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지 않다. 그렇다고 짧지도 않다. 5

hyundc 작성일 23.08.26 16: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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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는 급한 마음에 길 건너 아주머니를 향해 편도 이차선 도로를 건넜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아주머니는 나를 바라봤다.  

저기 혹시 무속 관련 일 하시는 분 일까요? 맞다면 제가 뭐 좀 여쭤보고 싶은데.

나는 최대한 정중히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도로 건너편 벤치에 앉아 바라보기만 했다.  

급하게 다가오는 나를 본 중년 여자는 갑자기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이구메. 내 오래 살다보니 이제 별일 다 겪네." 라고 말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새벽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이게 이렇게 무시당할 행동인가?  

순간 기분 상했지만 상관할 게재할 아니었다.  

어쩐 일인지 이 아주머니는 분명 무속인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제가 어제 밤에 귀신을 본 것 같아서 뭐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복채도 드려야 된다면 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여인은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으며 말했다.  

 

"복채?  나한테 줄 복채? 이 총각 재밌네. 돈이 없을긴데."

 

나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내가 망한걸 이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된건가?

세상에 이젠 강원도에 사는 무속인까지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저기 카드가 된다면 카드로 결재해 드릴수도 있고, 카드결재가 안 되시면 제가 이체해 드릴게요. 라고 말하자 여인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 뭐, 살다보면 이런 일이 있을수도 있지 암."

 

여인은 계속 너털 거리고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귀신 무슨 귀신? 지금 같이 있는 저 처자? 왜? 계속 따라 다니면서  괴롭혀요?"

 

네? 아뇨. 저 여자는 저랑 같이 여행 온 처자구요.  

나는 당황스러워 반론했다.

 

"여행 같은 소리하고 있네. 요즘은 황천길 가는 것도 여행으로 생각하나?"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아뇨 그런게 아니라 뭘 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가만 보니 이 총각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구먼. 총각, 총각 눈에 저 처자가 멀쩡한 사람으로 보이요?"

 

네?

나는 멍하게 길 건너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입을 멍하게 벌린채 그녀와 중년 여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니 그...그럼....쟤가.........

 

그때 길건너 벤치에 앉아 있던 그녀가 나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아이고, 저 처자. 얼굴에 화개살이 가득하네. 근데 명대로 못 간게 아니라 그게 지 명인데 그걸 모르면 우예. 쯧쯧."

 

나는 중년여인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목 뒤덜미가 서늘해져 왔다.

아뿔싸!  여태까지 그녀에게 느껴졌던 낯설음의 정체가 파악 됐다.  

이 것이었나? 그녀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던 정체가?

그녀가 적극적으로 내게 육체 공세를 펼치려 했던 이유가?

그래서 휴게소 꼬맹이들이 나보고 위험하다고 알려 준 것 이었나?

 

그럼 쟤가....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물었다.  

중년 여인은 나를 한참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럼 총각은 사람이요?"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럼 나도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갑자기 세상이 빙빙 돌며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생각해 보니 그녀는 사전 연락도 없이 내 사무실에 찾아왔지?

갑자기 별을 보고 싶다고.

 

"어라? 근데 이 총각 가만히 보니 문턱에 걸쳐 있네?"  

 

중년 여인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말을 했다.  

 

문턱에 걸쳐 있어요?

나는 중년 여인에게 되물었다.  

그때 길건너편 있던 그녀가 우리 쪽을 보고 있던 그녀가 서서히 일어 났다.  

 

"총각, 저 처자가 애인이래?"

 

중년 여인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네? 아니, 애인은 아니구요. 그냥 아는 사이인데.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희안하네? 부부나 애인도 아닌데 뭘 이렇게 기를 쓰고 데려 가려 그러나?"

데려 간다니.....누가 누구를.....

말을 하고 있는 중에 중년 여인은 내 얼굴과 그녀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기 바빳다.

 

"봐바 총각. 내 무슨 영문 인지는 모르겠는데,암만 해도 지금 총각은 저 처자 따라갈때가 아이야.

