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세계를 여행하는 재미는 SF영화에 와서 더욱 확대되었다. 영화의 탄생시절, ‘조르주 멜리에스’가 만든 [달세계로의 여행]으로부터 SF의 성공은 이미 예견이 되어 있었다. ‘프리츠’ 랑의 작품인 [메트로 폴리스(1927)]와 [M(1930)]등은 초기의 영화시절부터 미래사회에 대한 예견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1970년대 초까지 공상과학영화는 신기한 구경거리나 외계인 침입 같은 소재에 치중했다. 이 장르가 차지하는 위치도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던 편이었다. 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이 장르는 할리우드 주요장르로 떠오르게 되었다.
특수효과와 현란한 화면과 음향을 이용해 오락적 성격을 강조한 공상과학영화는 SF장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지와의 조우] [빽 투 더 퓨처]시리즈, [스타트랙]시리즈, 그리고 [스타워즈] 시리즈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이 할리우드와 비할리우드 영화를 구분짓는 가장 큰 역할을 한 영화들이다.
이들은 앞에서 말한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상상세계로의 여행을 통해 관객들을 미래사회의 주인공으로 동일화시키고 있다. 특히 [스타워즈]는 ‘스탠리 큐브릭’의 [2010: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부터 이어온 SFX의 특수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고,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란 이런 것이다'라고 영화에 대한 규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래사회나 우주를 배경으로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전망을 그린 영화들도 출현했다.
이들은 유토피아를 꿈꾸기 보다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해낸 것들이 대부분으로 영화 구석구석에 예언과 상징이 숨겨져 있다. 관객은 이 예언과 상징을 유추해 검증되지 않은 미래현실을 현재화할 수 있게 된다. [에일리언]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이 '우울한 미래'를 예언하는 SF영화들은 80년대 이후의 새로운 할리우드 공상과학영화의 한 흐름이 되었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을 비롯해 [매드맥스] [탱크 걸] 등은 황폐화된 지구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어 앞날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년 개봉된 [블레이드 러너]는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의 편집판이고, 92년에 ‘리들리 스콧’ 감독이 직접 편집한 '디렉터스 컷'으로 복원되었다.)역시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묵시록적 영화라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산성비가 내리는 2019년의 로스앤젤레스가 배경이다. 원작 필립 케이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로 만든 양을 꿈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에일리언]과 더불어 ‘리들리 스콧’이 만든 SF영화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미국에서 E.T와 동시에 개봉되었을 당시 E.T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급성장한 반면,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관심도는 급하락 했다. 북미 비평가 협회는 E.T에 대해서는 열광했으나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역시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말았다. 대중과 비평가의 선택의 기준은 단순히 좋고 나쁨을 넘어서서 불온한 것보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을, 진보적인 것보다는 반동적인 것을, 도전적보다는 안전을, 어른스러움보다는 아이다움을, 관객의 능동성보다는 수동성을 선호한다는 것으로 확정된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시하고 있는 영화로서 단순히 상업적으로 실패한 영화로 치부해 버리기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블레이드 러너]를 구성하고 있는 인과율과 시간, 공간을 넘나드는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럼 영화속의 줄거리를 중심으로 블레이드 러너를 살펴보자.
2019년 인간은 우주에 '레플리컨트(Replicant)'라는 복제인간(유전자 공학의 발전을 배경으로 한 거대기업인 타이렐社가 개발한 것이 바로 복제인간 리플리 컨트이다. 타이렐 사장은 나중에 복제인간들의 반란으로 곤란을 겪게 된다.)을 식민지로 보낸다. 그러나, 이들 복제인간은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를 주동한 '넥서스 6'이라는 4명의 레플리컨트들이 지구로 잠입한다. 반란이 일어나자 '블레이드 러너'라고 하는 복제인간 전문제거형사가 레플리컨트를 제거(Retirement)하기 위해 이들을 추적한다.
영화는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려는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지구에서의 반란을 꿈꾸는 복제인간들의 대결로 구성될 것이다. 이것은 이야기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인과율의 가장 첫 번째 조건을 만족시킨다. 아무런 목적 없이 누군가를 없애러 다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서 벗어나, 지구에 대해 배신을 한 반란자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임무를 중심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자와 이에 대항하는 자간의 갈등구조가 영화의 주 골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레플리컨트들은 원인을 제공하는 자이며, 데커드는 이야기의 과정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며, 양쪽의 만남과 대결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 결과가 좋건 나쁘건 말이다.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미래의 L.A도시 전경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우주선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폭파는 계속 일어나며, 눈동자의 장면이 삽입된다. 화면은 전경을 묘사하다가 한 사람이 등장한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뭔가 욕구불만에 찬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밖의 장면과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건물 안의 장면이 서로 대비되면서 나타난다. 눈동자를 묘사한 장면이 계속 삽입되다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과 눈동자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조사자와 피조사간의 대화가 한 건물 안에서 이루어진다.
