 그의 낙타는 짐을 실은 채, 무슨 이유에선지 고삐끈을 땅에 끌면서 제멋대로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거기에 없었다. 그 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졸라만! 얘야, 졸라만! 어디 있니?」 나이만-아나가 아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의 부름에 대답하는 소리도 없었다.
불안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면서도 그녀는 자기의 아들이, 그 <만꾸르뜨>가 낙타 그늘에 몸을 숨긴 채 무릎을 꿇고 앉아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아들은 지는 햇살 때문에 목표물을 겨누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화살을 날리기에 적당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졸라만! 얘야!」 나이만-아나가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두려워하며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안장에서 몸을 돌려 그를 보았다. 「쏘지 마!」 그녀는 고작 낙타에 박차를 하하며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그녀의 왼쪽 팔 아래에 꽂혔다.
치명적인 한 방이었다. 나이만-아나는 낙타의 목을 부여 쥔 채 앞으로 앞으로 쓰러져 갔다. 그러나 바로 전에 그녀의 머리에서 하얀 스카프가 떨어져 내려 하얀 새로 변했다. 그리고 그 새는 이렇게 지저귀면서 날아갔다. 「네가 누구 자식인 줄 아니? 네 이름이 뭐지? 네 아버지는 도넨바이였어! 도넨바이! 도넨바이!」
그 이후로,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사로제끄 사막에서는 밤이 되면 도넨바이라는 새가 날아다니는데, 그 새가 여행자를 만나게 되면 가까이 날아와서 이렇게 묻는다는 것이었다.
「네가 누구 자식인 줄 아니? 네구 누구지? 네 이름이 뭐지? 네 아버지는 도넨바이였어. 도넨바이. 도넨바이. 도넨바이. 도넨바이...」
- 찬기즈 아이뜨마또프 [백년보다 긴 하루] 중에서 + http://en.wikipedia.org/wiki/Mankurt Mankurt (Turkish: Mankurt, Russian: Манкурт, Azerbaijani: Manqurt or Manqurd) is as a term refers to unthinking slave in Turkic mythology.만쿠르트는 투르크 설화에서 생각이없는 노예를 가리키는 용어다. According to Chinghiz Aitmatov, there was a Kyrgyz legend, according to which mankurts were prisoners of war who were turned into slaves by having their heads wrapped in camel skin. Under a hot sun these skins dried tight, like a steel band, thus enslaving them forever, which he likens this to a ring of rockets around the earth to keep out a higher civilisation. A mankurt did not recognise his name, family or tribe ? ?a mankurt did not recognise himself as a human being?.[1] 칭기즈 아잍마토브에 따르면, 키르기인들의 전설에, 만쿠르트는 낙타 가죽을 머리에 쓰게되어 노예가 되버린 죄수들을 가리킨다. 뜨거운 태양아래 이 가죽들은 마치 금속으로 만들어진 북처럼 말라붙어 꽉 끼이게 된다, 이는 그들을 영원히 노예로 만들어버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수준높은 문명을 지속하기위해 지구를 둘러싼 화살의 고리, 쇠고랑에 비유했다. 만쿠르트는 자신의 이름, 가족 또는 부족에대해 인식하지 못한다. 만쿠르트는 그 자신이 사람으로써 존재하는것임을 인식하지못한다. Discussion is open about the origin of the word 'mankurt.' It was first used in the press by Aitmatov and he is said to have taken the word from the Epic of Manas.[citation needed] 'Mankurt' may be derived from the Mongolian term "мангуурах" (manguurah means "stupid"), Turkish: Man-kafa (Stupid Head) and Turkic mengirt (one who was deprived memory) or (less probably) man kort (bad tribe).[citation needed] 만쿠르트라는 단어의 기원에대해 토의가 열려있다. 이는 아잍마토브에 의해 처음 인용되었으며 그는 마나이야기(키르기스스탄의 서사시)에서 이 단어를 얻게됬다고 말했다. '만쿠르트'는 아마 몽골어인 (만구라 "멍청하다"는 뜻), 터키어: 만-카파 (멍청한 머리) 그리고 투르크의 멘걸트 (기억을 박탈당한 사람) 또는 (가능성이 적은) 만 콜트 (나쁜 부족)에서 파생된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