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지 않다, 그렇다고 짧지도 않다. 1

hyundc 작성일 23.08.17 15:02:18 수정일 23.08.17 15: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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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생은 길지 않다.  

그렇다고 짧지도 않다.  

 

그게 문제다.

 

 

 

 

 

2.  

 

마지막 직원을 퇴근 시키고 나니 일곱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었다.  

녀석은 "사장님 다시 자리 잡으시면 꼭 다시 불러주세요" 라고 했다.

울먹 거리는 같기도 했고 말 끝단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녀석은 마지막 날인데 술이라도 한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이런 날 술까지 마시면 애써 가둬두고 막아온 감정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다음에 한잔 하자, 내가 전화 할게. 그동안 고생 했다."

애써 담담한척, 짐짓 미소까지 지으며 등을 두들겼다.  

"사장님 정말 괜찮으신 거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듯 녀석은 재차 물었다.

"괜찮아. 어여 들어가."

나는 녀석의 등을 떠밀었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쿰쿰한 어둠이 고양이처럼 조용히 다가와 내 옆에 웅크려 자리 잡았다.  

혼자 사무실 가운데 앉아 텅 비어 버린 사무실을 바라봤다.  

키워왔던 꿈과 미래는 어둠에 덮여졌다.  

 

담배를 피우려 꺼내 보니 이런 젠장 담배가 없다.  

담배가 없구나.  

담배 마저 없구나.  

담배가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제서야 온건한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흘렀다.  

크게 한숨을 쉬며 사무실 천정을 올려다 봤다.  

사무실 텍스 타일은 튼튼한가?

 

 

 

 

 

 

 

3.  

 

9시간 조금 지난 시간 난데없이 전화한 그녀는 다짜고짜 별을 보고 싶다고 했다.  

별?

밤 하늘 별?

원 별.......

1년 가까이 연락 한번 없다 불쑥 전화해서 별이라니.........  

10분 안에 우리 사무실에 나타나면 내가 생각해보지.

라고 말을 하는 순간 그녀는 회사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야? 우리 사무실 앞에서 전화 한 거였어?

 

오빠 사무실이 왜 이렇게 깜깜해? 라고 인사치레를 건넨 그녀는 빨리 별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런건 네 애인한테 보여 달라 그래야 되는 거 아냐? 기왕이면 몇 개 따 달라 그래.  

나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이 오빠 또 왜 이렇게 시니컬 해. 왜 이래 이제 같은 동지끼리.

동지? 동지는 무슨.........

내가 별을 보여주면 넌 나한테 뭘 해 줄건데? 라고 묻자.

뭐가 됐든 오빠가 원하는 거 라고 했다.  

 

뭐가 됐든?

전달된 낱말은 힘이 강했다.

그럴리 없겠지만.

상상만으로 족하게 즐거웠던 시절 이었다.

망한 회사는 망한거고 별이나 보러 갈까?  

 

그래서,

회사 카니발을 끌고 강원도로 향했다.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정한건 아니었다.  

일단 휘향찬란한 광원을 산란 해대는 서울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경부 고속도로를 타는건 아닌 것 같고.

기왕 이렇게 된거 망해가는 회사 생각을 머리 속에서 잠시라도 지우고 싶었다.  

 

양평을 지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눈이 그대로 쌓여있던 북한강변을 지났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속초까지 가는 고속도로가 놓이지 않았던 시절 이었다.  

 

날은 추웠다.  

춘천을 지난 고속도로를 달리다 이러다 속초까지 가겠다는 생각에 적당한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런데,

적당한 곳이 맞나?

 

학교처럼 장방형으로 넓게 펼쳐진 휴게소에 불빛 하나 없다.  

야외 부서진 의자와 무작위로 깨져있는 유리창이 휴게소 현재 상황을 말해주는 듯 하다.  

10시40분이 지나던 시간이었다.  

망해버려 폐허가 돼있는 휴게소를 보고 있자니 같은 처지인 회사가 떠올라 서글펐다.  

휴게소 간판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고, 넓은 주차장으로 괴괴한 어둠과 왁자지껄한 침묵이 닻을 내렸다.  

 

망한 휴게소라도 화장실 문은 열어 뒀겠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안전벨트를 해제하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오빠 화장실 가게?

그녀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마.

 

그녀는 난데 없이 제지했다.  

무슨 소리야 화장실을 가지 말라는거야?

볼멘 소리로 답했다.  

여기 깜깜하고 무섭단 말이야.  

그녀는 뾰루퉁하게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금방 다녀올게 라고 말하고 문을 열려하자 그녀 손이 느닷없이 내 샅을 향했다.  

오빠.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체 말했다.  

난데없는 행동에 당황한 나는 멍해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예고없이 자극받은 내 몸은 순식간에 팽창했다.

입으로 해줄까?

당황 스러웠다.  

평소 난잡한 음담패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에게 난사했던 사이라고는 하지만, 급진적인 그녀 행동에 사고가 기동하지 못했다.

이...이...이..입? 입? 입 뭐?

그녀는 잔뜩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내 허리띠를 파헤치려 했다.

