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뱃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속설 중에
임산부가 배에 타고 바다에 나가면 안된다는 것이 있었다.
당시에도 미신이라는 생각은 있었으나,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이 물 속에서 임산부가 물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느끼면
깨끗하지 못하다고 여기고 화를 내면서
큰 비바람을 불러 일으켜서 배를 빠뜨리려 한다는 생각을 믿는 사람은 많았다.
그래서 항해하는 도중에 위험한 바람과 파도를 맞이 하게 되면,
뱃사람들은 타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임산부가 없는지 확인하곤 했고,
만약 임산부가 발견되면 다른 사람들을 살게 하기 위해서 배에서 뛰어 내리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식을 갖춘 선비들은 이러한 행동에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는 겁에 질린 사람들은 모두 한 뜻으로
임산부를 탓하며 몰아 붙이기 마련이었고,
그러다보면 배에 탄 임산부는 몰린 끝에 물에 뛰어 들어 익사하곤 했다.
간혹 임산부가 없을 때에는 겁에 질린 사람들이 배를 탄 여자를
아무나 임신했다고 몰아 붙여서 바다에 내던져 버리는 일도 있었다.
세종대왕은 다섯번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운명에 대해 신분을 숨기고 점을 보게 하였다.
점쟁이는 점을 치는 대상이 광평대군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점을 쳤는데,
그 결과 "이 사람은 젊은나이에 못 먹어서 굶어 죽을 운명"이라고 예언하였다.
세종대왕은 얼토당토 않은 예언이라고 생각했다.
세종대왕은 "임금의 아들이 어찌 굶어 죽겠는가?" 라고 하면서
역시 점을 치는 것은 미신일 뿐이라고 웃었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광평대군에게 사고 팔 수 없이
영원히 유지되는 땅에 대한 권리를 내려서 결코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해 주었다.
1444년. 20세의 광평대군은 어느날 밥을 먹다가 생선가시가 목에 걸리게 되는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이 가시를 뽑을 수가 없었다.
결국 광평대군은 목에 걸린 가시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굶어 죽었다.
한편. 조선 건국초에는 복진(卜眞)이라는 사람이 여러가지 주술을 쓰는데 능했다.
복진이 스스로 점을 쳐보니, 자신이 죽을 날짜를 알게 되었고,
또 점을 쳐 보니, 자신의 목숨은 임금에게 달려 있다는 점괘가 나왔다.
복진은 임금에게 찾아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사정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궁궐 속으로 들어가 임금이 있는 곳 까지 갈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복진은 둔갑술을 여러가지로 연구하고 연습해서
마침내 몸을 숨기고 궁궐 속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복진은 열심히 몸을 숨기는 방법을 연습해서 자신이 죽을 날짜가 다 와서야 겨우 몰래
궁궐 속으로 숨어 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복진은 몰래 임금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임금에게 목숨이 달려 있음을 말하고 도움을 구하려고 했다.
그런데, 임금은 복진을 보자 깜짝 놀라더니,
"몸을 숨기고 궁궐을 침범해 깊은 곳까지 들어 왔으니, 죄가 무겁고, 참으로 위험하다."
라고 하고는, 궁궐 속에 몰래 침범한 죄로 복진을 붙잡아 그 날로 사형시켜 버렸다.
평생을 살면서 본 가장 이상한 것 두 가지를 듣고 기록에 남겨 놓았다.
그 첫번째 이야기는, 남해에서 본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노인은 젊은 시절 어떤 사람이 남해 해변에서 죽는 모습을 보았다.
이 사람은 이상한 병을 앓고 있었는데,
시체를 치워줄 사람이 없어서 바닷가에 쓰러진 모습 그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이튿날이 되어 낮이 되고 날씨가 따뜻해지자 죽은 사람의 살이 점차 썩기 시작했는데,
썩은 살이 점차로 웅크러들더니 점점 모양이 미끌거리는 이상한 작은 덩어리들로 변해 갔다.
곧 이 죽은 사람은 온몸이 수없이 많은 개구리로 변하게 되었다.
이 수많은 개구리들은 죽은 사람의 옷에서 부터 튀어나와서 팔딱팔딱 뛰더니 점차 바다를 향해 갔다.
개구리들은 모두 바다에 뛰어들었는데,
물속에 들어가자 다리를 몸속에 집어 넣고 꽁무니에서 꼬리가 돋아나는듯하더니,
모두 평범한 물고기 모양으로 변했다.
잠깐 사이에 이 물고기들은 모두 헤엄쳐서 바다 어디론가 사라져 갔고,
해변에는 죽은 사람의 텅빈 옷가지만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