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계획에 없던 여자 두 명을 데려 가자니 기분이 좀 이상해 집니다.
그래서 출발 전에 돌돌이 녀석에게 미리 전화를 했죠.
예기치 않게 여자 두 분이 동석하게 됐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 하겠노라고.
그런데 의외로 돌돌이 녀석 반응이 덤덤한 거예요. 그저 ‘그래. 알았다’ 한마디로 끝이더군요.
저희는 교대 황소 곱창으로 향했습니다. 역시 금요일 저녁이라 사람이 많더군요.
번호표 받고 기다리 랍니다.
이거 숙녀분까지 데리고 곱창 먹자고 그냥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문득.
아냐. 지금 이 여자들은 객이잖아? 내가 왜 예기치 않은 객 때문에 우리 원래 계획까지 변경을 해야 돼?
라는,
옆집 개 땡칠이도 안 물어갈 개똥 같은 자존심이 불뚝 치솟아 오르 더군요.
그래서 그냥 번호표 받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번호표 받고 곱창 먹기 위해 기다리며 깔깔거리는 분위기가 되자 마치 친구처럼 어색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마침 돌돌이 녀석도 오고,
우리는 한참을 포옹 했다가 이런저런 얘기들을 봇물처럼 터트렸습니다.
그래도 제가 손님들을 데려 왔으니 우리 얘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기로 하고 자리를 잡고 다시 넷이 얘기를 시작 합니다.
그런데 돌돌이 녀석 인상이 마치 세상 달관한 사람 같더군요.
이런저런 얘기를 해도 그저 씨익 웃기만 하고, 고개만 끄떡거리고.
하나 확실한 건,
이쉥키 여자랑 놀아 본적 없구나…..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점.
분위기가 그러니 제가 원맨쇼 좀 하고 코메디 짓 좀 하고, 거기 술까지 들어가니 확실히 분위기는 좋아 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메롱티에 대한 시선이 좀 바뀌게 된 계기가.
얘기를 하다 보니 비올라를 전공 했더군요.
그래서 서로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제가 “그런데 원래 클래식을 좋아하셨나 봐요. 전공까지 하신 거보면”
이라고 하자 메롱티가 그러더군요.
“좋아하긴요. 개뿔. 집은 그럭저럭 살만하지. 괜찮은 간판은 걸쳐놔야 시집도 좀 좋은 데로 갈 것 같지, 해서 부모님이 보내신 거죠. 저 나 훈아 좋아해요.”
라고 하는 말에 제가 빵 터졌습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안 좋은 이미지로 보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면이 메롱티 매력인 것 같더군요.
얘기하다 보니 ‘아, 이 여자는 그냥 가식이 없는 거구나.
그래서 그냥 직설적으로 얘기 하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요.
어쨋거나, 그때까지는 좋았습니다.
곱창을 먹고 이차로 어디 갈지 옥신각신하다 저번에 들렀던 강남 역 BAR로 다시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시끄러운 곳을 잘 견디지 못한다고 하자, 여기자도 자기도 그렇다고 하더니 저번 바가 좋았다고 바로 가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번 술 마셨던 그 바로 다시 향했습니다.
그 곳에서 넷이 술을 마시는데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제 기분에 자꾸 시끄러운 거예요.
분명 바 자체는 조용 했습니다.
밀폐 형 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룸이고, 음악도 잔잔한 쿨재즈가 깔리고 있는데, 왜 그런지 저는 너무너무 시끄럽게 느껴지고 산만합니다.
아, 이거 너무 술을 많이 마셨나 싶어 정신을 차리려 눈을 크게 뜨는데,
억,
흘깃 여기자 옆으로 어떤 길쭉한 남자가 앉아 있습니다.
헉, 일순간 숨이 안 쉬어 집니다.
저번만 해도 길쭉하고 흐릿하게 보였는데 이번에는 확실하게 보입니다.
너무 놀라 눈을 크게 깜박거리니 다시 안보이고,
메롱티와 여기자는 앞에서 깔깔대고 웃으며 얘기하고 있고.
그러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쳐다보면 보이고,
와, 식은땀이 쭉 올라 옵니다.
분명히 몸도 길쭉하고 얼굴도 길쭉하고, 머리는 앞머리가 살짝 벗겨진 그 남자가 여기자 배에 손을 얹은 채 여기자를 쳐다보며 씨익 웃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까 그냥 시끄러웠던 같은 느낌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웅성웅성, 마치 시장 바닥처럼.
그러면서 눈앞 시야가 점점 하얗게 변하기 시작 합니다.
이게 정말 세상이 화이트 아웃 되는 것처럼 새하얗게 변하면서 귀에 들리는 소리는 화장실 에코 소리처럼 웅웅, 온갖 잡음이 다 뒤 섞여서 들립니다.
