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충청남도에 사는 지인 K가 어릴 적에 경험한 미스터리한 이야기입니다.
역촌은 원일이의 외갓집입니다.
그곳은 엄청난 시골이지요.
94년도 즈음 됐으니까, 지금보다 더 촌이겠네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여름방학을 맞이한 원일이는 외갓집에 가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원일이만 외갓집으로 가느냐?
아니요. 어머니의 형제, 그들의 자녀들도 모두 온다고 합니다.
역촌은 물 좋고, 공기 좋은 그런 곳이라서
아이들에게 친환경 놀이터로 탁월하지요.
아이들이 워낙 많았는데요.
초등학생 저학년이 3명, 고학년이 2명, 나머지는 7살 아래로 5명이
큰 정자나무 근처에서 뛰어 놀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어린것들이 뛰어노니까, 보호자가 있어야겠지요.
바로 17살인 원일이의 막내삼촌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억지로 소환 당했습니다.
그러나 삼촌도 어린나이인지라,
본인은 시원한 정자에 누워 만화책을 보고, 아이들은 방목했습니다.
하지만 삼촌이 아이들에게 놀기 전, 경고를 하나 했는데요.
“니들 말이여. 저기 교회 위쪽에 있는 쬐그만 집은 가지 말어..”
원일이는 삼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척하고 알아들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위쪽에 위치한 판잣집은 귀신이 산다고 합니다.
귀신은 마을 아이들이 근처를 지날 때면 홀리게 만들어
한참을 데리고 놀다가 정신을 쏙 빼놓게 한다고...
그런 뒤에 집에 돌아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바보가 되어
병원에 가도 차도가 없다며 외할머니께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원일이는 어릴 적부터 그 집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교회 방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지요.
아무튼 아이들은 막내삼촌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원일이의 이종사촌 동생 두 명이 사라졌습니다.
원일이는 당황했습니다.
막내삼촌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하필이면 막새삼촌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간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읍내에 가서 언제 올지도 모르고 말이지요.
그래서 고학년인 형과 누나에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형, 누나.. 큰일 났어. 성준이랑 영준이가 사라졌어..”
누나와 형은 주위를 샅샅이 찾았지만 두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외갓집에 돌아간 줄 알고 갔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원일이는 혹시나 해서,
눈을 찌푸리며 교회 위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아이들이 교회를 지나 판잣집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원일이, 누나, 형,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온 막내삼촌은 당장 뛰어가
녀석 둘을 잡았습니다.
삼촌이 아이들을 보더니, 갑자기 양팔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그제야 녀석들도 놀라서 사람들을 알아봤습니다.
막내 삼촌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니들은 임마, 삼촌 말을 뭘로 아는겨?
삼촌이 올라가라고 했어? 안했어?
삼촌이 위험하다고 했잖여?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먹는데?
니들은 아주 혼나야혀!“
그러던 중, 큰 녀석이 삼촌을 보며 무언가가 신기한 듯 말했습니다.
“삼촌, 어떤 아저씨가 재밌는 표정을 지으면서 막 오라고 손짓했어!”
이에 동생 녀석이 말을 이었습니다.
“맞아, 삼촌. 진짜 재미있는 춤도 춰주고,
아저씨 따라가면 더 재밌는 거 많이많이 보여준다고 했어.“
막내삼촌은 그 이야기에 엄청 흥분했습니다.
“야이 녀석들아, 누구 말이여? 아무도 없는데, 누구 말하는 거여?!
니들 둘, 오늘 아주 혼날 줄 알어.”
주위에는 남자는커녕, 개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삼촌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원일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판잣집 안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는 내내 뒤를 돌아봤는데,
어느 순간, 판잣집 안에서 누군가가 춤을 추고 있는 형상이 보였습니다.
원일이는 갑자기 무서운 마음에 눈을 꼭 감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소식을 알게 되자,
외갓집 어른들은 삼촌을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원일이는 저녁밥을 먹으면서
판잣집에서 춤을 추던 남자의 형상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원일이는 골방에 혼자 그것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삼복이
외갓집은 오래 된 집이라서 화장실이 재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방이랑 10m 정도 떨어진 마당 입구에 화장실이 있었지요.
