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내무반 배치되고, 막사의 생리를 하나하나 습득하던 막내 중의 막내 시절,
나도 막사의 보급품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밑에 기수가 무데기로 들어왔어.
도대체 뭘 가르쳐야 되는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 윗기수 고참들처럼 갈구지 않고,
“잘해줄꺼야”라는 곧은 신념으로,
대기기간 갈구고 터지는 신병들을
살짝살짝 미소로 대해주고,
틈틈이“잘해줄께”라고 속삭여 주곤 했어.
그 아홉명의 무데기 중에서,
유독 튀는 신병이 한명 있었는데,
나이는 늦게온 편인 나보다 한 살 더 많은
Y대 유도학과 편입생 녀석이였어.
특기 기입란에 십자 조르기라고 쓴 녀석은,
그 무시무시한 암바를 특기로 하는 체육맨으로서,
막사 축구시합에서 신병 주제에 우연찮게 교체 멤버로 들어가서
당시 최고의 축구 선수인 호나우두의 개인기와
차두리 저리가라 할만한 피지컬로
고참이고 하참이고 신참이고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면서
막사 호구 1내무반의 3개월만의 승리를 이끌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
가슴팍은 내 두배로 두꺼운 놈이,
스피드는 뭐그리 빠르며,
막사에서는 보기 힘든 헤딩슛을
몸을 비틀며 꼿아 넣는데,
“물건이다!”라고 외치는 당직수교의 함성을
전 막사의 대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로 응대했고,
원래 대로라면,
상교, 수교 할 것 없이 몸싸움 해댄지라,
소대장실에서 일교 선임들한테 흠씬 두드려 맞아야지 정상이겠지만,
흥분한 당직수교(내무반장)의 보호를 받고
열렬한 스카웃 표명을 소대장한테 어필한 결과,
예정되었던 4내무반을 뒤로 한 채,
1내무반에 입성하게 되었고,
1개월 먼저 들어온 내 동기놈과,
막사 호구의 멍에를 뒤집으며,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새롭게 붙혀준 위대한 인물이 되었지.
신병 대기시절부터,
새벽에 몰래 내 건빵 나눠주고,
뭐하다 왔냐, 나이는 몇 살이냐, 친하게 지내자 하며,
안면을 미리 튼 나는,
녀석이 축구시합 때마다 획득하는 보상품
라면땅을 나눠먹는 절친한 사이가 되어갔어.
Y대 유도학과!
군생활이 지나면서 유도학과의 진가는 발휘되기 시작했는데,
한번은 수용자의 몸을 수검하는 중
느끼는 척 역겨운 신음소리 내는 수용자와 시비가 붙었는데,
그 자리에서 별의 자전주기를 볼 수 있게
100킬로가 넘는 거구를 바닥에 빙돌아 내다 꽂아 버려서
대원뿐만 아니라 교도관, 수용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통문(교도소 내 통로사이의 문)근무를 서다가,
등판에 잉어 몇 마리 그려주신 덩어리 형씨들 운동시간에,
“쳐봐 이새키야”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다덤벼 이새키들아”라고 잘못말해
운동 중인 수십명의 수용자와 단체 유혈사태까지 만들 뻔한 적도 있었어.
무튼 문제도 많았지만,
체육학도 답게 베타적인 군생활에 쉽게 섞이면서,
고참도 잘모시고,
내무생활도 잘하는데다가,
남자다우면서 운동도 겁나게 잘하는,
일당백의 대원으로 거듭나고 있었어.
하지만,
그녀석을 보호해 주던 당직수교가
완장을 내려놓고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고,
녀석의 내무반 윗고참이 이래저래 큰 사고를
지뢰처럼 여기저기 뻥뻥 터뜨리기 시작하자,
1내무반 아랫 대원들의 군기가 문제시 되기 시작했고,
녀석을 눈에 가시로 여기던
밴댕이 속알딱지 일교선임, 몇몇 상교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나이 쳐먹고 군대오니까 뵈는게 없냐는 둥
고참들이 이뻐해주니까 막내 주제에 수교의 행동이 나온다는 둥
되도 않는 시비를 걸어대며 갈구기 시작했지.
운동한 녀석 답게 인내심도 맷집도 좋은 녀석은
고참이 아무리 갈구고 샌드백질을 해도,
늘상 두드려 맞으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띄었고,
막내 주제에 표정에 군기를 상실했다며
더 두드려 패는 밴댕이 고참들 보란 듯이
더 움직이고 덜 자면서 군생활을 이겨내고 있었어.
막사의 밴댕이들.
우리부대 용어로 줮밥!(경비교도대의 은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라 칭해지지는 고참들.
자기 두드려 맞은 것이 그렇게 억울 했는지,
입에다가는 군생활 편해졌다고 연발해대면서
걸레 짜는 횟수가 원래는 세 번인데 두 번밖에 안짰다는
지보다 이쁜 지지배 시기하는 초등학생 계집들도 안하는
되도 않는 질투 또는 시비로 녀석을 또 갈구기 시작했고,
참다 못한 녀석은 온몸 곳곳에 날아다는 주먹질 발길질을 버티다 못해
양 미간에 흐를 천자가 새겨지는 인상을 쓰게 되어 버렸어.
그날밤...
선임상교, 선임일교, 몇몇 고참들이 모여있는 세탁실에서
중상모략해대는 밴댕이 고참들의 말만 듣고 흥분한 그 고참들 사이에서
녀석 뿐 아니라 윗고참, 내무반 일교 선임까지
먼지나게 두드려 맞게 되었고,
녀석은 막사내 슈퍼스타에서 겁나 빠진 개념없는 녀석으로 한순간에 전락했어.
