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은 괴로웠다. 친구가 하는 사업에 투자했다가 2억이란 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내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알게 된다면 분명 이혼 이야기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은지 말을 들었어야 했나...”
아내는 친구 말을 믿지 말라고 했다. 늘 그랬듯 이수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투자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녀석의 전화 한통에 마음이 바뀌었다. 사람에게는 기회가 세 번 오는데 지금이 그 기회란다. 2억이 6억 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추천을 해준다는 말에 마음이 쏠렸다. 기회를 놓치는 바보가 되기 싫었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처가에서 월세를 벗어나 작은 집이라도 얻으라고 준 돈이 아니던가? 집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속이 타들어 갔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가 짐을 싸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서둘러 들어갔다.집에는 장인과 장모, 처남 둘도 함께 짐을 싸고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이수철은 식은땀이 났다.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 버렸다. 모두가 아무 말도 없이 경멸의 눈으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집을 나가자, 차례대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장인이 나갔는데, 나가기 전에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이혼서류였다. 이수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제야 자신에게 큰 일이 났다는 걸 실감했다. 뒤늦게 맨발로 아내를 잡아보려고 나갔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멀리 떠났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젠장...”
억울했다. 녀석이 돈을 갖고 도망갈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되돌리고 싶었다. 2억을 빌려서라도 집나간 아내를 안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전화했다.
“이걸 어쩌냐... 갑자기 큰돈이 들어갈 일이 있어서 말이야. 유감스럽다?”
어떻게 전화 거는 녀석들 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거절을 하나? 술자리에서는 돈 많다며 능력을 과시하던 녀석들이었는데 말이다. 냉정하고 더러운 현실을 깨닫자 세상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전화를 받지 않았던 김요한이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런 이유로 전화한 거야? 나도 중도금을 내야해서 힘드네... 안타깝다. 그런데 친구야, 이런 복잡한 일일수록 급하게 처리하면 탈난다? 머리 좀 식혀. 내가 복잡한 생각이 들 때마다 가는 곳이 있는데, 거기 아주 괜찮아. 내가 돈은 못 빌려줘도 좋은 곳 알려준다.”
머리를 식힐 기분이 아니라고 했지만, 자신을 위한다는 친구의 말에 이수철은 어느덧 배를 타고 ‘요아도(妖蛾島)’란 곳에 가고 있었다. 그곳은 남해 근처에 있는 섬으로 처음 들어본 지명이었다.
이수철은 요아도에 가는 내내 스스로의 문제를 되짚었다. 아니, 제멋대로 떠올랐다고 해야 되나? 타임머신을 탄 듯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오갔다. 과거의 여행이 썩 좋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팔랑귀 새끼...”
텅텅 빈 여객선인 것이 다행이지, 그의 언행은 실례였다.
이수철은 과거가 후회됐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만화가가 꿈이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일찍 접었다. 문과 체질이지만 이과를 간 이유도 부모의 선택이었다. 이후에도 이수철의 인생은 늘 타인의 의견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최고라며 선배들의 추천에 마음에도 없는 공시생이 되었고, 남들에게 꿀리지 않아야 한다는 회사 동료의 말에 관심도 없는 비싼 외제차를 사기도 했다. 모두들 자신을 위해서 하는 조언이라고 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나서 보니, 단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후회의 연속이었다. 끝까지 인생을 책임져줄 부모는 죽었다. 공무원도 되지 못 했다. 작은 회사에 다니며 박봉으로 할부금을 갚을 여력이 안 돼서 차를 되팔았다. 누구하나 ‘너를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책임져주는 이 하나 없었다. 매우 바보스런 지난날이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하기로 마음먹을 때 즈음, 배가 요아도에 정박했다. 서둘러서 짐을 챙겨 내렸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반갑게 맞이했다. 예약한 숙소의 주인장이었다.
