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교도대 이야기 12편

건데기만세 작성일 12.07.06 16: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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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위에 물을 뿌리고 갈아 맨들맨들하게 만든 건축공법으로 지어진 막사 세멘바닥과,
양갈래로 나열된 노란 장판이 깔린 침상 두줄.
뒤로는 관물대가 2단으로 되어 있고,
문을 열고 쳐다보면 티비와 작은 오디오 한 개가 있는 내무반.
평범한 내무반이지만 “집합”명령에 미친 듯이 달려 들어온 그 내무반은
각종 고문도구가 널려진 지옥같았어.
이미 와서 기다리던 대원들은 각진 모서리를 있는 대로 쏘아보며
턱에 두줄이 잡혀라 각을 잡고 서있고,
거짓말 안보태고 다리를 덜덜 거리며 서있기도 힘들어 보이는 대원도 있었어.
그렇게 덜덜 떠는 대원을 흘깃 보면서도,
욕 한마디 할 수 없는 것이,
정말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은
그 고문같은 대기시간 몇십초를 모두 알고 있는 짬밥들이기에
모두 같은 심정으로 내심 동정했을꺼야.
그냥 그 덜덜 거리는 것을 보였던 대원은 일반 대원들보다 담이 좀 작을 뿐이였겠지.
잠시후 문이 활짝 열리면서
“박어!”
를 외치며 수교 서너명이 들어왔어.
막사의 모든 수교들이 폭탄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야.
나처럼 비폭력주의자들은 그냥 자기 내무반에 있거나,
자리를 피해 다른 내무반에서 지들끼리 희희낙락 수다나 떨고 있겠지.
폭탄에 참여하는 수교들은
대체로 과거 전적이 화려한 목소리 큰 좁밥들.
어제 그 대형사고의 직접적인 피해자 정도야.
양손에 깍지를 끼고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어 엎드린 상태로 받치는 자세.
팔목 힘이 유독 약해 학창시절부터 팔씨름을 이겨 본적이 거의 없는
나같은 체형을 가진 사람들한테는
정말 정말 힘든 자세지.
그 박은 자세로 10분정도 설교를 하던 수교들은
하나 둘씩 대원들이 끙끙거리며 나자빠지자
있는 힘껏 배에 발차기를 날리며 일으켜 세우고,
힘에 겨워 부들부들 떨며 거의 모든 대원들이
양동이 한사발의 땀을 흘려대자
침상사이에 걸쳐서 박는 이른바 “걸쳐박기”를 외쳤고
또다시 여기저기 드럼통 후려갈기는 소리와 유사한 발길질 소리는
공포, 고통, 관등성명 이외의 아무말도 내지를 수 없는
죽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어.
위에서 말했듯이 아마 내가 가장 못버텼던 것 같아.
주먹위로 살이 째지고 피가 터졌는데,
그 상처는 아프지도 않고,
오로지 팔목과 사지에 고통만 느껴졌어.
피가 질질 나더라고.
난 왜그렇게 약한지..
다른 대원들은 잘도 버티는데,
나만 유독 손이 터지고 피를 흘리니까 수교들도 좀 심했나 싶었나봐.
그냥 침상위에서 박으래...
그냥 안박게 해주면 안될까요..
그냥 사람살려...
그런데 유독 나는 다른 대원에 비해서 많이 안맞은 것 같아.
여기저기 읍!읍! 소리가 공명되고 있는데,
나는 두어대만 맞았어.
가장 못버티는 찌질한 놈이 가장 덜맞은거야.
왜그러나 싶어 봤더니,
나를 늘상 아껴주던 중학교 선배, 동네형, 그 수교가 서 있는거야.
나 대신 짬밥도 잊으시고 똥교대도 해주던 그 선배(‘군대 똥 사건’ 참조요)
맞거나 갈굼당할 때는 고참을 쳐다보지 못하니까
그냥 고개만 숙이고 자빠지면 다시 박고 다시 박고 하느라 누군지도 몰랐는데,
힐끔 거리며 마주친 그 선배의 눈은,
‘힘내라 이자식아 왜 그렇게 못하냐’
라고 안쓰러워 하고 있었어.
그 선배 원래 사람 때리는 고참 아니였어.
수교 달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그 선배는
항상 어리바리 덜 떨어진 막내나 대원들 행여 맞을까 옆에 끼고 다녔고,
아침 점호 때 화장실 못참고 소변보던 막내
다른 고참들한테 맞을까봐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가 손잡고 같이 나오는 착한 사람이였어.
그런데 그 폭탄의 현장에서 대원들을 잡고 있던거야.
당시에는 실망 뭐 그런거 없었어.
고참이니까,
수교니까 나를 때린다고만 생각했거든.
분명 그 선배가 나에게 발길질을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맞을 때 “텅!”소리가 날 정도로 차올린 것이 아니라,
발로 밀어서 자빠트리고,
다시 박으면 또 밀어서 자빠트리고 그랬던 것 같아.
그리고 내가 피가 터지자 침상위로 올라 가라고 한것도 그 선배였고,
눈을 마주친 이후에는 아예 옆에 붙어서
박으면 발로 툭 밀어서 넘어 뜨리면서
“니가 내 후배면 더 잘해야지 XXX 히바러랴ㅓㅑ어~~!!!!!”
라며 상욕을 해대며 계속 넘어뜨리고 있었어.
모든 대원들이 헉헉 거리며 숨이 턱에 차고,
5초이상 그 자세로 버티지 못하는 한계점을 보이자,
수교들은 모두 일으켜 세우고,
또 돌려가며 샌드백질을 해대고,
그렇게 한시간의 죽음의 시간이 흘러가
폭탄이 마무리 됐어.
몇마디 패악질을 해대던 수교들은 해산을 외쳤고,
수고하셨습니다를 합창한 대원들은 각자의 내무반으로 불이나케 달려 들어갔어.
다른 내무반은 그렇게 폭탄 터지고 나면,
분에 못이긴 수교들이 각자의 내무반에서 한따까리를 더 하는데,
우리 내무반 오니 분대장이 수고했다면서 모포를 다 펴놨더라고.
상교가 몰려있는 다른 내무반에서 이단옆차기를 날리던 우리 분대장..
우리 내무반에선 천사였어.

