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교도대 이야기 10편

건데기만세 작성일 12.07.04 15: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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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추운 날씨가 기승을 부리던 겨울이였어.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모래자갈이 퍼져있는 연병장 마져 얼어버려 훈련도 잠시 중단된 상황이였지.
비록 철책선의 양구나 철원의 겨울은 아니였지만,
군대잖아.
군대의 겨울은 원래 더 춥잖아.
그해 눈도 참 많이 와서 108년만에 폭설이 내렸다고 뉴스마다 아우성이고,
암튼 너무 추워서 바지고 윗도리고 세겹,네겹씩 껴입고 근무를 서도
발가락 끝이 살포시 얼어 들어가는 그런 날씨였어.
일교 나부랭이였던 나는 주간 근무를 마치고 막사 정리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막사 방송에서 지금부터 호명하는 대원들은 중대본부로 입성하시래.
가뜩이나 내무반에 사람 없어 죽겠는데 호명한 여덟명의 마지막에 내 이름이 불리웠고
구두약이 잔뜩 묻어있는 마른 걸레를 덜렁거리며 중대본부로 들어갔어.
수교(병장)은 없고 이교 두명 일교 네명 상교 두명 이렇게 여덟명이
일렬로 쭉 서서 소대장을 주시하고 있었어.
덩치들을 보아하니 막사에서 힘 좀 쓰는 사람들 네명에 재수없는 고참 넷.
 암튼 전체적으로는 성실해보이고 소대장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 쭉 서있더라고.
대민지원을 간데.
교도소 근처에 있는 인삼밭이 겨우네 폭설과 강풍으로 개판이 됐데.
군청이고 시청이고 이래저래 도움을 요청했는데,
겨울에다가 눈도 많이 와서 인력도 부족해서 인근 군부대에 요청을 했는데,
그래도 손이 모자라서 막사에 직접 농부 아저씨가 올라온거야.
사실 우리부대가 전통적으로 이발봉사, 헌혈, 장애인시설 봉사 등
사회봉사에 대한 이력이 꽤 있는 편이여서 지역주민한테는 평판이 좋았고,
공무원이신 소대장 및 중대장은 그런 평판으로 인해 자신의 고과가 높아지니까
아낌없이 후원을 해주곤 했어.
하필 훈련도 없는 기간에 대민지원을 인삼밭으로 나가라고 하니,
짜증이 많이 났어.
옳다구나 좋구나 해야지 정상이겠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내무반은 다른 내무반과 다르게 인원이 턱없이 부족해서,
1인 3역을 해야 할 처지였거든.
근데 어쩌겠어.
중대장 명령인데.
인원을 뽑은 기준은 내가 봤듯이.
허우대 좋고 일 잘하는 기준이라고 하더라고.
난 허우대도 별로고 일도 못하는데...
대민지원을 하달받고 궁시렁 거리며 내무반에 올라와서
폭풍 잡일을 하고 점호를 받았어.
소대장이 각 내무반을 돌며 대민지원자들은 야간근무를 빼줬다고 일찍 자래.
내가 대민지원 나간다는 말에,
내 윗고참은 울상이고 우리 분대장은 내일 내무반 걸레질은 자기가 하겠다고,
걱정하지말고 다녀오래.
그리고 다녀와서 자기가 한 일 만큼 막내랑 윗고참이랑 사이좋게 맞제.
많이 안때리겠데...

야간근무 없는 밤이 지나 아침 점호를 마치자 마자,
회색 츄리링안에 내복과 깔깔이를 껴입은 부대원들 여덟명은,
닭장차에 연장을 옆구리에 차고 올랐어.
혹시 모르니까 삽하고 각자 호미 한 개씩 비장하게 무장했지.
군바리니까 밖에 공기 쐬고 기분은 좋았지만,
내가 얼마나 모범사병이였는지 막사 걱정이 떠나질 않았어.
개념 떨어지는 우리 막내놈이 과연 물광을 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행정병였던 윗고참이 행정일을 하면서 내무반 정리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원래 군대가 그렇잖아.
이병은 갓난아기.
일병은 내무반의 엄마,
상병은 까칠한 장남,
병장은 내무반의 아빠,
말년은 망나니 막내아들.
소대장은 개객끼..
