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봉질의 끝
누구나 픽업생활을 하다보면 어쩌다 한 사람에게 목을 메게 될 때가 있다. 밤의 황제인 마냥 이 여자 저 여자 들쑤시고 다니다가 어느 날 아침 이러면 안되지 하면서 번뜻 각성을 하는 때가 오기도 한다. 그리고선 내겐 그녀밖에 없다는 생각에, 수많은 달림질도 그녀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에 결국 한 여자에게 집중하게 된다. 아침 잠결에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하게 되는 거다.
그 남자는 한없이 달림질하던 과거의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되고 마치 이제는 진짜 천성을 찾은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는 연일 헌팅에 길빵에 나이트를 뛰고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꾸짖기 시작한다. 인정상 이건 옳은 게 아니라며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연구하던 여자꼬시던 비법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한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바로 이 남자가 그렇게 목을 메던 여자와 시들시들해지면 다시 픽업 커뮤니티로 돌아온다는 거다. 그리곤 다시 신나게 여자꼬시는 법을 연구하고, 여자 따고 다니는 걸 다시금 남자의 자랑스러운 영광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
그러다 다시 또 순애보로 돌아간다. 순애보가 지겨워지면 또 다시 돌아온다.
나는 이런 경우를 수 없이 많이 보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픽업계를 떠났고, 그리고 예전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왔다. 그리곤 다시 떠난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이 사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자신의 유전자를 존속시키기 위해 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게 남자의 최상의 전략이기는 하다. 허나 실상은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남자의 생존 전략상 난봉꾼이 제일 탁월한 전략가라고 치자. 만약 그게 최상의 전략이라면 한 가지 케이스를 떠올려볼 수 있다. 어느 모집단에 속한 모든 남자가 난봉꾼이라는 가정을 해보자는 거다. 허나 그렇게 되면 자기 이외의 모든 남자가 다수의 여성과 성관계를 갖게 되는 거다. 그렇담 내가 아무리 난봉질을 해대도 다른 놈도 내 와이프에게 난봉질을 해 대니, 대관절 누가 내 자식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거다. 결국 남자로서 난봉꾼이 된다는 건 장기적으로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모든 남자가 난봉꾼일 때 자기 유전자를 전달하기 힘들어진다는 걸 남자들은 깨달았다. 결국 그 모집단은 다른 형태로 진화한다. ‘일부일처제’로의 진화다. 이때는 모두가 한 명의 여자하고만 관계를 갖기 때문에 와이프로부터 나온 자식이 내 자식이라는 건 확실해진다. 허나 평시절이 지속되다보니 남자는 이런 상황에서 바람을 피게 되면 승산이 클 거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또다시 다른 여자에게도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그래서 다시 바람을 피고 난봉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일부일처제 집단 속에서 다시 난봉꾼의 유전자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난봉꾼 유전자가 많아지면 또다시 내 자식이 누구 자식인지 모르게 되니 순애보 유전자가 자라난다. 이런 사이클이 수백만 년 지속되다보니, 결국 남성 인류의 유전자는 난봉꾼유전자 절반, 순애보유전자 절반으로, 기묘할 정도로 완벽한 비율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결국 순애보도 난봉질만큼 나름 최상의 전략이라는 거다. 한 사람에게만 충실하다고 남자로서의 본능에 따르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난잡하게 논다 해서 반드시 본능에 충실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남자란 그런 유전자를 반반씩 나누어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수많은 달림질에도 예전 여자친구가 다시 그리워지는 게 이해가 갈 것이다. 허나 헤어진 여자친구와 다시 사귀게 되어도 그는 달림질을 끊지 못할 거다. 그리곤 계속되는 달림질에 죄책감이 들어 다시 그녀에게 돌아올 거라 장담한다.
그래서 긴긴 순애보에 지쳤다거나 혹은 장기간에 걸친 달림질로 심신이 피곤하다면, 당신의 생활패턴에서 잠시 일탈해도 괜찮다. 나는 픽업아티스트가 픽업을 그만두겠다든가, 순애보적인 찌질이가 밤의 세계로 진출하겠다고 선언한다 해서 그게 결코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천성이 어디 가겠느냐 욕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쩔 땐 다른 여자가 생각나고, 어쩔 땐 한 여자만 바라보고 싶어지는 게 어쩌면 진짜 천성일 수 있다. 바람을 피든 한 여자에게 집중하든 어찌됐든 우리는 천성대로 살고 있는 거 아니던가. 더구나 남자의 본성이 이렇지 않다면, 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소재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
어쩌면 남자의 인생은 외도와 순결이라는 양 극단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다가 결국 묘자리를 찾게 되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러니 이여자 저여자 쑤시고 다니는 당신의 친구를 더럽다고 꾸짖을 필요는 없다.
반대로 당신이 난봉꾼이라면, 한 여자에게만 질질 짜고 정성을 다 바치는 당신의 친구를 애써 가르치려 할 필요도 없다.
어찌됐든 당신이나 그 친구는 ‘잘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당신은 그저 지금 당신의 마음이 원하고 있는 걸 따르기만 하면 된다.
난봉인가 아니면, 순애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