꼬마들이 화장실을 가려면, 늘 어른이 동참해야 했습니다.
그날 밤, 잠에서 깬 원일은 배가 아팠습니다.
화장실을 가야만 하는데, 워낙 어두워서 엄두가 나야지요.
자고 있던 막내 삼촌을 깨우는데,
“야.. 삼촌 졸리니까 요강에 싸 임마..”
큰 것이 마려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심하게 코를 곯고 자는 삼촌을 차마 깨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깨워서 화장실에 같이 갔다고 합니다.
원일이는 무서워서 어머니에게 내내 말을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졸린지 “그려.. 어혀 싸고 나와”라며 하품을 하고 계셨지요.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화들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야! 늬들 왜 나왔어?”
원일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문틈으로 상황을 봤습니다.
낮에 판잣집에 가려던 두 녀석이 밖으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늬들도 화장실 가려고 나왔어?”
두 녀석들은 원일이의 어머니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니, 고모.. 근데 어떤 아저씨가 밖에서 놀자고 나오라고 불렀어.”
동생 녀석이 그 말을 거들었습니다.
“맞아, 낮에 봤던 그 아저씨가 밖에서 우리를 불렀다니까?”
어머니는 기가차서 헛웃음만 나왔다고 합니다.
“아니, 그게 누구여? 헛소리 말고 어혀 들어가서 자. 어서 들어갓!”
원일이는 두 녀석의 말을 듣고 갑자기 오싹함을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뚱딴지같은 소리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잠이나 자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쪽에서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두두둠두두둠~ 둠두둠다다당~”
원일이가 호기심에 뒤를 돌아봤을 때,
누군가가 화장실 뒤편에 웅크려 앉아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무섭고, 겁이 났지만, 이상하게 그것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한동안 눈을 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빨리 방으로 들어가라며
원일이와 말썽쟁이 두 녀석을 억지로 방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캄캄한 새벽, 원일이는 화장실 뒤쪽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형체가
계속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 모두들 곯아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원일이는 혼자 일어나 우둑하니 앉아 있었지요.
멍을 때리며 창호지를 응시하는데,
갑자기 문 밖에서 사람 형체의 그림자가 나타서
원일이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아가... 아까 날 봤지? 나 본거 맞지?
쩌어기 가서 나랑 재밌게 놀자.
애기들 깨워서... 나랑 재미있게 노는 겨!“
남자의 목소리에 원일이는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외갓집의 창호문에는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아주 조그마한
유리로 된 칸이 있었는데,
원일이는 조용히 일어나 그것을 통해 밖을 보았습니다.
마루 앞에는 어떤 남자가 웅크리고 앉아 얼굴만 쏙 내밀며
원일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원일이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자고 있던 가족들을 모두 깨우려고 하는 찰나,
“에이, 그러지 말고 일루와.. 재미있게 노는겨어~”
남자는 서서히 원일이 있는 방으로 다가왔습니다.
새까만 형상에 커다란 눈,
남자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무서우면서도 눈을 땔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덧, 남자는 원일이 보고 있던 유리창에 얼굴을 가까이 댔습니다.
그리고 빙긋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모습에 원일이는 겁에 질려 기겁을 했습니다.
“으아악!!!!!!!!!!!!”
원일이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한 방에서 자던 외할머니, 엄마, 이모, 숙모 그리고 이종사촌들
모두가 일어났고, 건너 방에서 자던 남자들도 모두 기상을 했다고 합니다.
한 밤에 난리가 난 것이었습니다.
이모가 재빨리 불을 켜서 ‘무슨 일이냐’며 물었습니다.
원일이는 한 동안 울다가, 창호지 밖을 가리키며
“낮에 그 집에 있던 아저씨가... 날 잡으러 오려고 했어.. 엉엉”
원일이 아버지를 비롯하여 외삼촌들이 마당과 근처를 샅샅이 찾았지만
사람의 흔적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원일이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빠짐없이 털어놨습니다.