그렇게 엄마 걱정을 하며 이십여분 동안 산길을 따라 달려 넓직한 인삼밭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렸어.
한손엔 호미, 한손엔 삽을 들고,
평소에 막사에서 까칠하던 상교선임(상교 말호봉) 두명과
일 잘하는 여섯명의 대원들은 입김을 풀풀 날리며 인삼밭 중턱에서 장비를 골랐고,
그 모습을 보는 농부 아저씨의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지.
처음엔 이런 저런 일을 배웠어.
인삼밭에 가보면 위에 시커먼 덮게를 씌우잖아.
근데 강풍으로 그 덮게가 다 찢어졌고
그것을 버티던 버팀목이 다 쓰러진거야.
그것만 보수하면된데.
그것만...
하...
밭이 참 넓더라고.
까칠쟁이들이 같이 온터라,
어차피 막사에서 잡노동하는 것 보다야 편한 일이다 싶기도 하고,
그냥 묵묵히 아침 일곱시쯤 부터 군말 없이 대민지원을 시작했어.
두루마리 휴지처럼 말려서 구석에 쌓여있던 덮개 뭉텅이들을 어깨에 이고,
2인이 일조가 되어 버팀목 위에 줄줄 풀어 덮고 고정하는 일인데,
모든 농사일이 그렇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한겨울 날씨인데도 등판에서 계속 땀도 나고,
까칠쟁이 고참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어서 요령도 못 피우고 열심히 한 것 같아.
한참 일하고 있는데,
농부 아저씨가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나더라고.
“마..막걸리다...”
집에서 성의를 다해 담근 인삼막걸리래.
귀빈한테만 푸는 거라면서 튀긴 은행알과 반건 오징어를 죽죽 찢어 안주로 만들어놓고,
막걸리의 맛을 0.01%를 결정한다는 양철 대접에
가득 따라 한사발 주시는데,
처음 혀에 닿는 맛은 달짝한 막걸리 맛이요
입에서 머무는 맛은 씁쓰레한 효모 찌끼미 맛이요.
넘어가는 목넘김은 미끌미끌 고소한 들기름이요.
속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인삼약초라...


지금까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렇게 맛있는 막걸리는 없었어.
개처럼 일한 뒤 사발로 부어지는 막걸리의 맛은,
20리터 물통에 가득 차 있는 그것도 양이 적다고 생각 될 만큼
술술 잘도 넘어가더라고.
까칠쟁이 고참이 있어서 그 기막힌 맛의 표현을 말로 할 수 없었지만,
나를 비롯한 막내, 그 윗고참 대원들의 표정만으로도
이 진득한 효모국물이 보통이 아니구나라고 읽혀질 정도였으니까.
세잔 정도 스트레이트로 퍼붓고 김치조각에 오징어 둘둘 말아 입에 말아넣으니,
소대장이 막걸리 통을 정내미 떨어지게“탁”닫아 버리는거야.
오전에 자신이 생각했던 양만큼 해내지 못하면,
이 막걸리는 돌려보내겠다고..
아나..
이미 막내고 고참이고 막걸리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나서는,
야박한 소대장의 말에 일말의 토를 달지 않고 의욕에 불타 올랐어.
그리고 그 일을 처음하는 서울 촌놈의 눈에도,
이 노예들의 손놀림이 프로의 그것보다 더 찰지구나 싶을 정도로
일의 속도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 까칠하고 나름 카리스마를 유지하던 고참들도,
일하는 중간중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힘들어 버벅대며 엎어진 막내를 밀쳐내며,
쉴라면 쉬거라 막걸리 막걸리..
처음 그 덮개 두루마리 한 개도 끙끙 거리며 옮기던 키 190의 0.1톤 막내도
어느새 양어깨에 두 개를 짊어지고 빛의 속도로 운반하고 있었지.
이것이 전우애인가 막걸리의 노예인가...
눈구름 때문에 어둑한 날씨와
산과 산사이의 골짜기 바람이 인삼밭을 헤치고 들어오는데도,
말을 잃은 대원들의 이마에 솔방을 만한 땀방울이 배었고,
간간히도 담배 한 대 배어물 휴식도 없이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덮개를 씌어 대며,
인삼밭 주인이 하루를 예상했던 그 일들을
오전 중에 끝마쳐 버리는 성과를 달성했어.
