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그럭저럭 빛나는 밝은 공 사건 이후에 어느 정도 요정? 이랄까 뭔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뚜렷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바쁜 일정에 과제들을 수행하다 보니 점차 걔네들의 존재가 잊혀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의 과제를 새벽까지 열심히 하고 있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기숙사 방문을 열고 나섰습니다. 당시에는 맨 끝 방을 쓰고 있어서 화장실을 가려면 그 앞에 있는 조리실을 거쳐서 옆에 화장실로 가는 통로를 지나가야 합니다. 밤에 사용하지 않아도 조리실의 특성상 불을 끄지는 않습니다. 밤에 쳐묵 하는 애들도 많고 또 공동 냉장고가 있어서 불은 항상 밝게 켜두고 있습니다.
화장실을 가기 전에 조리실을 거쳐가야 하기 때문에 불이 켜져 있으면 그냥 스윽 둘러보게 되는 것이 버릇이었습니다. 과제를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CRT 모니터 화면을 눈을 부릅 뜨고 쳐다보다, 또 밑에서 뭐 자르고 붙이고 쌩 난리를 치다 보니 눈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화장실 가면서 조리실을 습관처럼 스윽 보는데 그날 따라 불이 켜있지 않았고, 조리실 내부는 창 밖에 있는 외등에 어느 정도 실내가 보일 정도의 그런 어둑한 분위기 였습니다. 조리실 문 옆에 식탁 같은게 있는데 언놈이 등을 돌리고 앉아있다가 제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니까 (슬리퍼 질질이죠….) 뒤를 돌아보며 웃었습니다. 저는 빙다리 핫바지같이 습관적으로
“Hi~~”
라고 말한 후에 화장실에 가서 쉬를 주르륵 하는데…..갑자기 머리카락이 쭈뼛 하는 것이 이건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머리 속으로 왜 지금 소름이 돋는지 분석하면서 눈은 막 돌아가는데 식은 땀은 나고….하다가 한가지 원인을 찾았습니다.
‘내가 저새끼 웃는 얼굴이라고 생각한 것은 입이 웃고 있었기 때문인데, 눈은 봤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쉬싸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변기 옆에 조금 쉬를 흘리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닌데…. 그런 누까지 범하면서….. 여튼 심장이 빨리 뛰고 머리 속에서는 결론 하나에 도달했습니다.
‘난 저생퀴 웃는 입만 봤지 눈은 못봤어. 왜냐하면 눈이 없었으니까….’
이젠 나가면서 다시 저기 앞을 지나쳐야 하는데…..어떻게 갈 것인가가 관건이 된 겁니다.
‘씨뵐, 그냥 아까처럼 Hi~~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까? 아님 졸라 옆에 조리실 안보고 내 방까지 뛰어갈까? 아님 아는 형님께 전화해서 날 좀 화장실에서 데려가 달라고 할까? 미쳤다고 하겠지?’
머릿속은 계속 복잡해 지고 곧휴를 깐 채 쉬하다 말고 정말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은 나온 곧휴를 다시 바지 속으로 밀어 넣고 침착하게 쉬 마무리를 하고 나서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가면서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지 않고 내 방으로 가는 거야~~’
화장실에서 나와서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면서 조리실은 쳐다보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내 방으로 가고 있는데, 저시키가 입구에 앉아있었던 관계로 보지 않으려고 해도 등판은 보이는 얄궂은 상황에서 침착하게 애써 무시하고 갔습니다. 이 방 두 개만 더 지나가면 내 방인데…… 사람 심리가 참 이상한게 뒤를 돌아보면 안되는데….안되는데….하면서 결국은 돌아보고야 말았습니다.
뜨하아….. 저 시키가 웃는 얼굴로 조리실을 나와서 그 앞 복도에 서있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전 속으로
‘그치…저 생퀴 입만 웃고 있고 눈은 없어. 내가 바로 본거야’ 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면서 발은 바로 앞방에 사는 일본 친구인 타키의 방으로 향했고 바로 Crazy 한듯 이 문을 두들겼죠. 문을 두들기며 곁눈으로 보니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데, 발 움직임은 없고 그저 말 그대로 웃으면서 다가오는데….환장할 노릇입니다. 거의 옆방 문 앞까지 왔을 때 타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었습니다.
“Any problem Yun?(애니 프라블룸 윤?)” - "님 문제 있으심?"
“Why are you knocking at my door so loudly at 3 o’ clock? (와이 아유 나킹 앳또 마이 도아 소 라우드리 앳또 쓰리 오 클라꾸?)” - 새벽 3시에 내 방문 뚜들기고 지랄이삼?"
우리의 타키는 정말이지 발음이 오리지나루 니혼징의 발음이라 사실 저 입만 있는 새퀴보다 타키의 영어발음을 듣는 것이 더 무섭긴 합니다…..만 타키가 문을 열자 마자 거짓말처럼 그 입생퀴는 사라져 버렸고, 전
“I’m sorry Taki. I swear, there’s something only with smiling mouth following me. You just saved my life. I really do appreciate for it” - "타키 존나 미안. 입만 있던 생퀴가 나 쫓아왔음. 엄창걸고. 니가 날 살렸네. 고맙고맙"
이렇게 말해 줬더니 역시나 웬 Crazy 생퀴를 본다는 표정으로 밖을 스윽 보더니
“Something follow you? (썸싱 파로 유?) Really? (리어리?) Where? (웨아?) No Joking(노 조낑)” - "뭐 쫓아온다고? 레알? 오데? 뻥까시네"
하면서 문 닫고 들어갔습니다. 전 떨리는 마음으로 그 시키가 문 닫기 전에 제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일단은 과제는 다 했지만, 해 뜰때까지 쉬하러 밖에도 못나가고 방안에만 있었습니다.
과제 제출 하고 오후에 집에 돌아와서 조리실에서 저녁 만들어서 친구들과 먹다가 어제 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또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의견들이 반 정도는 경험해 봤다고 하네요.
대신 다른 건 저처럼 따라오지는 않았다는 거고요….. 된장맞을 잉글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