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남자는 누구나 그런 시기가 존재하잖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순수 했던 시기.
제가 그때 그 시기 였습니다.
그때 코카콜라 녀가 술도 많이 먹었으니 잠깐 방 잡은 후 술이나 깨고 가자기에 쭐래쭐래 따가올라 가며 그 생각을 했어요.
‘아직 열시도 안됐으니까 잘하면 할증 붙기 전에 택시 타고 갈수 있겠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땀을 많이 흘렸다고 코카콜라가 씻으러 들어가고,
아,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코카콜라 녀가 “너 먼저 씻을래?” 라기에 제가
“아니, 난 집에 가서 씻을 건데?” 라고 겁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순간적으로 저를 병신처럼 바라보던 눈빛이 기억납니다.
어쨌건 저는 침대에 웅크려 앉아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럴 나이잖아요. ‘잠깐 술 깨러 방 잡자 그랬으니 빨리 술 깨야지’ 라고 생각할.
요즘은 아닌가?
하긴 그때도 뭐.....그렇게 따지고 보면 제가 좀 많이 늦었습니다.
군대 병장 달고 첫사랑을 만났고 그 여자가 첫 경험이었으니.
참 희한하죠? 군대 가서 잠깐 외출 나온 사이 첫 사랑을 사귀다니.
암튼,
실제 그 당시에 여자들과 모텔이나 여행가서 콘도에서 묵은 적이 많았는데, 저는 정말 잠만 잤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 거리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때 개들이 날 얼마나 욕했을까하는.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어슴푸레 불이 꺼져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 코카콜라 녀가 서있는데 호텔에서 주는 흰색 가운을 입고 서있더군요.
시간은 삼십분이 채 지나지도 않았고.
그녀가 사온 맥주를 주섬주섬 꺼내며 한잔 더 하잡니다.
엉거주춤 테이블 쪽으로 가는데 어? 어렴풋이 저쪽 테이블 위로 그녀가 벗어서 개어 놓은 듯 한 옷 위에 속옷까지 있습니다.
엥? 어두워서 희미하게 보이지만 분명 속옷 같은데 그럼 지금 저 까운 안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냥 못 본척 했습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겠기에 “너는 자고 갈거냐?” 고 물어 보니 자기는 자고 간다 더군요.
그래서 대답한다는 게 “그럼 난 조금만 더 있다 나갈게.” 라는 말을 해 버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너 매너 있게 건드리지 않을 테니 안심해라’ 라는
병신 같은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병신 같지 않아 보이기 위해 상병신 같은 말을 하다니.......뭐, 그럴 때가 있습니다.
휘몰아치는 병신력으로 찬란히 빛나던 시기가....
어쨋건 둘이 앉아 맥주를 마셨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얘가 그러더군요.
자기가 여자로 안보이냐고.
저는 좀 이상한게, 외모 보다는 목소리나 말투를 보고 사람에게 호감을 많이 느끼는 편인데,
얘 목소리가 허스키한 편이었어요. 피부도 까무잡잡한 편이고.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는 서기 라고 연상 하시면 됩니다.
거기다 대화도 잘 안통하고, 얘는 주로 말하는 게 외국 유학 준비하는 얘기, 미국얘기,
연예인 누구, 누구랑 술 먹었다, 이런 이야기 등인데 당췌 제가 끼어들 공통 화제가 없다보니
그냥 앞에서 덩더쿵 쿵덕 맞장구나 쳐대는 수준 이었습니다.
그러니 여자로 보이니 마니도 없었고, 조금 있으면 군대도 가야하니 애인을 만들겠다, 이런 생각도 없었고 뭐.
그래서 그냥 웃으며 아니다, 여자로 보인다. 아주 아름답다. 다만 나랑 어울리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친구지 않냐.
이런 식으로 둘러 댔습니다.
그러자 그러더군요.
“사실 내가 너 오늘 잡아먹을라 그랬는데. 관둬야 겠다.” 랍니다.
“어? 무슨 소리야. 그게...사....사람이 사람을 먹으면 안 되지 식인종도 아니고. 하....하”
제가 당황해서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봅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그녀가 입고 있던 까운 앞섬이 조금씩 벌어지는 거예요.
거기다 까운 안에 속옷 까지 안 입었다고 생각하니 이거 참 여러모로 거시기 해 집니다.