그리고 막 군면제를 받기위해 월드컵 결승전을 치른 국가대표 축구선수마냥
고른 숨 거르며 아까 그 막걸리 먹던 자리를 응시하던 대원들은,
멀리서 놋쟁반위에 갖가지 반찬과 큼지막한 양재에 운반되던 점심을 발견하고,
헌터 맵 가운데에 정찰하는 오버로드를 발견한 마린마냥
스팀팩 맞은 것처럼 점식식사를 향해 달렸지.
주인장의 딸.
군바리 눈에 비친 사회 여자 사람.
한손에 막걸리 드럼을 한통 더 들고,
군고구마 장수 모자를 쓰고 대원들을 바라보며 수줍게 웃는 그 겨울미소.
오 막걸리나~
그래 넌 여자고 너가 막걸리를 들고 있어,
내 오늘 이 인삼밭에서만이라도 여자 비슷하게 생긴 널 사랑하게 될 것만 같아.
양재기에 근사하게 삶겨진 약초 삼계탕.
대원들의 덩치가 큼지막하고 한창 먹을 나이이며,
군바리라는 특성을 가진 것을 이해한 그 인삼밭 주인장은
넉넉하게 사람 인원수보다 두 마리 더 닭 모가지를 비틀었다고 자랑했고,
안들어간 약초가 없다시며 양재기 밑바닥을 국자로 긁어 올려,
진한 육수에 허우적대는 팔뚝만한 인삼 수어개와 은행알, 이름모를 약나무 들을 자랑하셨어.
흡입의 진정한 의미.
닭 열 마리가
아마존에 빠진 들소를 해치우는 피라냐 떼마냥
뼈만 남기고 흡입되어지는 그 광경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리고 대망의 막걸리.
평소 술을 못했지만,
인삼 가루가 동동 떠다니는 그 막걸리를 기점으로
알콜 중독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다며
실없는 소리 지껄이는 우리 고참과
그 웃기지도 않는 말에도 자지러 지게 웃으며
막걸리 수리터를 순식간에 없애 버리는 우리 대원들은
정말 “일할맛”이 무엇인지 느끼고 있었어.
대략 한시간동안 부어라 마셔라하던 대원들.
인근 군부대에서 약 스물다섯명의 군인들이 며칠전에 다녀갔는데,
뭔 일은 안하고 고참은 고참대로 쉬고 앉았고
밑에 일하는 사람도 맘에 들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재해의 수습을 반도 하지 못해서 걱정이였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교도대 특공 사역부대 정예요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의 양을 보여주니 주인장은 신나서
자꾸 딸과 아내에게 뭐가져오라 뭐가져오라 시켜댔어.
한창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먹고 있는데,
저 멀리 산골짜기 중간으로 허옇게 몰려오는 눈구름이 보여.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눈보라다운 눈보라가 인삼밭을 금새 해집고 지나가는데,
아직 씌우지 못한 인삼밭이 내심 걱정되더라고.
기막히는 술도 밥도 얻어먹었겠다,
칭찬도 받았겠다.
대원들은 다시 일어나 일을 계속 했고,
겨울이라 일찍 떨어지는 해 때문에 어둑해 지던 그 산에서
여섯시즈음 일을 마쳤어.
얼굴은 전부 벌겋게 달아올랐고,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못할 만큼 힘들었지만,
밭 주인이 너무 고맙다며,
극구 말리는 소대장을 헤치고
대원들 건빵주머니에 쑤셔 넣어주던 그 홍삼 엑기스를 가장한 농부의 정을 느끼면서
우리는 저마다 엑기스에 빨 때 하나씩 꽂아 넣고 쪽쪽 거리며 막사로 복귀했지.
그날 밤 부대에서는
인삼밭에서 도대체 뭘 쳐먹고 왔길래 애들 얼굴이 다 벌개졌냐고
막사 왕고들이 놀렸고,
유난히 약발이 잘 들어받던 나이인지라,
홍삼엑기스를 빨았던 그 대원 여덟명은
하필 그날밤 틀어주던 애로 비디오를 보며 한국의 전통 명약 인삼의 효능을
몸소 느끼며 잠을 설쳤고,
나의 첫 번째 대민지원은 그렇게 뿌듯하게 지나갔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편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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