잠깐!

나는 그녀 손을 눌러 제지했다.  

야, 나는, 내가...얘가 돌았나 왜 이래.......샤워도 하지 않고 이러는건 아닌거 같고. 그러면 찝찝하잖아. 이러면 안되지. 야 임마.

 

나는 차 밖으로 튕기듯 빠져 나와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그녀가 난데 없이 내 샅을 잡아서 당황한건 아니다.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그렇게 순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너 평소에 내 왕튼튼이가 궁금했구나? 진작 말을하지 라며 능청스럽게 반응하는게 더 어울렸다.  

윤리나 인류애를 따지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사귀고 있다는 남자 탓도 아니었다.

쟤가 사귀던 남자가 의사라고 했었나?  

알게 뭐람, 일면식도 없는 불쌍한 남자 따위 위해주고 싶은 생각도 없다.  

목덜미를 에이고 지나가는 칼바람 때문에 화장실로 종종 걸을을 쳤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낯설다.  

 

화장실은 길게 늘어선 건물 왼편 끝단에 있었다.

화장실로 가기 위해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한 아이가 화장실 앞에 서 있었다.  

너무 놀라 숨이 멎는줄 알았다.  

아이는 보름달이 쏟아내는 은은한 불빛을 받으며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했다.  

 

아저씨.

어? 나? 어...너 여기 혼자 있는거니?

 

예닐곱살은 돼 보이는 아이였다.

아이 얼굴이 달빛에 유난히 빛나 보였다.

여기 얘가 어떻게 왔지?

주차장에 내 차 외 다른 차는 보이지 않았다.  

폐허가 된 휴게소 근처 인가나 다른 가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저씨 저 안에 사람 있어요. 도와주세요.

아이는 화장실 안을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사람? 저 안에? 폐허가 된 휴게소 화장실 안에?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운 감정과 더불어 공포감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런데 넌 누구니? 누구 어른이랑 같이 왔어? 어른은 어디 계셔?

아이는 대답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여전히 화장실 안을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었다.  

공포라는 감정이 뱀처럼 다가와 온 전신을 휘감았지만 어쩔 수 없이 화장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 옆 벽면으로 위치한 스위치를 올려 봤지만 전기가 들어올리 없다.  

깨진 창문으로 달빛이 스며들어 내부 형체는 희끄무레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오른쪽 벽면으로 소변기가 설치되어 있고 왼쪽으로 네개 칸으로 만들어 졌는데 그 중 세개 칸은 문짝이 떨어져 있거나 어디론가 사라졌다.  

마지막칸 한쪽 문만 멀쩡히 달려있었고 따라 들어온 아이는 그 칸을 가르켰다.

 

아....안에 누구 계세요?

목소리가 더듬 거리고 다리가 떨렸다.  

주춤거리며 나는 한발한발 다가갔다.  

아이는 따라 들어 왔지만 여전히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저 아이가 따라 들어 온게 아니라 문 앞을 막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날임에도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똑똑 두들겼다.  

저....저기요. 안에 누구 계세요?

조금 기다려 봤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저기요......저기.

아무런 인기척이 나지 않아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얘, 너 여기서 사람 본 건 맞는거니?

아이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쪼그라들고 쪼그라 들어 팥 알만한 크기로 변한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 손가락이 천천히 화장실 칸 아래쪽을 가르켰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화장실 칸 아래 공간을 들여다 봤다.

창문을 넘어 온 달빛이 내부를 비춰 준다고 해도 여전히 어두웠다.  

 

그런데,

 

무언가 있다.  

무언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 얼굴이라는 걸 깨닭는 순간 나는 우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뒤로 튕겨 일어났다.  

화장실 내부에 몇 살인지 가늠하기 힘든 어린 아이가 누운채 아래 공간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포 때문에 일어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칸막이 안쪽 바닥에 누워 웃는 얼굴이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지금 무슨 상황에 놓인건지 가늠되지 않았다.  

나는 소변기가 놓은 쪽 벽에 붙어 숨을 몰아 쉬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문 앞에 서 있던 아이가 바로 내 옆에 서 있었다.  

 

아저씨.

아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천천히 아이를 바라봤다.  

아저씨 밖에 있는 누나랑 같이 놀지 마요.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지? 같이 온 그녀를 말 하는건가?

그럼 차가 들어올 때 부터 쳐다보고 있던건가?

몸이 얼어붙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화장실 칸 쪽에 있던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아저씨 저 누나랑 놀지마요. 못됐어. 무서운 누나야.  

나는 깜짝 놀라 화장실 칸 쪽을 바라봤다.  

칸안에 누워 있던 아이는 어느새인가 칸 위 쪽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말을하고 있었다.  

칸막이 위로 불쑥 나와있는 아이 얼굴은 너무 기괴했다.

나는 온 몸에 힘을 쥐어짜내 화장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짧은 화장실 거리가 천 길처럼 길게 느껴졌다.  

화장실 밖으로 뛰쳐나온 나는 세워진 차로 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차 문을 벌컥 열어 젖힌 나는 당황스러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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