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지만 우형사는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빠른 걸음으로 마을 입구로 들어선 둘. 천호는 벌써부터 몸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오한을 떨쳐내기 위해 횃불을 몸 쪽으로 가까이 대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듯한 한기에 힘 없이 꺼질 것만 같았다.
‘제발..’
마음속으로 외치며 빠르게 걸은 끝에 정자에 도착한 천호는 한 명 밖에 보이지 않는 노인을 보곤 말했다.
“..어르신 다른 분들은 어디에..”
그 말에 노인은 성난 얼굴로 천호를 꾸짖었다.
“네 이놈! 그렇게까지 말을 했음에도 다시 오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목숨이 그렇게 아깝지 않은 것이냐?”
그 말에 천호는 조금 주눅이 들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어르신! 저 마을 안에 팀장님과 다른 형사분들이 있습니다. 우린 그 분들을 구출해야만 합니다. 제발 다시 한 번만 도움을 주십시오!”
그 말에 노인은 딱딱한 얼굴을 풀지 않은 채로 말했다.
“틀렸다! 한 시간이 지나면 무슨 짓을 해도 살아남지 못해. 그것이 여기 규율이고 법이다. 그것을 어긴 자들은 모두 살아갈 수 없어! 네놈들이라도 늦지 않았다. 당장 돌아가!”
둘의 상황을 지켜보던 우형사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왠지 모든 말이 거짓 같았지만 어느 정도 중재를 하고 방법을 강구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희가 듣기로는 이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리면 사람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노인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몸만 돌아온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돌아온 것이더냐?”
“..예?”
“영혼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단 말이다. 너희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육신을 구하기 위해 불필요한 희생까지도 감수하겠다는 말이냐?”
그 말에 천호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방법이 있을 겁니다.”
노인은 여전히 완강했다.
“미련한 녀석. 어째서 깨우치지 못하는 것이냐. 쯧쯧.”
“하지만.. 어르신!”
둘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우형사는 말 없이 걷기 시작했다. 천호는 노인과 우형사를 번갈아 보다 이를 갈며 우형사의 뒤를 따랐다.
“잠깐만요. 형사님!”
천호의 부름에 살짝 보폭이 좁아진 우형사가 말했다.
“천호씨가 말한 것들이 사실인 것 같아요.”
“....”
“왠지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네요. 빨리 이동하면서 불을 붙여야겠어요.”
우형사는 무성히 자란 풀과 나무에 불을 붙이며 걷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느릿하게 번져가는 불길을 보며 천호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
거기에는 세 구의 잘려진 장승과 한 구의 멀쩡한 장승만이 있을 뿐이었다. 천호는 이를 악물며 우형사의 뒤를 따랐다. 그리곤 불이 붙지 않은 곳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붙는 불을 보며 우형사는 이상함을 느끼며 물었다.
“..어째서 연기가 나지 않는거죠?”
그 물음은 천호가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르겠어요.’ 라고 답한 그는 묵묵히 불을 붙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걸으며 첫 번째 집에 당도할 무협 천호는 다시 찾아오는 불안감에 격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 반응에 우형사는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하고는 천호에게 물러나라고 한 뒤 집안으로 들어갔다.
“....”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집에 우형사는 불을 붙이고 나오며 말했다.
“아무도 없어요.”
그 말에 천호는 안심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어째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그 많은 형사들을 데리고 어디로 이동한 것일까. 그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공간이 있다는 건가. 수 많은 물음을 던지며 불을 붙이며 걷고 있을 때 우형사가 멈췄다.
“왜 그래요?”
천호의 물음에 우형사는 말 없이 서있을 뿐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천호가 슬쩍 우형사 옆으로 걸어오니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커다란 동굴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바들바들. 천호는 몸이 떨려왔지만 직감적으로 모든 것의 종지부가 여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생각은 우형사도 같았다. 그는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입구를 보며 말했다.
“천호씨는 이제 돌아가요.”
