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베트남군은 생각보다 당나라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1972년 북베트남 공세는 1975년 공세와 거의 유사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남베트남군은 장비 인력 심각한 손실 없이 북베트남 공세를 물리쳤습니다. 안록 공방전이 유명한 전투이죠. 미 항공력의 압도적인 지원이 있었지만..
1974년 미국의회 남베트남 원조 액수 10억달러 에서 7억 5천만 달러로 삭감. 이 마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티우 대통령은 "군사원조도 경제원조도 모두 끓겨버린 남베트남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라고 말하죠. 1973년 파리 협정 때 존슨 행정부가 약속한 원조와 북베트남 공세시 즉시 개입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남베트남은 미국으로부터 버려졌습니다.
1974년 남베트남군 장비 가동률 75프로. 1975년 장비 가동률 1974년의 25프로로 현저히 하락합니다.
1974년 남베트남 공군의 실태는 남베트남 공군의 c-130 32기가 연료 누수, 주익 균열, 소모품 부족으로 작동 부족으로 가동 중단상태이고 8대가 가동가능한 상태이나 항시 비행가능한 숫자는 4기 뿐입니다. 또한 공군의 1800여기의 기체중 운용 가능한 숫자는 1484기이고 이중 299기가 작전중 여러 이유로 손실됩니다. 또한 남아있는 운용 가능 기체도 유류 부족으로 지상 대기가 많습니다.
1975년 북베트남 공세 당시 최전방 1군단의 탄약은 3일치 뿐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북베트남군은 1972년 공세에서 보급품 부족으로 인한 대실패를 교훈삼아 북에서 남쪽에 이르는 송유관 설치 각종 보급루트 확보 등으로 보급에 대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습니다.
위 묘지는 남베트남 정부가 세운 우리나라 현충원과 같은 곳입니다. 역시 남베트남 패망과 함께 훼손되었죠. 지금은 잡초와 깨진 비석만 남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