화면이 바뀌어, 어두운 하늘위로 우주선이 날아온다. 용 그림이 그려져 있는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가 보이는 가운데, 우산을 쓴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카메라는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주선은 또 날아오고, 그 길거리에 앉아 있던 사람은 앞으로 걸어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간다.
'Blade Runner'라 불리는 복제인간 제거전문형사인 데커드는 동양인이 주인인 포장마차에서 한참 설명을 해 보지만, 주인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결국 국수를 시키게 된다. 국수를 먹는데 집중하던 데커드에게로 경찰차가 달려온다. 경찰은 데커드를 어딘가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데커드는 이를 거부해 보지만, 서장이 보냈다는 말에 아무 저항없이 그 말을 따르게 된다.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등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데커드는 어둡고 습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쫓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는 모습이며, 이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나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블레이드 러너가 왜 레플리컨트를 제거해야 하는지는 앞서 말한 '반란'에 대한 죄목이었다. 데커드는 경찰반장처럼 보이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 여기서 네명의 반란자들에 대한 신상명세가 공개된다. 이제 데커드의 임무는 확실해졌다. 이들 네명을 없애는 것이다.
데커드는 네명의 반란자들과 함께 한 사람을 더 처치해야 한다. 복제인간을 만들어 우주 식민지로 보내는데 큰 공헌을 했던 '타이렐' 주식회사 사장의 '긴급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타이렐 주식회사의 '쇼모델'이자, 사장의 비서인 '레이첼'에 대한 주문이었다. 그녀가 레플리컨트인지에 대한 조사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녀의 제거까지를 맡게 된 것이다.
데커드와 레이첼은 타이렐 사장의 저택에서 처음 만남을 갖게 된다. 데커드는 처음 몇 질문을 하고, 레이첼의 동공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복제인간임을 금방 알게 된다. 그러나 데커드는 계속해서 레이첼에게 질문을 한다. 보통 20개면 끝날 질문을 100개 이상 한다. 데커드가 레이첼에게 이렇게 많이 질문을 했다는 것은 뒤에 곧 있게 될 둘의 사이에 대한 일종의 암시이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하나의 열쇠로 작용한다.
데커드가 레플리컨트를 제거해야한다는 기본 전제아래 데커드는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나서는 전개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레플리컨트들과의 조우는 갈등관계를 발전시킨다. 특히 레플리컨트들과 싸움이라도 벌이게 된다면, 이는 절정구조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레플리컨트와 블레이드 러너간의 대결이 어떻게 끝나는가에 따라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커드와 레이첼과의 만남은 첫 번째 레플리컨트와 블레이드 러너간의 만남을 의미하며, 위기상황으로의 전개가 곧 이루어질 것을 관객에게 설명한다.
데커드는 레이첼을 복제인간으로 판명하고도, 처음부터 그녀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은 영화의 끝까지가야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 해답은 영화속 갈등구조를 해결하는 해결점이 되기 때문이다. 데커드는 피아노가 있는 방안에 앉아 레이첼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사진을 펴놓고 사진 속의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본다.
잠시 유니콘이 등장하는 꿈을 꾸고 깨어난 데커드는 사진을 보다가 음표가 그려져 있는 악보를 발견한다. 그리고 한참을 보던 데커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을 들고 방을 가로질러 나간다. 쇼파를 밟고 기계의 전원을 올린 데커드는 쇼파에 앉아 아까 사진 속의 그림 속에서 한 그림을 찾아낸다. 계속 클로즈 업 되다가 남자와 여자를 발견하고 그들을 찾아나선다.
동양인(일본인)이 운영하는 한 가게에 들어간 데커드는 비늘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뢰를 맡기고, 뱀의 비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데커드는 나이트클럽을 찾아가, 뱀쇼를 추는 한 무희(조라)를 만난다. 두 번째 레플리컨트와의 만남이다. 조라는 샤워를 다 마치고 난 후 갑작스런 공격으로 데커드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주인공은 죽지 않는 법. 그 둘은 쫓고 쫓기는 관계가 시작된다. 조라는 데커드를 피해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로 뛰쳐나가 도망을 간다.
