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남자 ---
고등학교때 친구들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거든요
제대하고 나서 오늘이 처음이었죠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한창인데 그녀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감기가 심해져서 지금 전화기를 꺼놓고 잘꺼라구
밤에 통화를 못한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를 했대요
알았다고 그러구 그냥 전화를 끊었는데 영 마음이 쓰이는 겁니다
그녀는 원룸에서 자취하거든요
그런데 혼자서 끙끙 앓고있을 생각하니깐
갑자기 술자리고 뭐고 다 귀찮고
빨리 그녀한테 가봐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한테
여자친구 때문에 먼저 간다고 할수가 없어서
그냥 화장실 가는척 하면서 살짝 빠져나왔어요
나오자마자 약국으로 뛰어가서
급한대로 일단 종합감기약하고 몸살약을 사가지고 택시를 잡았죠
그리고 그녀의 집으로가서 신문이랑 우유를 넣는 대문의 그 구멍으로
약봉지를 밀어넣고 초인종을 막 누른다음에
바로 택시를 타고 술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문자메세지가 도착했네요 "고마워..." 라구요
이제 마음 편하게 술을 마셔야 겠어요
그나저나 감기가 빨리 나아야 할텐데 말이죠
--- 그여자 ---
감기기운이 있어서 일찍 집에 돌아왔어요
한숨 푹 자고 났겠지 싶었는데 저녁되니깐 열이 점점 더 심해지더라구요
저번에 먹던 약이 어디 남아있을 것 같아서 그 좁은 원룸을 다 뒤졌지만
평소엔 그 흔하게 굴러다니던 해열제가 하나도 안보이는거 있죠
그 사람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 저쪽이 많이 시끄럽더라구요
약을 좀 사다 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상황이 아닌거 같아서 그냥 전화를 끊었죠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괜히 눈물이 났습니다
아침에 어버이 날이라구 엄마한테 전화를 했었거든요
혼자 있을 때 몸이 아프면 제일 서럽다구
몸 괜찮냐고 묻던 엄마 목소리도 생각나구
참 많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문쪽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무서운 맘이 들어서 발끝으로 현관에 살살 나가봤더니
우유 구멍안으로 하얀색 약봉투가 들어와 있었어요
서둘러 방으로 들어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택시를 타고 사라지던 그 사람의 뒷모습
지금 그 감기약 두알 삼키고 다시 자리에 누웠어요
외로움을 치료해 주는 신기한 감기약이네요
- 이소라의 FM음악도시 '그남자 그여자' 中
연인이라 불리는 또는 연인이라 불리웠던 두 사람
같은 시간, 같은 상황 밑에서 그남자와 그여자는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남녀의 심리에 관한 짧은 이야기.. [그남자... 그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