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길지 않다. 그렇다고 짧지도 않다. 6

hyundc 작성일 23.08.29 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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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낮 진산 거사는 낮잠을 자고 있었던 듯 하다.  

뒷 머리는 눌려 있고 얼굴에는 베개 자국이 남아 있다.  

 

거사님 아무래도 제게 심각한 문제가 벌어진 듯 합니다.  

 

진산 거사는 잠이 덜 깬 얼굴로 한참 나를 바라봤다.  

 

"아니 근데 이 놈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놈이 돼서 나타났어?

너 도대체 뭘 하고 돌아 다닌거야?"

 

나는 어디서 부터 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여자 때문에 문제가 크게 터졌구만"

 

진산 거사는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그게 보이십니까?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이놈아 보이긴 뭘 보여. 남자가 술, 도박, 여자 문제 밖에 더 있냐?

네가 도박할 놈은 아니고 술도 안마시니 여자 문제가 뻔하지."

 

아!  

천재야 뭐야?  

 

"그런데 간당간당 하네? 너 어쩔려 그러냐?"  

 

어쩌려 그런다니? 그럼 지금 내가 뭔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솔직히 말씀 드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뭘 몰라 이놈아. 여자를 따라 저승으로 가던가. 이승에 남던가 선택 해야지.

네 운명이니 네가 결정해야지 남이 해주냐?"

 

그 부분을 내가 선택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생각했다.  

웃을때면 입을 가리고 아하하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이던 습관.

적당한 톤과 억양으로 조근 조근 명확하게 말하는 그녀 목소리.

궁금한 이야기가 생기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던 시선.

 

그러고 보면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들켰던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에게 들키는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 내 감정에 솔직 했던가?

그녀에 대한 감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비루한 내 자아가 대비 될까 화들짝 먼저 달아나지 않았나?

나는 나를 속이려 들었다.  

비겁한 패배자가 된 기분 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삶에 대한 모습이 반영됐다.  

나는 살아갈 삶에 애정을 가지고 있긴 한 건가?

치기 어리게 살아 오긴 했지만 나름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리고 폐허처럼 변해 버린 내 사무실이 생각났다.  

더불어 저 앞에 보이던 자그마한 빛마저 꺼져 버려 어둠의 터널 한가운데 망연자실하게 혼자 서 있던 기분도 떠올랐다.  

 

 

거사님 어차피 인간은 죽게 되는 거지요? 조금 더 일찍가냐 천천히 가냐에 대한 문제겠지만.

 

 

나는 웃는 얼굴로 진산 거사에게 물었다.  

 

 

"얼씨구. 이 놈이 이제 해탈한 시늉까지 하네?  

 

맞는 말이지. 모든 생명은 죽지. 일찍가냐 천천히 가냐는 다르지만."

 

진산 거사는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는데, 나도 배움이 짧아 너한테 그럴듯한 말을 해줄 능력은 없다.  

우주 이치를 깨닭고 만물을 알면 내가 벌써 부처지. 네가 알아서 해."

 

진산 거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는 그녀와 같이 걷던 한강 가를 생각했다.  

그녀와는 항상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걸었다.  

걸음을 내딛을때마다 서로의 어깨가 어떨때 붙었고 어떨때는 멀어졌다.  

그녀와 어깨가 닿을때마다 얼굴이 화끈 거렸다.  

그녀도 나와 어깨가 닿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을까?

설마 심장이 뛰고 있는걸 들킨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들며 혼자 죄를 짓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서로 손등이라도 닿을라치면 전기가 찌릿 올랐다.  

그럴때 마다 온몸이 마비 된것 처럼 느껴져 얼굴이 달아 올랐다.  

 

그녀와,

 

한강을 다시 걷고 싶었다.

온전한 마음으로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그걸로 충분하지.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일어나 진산 거사에게 큰 절을 올렸다.  

 

감사 합니다, 거사님. 다음에 인연이 되면 제가 크게 감사 인사 드리겠습니다.  

 

큰 절을 마친 나는 일어서서 웃는 얼굴로 진산 거사에게 말했다.  

 

"이 놈이 도 깨우친 소릴 흉내 내면서 헛소리를 하네.

그래. 내가 결정한 운명이니 네가 알아서 해야겠지."

 

진산 거사는 내 결정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래 기왕 가는거 미련 갖지 말고 가고. 내 언제 기회되면 거한 제사 상은 한번 차려주마"

 

나는 진산 거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다시 한번 조아리고 일어섰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속초로 다시 가면 그녀를 만날수 있을까?

나는 그녀를 찾으러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했다.  

 

"아 참, 내가 한가지 빼먹은게 있는데........"

 

진산 거사는 문을 향해 걸어 나가는 내 뒤 통수에 대고 말했다.  

 

"사실 너는 이제 부터 대운이 틔는 사주였다. 고생 끝나면서 한 십년간 재물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들어 와 꽃 가마에 올라 탈 사주였어.

미련한 놈 그걸 내팽개치고 여자한테 홀려 서는 쯧쯧."

 

나는 걸음을 멈추고 동그래진 눈으로 진산거사를 뒤돌아 보며 말했다.  

 

 

 

 

 

 

 

아이 시발 그걸 지금 얘기해 주면 어떡해요.  

   

 

내가 소리 치자 진산 거사가 역정을 내며 말했다.  

 

"야이 미친 놈아 안 물어 봤잖아. 왜 욕을 하고 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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