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찍습니다.”
항상 카메라 앞에 서면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다. 까만 렌즈를 바라보면 절로 근육들이 굳기라도 하는건가? 찰칵- 곧 셔터를 누른 사진관 주인은 방금 찍힌 사진을 한 번 확인하고는 말했다.
“다시 한 번 갈게요. 이번엔 좀 밝게 웃어볼까요?”
그 요청에 우린 무장해제라도 된 듯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보인다. 언제였을까. 순수한 미소를 지었던 적이 내게 과연 있었을까.
찰칵-
마지막 촬영 컷을 마친 우리 가족들은 말 없이 계산을 하곤 사진관에서 나왔다.
**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평범해 보일 가족이지만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바로 입양해 온 동생이 그것인데 20살때까진 평범히 자라는가 싶더니 어느날 친구들과 놀러오는 길에 사고를 당해 그대로 식물인간으로 변해버린 동생은 우리 가족들에게 짐이나 다름 없었다.
물론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동생 녀석 때문에 달달이 나가는 돈만해도 상당하다. 그래도 돈으로 빈곤하지 않았던 우리의 생활이 동생으로 인해 점차 무너지고 있는걸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부아가 치밀곤 한다.
“이제 동생 그만 놔줘요.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거에요.”
그게 참다참다 뱉은 나의 유일한 발언권이었다. 허나 부모님은 내 의견을 무시했다. 만약 네가 같은 상황이었다고 생각해바라. 그럼 서운하지 않겠냐. 쟤도 저렇게 되고 싶어서 된게 아니잖느냐.
라는 말로 오히려 나를 타박하곤 했다.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저 녀석은 우리의 친 혈육이 아니다. 왜 저런 놈에게 정을 베풀어야 하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8살 때 우리집에 입양온 동생은 착한편이었다. 아니, 순진하다 못해 병신 같았다. 그 모습이 보기가 싫어 괴롭히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헤헤.’ 라고 웃을 뿐 이렇다할 반항 한 번 한적이 없다.
그게 더 답답했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을터인데 자기의 주장이 있을 것인데 그걸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녀석이었다. 부처라고 해야하나.. 도가 텄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동생이란 존재는 내게 감추고 싶은 약점 같은 거였다.
집안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동생이 그렇게 되고 난후 잘 나가던 사업도 휘청이기 시작했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도 일어났다. 여러 가지로 악재가 겹치는 가운데 나날이 늘어가는 것은 시름 뿐이었다.
“가족사진이나 찍을까.”
어느 날.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우리 집안 꼴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분위기 전환이 필요해 보여서 그런 것이었나. 사진관으로 향하는 내내 우린 말이 없었다. 그동안 사적인 대화를 별로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식으로 밀폐된 자동차 공간에 있노라면 그게 꽤나 버겁다.
괜시리 스마트폰 액정을 쳐다보며 목적지까지 다다르기만을 기다리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행복 사진관]
사진관 앞에 멈춘 우리들은 가게 간판 앞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들을 보았다. 저마다 같은 표정.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들을 보니 우리 가족들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 저들 모두가 우리와 같은 처지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타 사진관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해 보이는 구조의 사진관이었다. 내부는 그리 크지도 않았고 구석 여기저기에 컨셉샷을 찍을 수 있도록 따로 만든 공간이 있었다.
“어서오세요.”
사진관의 사장은 영업적인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았다.
“가족사진 좀 찍으려고 하는데.”
아버지의 말에 사장은 ‘이쪽으로 오시죠.’ 라고 안내했다. 적당한 테이블에 앉은 우리들은 추천하는 자세와 복장 그리고 표정까지도 사장에게 지도를 받았다. 사진 하나 찍는데에도 이런 공을 들여야 한다니..
“아, 다른 아들도 있는데요. 그게 좀 몸이 불편한데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역시나 그 말이 왜 나오지 않나 했다.
“그럼요. 여기로 데리고만 오시면 가능합니다.”
“그게.. 저 식물인간이라.”
그 말에 사장은 당황한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었는지 곧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죠. 아드님의 정면 사진을 찍어 오시면 제가 합성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린 표면적인 가족 사진을 찍었다. 며칠 후 사진이 완료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꽤 커다란 액자를 주문했기 때문에 직접 찾으러 가기로 했다. 사진관에 들어서니 전과는 다른 분위기에 난 발을 멈춰야했다.
“....”
냉랭하다 못해 찬 분위기. 햇빛이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가게 내부가 상당히 어두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서오세요.”
나를 보며 반기는 사장에게 간단히 목례를 하고 완료된 사진 액자를 받는 순간.
“응?”
온통 까만색으로 뒤덮여 있는 사장 손에 난 눈을 몇 번이나 깜빡여야 했다. 원래 이런 색이었나. 혹시 장갑을 끼고 있는건 아닐까. 하며 사장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니.
“혹시 보이십니까?”
“예..?”
“이 손.”
쫙 핀 손을 내게 내미는 사장을 보며 난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사람과 같은 손 모양이지만 그 색은 재보다 더 검은 색이었고 손바닥 가장 안쪽에는 수 많은 돌기들로 가득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누, 누구야. 당신 누구야.”