“김요한씨의 친구 분이지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랐다. 섬이지만 조금만 오르면 근사한 자연숲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푸른 녹음이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뒤를 돌아보면 금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 김요한의 말을 듣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숙소가 장관이었다. 숲과 바다의 조화가 어우러진 한옥, 근사하지 않은가? 상쾌한 기분이 드는 이수철이었다.
웬 노파가 이수철을 향해 달려왔다. 노인이지만 아주 빨랐다. 모습이 매우 기이하고 무서웠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아무렇게 뻗쳐있었고, 등이 심하게 굽어 있었다. 노파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수철을 훑어봤다. 그리곤 거무튀튀한 부채를 이수철의 얼굴에 들이밀며 쏘아댔다.
“당장 돌아가라, 여기 볼 거 없다. 사람도 몇 명 안 사는 섬에 뭐 할라고 왔는데?”
주인장은 난감해했다. 이수철 역시 노파의 등장에 황당했다.
“저희 어머니입니다. 조금 편찮으십니다. 이해해주이소.”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노파의 행동은 인내심을 시험했다. 매일같이 이수철에게 섬을 떠나라고 했다. 겉으로는 미소를 짓는 그였지만, 더 이상 남의 말에 휘둘리기 싫었다.
노파는 거무튀튀한 부채로 벌레 같은 걸 매일같이 때려잡아댔다. 특히 밤만 되면 손가락만한 나방들이 출현했는데, 그것들에게는 자비가 없었다.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끔 내려쳤다. 그것들은 ‘삐루루룩’같은 요란한 울음소리를 냈는데, 사정없이 전등에 몸을 들이박았다.
“불나방이다 아이가? 이것들한테 물리면 큰 일 난데이? 조심하그라.”
이수철은 코웃음을 쳤다. 나방 따위에 겁먹을 만큼 나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이 편찮은 노인네 말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주인장 역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이곳 나방이 다른 지역의 나방보다 좀 더 클 뿐이라며 이수철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날 밤, 일이 벌어졌다. 불나방이 자고 있던 이수철의 팔을 물어버렸다. 뱀에게 물린 것처럼 쓰리고 아팠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불나방이 허공 위를 느리게 날았다.
‘삐루루룩... 삐루루룩...’
괘씸한 마음에 책으로 그것을 강하게 내려쳤다. 두툼한 그것이 ‘퍽’하고 터졌다. 책을 들어보니 붉은 핏자국과 반짝이는 연보라색 가루가 묻어 있었고, 납작해진 나방의 사체에서 새까만 분비물이 나왔다. 혐오스러웠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부어오른 팔에 통증이 심해졌다. 당장 주인장을 부르려는 이수철이지만 현기증과 함께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
이수철이 눈을 떴을 때, 훤한 대낮이었다. 평소와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컨디션이 좋았다. 팔에 난 상처도 말끔히 아물었다. 무엇보다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요동쳤다. 당장 돌아가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섬에 있을 이유가 없기에 짐을 싸고 숙소를 나왔다. 그런데 돌아가라던 노파가 막아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네, 불나방한테 물렸제? 맞제? 그기한테 물리면 큰일난다. 내가 고쳐 줄 테니...”
노파의 말을 무시하며 지나쳤다.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배를 탔다. 노파는 온 힘을 다해 이수철을 잡으려고 했지만 주인장이 말리는 바람에 그러지 못 했다.
자신을 위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호구로 본 인간들을 만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했다. 결과적으로 득을 본건 그들이었고 자신의 실패가 그들의 기쁨이었다고 생각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37년의 인생이 누군가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에 어떤 식으로든 갚아주고 싶었다.
