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보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각성이효리 작성일 20.09.24 13:12:56 수정일 20.09.24 14: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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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로 쓴 글을 보면 알겠지만.

 

얼마 전에 약 1년이란 기간 동안 3번 연락 온 연애감각 없는 뚠순이 여자애는 끊자고 통보했고. 

 

내 나이 42. 이혼 9년차. 무자녀.

 

1~2년 정도 집 근처 미용실에 다니고 있다. 개인 미용실이라 혼자 여자분이 하고 있는데, 1년 넘도록 큰 이슈도 없었고 

 

그 동안 잠깐 잠깐 만났던 여자들도 있었기에 미용실 여원장하고는 썸이랄 것도 없었지.

 

 

내가 반곱슬에 약간 옆짱구라 옆머리 뜨는 게 싫어서 투블럭을 하거든. 보통 2주에 한 번.. 그리고 내 머리형태가 서구형이

 

아닌 전형적인 동양인이라 머리스타일 마음에 들게 자르는 곳이 잘 없었기에 지금까지도 이용하고 있지.

 

여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갈 때도 있었어. 

 

 

그 원장은 160초반대 키에 단발 머리, 슬림한 체형에 목소리는 약간 허스키하지. 외모는 남자가 볼 때 괜찮아.

 

나보다는 확실히 위고 43~44 사이 같아. 그 원장도 동안이고 피부도 희고 아무튼 매력이 있는데 혼자 같아. 

 

미혼인지 이혼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형제가 딸만 3명에 차녀로 들은 것 같아.

 

 

처음 몇 번 갔을 때 받았던 인상이 ‘쎈여자’ 구나 싶어서 호감을 안가졌거든. 난 센여자 싫어해. 과거 경험도 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데… 주상복합 건물이다보니 고객이 아니라 화장실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나봐. 

 

대응이 세더라고. 그 후 미용실 유리문 앞에 포스트잍으로 크게 써놨더라고 화장실 문의하지 말라고. 지금도 붙어있고.

 

입장 바꿔보면 나야 한 번 본 것이지만 매일 몇 번씩 물어보면 짜증나겠지 싶어. 이제서야 생각해보지만.

 

 

내 성격이 붙임성은 있지만 아니다 싶으면 대화를 잘안하는데 미용실이니까 머리 자르다보면 이런저런 단답 대화를 하지.

 

최근 3달 사이에 원장이 붙임성있게 물어보고 이런저런 얘기하고 수다가 좀 늘어난거지. 

 

더울 때였는데 내가 헤나 타투 3주정도 지속되는 걸 손가락, 손목, 발 등 여러군데 했거든. 혼자 사니까 이런저런거 하고싶으

 

면 자유롭게 해. 

 

회사도 조폭문신 수준이 아니면 크게 뭐라신경쓰지 않고 나는 텍스트만 한 거였지. 아무튼 그걸 보고 한참을 서로 수다를 

 

떨게되었지. 원장이 자기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쓸데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날 헤나 타투 잉크와 리무버, 스텐실 몇 장을 샀지. 그것도 3주 정도 가는 염료라 5만원 정도했어.

 

그리고 나서 퇴근하면서 선물로 줬지. 대화한 게 기억나서 샀다고 무심한 듯 주고 감동 하더라고.

 

다음에 머리 자르러 갈 때 수줍게 헤나 타투한 손가락을 보여주면서 자랑하더라…

 

그런거 있지… 

 

이혼하고… 40 넘고 하니까 연애세포가 무덤덤해지고 그 동안 7~8명 만났지만 가슴 뛴 적은 없었고… 

 

지금도 가슴뛰고 그런 건 없는데 그 원장 웃는 목소리, 얼굴이 계속 생각나는거라. 출근하는 길에도 일하는 동안에도… 

 

내가 요리를 잘하거든. 

 

제일 간단하면서도 누구나 잘 먹음직한 음식… 그리고 부담 안가게 줄 수 있는 요리 중 하나가 피클이란 생각에 만들었다. 

 

장마로 비싼 야채임에도 피클, 무, 파프리카, 양배추.. 등 사면서 오랜만에 뭔가 목적있는 쇼핑을 하니까 신나기…보다도

 

의욕이 생기더라. 피클을 담을 작은 용기도 사서 갖다 줬지. 또 좋아하더라.

 

퇴근하면서 안먹던 빵집에 가서 또 빵을 여러개 사… 집에 가는 길에 미용실에 들려서 일부 나눠줬어. 또 좋아하더라.

 

어제는 헤어컷을 하기 위해 들렀지. 머라카락 자르고 또 감기고 하는 동안 서로 수다를 계속 떨었다. 

 

피클 얘기, 코로나, 추석연휴… 평소에 안하던 대화가 술술 나오더라고. 미혼일지… 나와 같은 상황인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다음번에 가면 넌지시 떠보고 데이트하자고 하려고. 

 

대화를 많이하다보니 먹는 거 좋아하는 거랑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공통점이 있더라고. 

 

손님들과 대화도 많이 하겠지만 대화하면서 느꼈던 건 나랑 대화한 작은 것들도 기억하더라. 적어도 호감이 없지는 않겠지 

 

싶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져서 누군가는 만나야지 싶기도 해. 재혼은 바라지도 않아. 

 

평생 서로 의지하고 외롭지만 않게 할 상대만 있었으면 좋겠어.

 

한편으로는 내 머리스타일 잘 해주고 집 앞이라 가까운데… 혹시나 서먹해지면 마음에 들게 자르는 미용실 찾기도 힘든데…

 

그냥 이 관계…

 

‘괜찮은 이웃'으로 남을까도 고민도 하고 있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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