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08월 10일. 한 세입자가 이사 온 날이다. 여지껏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고 그 사람들과 작은 언쟁을 하며 살아왔기에 이들 특징 하나하나를 잘 기억하진 못한다. 하지만 그 날 이사를 온 세입자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60대로 보일까 말까 하는 초라한 행색에 연약한 사지를 가진 전형적인 중년의 여인이었다. 액면상으로는 나이가 꽤 들어 보여서 ‘할머니’ 라고 말 실수한 적도 있었다. 중년의 여인. 박 아주머니는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왜 그런가하고 물어볼까 하다 괜히 남의 개인사에 참견해서 득 될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캐묻지 않기로 했다. 내게 있어 최고의 세입자는 아무 말썽없이 세만 꼬박꼬박 밀리지 않고 내면 된다. 그 집에서 뭘 하던지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다.
박 아주머니는 항상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생활하는 것 같았다. 가까운 거리를 나갈 때나 베란다 쪽에서 무슨 일을 할 때에도 항상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모습이 보였었다. 저 선글라스 너머로는 어떤 눈이 있을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백안이 있을까. 아니면 사고로 인해 잃어버려 깊게 패인 눈살만 있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보여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사람의 치부를 건드리는 것은 내 전문도 아니거니와 괜히 이런저런 얘기르 관계가 가까워지면 여러 가지로 골치가 아파진다.
세를 밀리게 낸다는 등. 친한 사이에 이정도는 봐달라는 등. 친해지는 순간 행동거지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난 일정 거리 이상 관계를 좁히지 않으려 한다.
“음. 음~”
난 특별히 일을 하지 않았다. 세로 들어오는 돈이 제법 되기 때문에 크게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나 혼자 먹고 살정도의 돈은 항상 들어오는 편이었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사회와 나는 영 죽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이젠 돌아가셨지만 내게 이런 부를 남겨준 부모님에게 오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밖으로 나가는 순간 박 아주머니 역시 나오는게 보였다. 우리 집은 세를 준 빌라 바로 맞은편이어서 조금만 고개를 뻗고 밖을 보면 세입자들의 행동을 대강 알 수 있다.
“이제 나가나?”
오후 1시. 박 아주머니는 조심스레 골목길로 걸어나왔다. 그리곤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데 그게 조금 이상했다. 맹인이라면 비단 하나씩은 있어야 할 막대기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안내견은 내가 반대할거니까 불가능하겠지만서도..
박 아주머니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나 그것도 잠시 일정 거리이상 걸어가던 박 아주머니는 돌연 재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저렇게 막힘없이 걸어가는 것으로 보아 분명 멀쩡한 눈을 갖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그럼 왜 항상 맹인 흉내를 낸 것이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난 그대로 밖으로 내달려가 박 아주머니가 사라진 곳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항상 다니던 골목길이지만 누군가를 찾기 위해 이동한다는 것은 흔치 않는 일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어렵고 낯설었다.
“에이씨. 놓쳤나.”
작게 투덜거리며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오른쪽 어두운 골목길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거리기도 하고 부스럭거리기는 것 같은 소리였다. 지나칠 수 있다면 지나갔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열어놔야 했기 때문에 거기로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걸음을 떼자 들려오는 소리가 더욱 커졌고, 곧 모습을 드러낸 익숙한 인영이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담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그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니 작은 종기 그릇 같은 것에 사료를 옮겨 담고 있는 것이 보였다.
“....”
박 아주머니는 고양이들을 봐주고 있던 것이었나. 왜 고양이라고 생각했냐면 이 동네에 도둑고양이나 들고양이들로 드글거리기 때문이다.
“애들이 배고플거야. 암 그렇고 말고.”
그 덕에 항상 발정기가 되면 동네에 고양이들의 소음소리로 가득해져 잠을 잘 수 없게 되어버리는데 이게 상당히 스트레스다. 그렇게 방송이나 주민들 회의때 고양이들 돌봐주지 말라고 말했거늘.. 대체 사람들은 왜 모두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걸까. 자신의 행동이 지금 다른 누군가에겐 피해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걸까.
“아줌마.”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나직이. 하지만 강직하게 박 아주머니를 부르자 화들짝 놀란 박 아주머니가 슬슬 고개를 돌렸다.
“누, 누구세요?”
“제가 누군진 알필요 없고요. 지금 뭐하시는거에요?”
내 말에 박 아주머니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사료를 양손으로 쥐었다.
“지금 뭐하시는거냐구요.”
그 답답함이 마음 속에서 천불을 끓어오르게 하는데 충분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자신의 생각만을 하는건지 원..