비싼 술을 사겠다니까 많은 이들이 나왔다. 그 중에는 다른 진로는 꿈도 꾸지 말라며 공무원이 되라던 선배와 외제차를 권유한 녀석도 왔다. 그리고 친구에게 돈을 투자하라며 바람을 넣은 녀석들도 염치없이 왔다. 그들은 호의를 베푸는 것 마냥 건방진 어투로 이수철을 대했다. 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그들이 자신을 호구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 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이수철의 이혼 이야기부터 꺼냈다. 남자가 큰일을 하다보면 실수 할 수도 있는데 아내교육을 똑바로 못 시켰느니, 처가를 엎어버리고 다시 데려오라는 둥 남의 가정사에 왈가왈부 했다. 이수철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모두 자신을 망치는 말들이었다. 이수철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상대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말이 심하잖아, 자기들 일 아니라고 그따위로 말해?”
이수철이 눈을 부라렸다. 그런 모습이 처음이어서 의아했지만 딱히 놀랍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중 친구에게 돈을 투자하라며 바람을 넣은 녀석이 빙긋이 웃어댔다.
“우리가 누굴 위해서 이러겠냐... 다 너를 위해서야, 이 친구야... 고마운 줄 알어.”
이수철의 관자놀이가 ‘파르르르’ 떨렸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였을까? 눈에 핏줄이 터졌다. 순식간에 안구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 했다. 앉아보라며 오히려 훈계하려 했다.그것이 곧 비극이었다.
이수철은 미쳐버린 듯 고함을 지르며 술병을 들었다. 순식간에 한 명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리고 다른 한 병을 들어 또 내려쳤다.
“나를 위한 거라고? 삐루루룩... 나를 위한 거라고? 삐루루룩...?”
이수철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웃어댔다. 그를 말리려고 사람들이 다가갔다. 하지만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수철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좀비 그 자체였다. ‘삐루루룩’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람들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너도 나도 탈출하려고 문손잡이를 잡았다.
“삐루루룩, 삐루루룩, 삐루루룩, 삐루루룩...”
이수철이 멈춰 서서 오류 난 컴퓨터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기괴한 모습에 넋을 잃었다. 이수철의 몸이 더욱 세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빠지지직’하는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등 뒤로 거대한 곤충의 날개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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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많은 수의 경찰들이 무장을 하고 청담동에 위치한 룸살롱으로 출동했다. 신고 된 내용대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하지만 살인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의문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훼손 되 시신이 동물에게 물린 것처럼 살점이 뜯겨 있었다.
“삐루루룩... 삐루루룩... 삐루루룩...”
모두가 총알을 장전하고 소리가 나는 방문을 재빨리 열었다. 모두가 경악했다. 거대한 나방 하나가 LED조명에 몸을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나방 끝
안녕하세요, 여러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작은 이벤트를 진행 하려고 하는데요.
현재, 온라인 서점에서 성황리에 팔리고 있는 인기...작이 되고 싶은 ㅠㅠ
<문화류씨공포괴담집 전권>을 여러분께 드리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총 네분께만 드릴 예정인데요.
출판물 두분, 오디오북 두분 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출판물은 아시다시피 '친필 싸인'이 들어간 책이며
오디오북은 왓섭님께서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팟빵(팟캐스트) 플랫폼입니다.
작은 성의지만 드리고 싶었습니다...
(배송비 없으니 걱정마셔요.)
이벤트는 퀴즈입니다.
많이 어렵습니다. 원망하지 마셔요. ㅠㅠ
※ 다음 중 문화류씨(백도씨끓는물)가
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인 원일이가 나오지 않는 작품은?
① 두려움을 먹는 귀신 ② 삼방동 귀신 ③ 술귀신 ④ 여덟살의 공포 ⑤ 회색인간
2019.07.20일부터 2019.07.28일까지 답을 달아주셔요.
정답을 적어주신 분들 중 무작위로 추첨하겠습니다.
많이 참여 안 하실 것 같지만
그래도 공정을 위해서 「네이버 사다리」를 이용한 과정을 오픈하라고 하면 하겠습니다!
결과 발표는 2019.07.30 화요일 중으로 다음 이야기와 함께 올리겠습니다!
태풍으로 비가 많이 옵니다.
모두 비 피해 없으시길 바라며, 행복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