그때 갑자기,
말없이 얘기만 들으며 빙그레 웃고 있던 돌돌이가 네 어깨에 손을 턱 올립니다.
그리곤 제 귀에 대고
“네 마음 속에 우주가 있고, 우주가 곧 네 마음이지” 라고 뜬금 없는 소리를 합니다.
녀석이 그 소리를 하자 갑자기 귓속에서 들리던 소리들이 싸아아악 사라 집니다.
여 기자 옆에 남자도 안보이더군요, 시야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와, 그런데 손은 덜덜 떨리고, 식은땀은 나고.
저희 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 여자 둘이 저희를 멀뚱멀뚱 쳐다 봅니다.
그때 돌돌이 녀석이 말합니다.
“오늘은 네가 술도 많이 됐고 시간도 늦고 했으니 일어나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우리 둘이 만나서 하고”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시간도 늦고 술도 많이 됐으니 오늘 이만 자리를 파하자고 여자 분들께 이야기해 일어 났습니다.
술값을 치르고 계단을 올라 가는데 너무 큰 공포심에 휩싸 입니다.
제가 그때 내린 결론은 누군가 저 셋 중에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면서 짧은 순간 곰곰이 생각 하는데 누군지 감이 안 오는 거예요.
제가 영가를 보거나 하는 능력은 없는데 영가에 쓰이거나 신이 내렸거나 하는 사람들은 금방 느끼는 재주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그런 사람들은 확실히 알아요.
그런 사람들은 좀 친해지거나 해서 물어보면 백발 백중 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가까이 하려 하지는 않는데 이거 실수 했다 싶더군요.
밖으로 나와 저는 대리를 부르고 여기자와 돌돌이 녀석은 집이 방배동 방향이니 같이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윙?
그럼 메롱티는?
어? 얘는 왜 안가고 내 옆에 서 있는 거야?
“저, 집에 안 가세요?” 제가 물었습니다.
“네? 아니 집이 이촌동 이시 라면서요. 저희 집 청담동이니까 저 좀 내려 주고 가셔야죠. 이 야밤에 여자 혼자 택시 태워 보낼려구요? 남자가 매너도 없이. 대리비 제가 낼게요” 라고 말을 합니다.
아니 뭐 이런,
완벽하게 타당한 발언이 다 있어?
그래 그래, 이 오밤중에 여자 혼자 그건 또 아니지, 하는 밥통 같은 생각을 하며 앉아서 담배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메롱티가 옆에 털썩 앉더니 말 합니다.
“일단 저희 집에 잠깐 들러서 차 한잔 하고 가요. 이상한 생각 하지 마시고. 술도 깨는 게 좋을 거 같고 뭐. 겸사겸사 물어볼 것도 있고”
그 말에 정신이 확 듭니다.
응?
지…지….집에 가서?
이건 너무 빠른데? 아! 라면 먹자고는 안 했으니 그건 아닌가? 이상한 생각이 뭘 말하는 거지?
하는 병크축제를 속으로 마구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혼자 사세요?” 라고 제가 물어 보자
“네, 혼자 살아요. 좀 무서워서 그래요.” 라고 말합니다.
“엥? 무서워요? 헐…” 제가 피식 웃자 메롱티가 째려 봅니다.
대리기사가 도착해 청담동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다시 제 머릿속이 복잡 해 집니다.
분명 셋 중에 하나 때문에 제가 영향을 받는 거 같은데, 메롱티는 분명 느낌상 아닌 것 같고.
그럼 여기자?
분명 저번에도 여기자 옆에 있던 희끄무레한걸 봤으니 확률이 제일 높은데,
그런데 그때는 무슨 희미한 AM 주파수 잡히듯이 잡히더니 오늘은 FM처럼 선명하게 보이는걸 보니 혹시 돌돌이가????
하는 온갖 잡생각이 다드는 거예요.
청담동에 금방 도착하니 메롱티 집이 아파트 더군요.
혼자 살면 오피스텔이나 연립을 상상 했었는데 웬 아파트지? 싶은데 아놔 누가 청담동 아니랄까 봐 들어 가는 절차도 복잡복잡, 대리 기사는 투덜투덜.
어쨌건 내려서 올라 갔습니다.
그녀 뒤를 쭐래 쭐래 따라 올라 가니………
엑,
무….무….무서울 만 합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 42평 아파트.
원래는 동생과 부모님이 같이 살았는데 동생과 부모님은 미국으로 건너 갔고 자기 혼자 있다는 군요. (아, 증여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집이 너무 커서 전세를 내놓고 자기는 조그만 오피스텔로 옮길까 생각 중이랍니다.
그건 뭐 중요한게 아니니 각설하고.
시간이 좀 흐르니 술이 이도 저도 아니게 어중간 한 것 같아 지더군요.
그 때 메롱티가 뭘 마시겠냐고 물어 봅니다.
