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이 모르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그 이름은 '데니 부드맨 T.D.레몬 1900'. 길기도 하지... 그래서 다들 줄여서 1900라고 한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배 '버지니아호'에서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채 발견된 아이. 그 아이를 줍게 된 흑인 노동자 '데니 부드맨'에 의해 아이는 길러지게 된다. 그의 이름을 짓는 과정을 보면 그들(배의 석탄실에서 근무하는 흑인 노동자. 시대적 배경이 1900이었음을 생각하면 내 말이 인종주의로 들리진 않을 것이다.)의 무식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점차 그것이 의도적인 장치였음을 알게된다. 나인틴 헌드레드의 즉흥적 삶의 시작이라고 해야할까? 영화를 보면 알게 되겠지만 나인틴 헌드레드의 삶은 '즉흥'이란 단어로 압축 할 수 있다. 이름부터 그가 연주하는 음악, 그의 결심들... 다른 사람들(육지 사람들)처럼 이게 유리할까 저게 유리할까 그런 고민을 그는 하지 않는다.
어쨌든 선장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어서 지내던 나인틴 헌드레드는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게 되고 동시에 음악이란 걸 만나게 된다. 그리고 피아노도.... 믿기지 않겠지만 처음 보는 피아노를 그는 연주한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 솜씨로. 천재란 이런 사람일까? 누구는 정해진 악보에 맞춰 끊임없는 연습으로 멋진 곡을 연주하지만 나인틴 헌드레드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그대로 피아노에 실어서 연주하고 있다. 단 한번도 자신의 곡이라고 이름 붙인 곡을 만든적이 없고 단 한번도 똑같은 곡을 연주한 적이 없는 나인틴 헌드레드다. 나인틴 헌드레드가 사랑한 여자를 위해 만든 음악이 하나 있지만 그건 음악을 만들었다기보단 연주했다는 표현이 맞을꺼다.
그런 그의 명성을 듣고 재즈의 창시자라고 하는 '젤리 롤 모튼'이 도전해온다. 숨막히는 대결이 예상되었지만 '제리 롤'의 가벼운 승리가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누구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인가? 당연히 승리는 나인틴 헌드레드가 아니겠는가? 여기서 영화의 백미중에 한 장면이 나온다. 신들린 듯 피아노를 연주하고 담배를 피아노 줄에 갖다대자 불이 붙는다. 건방지다는 표현이 딱 맞는 '제리 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것이다. 그의 연주는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재즈란 음악이 매번 연주때 마다 다른 음악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는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글대신 연주로 대신한 것이다. 그의 명성은 이제 하늘을 찌르지만 그는 계속 배에서 연주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이다. 주인공의 뛰어난 피아노 솜씨 외에 끊임없이 우리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왜 나인틴 헌드레드는 배를 떠나지 않을까?" 어찌보면 새로운 도전을 무서워하고 현재에만 안주하려는 속좁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인틴 헌드레드의 대답은 다르다. 자신에게 세상은 너무 큰 세계라는 것이다. 그의 능력으론 세상에서 살아가기 힘들다고... 자신은 배 안에서의 자신에 만족하고 자신의 모든 혼을 배 안에서 쏟고 싶다고. 흔히 하는 멋있는 말로 배와 인생을 같이 하고 싶다라는 게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욕심없이 살아가려는게 나인틴 헌드레드의 삶인 것이다.
뛰어난 영화에 음악까지 어울린다면 더할나위 없이 멋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 영화 역시 영상미와 뛰어난 음악으로 영화는 한 층 업그레이드 된다. 나인틴 헌드레드의 신들린듯한 피아노 연주 솜씨와 그것을 촬영하는 기법은 정말 감동 그 자체이다.
그리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장면. 폭풍우 치는 배 안에서 처음 만나 맥스와 나인틴 헌드레드가 피아노를 타면서 연주하는 장면. 이건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감독의 상상력에 혀를 내둘르수 밖에 없다.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