저녁에 자려고 누웠는데,
아까 나를 감싸주던 그 선배가 너무 고마웠어.
힘들어서 끙끙거리던 못난 후배놈
피터지고 살터지고 두드려 맞는거 안타까워서,
애들 때리지도 않는 사람이 직접 들어와서 계속 지켜봐주고,
후배놈 다른 놈들보다 떨어지니까 옆에 붙어서
마음에도 없는 상욕으로 갈구는 척,
마음에도 없는 발길질로 시간 벌어주고....
그리고 그렇게 누워서 내심 고마워하고 있는 우리 내무반에 살며시 들어와서,
“자냐?”
“아님다.”
“잠깐 나와봐”
“네 알겠슴다”
그렇게 데리고 나가더니,
구석탱이에서 담배 한 대주면서,
“상처봐봐”
“공놀이할 때는 끝도 없이 뛰어다니는 놈이 박는건 왜그렇게 못해”
“나 내일 휴가나가니까 필요한거 있으면 얘기해라”
아...
이 양반은 도대체 나같은 놈이 뭐가 맘에 들어서 이렇게나 잘해주는지 몰라.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휴가비라도 챙겨주고 싶었어.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상교 선임이 된 첫날,
또 그 죽음의 방송이 나왔어.
일교 때 그 폭탄 이후,
동기놈 하나가 유서를 쓰는 바람에 잠시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얼빵한 막내놈 하나가 감시대 지하벙커에 똥싸다가 걸려버려서
또 막사가 급냉되어 버렸거든.
담배 뽀끔거리며,
간만에 지옥 한번 보겠구나 싶어서 한숨만 푹푹 쉬며,
점호기다리고 각잡고 있는데,
“막사내 대원들은 전부 운동장으로 집합”
이젠 내무반이 좁으니까 연병장에서 굴려버릴 셈이구나.
심각한 분위기의 대원들은
찰나의 시간에 연병장으로 달려나와
열중쉬엇 자세로 눈을 치켜뜨고 턱을 조여 각을 잡고 있었고,
카리스마 넘치는 내무반장은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와,
“오늘 보름달이 밝으니 점호는 연병장에서 한다”
라고 했어.
그리고 모두 둥글게 서라고 시켜놓고
“강강수월레 강강수월레”
아놔...
사실 그 분대장도 나하고 같은 동네 사람이였어.
엄밀히 족보를 따지면,
초등학교 동창의 베스트 프렌드였고,
그 베스트 프렌드의 형님이 중학교때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 형님과 우리 누나가 친구이기도 했어.
아무튼 나하고 동갑이였는데,
그 친구 때문에 덜맞고 덜구를 수 있었지.
달밝은 야심한 밤에 얼굴은 그을려서 시커멓고,
훈련시즌이라 우락부락 근육오른 100명의 대원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둥글게 돌면서
강강수월레를 외치는 장면은
세상 어디 군대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상한 장면이였어.
이러다가 변심해서 애들 또 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두어바퀴 크게 돌다보니 자지러지는 고참들의 표정은
오늘 폭탄이 웃음폭탄 이상은 안터지겠구나 싶었어.
아마 그날 밤은 짬밥이고 뭐고 폭탄이고 뭐고
신명나게 운동장을 둥글게 둥글게 돌았고,
마지막에 외친 내무반장의 한마디에 다들 쓰러지고 말았어.
“다섯명!”

 

오늘 시간이 많아서 막 달렸네요.

늘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담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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