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생화학전 능력

원영청 작성일 08.12.23 15: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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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한국군의 생화학전 능력을 물어보시는 분이 있어서 작은 양이지만 비교적 잘알려진 관련자료를 올려봅니다.

 

비록 한국이 공식적으론 생화학무기 확산 금지협약에 회원국으로 가입되어 있고 공식적인 폐기를 천명했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한국은 비공식적으로 막대한 양의 생화학 무기들을 실전배치하여 아직까지도 보관중[북한의 생화학 공격에 대한 보복용]이고 유사시 이를 대량생산할 충분한 기술과,시설,인력,자본을 갖고 있는 화학공업 대국중 하나이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시는것이 올바른 판단이라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이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대한 답은 'YES' 입니다.

 

자료 내용이 현제 상황과 큰차이 없이'대동소이' 하여 큰 무리없는 신빙성이 있기 때문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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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생화학무기 진상>

1. 생화학무기개발 정책과 그 전개과정

한국의 생화학무기개발은 역대 집권자들이 이른바 「승공통일」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진해 온 기조정책이다.

한국당국자들이 생화학무기개발을 정책화한 것은 1960년대말∼1970년대초.

1969년 닉슨의 「괌독트린」발표와 때를 같이하여 박정희정권은 「자주국방」,「방위산업의 국산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핵무기개발과 함께 생화학무기개발을 극비정책으로 책정.

당시 박정희가 생화학무기개발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은 생산비가 원자폭탄의 1백분의 1정도밖에 들지 않는데 비해 그 살상효과는 매우 엄청나다는 것을 베트남전쟁에서의 미군의 생화학무기「고엽제, 최루제」사용과 그 가공할 피해력에서 실감했기 때문이다.

박정희정권은 생화학무기는 『핵무기』라고 주장하며 그 개발을 저돌적으로 추진하였다.

1972년 2월 제1차 방위산업회의에서는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육무기개발과 방위산업육성에 관한 기본방침이 결정되었다.

박정희는 생화학무기개발을 위해 1970년대 초에 국방과학연구소, 한국화학연구소, 한국화약연구소, 한양화학연구소, 럭키종합화학연구소 등 인간살육연구소들을 잇달아 설치하고 그에 대한 총지휘를 국방부와 국방과학연구소가 관장하도록 하였다.

그 이후 국방부산하에 세균무기연구소, 화학탄연구소, 31화학실험소를 신설하고 생물(세균)무기연구개발은 세균무기연구소가 전담하도록 했고 화학무기연구개발은 화학탄연구소, 31화학실험소, 민간화학연구소들이 긴밀한 연계밑에 추진하도록 함.

그리고 국방과학연구소산하에 병기개발기술위원회와 공창을 두어 생화학탄을 투발할 수 있는 병기들을 제작하게 하였다.

박정희정권은 1971년 7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국방장관회의에서 한국국방과학연구소에 대한 미국의 기술지원합의가 이루어진 후 생화학무기개발 두뇌진들을 미국에 급파하여 1년동안 연수시키는 한편 1972년 1월에는 미국방부 기술지원팀을 초청하여 기술이전을 받도록 하였다.

그들은 미국과 과거 일본군의 생화학무기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세균, 바이러스배양과 독극물생산 및 그 운반수단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976년 「팀 스피리트」한미합동군사훈련이 개시되면서 박정희정권은 생화학무기연구개발에 더 큰 힘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되어 1970대년 말에 이르러서는 생물무기용세균, 바이러스배양과 화학무기용 독해물의 대량생산에 필요한 기술적 토대가 구축되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의 고위생화학무기 전문가는 그때를 회고하며『당시 박정권의 독촉이 대단했다. 우리 연구팀은 주야분투하였다. 바로 이 시기에 생화학병기의 연구개발 및 생산기반이 확고히 조성되었다』고 술회했다.

한국에서 생화학무기개발은 1980년대에 들어와 전두환정권에 의해 「국방분야에서의 한국형 장비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더욱 가속화 되었다.

이미 베트남전쟁에 참가하여 미국이 사용한 생화학무기의 효율성을 직접 목격한 바 있는 전두환은 집권한지 9개월만인 1981년 6월 청와대에서 극비모임을 열고 생화학무기개발에「신정권의 운명」을 걸고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전두환정권은 1983년 7월 미국에서 신경마비가스생산 해외이전 법안이 채택되고「화학무기 재무장 5년계획」이 발표되자 생화학무기개발팀을 미국에 수시로 보내 연구성과를 도입해 나갔다.

