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군의 제5세대 전투기가 될 차세대전투기(FX) 3차사업을 놓고 외국 유명 군수업체 간 물밑경쟁이 시작됐다. 현재 이들 업체는 대언론 홍보를 위해 미디어 투어를 진행하는가 하면 사업과 관련한 전·현직 군 고위층 접촉 등 마케팅 활동에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이 내년부터 수조원을 들여 최대 60대의 5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긴 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군요구성능(ROC)과 도입시기, 대수, 가격 등이 나오지 않은 데다 FX 2차사업 기종으로 미 보잉사의 F-15K가 결정된 지 채 두 달 정도밖에 안 된 상태라 다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FX 3차사업과 관련, 조만간 외부연구용역을 줘 구체적인 도입 추진전략을 세울 것"이라며 "하지만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FX 3차사업을 놓고 업체 간 경쟁이 촉발된 것은 사전 정지작업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제품 출시에 앞서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홍보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F-15K' 4세대급 전투기로는 최강, 문제는 사양기종
그렇다면 FX 3차사업 수주전에 뛰어든 업체들은 누굴까. 우선 최근 6년간 국방부가 추진한 수조원대의 각종 대형무기 도입사업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미 보잉사를 들 수 있다. 보잉은 2002년 당시 건군 이래 최대 규모의 무기 도입사업인 5조4000억원 규모의 FX 1차사업(F-15K 40대)에 이어 지난 4월 말 F-15K 전투기 21대를 판매하는 FX 2차사업(약 2조3000억원)을 따냈다.
앞서 보잉은 2006년 1조5000억원 규모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사업도 수주해 2002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0조원에 이르는 대한(對韓) 무기판매액을 기록했다.
이처럼 한국에서 '대박'을 친 보잉이 FX 3차사업에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다름 아닌 'F-15K'이다. F-15K는 완전한 스텔스 기능은 없지만 제4세대급 전투기 가운데 최강이다.
문제는 이 F-15가 미국에서는 사양기종이라는 점이다. 공군 관계자는 "미 공군도 더 이상 구매하지 않는 F-15를 1, 2차에 이어 FX 3차 대상기종으로 내놓다는 것은 다른 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의식한듯 보잉사 관계자는 "기존 F-15K 스팩에 전자장비와 레이더 성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제품을 제공할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추가로 F/A-18 슈퍼호넷도 대상기종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FX3 유력후보는 'F-35'
또 다른 유력후보는 보잉에 맞서는 미 록히드마틴사를 꼽을 수 있다. 록히드의 대상기종은 제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 라이트닝Ⅱ'.
2010년대 초 개발이 끝나는 F-35는 현존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와 대등한 스텔스 성능을 보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 군 당국이 도입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록히드는 지난 4월 국내 언론사 논설위원 등을 상대로 F-35 전투기를 생산하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록히드마틴 공장을 둘러보게 하는 등 관련 마케팅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F-35는 개발 지연문제로 계속해 구매비용이 상승 중이며, 구입가능 시기도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대당 가격은 5500만∼6000만달러선으로 알려졌다.
◆다크호스 '그리펜'과 '유로파이터'
유럽업체 중에는 스웨덴의 사브(SAAB)가 한국 정부와 공군이 원하는 어떤 형태로든 제휴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진출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에 공동개발 방식으로 참여하거나, 기존 그리펜 C/D 전투기나 그리펜 NG 전투기의 직접 판매가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다.
샤브의 대상 기종인 그리펜은 유럽의 다른 차세대 전투기들에 비해 가장 먼저 실전 배치돼 운용 중인 경량 전투기이다. 무엇보다 값이 싸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그리펜의 대당 가격은 4000만달러대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유럽업체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공중전 능력은 물론 초정밀 대지 타격 능력이 한층 강화된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를 들고 나올 전망이다. 유로파이터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협력해 공동 개발하고 있는 전투기로, 대당 가격은 6700만파운드(약 1380억 원)이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 공군은 이제까지 단 한번도 비(非)미국제 전투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스웨덴 등 유럽업체들이 도전장을 내겠지만 들러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국의 대외군사판매(FMS) 지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수준으로 격상되면 미국 업체가 더욱 유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