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수석에 앉아 있어야할 그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 스러웠다.
어떻게 된 일이지?
허둥거리며 뒷좌석을 살펴본 후 차 주위를 뛰어 다니기 시작했지만 그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허둥거리는 내내 화장실에서 마주했던 정체불명의 아이들이 뛰쳐 나오지 않을까 온 신경이 집중됐다.
화장실 간건가? 아니 혼자 차안에 있는것도 무섭다 그랬던 애가 어두컴컴한 화장실을 갔을것 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운전석에 올라 탔다.
뭘 어떻게 우선적으로 행동해야 할지 판단되지 않았다.
일단 이 곳을 빠져 나가는게 우선이긴한데 그녀가 사라진 상태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다.
그때 조수석 문이 덜컥 열렸다.
왜 이렇게 허둥거려? 정신나간 사람처럼?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차에 타며 말했다.
어? 너? 너 어디갔다 온거야?
식은땀 범벅이 된체 말까지 더듬는 나를 보자 그녀 눈이 동그래졌다.
오빠 왜 이래? 화장실 안에서 웨이트라도 하고 왔어?
아니 그건 아니고, 일단 여기서 나가자 나가서 얘기하자.
나는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 시켰다.
식은 땀은 여전했고 손은 덜덜 떨고 있었다.
운전하는 내내 무언가 따라오는 기분이 들어 룸미러를 연신 쳐다 봤다.
밝은 불빛이 나오는 곳이 나타나면 좋으련만 가도 가도 국도변을 벗어 나기 힘들었다.
휴게소를 한참 벗어난걸 확인한 나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숨을 휴우 내쉬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무섭게 왜 그래.
나는 핸들을 잡은체 뭐가 벌어졌는지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분명히 아이들을 봤고, 그런데 그 아이는 왜 화장실 바닥에 누워 있었지? 그리고 또 언제 칸막이 위쪽으로 올라왔지?
그건 그렇고 도대체 어떻게 그 위로 얼굴을 내밀수 있었던 거야?
생각이 뻗쳐 나가자 칸막이 안쪽 아이의 씩 웃는 얼굴이 떠올라 몸서리 쳐졌다.
내가 본게 현실이 맞긴 맞는거야?
도무지 뭐가 뭔지 판단을 내릴수 없었다.
내...내가 귀신을 본거 같아.
나는 그녀에게 더듬 거리며 말을 하자 그녀는 파안대소했다.
뭐야 이 오빠가 뭐래.
그녀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웃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뭐, 황당한 이야기 라는건 나도 아는데......
나는 화장실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그녀에게 말해줬다.
그녀는 웃음이 가시지 않는 얼굴로 내말을 듣더니 물었다.
그래서 그 꼬맹이들이 귀신이라는 얘기야?
그렇잖아, 너도 봤지만 그 휴게소에 우리 차 말고 다른 차는 없었어. 그렇다고 거기 누가 사는것도 아닐테고.
그러자 그녀 표정이 갑자기 별거 아니라는듯 피식 거렸다.
난 또 뭐라고.
나는 그녀 반응에 기운이 빠졌다.
야, 귀신이랑 마주쳤는데 그게 별거 아니냐? 거짓말 아니라니까. 나 아직도 손이 떨려.
내가 강하게 항변하자 그녀가 말했다.
그래, 귀신인가 보지. 근데 오빠가 그렇게 호들갑을 떠니까 웃긴거지.
나는 후우 하고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일단 다시 서울로 가자. 나 불빛이 밝은데 가야 마음이 가라 앉을 것 같아.
나는 다시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잠깐만.
그녀는 내 팔을 제지하며 말했다.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서울 가긴 아깝잖아. 오빠 아직 나 별도 안 보여줬어.
나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별? 내가 지금 숨이 안쉬어질 정도로 기절초풍한 일을 겪었는데 별 얘기가 나오니? 지금 봐.
나는 차의 썬루프를 열었다. 한겨울 강원도 찬공기가 썬루프를 통해 점령군처럼 밀려 들어왔다.
오빠는 참 이게 문제야. 마음에 항상 여유가 없어. 어차피 오빠 서울 가도 당장 할일도 없잖아.
그녀말에 잠시 무언가에 한대 얻어 맞은듯 했다.
맞다, 그러고 보니 당장 내일부터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렇긴 하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바다 나와. 그러지 말고 이왕 여기까지 온거 바다가서 해뜨는 거나 보고가자.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에라 모르겠다. 속초 방면으로 핸들을 틀었다.
한참 어두운 국도를 달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얘가 내 회사 망한건 어떻게 알았지? 주위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았는데.
아까 들어왔을때 회사가 어수선해서 알았나?
머리 속에 이런 저런 생각으로 어지러운데 그녀가 말했다.
오빠 운전 하느라 힘들어서 그래? 그럼 어디 방 잡아서 잠 좀 자다가자.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기가 한 말이 뭐 대수냐는 듯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5.
속초에 해변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은 새벽 5시 10분이 조금 넘은 시간 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정상 상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열두시가 조금 되지 않은 시각에 휴게소에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벌써 다섯시지?
호주머니에 넣어뒀던 시간을 어디서인가 흘려 잃어버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해바다를 걸쳐 해안도로쪽에 차를 세우고 그녀와 나는 벤치에 앉았다.
도로를 두고 한쪽으로 여러 가게와 주택이 보였고 바닷가쪽으로 관광객을 위한 벤치가 놓여 있었다.
여기 앉아 있으면 해뜨는게 정면으로 보이겠지?
그녀 목소리는 신난듯 들떠 있었다.
한 겨울 새벽 바닷가인데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바람은 찬데 그게 고통스럽다거나 힘들지 않다고 느껴졌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는데 바다는 제법 밝았다.
바람은 잠결에 빠졌는지 고요해져 바다는 평온했다.
그때 수평선 끝이 붉어지나 싶더니 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공간에 누군가 유리막을 씌운듯 파랗게 투명해졌다.
와, 오빠 저거 봐라. 해뜬다.
그녀는 신기한듯 소리쳤다.
뭘 그렇게 난리냐 해뜨는거 처음보는 사람처럼.
나는 심드렁하게 받았다.
응, 나 해 뜨는거 처음 봐. 해뜨는걸 오빠랑 처음으로 보게 되네.
그녀 말끝이 조금 떨렸다.
나는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정신을 다 잡고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거 사실 어제 그놈이야. 날마다 새롭게 떠오르는거 같지만 사실 같은 놈이 왔다갔다 하는것 뿐이야.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다 짐 짓 딴짓을했다.
바닷가에 우리말고 아무도 없었다.
그때 뒤쪽 주택 하나에서 철컹하고 녹슨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 보니 주택집 한군데서 철문을 열고 50대중반쯤 되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오고 있었다.
잠을 자다 나왔는지 빨간색 꽃무늬가 프린팅된 몸빼 바지에 두툼한 패딩을 걸쳐 입고 있었고 손에는
빨간색 플라스틱 통이 들려있었는데 쓰레기가 담겨 있는듯 했다.
자세히 보니 집에 절 표시 그림을 그려놓은 깃발이 달린게 보였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랐듯 "에그머니" 라고 외쳤다.
나는 괜히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 마냥 고개를 꾸벅 숙여 놀래켜드려 죄송하단 의사를 보냈다.
내가 목례를 하자 아주머니는 신기하다는듯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저 아주머니는 무속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아주머니에게 향햤다.
저기요 아주머니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