일단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내가 저 처자 한동안 잡아 놓을테니께네,  

지금 이게 무슨 영문인지는 총각이 스스로 알아봐요. 따라가고 싶으면 그냥 따라가던지 아니면 살아날 길을 찾던지."

 

아니 도대체 이 아주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거야?

머리가 어지러워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때 그녀가 내가 있는 쪽으로 오기 위해 도로를 건너기 시작했다.  

 

"오메, 오메 저 처녀 일루 오네. 지 말 하는지 아는갑네.  

총각 새겨 들어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니까. 그냥 다 포기하고 저 처자 따라 가던지.  

내 기회를 줄테니께 마지막 살아날 방도를 찾아 보던지."

 

처음 보는 분이랑 뭘 그렇게 반갑게 얘기 해? 설마 아시는 분이야?

 

그녀는 도로를 건너와 말했다.  

 

아니 그, 아시는 분은 아니고.....

 

나는 사막에서 바늘을 찾듯 해야할 말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어이 처녀. 이 총각이랑 부부요?"

 

갑자기 중년 여인은 그녀에게 난처한 질문을 했다.  

 

아뇨. 저희 부부는 아닌데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부부는 아닌데 저희 결혼 할 사이긴 해요.

 

그녀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온 몸에 피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게 기쁨의 감정인지 공포의 감정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에이 그럼 같이 몸을 섞은 사이도 아니구만."

 

아니 도대체 이 대화는 어디로 흘러가는거야? 감조차 잡지 못 하겠다.  

 

아직 그렇진 않은데 이제 곧 그렇게 될거예요.  

그녀 표정이 갑자기 차갑게 변하며 말했다.  뭐지? 뭔가를 느낀건가?

 

"여서 이러지 말고 일단 우리 집 따뜻하니까 집으로 들어 가요. 아휴 추워  

이렇게 마주친 것도 인연인데 내가 식사 한끼는 대접해 줄 수 있어."

 

중년 여인은 그녀를 집 안으로 내몰았다. 그녀는 난처해 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래, 일단 이분 집에 들어가서 밥이나 먹자. 이것도 인연 이잖아.

 

나는 중년여인 말에 동조했다.  

중년 여인은 손을 허리 춤 뒤로 보내 어서 떠나라는듯 힐끔 나를 보며 손을 옆으로 휘저었다.  

 

아아, 그럼 저는 차를 다른 곳에 좀 주차 시키고 올게요. 차를 대로변에 세웠거든요.  

 

나는 갑자기 생각난 것 처럼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중년 여인 눈이 휘둥그래 지더니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요즘은 무슨 귀....... 아, 아니다. 그렇네. 차는 주차장에 넣어야지. 차 안전하게 세우고 들어와요"

 

중년 여인과 그녀가 집안으로 사라지자 나는 뒤돌아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뭐지?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하지?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야?

전속력을 다해 달리고 있긴한데 어디로 가서 무얼 해야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진산 거사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넌 언젠가 살다가 인생이 심각하게 *됐구나 하는 날이 찾아 올거다.  

그때가 오면 숨도 쉬지 말고 날 찾아와라. 멈칫거려도 안돼고 고민도 하지마라.

오밤중이어도 상관없고 새벽이어도 상관없으니까 날 찾아와."

 

 

 

 

11.  

 

진산 거사를 어떻게 소개해야할지 모르겠다.  

사실 부르는 명칭도 애매하다.  

거사님은 친구 도훈이 때문에 알게 됐는데 녀석은 '도사님' 이라고 불렀다가 '거사님' 이라고 불렀다가  

어느때는 스님 이라고도 불렀다.  

스스로는 스님이라 불리길 원했던 것 같은데, 머리가 길고 술과 여자에 탐닉하니 스님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많이 따른다.  

 

도훈이는 자기 형에게 진산거사를 소개 받았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도훈이는 K대 법대에 합격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수석으로 합격한게 문제였다.  

학력고사 성적을 인생 최대 퍼포먼스로 받아든 녀석은 S대를 썻어도 수석으로 합격할 성적 이었다.  

녀석은 휴학계를 제출하고 재수를 선택했다.  

 

그때 도훈이 녀석은 진산 거사를 찾았고 원주에 있던 거사를 찾아가며 나를 동행했다.  