“..예?”
놀란 듯 되묻는 천호에게 우형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가서 지원와준 형사들에게 상황 설명을 해줘요. 물론 미친놈 취급 받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데까지 하고 도움을 청해요.”
“형사님..”
우형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 참, 원래 이런거 안믿는데 그냥 어릴 때 듣던 괴담일로만 알았는데. 그게 진짜로 있을 수도 있네요. 아무튼 저는 천호씨보다 겁이 없으니까 빨리 돌아가서 형사들에게 내 말을 전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우형사는 동굴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차 멀어지는 불빛을 보며 천호는 차마 발을 떼지 못했다. 무서웠다. 알 수 없는 어둠이 온 몸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천호는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불빛을 떠올리며 몸을 돌렸다.
화르륵. 돌아가면서 남은 쪽의 숲에도 불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느릿하지만 확실히 불에 타는 숲들. 우형사의 말대로 특유의 연기 하나 없었다. 편하기는 했지만 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더욱 불안했다.
“....”
홀로 남겨지는 것이 이렇게까지 두려운 일이었던가. 천호는 두려움에 온 몸을 떨었지만 착실하게 걸음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런 그의 앞에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제 슬슬 정신이 드냐?”
***
낯선 공간에 홀로 남겨진 우형사는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든 곳에서 느릿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카락이 빳빳히 세워지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고 낯설어서 우형사는 얘기치 않게 긴장해야만 했다.
처음 살인 사건 현장에 갔을 때보다도 떨리는 것 같았다. 우형사는 이를 악물었다. 한 발자국씩 내딛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크..”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형사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걷고 또 걸었다.
“....”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고요하고 무언가가 온 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형사는 습관적으로 몸을 이리저리 털어내며 걷기 시작했는데 곧 어느 한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느낌이 달랐다. 어두웠지만 어느 한 곳이 넓게 뚫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형사는 조심스럽게 불을 비추며 아래를 살폈다.
“..뭐지.”
어두컴컴하지만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우형사는 찬찬히 불을 비추며 걷기 시작하다 곧 보이는 무언가에 크게 놀라 뒤로 나자빠져버렸다.
“헉!”
등쪽에서 전해지는 충격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형사는 멍한 얼굴로 있다가 이내 다급하게 불빛을 비추며 자신을 놀라게 한 물체를 향해 걸어갔다.
“!!”
거기에는 사람의 몸통이 있었는데 사지와 목이 잘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 주위로는 아직 마르지 않는 핏물들이 있었는데 오래 지나지않아 보였다. 우형사는 놀란 마음을 다잡으며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도와..줘.”
간신히 말을 뱉는 듯한 말에 우형사는 오감을 극대로 발휘해 소리가 난 곳으로 걸어갔다. 찬찬히 불빛을 비추며 걸어가니 그와 익히 안면이 있는 같은 팀의 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 반장님?!”
우형사는 얼빠진 얼굴로 반장 옆에 앉으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반장님. 괜찮으세요?”
그 말에 반장은 대답할 기력이 없는지 간신히 손을 들어 우형사의 무릎을 강하게 움켜쥐기 시작했다.
“우, 우형사.”
“예. 예 반장님.”
쿨럭.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낸 반장은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소.. 속았다. 우리 모두.. 속았..어.”
우형사는 천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이곳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상한 마을이 확실했다. 우형사는 반장의 몸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반장은 그것을 거부했다.
“우형사.. 내 말.. 끄, 끝까지 들어.”
“..반장님 지금 시간이 없어요. 이대로 있다가는 반장님 죽는단 말이에요. 말은 가서 들을테니까..”
그 말에 반장은 격하게 숨을 몰아쉬며 우형사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속았단 말이야. 우리.. 모두가! 그.. 박천호라는 새끼.. 그 새끼..!”
분노로 뒤덮인 눈동자를 보며 우형사는 불안함을 느꼈지만 애써 캐묻지 않았다.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반장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었다.
