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재조명-참전

eettvv 작성일 07.11.11 14: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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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


자료출처: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간행)


자유우방의 지원에 힘입어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1964년 당시 미 지상군에게 국가 안보의 한 축을 의탁하고 있던 한국의 입장에서 베트남의 사태는 결코 남의 나라 일로만 바라볼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박정희정부는 미국의 파병 요청이 잇기 이전부터 베트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참전요청과 파병결정】
1964년 5월 9일 미국의 존슨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25개 우방에 월남공화국을 지원하기 위한 병력 파병을 정식으로 요청하였고, 이어 7월 15일 월남정부에서도 지원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정식으로 한국정부에 보내왔다.
이에 한국정부는 "한국전쟁시 참전한 우방국에 보답한다"는 명분과 "베트남전선은 한국전선과 직결되어 있다"는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 파병을 결정하였다.

【한국군의 제1차 파병】
정부의 파병결정으로 제1차 파병으로 제1이동외과병원 요원 130명과 태권도교관 요원 10명등 140명이 1964년9월11일, 해군 LST편으로 부산항을 출항하여 22일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에 도착하였다. 이후 제1이동외과병원은 붕타우에 주둔하고, 태권도 교관단은 육,해군사관학교와 육군보병학교에서 남베트남군을 지도하게 되었다.

 

 

 


【한국군의 제2차 파병】
1965년1월2일 미국과 남베트남정부의 추가파병 요청을 받은 정부는 2차로 후방지원과 건설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2,000명 규모의 비전투부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하고 "국군의 해외 추가파병에 대한 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경기도 현리에 위치한 국군 제6사단 사령부에서 "주월 한국군 군사원조단본부"를 창설하고 평화를 상징하는 뜻의 비둘기부대로 명명하였다.
창설된 한국군 군사원조단은 3월10일 인천항을 출발하여 16일 사이공에 도착하였으며 사이공 동북방 22km 지점의 디안(DiAn)에 주둔하였다.

 

 



【한국군의 제3차 파병】
1965년의 제2차 파병 이후의 베트남 상황은 미국의 강력한 폭격에도 불구하고, 호치민 루트를 이용한 북베트남군의 남파가 계속되면서 남부의 전지역에서 지상전이 가열되고 있었다 .
이에 따라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는 한국에 1개 사단규모의 전투부대 파병을 요청해왔다.
당시 미국은 본토의 예비병력과 해외 주둔군의 일부를 베트남전에 투입하였기 때문에 주한 미군 2개사단도 언제 남베트남으로 이동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에 박정희대통령은 "국가 안보가 최우선이다"는 확고한 신념속에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의 파병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한편, 이동원외무부 장관은 브라운 주한 미 대사와 협상을 통해

  1.파병병력의 상한선은 5만병 이내로 한다.
  2.한국군의 현대화를 지원한다.
  3.북한의 침공시 미국이 즉각 출병할 수 있도록 한,미 방위조약을 개정한다.
  4.파병에 소요되는 경비를 미국이 부담한다.
  5.남베트남에서 사용할 군수품 공급등 한국의 남베트남시장 진출을 보장할 것 등의 조건을 제시하였고 이 요구사항은 1965년5월17일과18일 양일간에 워싱턴에서 개최한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부분 타결되었다. 이에따라 정부는 8월13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수도사단과 제2해병여단의 파병을 결정하였다.
1965년10월12일 여의도광장에서 박정희대통령의 임석하에 수도사단의 환송식이 열렸으며 그후 수도사단은 11월1일 퀴논(Quy Nhon)에 제2해병여단은 10월9일 캄란(Cam Ranh)에 도착함으로써 제3차 파병이 마무리되었다.

【한국군의 증파】
남베트남에서의 눈부신 한국군의 활약에 고무된 미국정부는 베트남의 "작전환경에 한국군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국군의 전투병력의 증파를 요청하였다. 한국정부에서도 "5만명 선까지는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1966년3월20일 국회의 의결을 거쳐 수도사단 제26연대와 제9사단의 파병을 결정하였다. 이에따라 수도사단 제26연대는 4월15일 퀴논에 상륙하여 수도사단의 통제에 들어가고, 제9사단은 10월8일까지 닌호아(Ninh Hoa) 일대에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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