처음 녀석이 내게 '도사님' 이라고 했기에 나는 백발 머리에 긴 수염을 지닌 위엄있는 모습을 상상 했다.

원주 터미널 에서 내려 학동에 위치한 구불구불한 골목 길을 한참 걸어 들어가자 진산 거사가 살던 집이 나왔다.  

 

진산 거사는 생활 한복 비슷한걸 입고 있었는데 머리는 떠꺼머리에 수염은 그저 귀찮아서 깍지 않은듯 불규칙적으로 듬성듬성 했다.  

이건 거사나 도사로 불러야 할게 아니라 거지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속으로 생각 했다.  

 

녀석은 미래를 상담 하고 싶다고 말하자 진산거사는 밥과 술을 사라고 했고 그 날 진산거사는 생고기 삼겹살 사인분과 소주 네병을 혼자 다 해치웠다.  

도훈이 녀석은 자신이 재수를 하게되면 S대에 붙을 수 있냐고 물었다.  

 

"못 붙어."

진산 거사는 녀석 말에 오래 귀 기울지 않고 단순명료하게 대답했다.

 

"못 붙어. 근데, 너는 내가 이렇게 말하거나 말거나 분명히 재수를 할거다. 그러니 말릴 생각도 없다."

 

역시 도사는 도사인 건가?

도훈은 S대 재수에 실패했다.  

재수 후 받아든 성적은 전해 성적과 비교 했을때 초라하기 그지 없는 성적을 받아 들었다.  

 

우연에 일치일 수 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재수때 성적이 더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으니까.

 

결국 K대로 복학을 결정 하던 날 도훈은 다시 진산 거사를 찾았다.  

 

"거사님 제가 목표를 바꿨습니다. K대도 상관은 없는데 재학중 사법고시를 붙는걸 목표로 했습니다."

 

도훈의 말을 들은 진산 거사는 한참 웃었다.

 

"너는 학기중에 사시패스 못 한다. 서운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열심히 공부해라. 해놔."

 

녀석은 매해 실패했다.  

그렇게 졸업을 했고 군대를 다녀온 후 녀석은 사시 일차에 합격했다.  

녀석은 이차 시험을 앞두고 나를 데리고 세번째 진산거사를 찾았다.  

 

"올해도 안된다.  사람에 운이 란게 있는데 어쩌겠냐? 그러니 차라리 그냥 놀아. 그게 더 났지.  

놀던지 다른 인생 공부를 하던지. 그래도 서른에는 될거다. 서른에 사시 패스면 늦은 것도 아니다."

 

그 날이 후 도훈 녀석은 정말로 놀기 시작했다.  

녀석이 논다고 해봐야 일반인 기준으로 보면 노는 것도 아니겠지만.  

기껏해야 미팅도 몇번 나가고 영화도 간간히 본게 다니까.

사실 그때 나는 속으로 '엄한 땡중 새끼 하나 말 장난에 내 친구 인생이 절단 나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도훈이는 서른에 사시를 통과 했다.  

 

사시를 통과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갔던 날 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도훈은 한우를 샀고 평소와 다르게 진산 거사는 혼자 육인분을 먹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 가기 위해 인사를 할때 진산 거사가 나를 붙잡고 말했다.  

 

"넌 언젠가 살다가 인생이 심각하게 *됐구나 하는 날이 찾아 올거다.  

그때가 오면 숨도 쉬지 말고 날 찾아와라. 멈칫거려도 안되고 고민도 하지마라.

오밤중이어도 상관없고 새벽이어도 상관없으니까 날 찾아와."

 

나는 물었다.  

 

"인생이 *대다니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냥 알게 될거다. 내가 죽은건지 산건지 모르는 날이 올거야.  

내 말 기억하고 그때 날 꼭 찾아와라. 내가 널 도울수 있는지 없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 가서 보자."

 

그 때 난 속으로 생각했다.  

 

'이 땡중이 이젠 나한테까지 수작을 부리네.'

 

그런데,  

 

그 말이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 맞다니.

 

 

 

 

나는 진산 거사 집앞에 서서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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