전두환정권은 세균무기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해 세균무기연구소의 두뇌집단을 보강하는 한편 미국방부산하의 생물 및 화학 무기연구소인 메릴랜드주의 로크빌에 있는 플로우실험소, 포트 테트릭크에 있는 세균무기연구소, 미육군 세균무기연구소와의 공동개발을 더욱 적극화했다.

그리고 1985년 5월 제17차「한미연례안보협의회」와 제7차 「한미군사위원회」에서 미국의 최신이원화 화학탄의 한국배치와 한국의 독자적인 생화학전능력보유합의를 계기로 방위산업체의 범위를 벗어나 민수업체들로 더욱 확대시켰다.

바로 그 속에서 1980년대 중반기에는 세균, 바이러스의 생체실험에 성공했으며 화학무기용 독해물생산이 산업화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미 박정희 정권때에 대부분의 생화학무기의 보유기초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후 1991년 3월 미해군공보처가 한국이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하였고 1997년 8월「뉴욕타임스」지가


한국이 세계 4번째의 생화학무기를 보유, 생산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한국은 현재 3000t 정도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평시에는 3000t, 전시에는 1만2000t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며

“신경성과 수포성, 혈액성, 구토, 최루성, 독성 물질 등 종류가 다양하다고 밝혔다



2.생화학무기 개발실상과 그 엄중성

1생물 (세균) 무기의 개발과 저장

한국에서 생물(세균) 무기 개발과 저장은 그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섰다. 생물 (세균) 무기개발의 본거지는 지금까지도 그 존재자체가 최대극비로 붙여지고 있는 국방부산하 세균무기연구소이다.

이곳에는 수백명에 달하는 기술인력이 외부와의 일체 차단속에 세균무기개발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에서 세균무기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인원은 세균무기연구소, 미생물연구소들과 미국방부산하의 세균무기연구소들에 있는 해외연수생들을 포함해 1천여명을 윗돌고 있다.

한국에서의 세균무기연구개발은 독자적인 개발보다는 주로 미국과「합작」의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세균무기연구개발에서 한미간의 상호결탁이 이루어진 이유는 한국으로서는 세균, 바이러스배양과 실험, 세균전에서 이미 오랜 경험과 과학기술적 토대를 완전히 갖춘 미국의 도움을 받자는 것이었으며 미국으로서는 새로운 세균무기의 생체실험「완료」와 그「파급 및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장으로 한국이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한국당국자들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1970년부터 1976년까지의 기간에만도 의과수술로 버려진 샘플을 미국 플로우실험소에 혼합 바이러스증식용으로 팔아넘겼다.

1981년 3월에는 4백 30여개의 통에 담긴 수천개의 샘플을 일본항공회사의 비행기에 실려 미국의 플로우실험소에 수송된 사실이 미국의 afp 통신에 의해 확인되었다.

한국당국자들은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관동군의 악명높은 세균부대 (731부대) 에 의해 개발되고 6·25전쟁시기 미군에 의해 대대적으로 사용된 콜레라, 천연두, 황열병, 페스트, 유행성출혈열 등을 발생시키는 20여종의 각종 세균 및 바이러스배양기술과 병원미생물의 배양, 세균독소추출 등 세균무기연구개발과 관련한 기술적 테이터들을 체계적으로 이양받았다.

세균무기연구개발을 위한 기본적 토대가 축성되자 당국은 국방부 세균무기연구소에서 세균, 바이러스의 생체실험을 위한 여러 가지 곤충류, 진드기류, 설치류들을 대대적으로 기르도록 하는 한편 고려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등 여러 대학들에 미국과의「합작」으로 세균연구기관들을 설립하여 전염성이 강한 새로운 병원체들을 연구개발하게 하였다.

한국에서 1980년대 중반기에 세균전을 목적으로 연구하고 만들어낸 병원미생물은 탄저균, 페스트균, 콜레라균, 티푸스균, 일본뇌염바이러스, 출혈열바이러스, 천연두바이러스, 식중독균독소, 보틀리즘도소 등 70여종에 달하였다.

당국자들은 세균무기개발연구진으로 하여금 배양된 각종 병원미생물을 세균전에 실제로 써먹을 수 있게 더욱 실용화하도록 하였다.

익명을 요구한 세균무기연구소의 퇴직연구사는 당시를 회고하여 『군수용 특수용기에 영향형세균의 배양균을 넣어 한달동안 보관해 보았는데 20%정도가 죽어버렸고 다른 미생물들도 배양, 농축, 보관, 운반 등에 매우 불안정했다.

그래서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세균연구 실무진의 도움으로 연구를 거듭한 끝에 새로운 보다 안정한 병원미생물을 만들어냈다』고 실토했다.

