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 정확히는 북한의 핵은 일본이 남한을 침략하기 위한 힘을 기를 명분을 위해 필요했다. 실제로 북한의 핵은 일본의 재무장과 헌법개정(미래형이지만 거의 확실시)에 결정적 공헌을 했고, 이러한 일본의 무장을 중국과 러시아가 나서서 막을 수 없는 명분을 제공했다.
* 실제로 보수우익세력인 신임 아베정권이 이미 일본정치세력의 핵심이 되었고 아베는 자민당 총재선거 처음으로 일본의 헌법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한 2002년 와세다대학 강연에서 "자위를 위해 최소한의 한도를 넘지 않으면 핵 무기든 일반무기든 그것을 보유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라고 밝힌바 있다.
북한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자위수단"으로 목숨을 걸고 핵을 가졌다. 남한이 일본에 의해 침략을 받는다고 해서, 북한이 핵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거나, 참전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남북 연합이 일본(현재보다 전력이 증강된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이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행위는 "핵은 자위수단"이라는 스스로의 핵보유 명분을 해하기 때문이다. (자위수단(自衛手段)의 自는 자기 自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전쟁수행능력이 없는 상태이다. 즉, 자기 코가 석자이다.우리는 흔히 남한은 북한이 공격을 받으면 북한을 도와 참전할 것이고, 북한은 남한이 공격받으면 남한을 도와 참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참전"의 효과는 결국 양측에 얽매인 강대국을 끌어들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우선 남북의 입장을 보면, 남한이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하면, 남한은 전쟁을 할지 말지의 "결정권"이 없다. 무조건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에겐 참전할지 말지를 결정할 "결정권"이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서의 결정권은 내부갈등을 유도한다. 이 "결정권"이 이성계를 위화도에서 회군하게 만들었다. 이 "결정권"은 참전을 결정하기에 앞서 국가 내부를 분열시킨다. 명백히 이길 싸움이면 "참전파"가 우세하겠지만, 명백히 질 싸움이면 "반대파"가 우세할 것이다.또한, 주변 강대국들의 입장 또한, 기본적으로 전쟁에 불참의 뜻을 비친 상태라면, 남북한의 의도대로는 참전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일본이 남한을 침략했을 때, 북한이 남한을 도와 참전한다면, 북중 혹은 북러 상호방위조약에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다. 즉, 북한이 침략당하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는 전쟁에 참가할 수 없거나 참가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중국군이나 러시아군은 북한군이 빠져나간 북한에 진주할 수는 있다. 북한군이 빠져나간 힘의 공백을 매워야 하기 때문에...중국이 북한을 침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남한이 북한을 도와 참전한다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다. 즉, 남한이 침략당하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은 전쟁에 참가할 수 없거나 참가하지 않을 수 있다.대신 미군 혹은 일본군은 남한군이 빠져나간 남한에 진주할 수는 있다. 남한군이 빠져나간 힘의 공백을 매워야 하기 때문에...이러한 결과는 주변 강대국들이 바라던, 한반도 분단을 영구화 할 수 있는 동시에, 그들의 기존의 경계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한일전쟁을 기정사실화 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웅(聖雄) 이순신"인가?성웅(聖雄)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에 이순신에게 붙여진 칭호이다.한일전쟁 발발 이후에 성웅(聖雄)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한 위대한 장수가 나와주기를 바라는 것인가?만일 임진왜란 이전에 이순신의 제안이 조선에 주류로 받아들여졌다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까? 전쟁을 끝내는데 7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웅" 이순신이 아닌, "겁장이" 이순신이다.임진왜란 이전의 이순신은 당시의 조선에게는 성웅이 아닌 겁장이였고 고통이었다. 이순신은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일본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에, 일본의 침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고, 자다가도 식은 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날 정도로 일본을 두려워했다. 200년간이나 지속된 태평성대를 위협하며, 한줌도 안되는 왜구의 나라 일본이 마치 당장이라도 쳐들어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겁에 질려 그깟 왜구의 나라 일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으며,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전체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떠들어대었다.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은 그런 "겁장이 이순신"을 받아들이는데 실패(失敗)했다.만일 이순신에게 "일본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의 용기는 당장 일본을 쳐들어가자는 만용이나 객기로 전락했을 것이며, 그 많은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거북선을 만들고 수군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이순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지않기 위해서는, 준비단계에서는 먼저 "적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의 우리는 과연,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이 실패(失敗)했던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일본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까?"
일본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친일,반민족적"인가?
진정한 용기란,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꽃이다.
다가오는 2012년은 "임진년(壬辰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