더듬거리며 간신히 이은 내 말에 사장은 킬킬댔다.
“참으로 오랜만이군요. 이 손을 볼 수 있는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사장은 조심스레 액자를 바닥에 내려 놓고는 전에 상담했었던 테이블로 손짓했다. 왠지 이대로 나가버리면 무슨 일을 당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에 순순히 사장의 지시를 따랐다.
“자아.”
그 때와 같은 위치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난 사람이 아닌 악마와 마주하고 있는 꼴이니까.
“당신의 고민이 그래.. 아픈 동생 때문이군요. 흐음.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 방법이 좋겠군요. 아, 하지만 이건 좀 리스크가 있는데. 음.. 그래도 하실건지? 아마 하겠죠. 당신은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니까.”
중얼거리듯이 말한 사장은 곧 작업실 한켠에서 평범해 보이는 카메라를 들고 왔다. 애초에 내 의견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사장은 입을 열었다.
“여기 이 버튼을 누르고 셔터를 누르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당신의 동생 몸과 바꿔치울 누군가를 구해 이 사진으로 찍기만 하면 됩니다. 단, 전신이 온전히 나와야하는 사진이어야 합니다. 얼굴은 굳이 나올 필요까진 없어요. 그건 알아서 잘 처리될거니까.”
그 말과 함께 내미는 카메라를 얼결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얼토당토 않는 말을 믿어야 하나 의심하려는 찰나 내 앞에서 손을 흔들며 연신 설명을 해대는 사장을 보니 그것마저도 사라져버렸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다 이해하셨나요? 당신은 이제 동생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안하면? 내가 그대로 냅두면요?”
“그럼 그냥 끝나는거죠. 동생은 영원히 저런 상태로 고통 받으며 살아갈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억지로 떠밀 듯이 배웅해주는 사장을 뒤로 한 채 가게를 나섰다. 한 손에는 커다란 액자와 다른 한 손에는 평범해 보이는 카메라.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
악마와 거래를 했다는 말을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그야 뻔했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내 손에 의해 동생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건 분명 큰 일임은 분명했다.
“....”
휴일. 동생의 병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용한 병실 개인실에 안치된 동생의 모습은 목각인형과 진배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카메라 셔터에 손이 가는 것은 왜일까.
“너 살고 싶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동생에게 그렇게 말했다. 삐. 삐. 동생 옆에서 작동되고 있는 미세한 기계음이 귀에 거슬렸다. 동생은 그저 숨만 쉴 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멍청한 모습은 여전하군.
다시 병원에서 나와 사람을 물색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과 몸이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곤 지하철 역으로 가 커다란 거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카메라엔 타이머 설정을 해둔 후 걸어가는 사람들 중 아무나 걸리길 바라며 카메라를 땅에 두려는 순간.
“아, 죄송합니다.”
순간 몸이 기울어짐과 동시에 카메라가 땅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데구르르 굴러가는 카메라를 보며 주어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나를 넘어트린 사람이 누구인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안돼. 안돼!”
손을 뻗어 카메라를 잡으려 하지만 야속하리만큼 굴러가는 카메라를 잡을 순 없었다. 이대로 놓쳤다가는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에 호흡을 가다듬고 서둘러 카메라를 잡으려는 순간.
찰칵-
그 소리는 내 몸을 굳게 만들었다. 불길한 마음에 카메라 렌즈가 향한 곳을 바라보니 커다란 거울에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서있는 나와 나를 넘어뜨린 한 사람이 서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몸은 팔만 나와 있는 상태여서 완벽히 찍힌 사람은 나라고 봐도 무방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다치진 않으셨어요?”
많이 당황했는지 쩔쩔매는 그 사람을 보며 어떠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혹시 다시 찍으면 없었던 일이 되진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카메라를 주으려는 순간.
“제길..”
귀신 같이 사라져 있는 카메라. 마지막 카메라가 놓여진 자리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끝 없는 허망함이 몰려왔다.
**
다음 날. 예상외로 몸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 그 사장이 나를 놀리려고 한게 아니었나 하고 가게로 가니.
“....”
원래 이런 곳이었나 싶을 정도로 폐허로 변해버린 터 하나를 볼 수 있었다. 작은 쓰나미라도 가게를 휘젓고 간 듯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여기저기 엉켜 있었고, 회색의 얇은 먼지 입자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정말 놀아난건가..”
하고 집으로 향하는 순간 눈 앞이 깜깜해졌다. 순간 띵- 하는 소리가 들리며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뜨니 낯선 공간이 눈에 보였다. 백색의 천장 적당히 몸을 감싸고 있는 이 이물감.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려는 순간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끼며 당황해야만 했다.
소리를 내어 그 괴로움을 풀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팔 다리를 뻗어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빌어먹을 상황에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사람이 걸어오는게 들렸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온 그 사람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형. 고마워. 얘기 다 들었어.”
그건 내 얼굴을 하고 있는 동생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전에 보았던 사장. 아니, 악마가 나를 보며 킬킬대고 있는게 보였다.
//
출판작 [녹색도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