“그 새..끼. 싸, 싸이코패스야. 쿨럭. 이 마을.. 마을.. 전체가 사이비 집..단.. 집단..이야. 쿨럭.”
“....”
“주, 중요한건 이 마을이.. 하나가 쿨럭. 아니라는..거야. 이건.. 마을의 쿨럭. 일부야. 똑같은.. 마을이 또.. 또 있어.”
허억.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우형사를 보는 반장의 낯이 창백해져갔다. 우형사는 반장의 볼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반장님. 천호씨는 분명 그럴 사람이 아니..”
우형사의 말에 반장은 다른 손에서 쥐고 있던 낡은 사진을 건넸다. 얼결에 사진을 받아든 우형사는 핏물에 더럽혀진 사진을 손으로 닦아 내고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뭐, 뭐에요? 이게?”
“싸, 쌍둥이.. 그 새끼들.. 쌍둥.. 쿨럭. 이야. 환각.. 환각제를 사용, 해서.. 우리를..”
“반장님. 반장님!”
“조.. 조심해. 자네도 쿨럭. 이미 중, 중독 되었을 수도 있..”
그 뒤로 반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우형사는 힘 없이 바닥에 누워버린 반장을 보고는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
사진 속. 박천호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순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한 명은 조금은 날렵해 보이는, 사나운 눈매를 갖고 있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판박이라고 할 정도로 똑같았기 때문에 어느 기준을 두고 다른 사람인지를 구별해낼 수가 없었다. 순간 우형사는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에 휩싸였다. 부들거리는 주먹을 간신히 다잡으며 격한 숨을 몰아쉬기를 수차례.
조금 안정됨을 느낀 우형사는 마지막 천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완벽했다. 자신을 이렇게까지 속일 수 있는 인간이 있단 말인가? 우형사는 자신의 실책을 뼈저리게 느꼈다.
“..박천호 이 개새끼.”
그렇게 중얼거린 우형사는 품 속에서 권총을 꺼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이 깔려 왔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에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다.
“허억.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동굴 밖으로 나온 우형사는 어느새 가라 앉은 숲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개자식! 빌어먹을 새끼!”
곧 그는 망설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이미 그의 온몸에는 불이 붙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뜨겁고 거대한 화염이 자신의 몸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킥킥..”
이젠 불덩이로 변해버린 시체를 보며 박천호와 박천수는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천수는 천호에게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이번 약은 좀 쎘지? 어때 정신이 들어?”
“이번엔 좀 힘들었어.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서 말이야. 아까 토할 때 조금 정신이 들었다.”
“역시 저 장승들인가?”
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고 아니, 그 빌어먹을 식당에도 나타나더라니까.”
천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두동강이 나버린 장승들을 보며 말했다.
“신기한 일이야. 이방인들에게 저 장승들이 노인으로 보인다는 것이.”
“아무래도 약 때문인거 같다. 아까 뱉어내느라 힘들었다고.”
천호는 물로 입을 헹군 뒤 말했다.
“또 올거야. 아줌마는 다시 그 식당에 대기시켜 놨지?”
“걱정마. 이번엔 좀 더 강한 약을 대기시켜 놨으니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두 형제 앞으로 노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손과 입에는 붉게 칠해진 피가 즐비했는데 그게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중 선두에 선 노인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만찬이었다.”
천수 역시 작게 미소로 답했다.
“또 온다고 합니다. 준비하세요.”
그 말에 노인들은 환호를 지르며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천수 역시 빠르게 사라졌고, 홀로 남은 천호는 목을 몇 번 가다듬더니 곧 순진한 얼굴로 돌아왔다. 천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시 알약을 그에게 내밀었고 그걸 미련 없이 삼킨 천호의 눈동자가 선하게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우우웅- 우웅-
그리고 그의 근처로 스타렉스 차량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호는 자신 앞에 하나 둘씩 세워지는 차량들을 보며 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
“도,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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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작 [녹색도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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