녀석과 같이 창고 구석 우유곽 찢는 그 자투리 장소에서
구겨진 군팔 물고 몇마디 썰 풀어보니,
자기는 맞는 것에 이골이 나서 괜찮지만,
자기 때문에 윗고참까지 두드려 맞은 것을 생각하면
양쪽 어금니가 깨질만큼 이를 악 물고 참고 참았다는 거야.
자기가 진정으로 잘못해서 타작질을 당했다면
자기는 정말 겸허하겠지만,
같지도 않은 줮밥들의 모략에 휩쓸려 다니는 그 고참들도,
그렇게 이간질 짓거리를 해대는 고참들도 전부 미워 죽겠다고...
본질은 굉장히 남자답고 의리파인 그 녀석이
자기 살겠다고 싫은 사람에게 실소나 실실 흘리면서 2년을 버티는 것이 싫다고,
그냥 조용히 살겠다고 담배 꽁초 비틀어 끄며
막사로 들어가는데 왠지 굉장히 불안해 보였어.
보통은 수삼개월이면 그런 갈굼도 사그러 들어야지 정상이겠지만,
이 줮밥 고참들은 짬이 될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고참의 이름으로 아랫것들을 부리기 시작하는거야.
돈도 주지 않고 휴가나가는 후임한테
가수 테이프, 잡지, 담배 등을 사오라고 시키면서
급기야,
자기 휴가나가는데 성의를 표시하라면서 금전 갈취까지 시작했어.
나도 처음엔 금전을 은근히 요구하는 그 기름진 고참한테
돈 없다는 핑계로 그 청을 거절했지만,
청을 거절할수록 조여오는 고참의 갈굼질에
결국 수어만원을 뜯겼던 걸로 기억해.
근데 이 후임병 녀석은,
다 참아도 그것만큼은 참지 못했나봐.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던 주말저녁,
점호를 평소보다 한시간 일찍 당겨서 하던 그날,
녀석은 자매외출(교도관과 자매결연을 하여 한번씩 저녁을 얻어먹는날)을 핑계로
주량을 훨씬 넘어서게 술을 먹고 들어왔고,
최용수의 독수리 헤딩슛에 열광하던 대원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불침번의 비명소리도 막사에 울렸어.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건 처음이였어.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다수대 한명의 싸움에서,
다수의 인원이 한방씩 맞고 나가 떨어지는 그런 싸움질.
금품을 갈취하던 그 돼지기름 가득한 여드름쟁이 고참이
불침번 책상을 안고 고꾸라지고,
되도 않는 심부름 시켜대던 그 유해진 인상쓰는 것을 닮은 고참이
계단 여섯칸을 날아가 구석탱이에 쳐박혔으며,
멱살잡이로 사람이 번쩍 들어올려져서 캑캑 거리는 그 모습...
십수명의 대원이 달려들어
발정난 고릴라 같이 날뛰던 녀석을 포획했고,
녀석은 갓 도축한 쇠고기 살점마냥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그제서야 펴고
중대본부로 조용히 연행됐어.
밤새 소대장과 녀석의 언쟁은 계속됐어.
너로 인해 나머지 대원들의 자매결연이 없어질 것이다.
너로 인해 나머지 대원들의 제제가 강해질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은 모두 묻어두고 반성문 몇 장으로 합의 보자라는 소대장과
나와 같이 힘없는 하급대원들 금품이나 갈취하는 양아치들을 영창으로 넣어라
그렇지 않으면,
악습처럼 행해지던 훈련후 샌드백질.
밤 일곱시만 되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워 지는 집합 악습.
모두 본부에 고하여 막사 대원 반을 날려버리겠다던 녀석의 주장.
상교 이호봉이면 이제 군생활 편해질 짬이면서,
이제는 일곱시에 두드려 맞는 것보다 때리는 날이 더 많아질 그 녀석이
일이 이렇게 커진이상,
이 그지같은 막사보다 총대매고 악습을 다 까뒤집고,
차라리 타 부대로 전출을 선택한
진정 남자다운 결정을 술의 힘을 빌어 결심하고 왔던 것이야.
다음날,
전야의 난리는 아침 일찍 출근한 중대장에게 낱낱이 보고 되었고,
녀석과 줮밥 고참두명,
어리둥절 말년 수교한명은 머리 파랗게 밀고
영창에 줄지어 들어갔지.
녀석덕에
암묵적이면서도 공식적으로 행해지던 그 악습들은
소대장들은 전혀 몰랐다며 발뺌하는 그
일곱시의 악몽 점호정리 집합과 점후 폭탄, 훈련 후 교육실, 도서관에서 자행되던 정리 등은
당연히 한동안 우리부대 역사 저편에 잠들어갔고
왕고참들은 니들이 군생활 편해지니 막사는 이제 산으로 간다라고
훈련을 얼차려로 채워가며 소심한 복수를 해댔어.
고참들에게 녀석은 천하의 몹쓸 놈이였겠지만,
아래대원들에게는 독립투사에 버금가는 영웅이 되어 쉬쉬 전해졌고,
영창 입방 후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녀석의 방에 배식을 위해 잠시 들어가보니,
손에 붕대를 둘둘말고 왼손으로 장난스레 경례하며,
그동안 감사했다며 허허 웃고 나를 맞아 주었어.
옆방, 옆의 옆방 줮밥 고참들은 이제 모두 아저씨 인지라,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녀석에게 만큼은 얼마전 휴가온 친누나가 준 쵸코바를 식판위에 곱게 올려주고,
나중에 나가서 꼭 연락하자라며 인사해 주고 나왔지.
한편,
가장 끝방에서 망연자실하게 있던 말년 병장은
사실 왜 거기 들어가 있는지도 잘 모를 그 말년 병장은
나라를 잃은 김구의 표정으로 허공만 쳐다보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