그런데 조용히 있던 그녀가 말을 합니다.
“너 내가 왜 오늘 그냥 지나 가는 줄 알아?” 라네요.
“..........” 제가 말은 못하고 침만 꼴깍 꼴깍 삼켜 댑니다.
“이 방이 너무 번잡해서 그래. 이 방 사람 죽은 방이네.”
히이이이익~~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싶습니다.
와 갑자기 등골이 쐐 해 지면서 엄청난 공포감이 몰려옵니다.
그 말을 듣자 그때까지 ‘차렷’ 자세로 용맹하게 기립해 있던 제 곧휴가 곧바로 엎드려뻗쳐를 실시합니다.
“어?.....어?....너는 그걸 어..어떻게 알아?”
그러자 그녀가 방 안쪽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는데 눈동자가 번쩍 빛납니다.
“보이니까 알지. 둘이나 돌아다니네. 한명은 모르겠는데 한명은 목 메단게 확실한 것 같고.”
으아.............엄마........
정말 소리 지르면서 뛰쳐나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또 쫄보 취급 받을 까봐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웃었습니다.
“아..그..그래. 재..재밌네. 하.하.하. 근데 그런 장난 치지 마. 섬뜩 하잖아.”
그러자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장난 아닌데?”
제 표정이 벙 찝니다. 아니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라는 생각도 들고.
이게 지금 장난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줘. 나 혼자 이방에서 무섭게 어떻게 있어.” 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옵니다.
“야. 너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냐? 진짜 내 보다보다 도저히 못 참겠다. 여기서 자든 집으로 가든 네 맘대로 해” 라고 말하며 제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문께로 걸어가는데 그녀가 제 앞을 막아섭니다.
그리고는 눈을 치켜뜨고 저를 째려봅니다.
제가 비키라고 말하자 갑자기 입고 있던 까운 허리 밴딩을 끄르더니 옷을 벗습니다.
코카콜라 녀가 입고 있던 까운이 허물처럼 바닥에 떨어지더군요.
제가 순간 당황해서 ‘이건 또 뭐야?’ 라고 생각 하는 순간,
그녀가 제 목에 매달리며 키스를 시도 합니다.
제가 당황해서 그녀를 침대로 확 밀쳤습니다.
원체 마른 체형이어서 그런지 그녀가 낙엽처럼 침대로 쓰러집니다.
쓰러진 그녀에게 앞으로 다신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말한 후 밖으로 나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화낸 게 잘 한건지 잘못한 건지 마음이 갈지자입니다.
어찌 됐건 그때부터 그녀가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 했습니다.
귀신이 보인다는 말이 진담 이었어도 무섭고 거짓 이었어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여간, 그 아이랑은 좋게 좋게 관계가 이어 질수 없다는 답은 내렸지요.
그리고 마음이 한쪽으로 결정을 내리자마자 코카콜라 녀가 어마어마하게 무섭게 느껴지는 겁니다.
어쨋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씻고, 이런저런 정리를 하다 보니 새벽 한시가 넘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희 집이 복도식 아파트 였는데, 제 방이 복도 쪽으로 나 있었습니다.
제 습관이 밤중에 불 끄고 제 방 의자에 앉아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그 날도 자기 전에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니 창문도 다 열려 있었고, 멍하게 남산 타워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쩐지 복도에서 뭔가 은밀하게 ‘사각, 사각’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소리가 나는 건지, 그날 제가 신경이 예민해져서 환청이 들리는 건지.
가뜩이나 좀 전에 코카콜라 녀에게 그런 소리까지 듣고 나니 염통이 짜그라져 있는데.
한참을 쫄아서 혼자 앉아 있다가 제 방에서 나가 현관문을 열어 복도를 바라보니 역시 아무도 없더군요.
‘신경과민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잠자리에 들었어요.
생각 보다 더 피곤했는지 잠은 금방 들었습니다.
그런데 날 이 밝아, 어머니가 빨리 일어나서 밥 먹으라는 소리에 잠이 깻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정신이 멍 하더군요.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이 꿈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라는 생각에 냄새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방안을 살피는데.
어억.......
그때 제방 창문에 격자무늬 쇠창살로 된 방충방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 방충망에 누군가 내장이 다 터진 새끼 고양이 양발을 대자로 벌려 철사로 메달아 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