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날 모임에 100일 휴가 나온 나온 친구 녀석과 다른 녀석들,
아마 저까지 남자 다섯, 여자 둘. 이렇게 일곱이 모였던 것 같습니다.
형제 갈비에서 고기 먹고 호프 한잔 하러 근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신나게 얘기하며 떠들고 있는데 제 친구가 갑자기 저를 툭툭 치며 말합니다.
“야야, 저기 재네 봐라 끝내 준다.” 라고 말하기에 무심결에 술집에 들어오는 사람을 봤는데,
어라? 코카콜라녀가 자기 친구와 들어옵니다.
깜짝 놀랐어요, 그저 어? 이렇게 마주 칠 수도 있네? 라고 생각 했습니다.
일단 제가 먼저 아는 척을 했지요. 자기는 친구랑 호프 한잔 하러 왔다더군요.
잠깐 간단한 얘기 좀 하다 그러면 나도 친구가 있으니 재미있게 놀라고 애기한 후 제 자리로 왔더니 제 친구들 눈이 휘둥그래져 있습니다.
저 여자 누구냐고 묻는데 달리 할 말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냥 ‘아는 사람’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니들과 어울릴만한 여자 아니니까 그냥 신경 끄고 술 먹고 가자고.
코카콜라녀는 친구들과, 저는 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그녀가 저희 자리께로 오더니 저를 불러냅니다.
나가 봤더니 자기를 왜 피하냐고 묻더군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 적 없노라고 말했더니 내일 뭐하냐고 묻습니다.
자기 친구들과 홍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보자고. 그래서 순순히 그러마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는 부르지 말고 나오라네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같이 만나기가 좀 불편하답니다.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죠. 그 얘기 하는데 제 친구들이 자꾸 짖꿏은 눈초리로 쳐다보는 게 느껴져서 빨리 자리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는 저를 붙잡고 물어 봅니다. 같이 있는 여자들 누구냐네요.
혹시 사귀는 사람 이냐기에, 아니다 어릴 때부터 친한 애들이라고 얘기 했죠.
다음날 홍대 역 근처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당시 있었던 레스토랑 같은 곳 이었는데 코카콜라녀, 최화정녀, 청바지녀 셋이 여전히 먼저와 낄낄 거리고 있더군요.
간단한 인사를 하고 같이 이야기를 시작 하는데 테이블에 케이크가 보입니다.
웬 케이크이냐고 물어보니 오늘이 최화정녀 생일이랍니다.
아, 그럼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갑자기 자리에 앉아 있기 민망해 집니다.
엄청 뻘쭘 하더군요. 남 생일잔치에 빈손으로 앉아 있자니.
그래서 잠시만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 근처 꽃집을 찾아 뛰어 다녔어요.
그때가 7월 이었는데 꽃 집 찾아 청기와 주유소 부근에서 홍대 정문께 까지 땡칠이 마냥 뛰어 다녔습니다.
다행히 정문 앞쪽에 꽃집이 있기에 그곳에서 백합을 한 다발 샀어요.
그리고는 또 헐레벌떡 레스토랑으로 뛰어 가는데 한여름에 삼십분 넘게 뛰어 다녔으니 온몸은 땀범벅이 된 채 돌아 왔습니다.
생일 축하 한다고 꽃다발을 최화정녀에게 전해주니 최화정녀와 청바지 녀는 센스 있다고 박수 치고 좋아 하는데 코카콜라녀 눈빛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4.
그 모임 이후에 두 번인가? 세 번정도 만났던 걸로 기억 합니다.
전처럼 넷이 만나거나, 아니면 청바지 녀가 빠지고 셋이 만나거나.
그런데 좀 관계정립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는 분명히 셋이 친구 관계로 만나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코카콜라녀가 제 옆에 앉아 있다거나, 또 희한하게 그렇게 자리가 잡히면 최화정 녀 표정이 안 좋아 보이거나.
제가 몇 번 ‘뭐 어때 우린 친구잖아’ 라는 뉘앙스의 말을 던지긴 했지만 또 대놓고 ‘우린 남자 여자로 보지 말자’ 라고 말하기도 애매 합니다.
그래서 또 슬슬 전화가 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 시작 했죠.
어느 날 코카콜라 녀 에게 전화가 왔는데 제가 돈이 없어서 못나간다 그랬습니다.
뭐 사실 저는 대학 때부터 부모님께 용돈 없이 알바로 제가 살았기 때문에 실제 돈이 없기도 했거니와, 좀 찌질 하긴 하지만 핑계 대기는 제일 좋더군요.
그렇게 두어 번 핑계를 댔는데 어느 날 코카콜라 녀가 자기 친구들이랑 압구정동에 있는데 나오랍니다.