한편 국방부 세균무기연구소는 미국방부산하 여러 세균연구소와 실험소들의 「방조」하에 병원세균이 만드는 독성물질인 세균독소를 추출해내는 기술을 연구해 페스트균, 디프테리아균, 파상풍균 등의 독소들을 결정상태로 얻어내는데 성공했고 당국은 그 생산을 가속화해 왔다.

한국당국자들은 세균, 바이러스에 대한 생체실험과 함께 그것을 장약 및 투발할 수 있는 각종 병기생산도 동시에 추진시켰다.

세균무기용 병기는 국방부 세균무기연구소의 「특별주문」에 따라 국방과학연구소가 책임지고 소속 병기개발기술위원회와 공창들에서 제조되고 있다.

여기서는 병원미생물 등을 장약할 수 있는 각종 폭탄, 포탄, 로켓탄, 지뢰, 수류탄, 기구 등이 다량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세균무기연구소와 국방과학연구소의 기술적 연계밑에 여러 가지 종류의 세균기구, 세균만년필, 세균권총 등 휴대용 세균병기들과 「가치있는」 세균무기적용수단들이 연구개발되고 있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생물「세균」무기비축량은 실로 엄청나다.

국방부 세균무기연구소에만도 병원미생물과 세균독소가 들어있는 군수용 특수용기가 수천개나 저장되어 있으며 각 군단, 사단, 연대, 대대들의 「비밀무기고」들에는 세균, 바이러스를 장약할 수 있는 각종 병기들이 수만개가 저장보관되어 있다.



2)화학무기의 개발과 저장

1969년 유엔에서 발표된 속칭 「우·탄트보고서」에서는 「전쟁용화학제란 가스상, 액상, 고체상을 막론하고 사람, 동물, 식물에 대한 직접적인 독작용이 있으므로 사용되는 모든 화학물질을 지칭한다」고 화학무기를 정의하고 있다.

한국의 화학무기연구 거점은 국방산하 31화학실험실, 화학탄연구소와 대덕단지의 한국화학연구소, 럭키중앙연구소, 삼양화학기술연구소 등이다.

여기서는 박사, 석사 학위를 소유한 유능한 연구원들로 구성된 수천명의 연구진이 치사성이 강한 신독해물 및 탄두연구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미국의 몬산토과 공동연구협정을 맺고 화학무기용 신독해물개발을 추진해 온 한국화학연구소에서만도 1982년부터 1987년까지의 기간에 1만여개의 시험합성물질을 만들어냈다.

삼양화학기술연구소에서는 화학무기실, 화학실험실 등 연구시설을 갖추고 1987년 당시 30여종의 화학무기용 「신제품」을 개발완성해 냈다.

한국당국자들은 치사성이 강한 수많은 독가스공장들을 건설하여 그 생산을 다그쳤다.

그 대표적인 공장들로는 군산 임해공단에 세워진 tdi(톨루엔 디이소시아네이트)생산공장을 비롯해 삼양화학, 한국화약, 동양화학, 한양화학, 한국화인, 한림화학, 국도화학 등 수십여개가 된다.

삼양화학만 하여도 1980년 독가스생산 방산업체로 지정되어 불과 몇년사이에 재벌순위 렝킹4위로 뛰어오르고 외형이 3백 50배로 급성장한 전문 시에스(cs.미군암호명) 독가스생산공장이다.

cs독가스는 화학구조상 염소와 시안을 함유하고 있는 바 염소 ( cl 2 )는 인류최초의 독가스로 사용된 화학물질이며 시안(cn.미군암호명)은 사람을 즉사시키는 독극물인 청산가리이다.

1987년 7월 미국의 보스턴시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인권을 위한 의사회」대표 파인박사는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시에스(cs)가스는 지난 시기 월남전쟁 때 미군이 지하호 등에 은신해 있는 베트공들을 전멸시키기 위해 사용하였던 독가스』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국에서 독해물생산에 종사하고 있는 업체들은 민수용화학원료생산이라는 너울을 쓰고 화학무기를 생산하여 군에 납입하고 있다.

동양화학주식회사에서 생산되는 tdi와 여기에 사용되는 포스켄독가스, 염소가스 등은 화학무기용 독해물이다.

한국당국자들은 미국으로부터 수다한 화학무기공장을 끌어들이고 미국과 「협조」하여 인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독해물을 생산해 오고 있다.

