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발단인 외국인들)
저는 27살 나이에 흔히 스스로 프리랜서라 칭하는 백수 입니다.
전형적인 어릴 때 이민 갔다오고 기대를 한몸에 받다가
자신감을 너무 갖게 된 나머지 잘 다니던 회사도 때려 치우고
혼자서 해보겠다고 나왔다가 어느새 부턴가 그냥 일자리 없이
집안 눈치나 보며 전전 긍긍 하는 삶이죠.
뭐 평생 여자친구를 못사겨 보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항상 좋아하는 여자한테는 한마디도 못하고 괜히 주위만 돌고
맘도 없는 여자한테 거절 못해서 반 어거지로 사귀고..
어찌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중하위권 삶을 살고 있죠.
나름 연애에 대한 이론은 빠싹 하지만 실전에서는 전혀 발휘를 못하는 타입?
이런 저에세 유일한 즐거움이란 친구들과 겜방/당구/술로 시간을 때우며
사회비판, 사람비판 을 하며 아침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이었는데..
어느샌가 한명 두명 직장, 애인, 결혼.. 더이상 불러도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
알게 모르게 어느새 혼자 남겨지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혼자 생긴 취미가 압구정동 "로드XXX" 라는 바에가서 혼자 8000원짜리 칵테일
하나 시켜 놓고 티비나 보고 바텐더랑 얘기나 하며 시간 때우는거..
여느때처럼 바에서 술을 먹고 있다 얼마 전 바에서 알게 된 외국인 친구가
갑자기 소주에 김치전이 먹고 싶다며 "X주네" 가자고 해서 따라가게 됐다.
들어가서 테이블에 앉았는데 소피(외국인 친구)의 등 뒤로 무엇인가 광채가
확!!!!!!!!! 하고 나는 것을 봤다.. 이건 뭐 영화도 아니고 정말 주변이 뿌옇게 되면서
그곳에 앉아 있던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 업이 되는!!!!!!!
그런 장면이 연출.. 와.......
뭐 사실 절세 미녀가 아니었을진 몰라도 내 눈에는 정말 퍼펙한 여자가 보였다.
바다처럼 큰 두눈망울에 찰랑 거리는 생머리와 도도하면서도 따듯해 보이는 알수 없는
표정과 그 미소에 정조 있어보이는 꼿꼿히 세운 허리와 자세..
소피가 뭐라뭐라 얘기하는데 사실 하나도 귀에 안들어오고 계속 그 뒤의 그녀만
쳐다보고 있었다. 막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면 소피 쳐다보고..괜히 한번 웃어주고..
근데 가만히 들어보니 그녀와 그녀 친구분이 영어로 쏼라쏼라 얘기하는 거였다.
"야 소피 쟤네 영어로 얘기하는거 같아. 말 걸어봐~"
붙임성 좋은 외국인임을 이용해 말을 걸도록 투입을 시켰더니 10분만에
아주 서로 수다 떨고 난리가 났다 -_-..
나는 그냥 옆에서 쭈삣쭈삣 하며 사실상 대화에 참여 한게 아니라
그냥 듣다가 남들이 웃으면 같이 웃거나 그녀의 친구분에게 몇마디 걸고
그러고 있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 이제 갈때쯤 되소 소피가 언제 또 같이 보자고 연착쳐를 따고 있길래
나도 그 분위기에 동승해 정말 뻘쭘하게
"어? 저..저도 연락처 하나만 주세요..."
그렇게 해서 연락처도 따고 이름도!!!!!(편의상 진이라 부르겠슴)
아아 집에와서 괜히 좋아서 뒹굴고, 밤잠에 꿈에 까지 나왔다...
그 다음날 이건 연락을 하고는 싶은데 뭐라고 해야 할지..한마디도 못걸어보고 연락처만 땃는데..
그냥 예의상 분위기상 어쩔수 없이 준건 아닌가..괜히 씹이는거 아닌지..혼자 고민고민하다
결국 이렇게 보냈다.
<안녕하세요. 어제 뵌 빈(저)입니다. 제 연락처를 드렸나 기억 안나서요..>
그리곤 침묵... 아 역시 씹혓나...
아아....좌절..
그러던 중에 몇시간 뒤에 문자가 왔다
<어제뵌 분이죠? 일때문에 바빠서 ^^; 연락처 잘 받았어요>
아아 갑자기 하늘에서 종이 울리며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내 머리위로 금가루들이 흩날리며 관중들의 박수 소리가 나를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이제 뭐라고 또 보내야 하지? 아 또 막 소심해질라 그런다..
<바쁘신데 연락해서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죄송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같다. 뭘 처음부터 사과질이야 제길!!!
<아니에요 ^^>
아아 당연하지.. 이런 문자에 뭐라고 대답해.. 게다가 짧아졌다. 뭔가 사이를 지속시킬 만한
그런 문자를 보내야 하는데..라고 고민하다가 맘을 대충 잡았다. 그래! 승부수다!
어차피 다시 만나기 힘들텐데..
<딴 맘이 있어서 그런건 아닌데 언제 제가 날 잡아서 저녁이라도..>
아아 하느님...... 제발.........!!!
<저녁은 제가 먹고 싶을때 사드릴께요 ^^>
커헉!!!! 뭐지 이 애매미묘한 표현은!!!!!! 좋다고 받아들인 것인가 아니면
진짜 고단수로 거절한 것인가!!!! 그래도 일단 싫다고는 안했으니 그것으로 위로 삼아야지..
라 생각하며 문자를 보냈다
<^^; 성격이 화끈하시네요. 그럼 기다릴께요~>
.... 그래 나 소심한거 안다..
난 혈액형 따윈 안믿지만..가끔은 내가 진짜 A형인가 싶을때도 있다.
어쨋든 대화 한번 안나눠 본 사람하고 무슨 문자를 또 주고 받을수 있을까..
그뒤로 내가 할수 있던 것은 아침에
<좋은 하루 되세요 ^^>
그리고 저녁에
<잘자고 좋은 꿈 꾸세요 ^^>
밖에 없었다................
..........
.....
오늘 까지는.
오늘 아침에 그녀에게 날라온 문자..
<이번주 토요일에 시간되세요? 같이 저녁 먹어요 ^^>
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내 머리위에 또 다시 천사들과 금가루가 흩날리며..
가만.
옷은 뭐 입지..
어디로 가지..?
<좋아요! 어디서 뵐까요?>
<음..토요일 낮에 회사 가야하니까 압구정동이 좋을거 같아요 ^^>
..토요일에도 출근을 하는구나...
압구정동이라...
내일 모레네요...압구정동에 어디 좋은데 없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