더 빼기도 그렇고 마침 할 일도 없던 터라 나갔는데 어라? 코카콜라녀 빼고 세커플이 모두 쌍쌍입니다.
제 등장이 졸지에 코카콜라녀 애인이 등판한 게 되버리더군요.
그런데 코카콜라녀가 제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저 앞에 슈퍼에 가서 이름 얘기 하면 주인아줌마가 뭐 줄거야. 그걸로 여기 술 값 좀 계산해줘” 라고 합니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가게 앞 슈퍼에 가서 이름을 말하니 주인아줌마가 저를 힐끗 쳐다보더니 뭔가 두툼한 봉투를 내밀더군요.
내용물을 빼 보니 만 원짜리가 오십 개 들어 있습니다.
하 이거 정말 뭐하자는 건지.
어쨌건 분위기 망치기 싫어서 파장 무렵 제가 계산 하는 걸로 했습니다.
기분 참 묘하더군요.
그 때 술값이 십이만 원 인가? 나왔던 걸로 기억 합니다.
일단 그때 화도 좀 났지만 한편으로 그냥 얘가 애인 없다는 게 꿀리기 싫어서 그랬나 보다 하고 이해하고 넘어 갔습니다.
밖으로 나왔더니 오늘은 차를 가져 왔다면 타랍니다.
그날은 빨간색 갤로퍼 숏바디를 끌고 나왔더군요.
그때만 해도 갤로퍼가 비싼 차의 상징 이었는데.........
타랍니다. 자기는 술 안마셨다고. 집에 바라다 준 다네요.
차에 타서 제가 남은 돈을 줬습니다.
“이거 술값 계산하고 남은거야”
“응? 그거? 너 써 그냥. 그리고 이거 가져가.” 라며 뒷자리에 있던 박스를 제게 줍니다.
그게, 하트 모양으로 된 선물 상자 같은 건데 꽤나 컸습니다.
직경 한 삼십센치 정도 박스?
“이게 뭔데?” 라고 말하며 겉에 묶인 리본을 풀으려고 하니 풀지 말랍니다.
집에 가서 풀어 보라네요.
그런데 이게 너무 가벼워요. 저는 기껏 해야 쵸콜렛이나 먹는게 들어 있을 거라 생각 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가볍습니다.
어쨋건 그 날 저희 집 앞에 바라다 주기에 그냥 박스 들고 털레털레 집으로 갔습니다.
차에서 내릴 때 그러더군요.
“남은 거 앞으로 내가 만나자고 할 때 택시비로 써. 나 때문에 오늘 고생 했잖아” 라고 말 합니다.
그런데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해야 정상인건지, 그냥 자기 심심할 때 만나러 나가는 거니 별 생각 없이 받아야 하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일단 집에 가서 생각 해 보기로 하고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서 일단 씻고 박스를 열어 봤습니다.
헐............
이게 뭐야.
그 큰 박스 안에 만 원짜리를 돌돌 말아서 빼곡히 채워 놨습니다.
이미테이션 쪼그만 장미 두세 송이 정도 들어 있고 나머지는 전부 다 만 원짜리입니다.
이런 니기미.
참고 있었던 화가 폭발 합니다.
4.
“넌 C발 내가 거지같아 보이냐?”
라고 말했던 걸로 기억 합니다.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겁니다.
다음날 압구정동 카페에서 만났을 때 그렇게 말하며 종이 박스를 탁자에 던졌습니다.
코카콜라 녀가 쐐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순간적으로 눈빛이 엄청 나게 무섭습니다.
“아...아니 뭐.....욕한 건 미....미안한데....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돈을 나한테 왜 줘.”
하........정말 지금 생각하니 등신도 이런 상등신이 없습니다.
“그냥 써.”
그녀가 별것 아니 라는 말투로 심드렁하게 말하며 쥬스를 마시더군요.
“아니, 그냥 쓰는 건 말이 안 되고, 이...이건 내가 못 받지. 그냥 가져가”
무덤덤하고 차가운 표정에 제가 쫄았습니다.
“그래? 그거 너 돈 없어서 나 만나러 못나온 다고 하기에, 나 만날 때 비용으로 쓰라고 준거야. 너 그냥 안 쓰고 나 만날 때 비용으로 쓰면 되잖아. 그 말이 어려워?”
“어? 아니, 어렵진 않은데.........”
“줬으니까 그냥 쓰던지, 너 안 가져가면 나 지금 들고 나가서 길바닥에 확 뿌려 버린다.”
“엉? 그...그래. 일단 알았어.”
그리고 나와서 술집으로 갔습니다.
술집에서 자기가 좋아 한다고 J&B 대자를 시킵니다.
“나 오늘 술 좀 먹고 싶으니까, 이거 너랑 나랑 다 먹기 전에는 집에 못가” 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마셨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엥? 장소가 어느새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