커피를 마셔도 깰 정도는 아닌 거 같고, 주스를 달라 그럴까? 생각 하는데.
“커티샥 있으니까 커티샥 마셔요.” 라고 일방적으로 말 합니다.
아 놔 양주 싫은데, 물어 보질 말던가……..;;;
“쏘..쏘..쏘주는 없나요?”
“그냥 주는 대로 마셔요.”
“뉘에.”
그렇게 여자와 둘이 앉아 있으니 좀 전 느꼇던 공포심이 방망이로 홈런이 되어 한방에 날라 갑니다.
응?
이게 은유적 표현으로 쓴건데 적나라한 직설적 표현이 되네요? ㅋ
웃자고 써놨지만 사실 이때만 해도 한두 잔만 마시고 일어나야지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술은 치사량 조절이 가능 합니다.
소주건, 맥주건, 막걸리건, 이해 못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마시다 보면,
엇, 한계치다. 라는 선이 느껴 집니다.
그러니까, 이 잔까지 마시면 취한다 안 취한다의 경계가 확실히 느껴 집니다.
그런데 양주는 그게 안 되요. 제가 술 마시고 크게 취한 날은 대부분 양주 때문 입니다.
그래서 그 날도 대충 한두 잔 하며 얘기나 좀 하다 일어 나야겠구나 생각 하고 있었습니다.
메롱티는 술을 내놓더니 방에 들어가 집에서 입는 숏팬츠와 반팔티로 갈아 입고 나옵니다.
그렇게 둘이 거실 소파에 앉아 술잔을 두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어요.
그러다 제가 물어 봤죠. 오늘 어떻게 같이 나오게 됐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점이 이상 했거든요.
여기자와 내가 친한 사이도 아니고 한번 본 사인데, 거기 쭐래쭐래 따라 나올 정도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 Hyundc님 얘기를 들었으니까요. 신기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고 물어 보고 싶은것도 있고 해서요. 사실은 제가 여기자 졸랐어요. 나 좀 만나게 해달라고.”
“네? 아… “
그 말을 듣자 그럼 여기자 옆에 있던 영가 때문에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술은 한잔, 두잔, 세잔 마구마구 건배를 하고 있고……….
“그런데 왜 저를?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으셨다 구요?”
제가 뜨아한 표정으로 물어 봤습니다.
“네 궁금 한 게 있어서 뭐 좀 물어 보려 구요.”
그 말을 하며 메롱티 얼굴에 장난 가득한 웃음기가 번집니다.
그런데 그때 쇼파에 둘이 나란히 앉아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슬쩍 슬쩍 몸이 닿는데 이거이거……….아무래도 저도 남자이다 보니 온 신경이 그 쪽으로 바짝 쓰입니다.
“무슨????”
“귀신 때문에 제가 요즘 좀 힘들 거든요. 혹시 뭐 좀 아시나 해서요.”
허걱,
그 말을 듣는데 다시 아까 간신히 잠재워 놨던 공포심이 콜라 탄산 터지듯이 뻥 터진 채 줄줄줄 흘러 나옵니다.
“귀…귀…귀신이 어디서 나오나요?”
전혀 겁나지 않는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하는 척 하지만 목소리가 떨려 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장난 섞인 목소리로 제 귀에다 대고 말을 합니다.
“저희 집에서요.”
히이이이익………
정말 뛰쳐 나가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캬하하하 웃음을 터트 립니다.
“농담이에요. 남자가 쫄기는” 그러면서 여전히 캬캬 웃어 댑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일어나서 욕실 쪽으로 걸어 갑니다.
그리고 욕실 불을 딸깍 킨 상태에서 저를 돌아 보더군요.
그러더니.
“저 샤워 할건데. 같이 하실래요?”
“케헥. (사레들림) 아니 저…. 샤워는 켁…샤…샤워는…벌떡(응?)….아닙니다… 저희 모친이 항상 샤워는 집에 와서 자라고 항상…아….이게 아닌가?.... 콜럭콜럭…..네…네…아…돼…..됐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파안대소를 하고 웃습니다.
“ㅋㅋㅋㅋ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 순진 하시네. 장난 좀 쳐봤어요. 저 좀 찝찝해서 그러니까 저 씻고 나올게요 천천히 드시고 계세요.”
아……씨…………
한번 더 말해 주지……쩝.
뭐 그러고 혼자 앉아 있는데, 양주를 계속 마셨더니 아까 마셨던 술과 연합군으로 합세해 제 꼭지를 휙 돌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 옵니다.
음…….너무 피곤한데…………….그럼………메롱티 나올 때 까지 잠깐 쇼파에 누워 있어야 겠다.
그래서 앉은 그 상태에서 몸을 살포시 눕혀 봤습니다.
아이구 편하다…………..
그리고는,
그 상태로 잠이 들어 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