“어서 그거 줘요.”
보일리 없겠지만 박 아주머니를 향해 손을 뻗자 박 아주머니는 말 없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잔뜩 움츠린 어깨로 어두운 골목길오 몸을 맡기는 박 아주머니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이 아줌마가 진짜.”
더 이상 두고 볼수 없었다. 단숨에 박 아주머니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샤악.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손목을 긁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픈 것 아니었으나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고개를 돌려 이 더러운 기분을 선사해준 무언가를 찾아 눈알을 돌리니 박 아주머니 옆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보였다.
아직 다 자라지 못했는지 조금 작아 보이는 듯한 검은 고양이었다. 그 고양이는 내 행동거지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몸을 낮게 말며 나직이 그르렁대고 있었다.
“하. 참나.. 이 고양이 새끼가 진짜.”
“하지마. 하지마요! 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안할게..”
박 아주머니가 다급히 외치며 내 앞을 막아섰다. 어둠 속에서도 내 위치를 정확히 알고 휘두르려는 손목까지도 정확히 잡아낸 박 아주머니. 과연 눈이 먼게 맞을까?
“아줌마. 정말 눈 안보이는거 맞아요?”
박 아주머니는 움찔거릴뿐이었다. 조심스레 다시 뒤로 물러난 박아주머니. 그와 동시에 고양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분을 풀어야 할 대상이 없어져서 인지 없어져야 할 천불이 그대로 마음을 잠식했다. 여지껏 내가 원하는 대로 해왔고 살아왔다. 이런 식으로 일이 안풀리면 어떻게 해서든지 짜증을 풀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아니, 근데 이 아줌마가 진짜. 눈 보이는거 아니야?”
전부터 보고 싶었던 선글라스 너머의 눈. 그거면 내 짜증이 조금은 풀릴 것 같았다. 힘 없이 뒷걸음질치는 박 아주머니의 양손을 강하게 잡자 박 아주머니는 도리질을 쳤다.
“아줌마. 그냥 선글라스 하나만 벗어주면 돼. 그럼 내가 그냥 갈게요.”
“안돼.. 안돼.”
“에이. 기분썼다. 아줌마 그 선글라스 벗으면 이번달 세 70프로만 받을게요. 됐죠?”
내 말에 박 아주머니는 떨림을 멈추고는 천천히 되물었다.
“혹시.. 00총각인가?”
“예. 맞긴 맞는데 오늘은 아주머니가 잘못한거에요. 이러면 동네 사람들이 다 싫어한다구요.”
“00총각..”
박 아주머니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게 한국어인지 외국어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곧 고개를 든 박 아주머니가 말했다.
“착하게 살어.. 부모가 남겨준거 지키는 것도 힘들것인디.. 왜 다른 생물들을 괴롭히고 그래. 이젠 받아들여야지..”
순간이지만 약간 달라진 분위기와 말투에 전신에 스파크가 일어나는 듯 했다.
“아줌마가 뭔데요. 나 알어? 우리 부모님 아냐고.”
“..부모의 덕을 허투루 쓰지 마. 정말 후회할거야.”
그렇게 말하며 지나쳐가는 박 아주머니에게 터질 듯한 감정이 일어난 것은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뻗어지는 손. 그리고 낚아채듯 선글라스를 가져가자 박 아주머니는 모든 것을 잃기라도 한 듯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며 아웅거렸다.
“안돼..”
“그러니까 왜. 사람 심기를 건드립니까?”
박 아주머니의 선글라스를 주머니에 넣고서 골목길을 나오려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강렬한 소리에 몸이 절로 굳어졌다.
크르르르.
그건 한낱 고양이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거대한 맹수? 아니다. 뭔가 이상한 생명체가 격하게 숨을 고르는 듯한 소리와 비슷해 보였다. 단 한번의 소리로 빳빳해진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무언가에 당할 것만 같아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뒤를 돌아보니.
“!!”
거대한 그림자. 짙은 어둠이 온 골목과 건물들을 잠식한 상태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확히 ‘눈’ 이라고 부를 만한게 보이지 않았지만 저 거대한 어둠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강렬했고 깊었다. 아아. 절로 풀려버리는 다리 때문에 앞으로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차가운 바닥의 감촉이 전신을 타고 전해지는게 느껴진다.
크르르.
온 몸이 마비가 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런거지?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야? 헛거라도 듣는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할 때, 손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잇.”
선글라스다. 이젠 손에서 완전히 빠져버린 선글라스. 그와 동시에 작은 발자국 소리가 점차 멀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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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작 [녹색도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