1985년 1월 8일 「북미한국인권협회」는 『미국에서 끌어들인 독가스mic(메틸이소시아네이트)를 생산하고 있는 회사들이 한국에 11개나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폭로하였다.

mic독가스로 말하면 1984년 12월 3일과 1985년 4월 1일 아시아의 한나라에 있는 화학공장에서 사고로 장시간 누출되어 반경 40킬로미터내에 있는 주민중 4천여명의 사망자, 2만여명의 실명자, 20여만명의 중독자를 산생케 한 악마의 독가스이다.

일본으로부터는 염화티오닐을 수입하여 유독성가스 가운데서도 가장 치사성이 높은 화학제인 신경가스를 대량생산하고 있다.

신경가스의 일종인 [v제](미군암호명)는 치사농도가 0.005mg/ℓ로서 보다 치명적인 인마살상용 독가스이다.

한국에서 매해 생산되는 유독성독해물량은 수십만톤을 헤아린다.

화학무기의 기본원료로 쓰이는 독성화학물질을 생산하고 있는 30여개 업체의 규제대상물질생산규모만 보아도 연간 12만톤을 넘는다.

1980년 염소가스생산량은 76만톤, 1986년 신경가스생산량은 11만 8천톤, 1992년 포스겐독가스행산량은 9만 6천톤에 달했다. 이와 함께 수포성, 신경성, 혈액성, 최루성 등 유독가스생산량도 해마다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당국자들은 유독성물질개발생산과 함께 독해물을 장입할 병기생산도 병행추진하고 있다.

화학병기생산은 국방부의 지시에 따라 그 직속 화학탄연구소가 맡아 추진하여 왔다.

화학탄연구소는 1970년대에 이미 유독성물질을 장약한 화학포탄, 화학폭탄, 화학지뢰, 화학수류탄, 휴대용 화학병기와 이를 투발할 수 있는 155밀리포, 8인치포를 개발생산했으며 1980년대에는 각종 화학유도탄, 미사일, 방사포 등을 개발하여 다량생산에 들어갔다.

한국은 현재 수만톤의 독해물과 수백만개의 화학탄을 휴전선 일대와 광주, 대구, 군산, 오산을 비롯해 이르는 곳마다에 저장비축해 놓고 있다.



3. 생화학무기의 실전대비

한국군은 제조, 저장된 생화학무기를 실전에 사용하기 위한 정연한 실전대비 체계를 세워놓았다.

국방부와 한미연합사령부산하의 미육군야전군사령부, 1.2.3야전군 직속부대들에 화학공격체계가 세워지고 군단에는 화학지원대대, 사단에는 화학지원대, 연대에는 화학소대가 구성되어 임의의 시각에 공격할 수 있는 체계가 완비되어 있다.

그리고 이미 1988년에 육해공군마다 화생방부대학교를 *고 실전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곧 생화학전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화생방사령부까지 신설하기로 했다.

「팀스피리트81」한미합동군사훈련때부터 시작된 화생방훈련은 해마다 강화돼왔으며 한국군이 벌이는 각종 전쟁연습 때에도 예외없이 화생방훈련이 동반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한국군은 언제든지 전쟁에서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실전능력을 완전히 갖추었다

 

 

*참고자료*[생화학무기의 파괴력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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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팔사건

 

○ 장소 : 인도 보팔시

○ 연도 : 1984년 12월 3일

○ 원인물질 : 메칠이소시안(MIC:Methyl isocyanate)

가. 발생과정 및 원인규명

  화학약품 제조회사로 인도 보팔시에 현지공장을 설립하여 농약을 제조판매하던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유니온 카바이드(Union Carbide)에서, 농약제조의 원료로 사용되는 메칠이소시안(MIC:Methyl isocyanate)이라는 유독가스가 저장된 탱크가 누출되었다. 누출이 시작된지 2시간 동안에 저장탱크로부터 유독가스 8만파운드(36톤 상당)가 노출되었다. 항상 높은 압력과 저온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는 이 유독가스 저장탱크는 온도가 올라갈 경우 폭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철저한 안전수칙이 지켜져야 하는 곳이었으나 보팔의 저장탱크에서는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며 조기 경보체계도 작동되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메칠이소시안은 카바마이트(Carbamate)제제 합성시 중간물질로 생성되는데 주로 면역기능의 장애와 기계 독성을 유발시키는 유독물질이다.

나. 피해상황

  2,800여명의 인근 주민이 사망하였고 20~60만명 정도가 부상당했으며 이중 5만명은 영구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생존자의 대부분도 실명이나 호흡기 장애,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평생 고통받으며 살게 되었는데, 피해 보상을 청구한 사람도 58만 3,000여명에 달한다. 또한 이 사고로 자연생태계까지 크게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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