“그러니까, 쟤네 둘 때문에 그 아저씨가 쫓아왔어.
아저씨가 계속 재밌게 놀아준다면서 무섭게 불렀단 말이야.”
원일이의 아버지는 애가 헛소리를 하니까,
짜증이 났는지 원일이에게 ‘버럭’ 화를 냈습니다.
“야이 자식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버지가 거짓말이 나쁜 거라고 했어, 안했어?”
하지만 원일이 할머니는 놀란 손자를 안아주며,
“이보게 김서방 화내지 말게.
원일이 말이 참 말이여. 삼복이가 찾아 왔구먼...
삼복이가 찾아왔어..”
역촌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삼복이 이야기를 누구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젊었을 때,
동네에는 삼복이라는 청년이가 살았습니다.
나이는 서른을 바라봤지만 약간 모자란 부분이 있어서
장가도 못가고 어르신들이 불쌍하게 여겼다고 하네요.
그러나 삼복이는 동네 아이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동네꼬마들의 대장이 되어
아이들은 매일 삼복이를 잘 따랐지요.
그러던 어는 날이었습니다.
삼복이는 아이들이랑 숨바꼭질을 하다가 동네 폐가로 숨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마을 새댁과 부잣집아들이 정을 나누고 있었지요.
들킨 두 남녀는 삼복이가 동네 사람들에게 소문을 낼까봐 두려웠습니다.
결국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삼복이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자신들이 불륜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삼복이가 새댁을 덮치려고 했다고 말이지요.
부잣집 아들은 마을에서 영웅이 되었지만
삼복이는 천하의 더러운 강간범이 된 것입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삼복이를 내몰기 시작했습니다.
삼복이에게 유일한 친구였던,
아이들도 삼복이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지요.
집 밖을 나가면,
동네 사람들의 폭력과 아이들이 던지는 돌덩이에
하루도 몸이 성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신이 살던 판잣집에 들어가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다가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비극적인 것이, 삼복이가 죽고 난 뒤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새댁의 남편에게 모든 것이 들킨 그들은
삼복이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자백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삼복이가 안타까웠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동네 바보가 죽은 게 무슨 대수야?’라는 풍조에
미안하다는 표현도 못하고 입 다물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몇몇 사람들로부터 판잣집에 죽은 삼복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려가서 혼을 빼놓고
돌려보낸다며 마을에 난리가 난 것이지요.
벌써 삼복이를 만난 몇몇 아이들은 자폐증 증세를 보이거나,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마을을 공포에 빠트렸습니다.
이후 그들은 어른이 되고나서도 같은 증세로 살았다고 합니다.
마을에 유명한 무당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미, 원혼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어. 이건 나도 손을 못 써...
아니, 나보다 용한 무당이 와도 절대 안 돼.
되도록 피하는 게 상책이야, 쯧쯧쯧..“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교회 위 판잣집을 허물지 못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원일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얼마나 놀랬냐며 위로를 했습니다.
원일이의 어머니를 비롯해서 외삼촌, 이모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판잣집에 사는 삼복이 이야기를 말이지요.
오래 전,
외할아버지의 조카가 삼복이에게 제대로 홀린 걸 봤다고 합니다.
매일 거품을 물고, 이상한 행동으로 가족들을 마음 졸이게 했지요.
용한 무당이 찾아와도, 서울에 큰 병원에 가도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할머니께서 더욱 가족들에게
조심하라고 말씀 하신 것 같습니다...
어느 덧 길고도 긴 여름 방학이 끝나고,
원일이의 공포도 시간에 희석되어 사라졌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 원일이 집안 일로 역촌을 찾았을 때,
예전에 있던 오래된 교회와 판잣집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때의 삼복이 이야기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당시의 판잣집이 있던 곳을 바라볼 때면
삼복이가 우스꽝스런 춤을 추며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고 하네요.
“아가.. 나랑 놀자.. 나랑 쩌어기 가서 놀자~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