데커드는 조라를 제거하기 위해 총을 들고 인파속을 헤짚고 다닌다. 건물앞에서 목표물을 발견한 데커드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복제인간을 죽이는 것이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의 임무인 것이다. 총을 맞고 쓰러진 조라는 결국 죽게된다. 블레이드 러너의 첫 번째 임무완료이자 레플리컨트의 첫 번째 죽음이다. 데커드는 시체를 담당 경찰에게 넘기고, 다음 임무를 수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조라의 시체를 본 또 하나의 레플리컨트인 레옹이 나타난다.
분노에 찬 표정으로 나타난 레옹과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데커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레플리컨트와 블레이드 러너간의 세 번째 만남이고, 두 번째 레플리컨트의 죽음이다. 그러나, 레옹의 죽음은 데커드의 임무수행이 아니라, 같은 복제인간인 레이첼이 급한 상황에 몰린 데커드를 돕기 위해 쏜 총 때문이었다. 즉, 레플리컨트가 레플리컨트를 죽이고자 하는 데커드를 살리기 위해 같은 동족을 죽이게 되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데커드와 레이첼의 관계에 대해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다.
우주 식민지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잠입한 레플리컨트들의 리더 격인 로이는 복제인간이다. '타이렐'주식회사가 만들어낸 결정품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공포속에서 항상 시달려야 하며, 인간보다도 인간다운 성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오리온 전투에 참전한 이후 극도로 불안한 심리를 갖게 되었다. 지구인 과학자가 만들어 준 눈은 전쟁의 참상을 보았으며, 타이렐이 만든 육체와 정신에는 황폐화되고, 파괴화된 기억밖엔 없다.
로이와 프리스는 한 과학자의 집을 찾아간다. 그 사람은 레플리컨트에게 눈을 납품하던 사람이었다. 즉 타이렐 주식회사의 하청업체였던 것이다. 로이는 그 동양인 과학자가 타이렐이 천재라는 말을 듣고 흥분한다. 결국 그 과학자는 레플리컨트에 의해 '제거'된다. 로이는 조라와 레옹이 죽은 이후에 남아있는 레플리컨트인 프리스와 함께 행동한다.
프리스는 길거리에서 유혹한 조로증에 걸린 청년(주-지구의 상황은 프리스의 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리스는 조로증에 걸린 청년과의 대화중에서 "그래서 지구에 남았군."이란 말을 꺼낸다. 그리고 과학자 역시 완벽한 신체를 갖고 있지 않다. 왜소한 체격에 동양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황폐화된 지구는 소외층이거나, 완전하지 못한 장애인 계층을 남겨놓았다. 이는 자본만이 살아남은 자본주의의 역효과이기도 하고, 이념을 제대로 체제에 옮기지 못한 사회주의의 패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리플리컨트들의 반란은 강권을 가진 지구인에 대한 반란이므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지구에 남아있는 권력의 소외층은 리 플리컨트들과의 연대가 불가피했으나, 연대하지 않는다. 지구에 남아있는 인간들은 모두가 똑같음을 증명하는 것이다.)의 집으로 들어간다.
로이, 프리스, 조로증의 청년은 타이렐의 저택을 찾아간다. 타이렐과 독대를 하게 된 로이는 그로부터 창조의 비밀을 듣게 된다. 많은 레플리컨트들 중에 가장 뛰어난 부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로이라는 점과 왜 복제인간을 만들어야 했는가에 대한 대답까지 듣게 되었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죽게 되지. 노화는 늦일 수 있지만, 결국 죽을 수밖에 없어."라는 타이렐 사장의 말을 듣고, 로이는 슬픔에 젖어든다.
눈물을 흘리고, 자기를 만들어준 타이렐에게 안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다. 왜냐하면 타이렐은 자기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심어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로이는 타이렐을 살해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 제거된 것이다. 이는 창조주에 대한 반란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미래사회에 있어 신에 대한 저항없이는 신이 가진 강권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암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아무런 대책없이 미래문명을 과신한다면, 인간의 손으로 만든 어떤 것인가에 대해 인간의 존재 또한 무사할 수 없다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자신들의 동료인 조라와 레옹을 제거한 블레이드 러너와의 '한판 승부'만이 남았다. 갈등이 고조되어, 영화의 절정단계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데커드가 레이첼의 도움으로 두 번째 임무를 마친 후 프리스와 로이가 거주하고 있는 장소 로 잠입한다. 프리스가 데커드를 공격해보지만, 프리스는 결국 데커드의 총에 맞아 심한 고통 속에 죽어간다. 가장 어렵게 죽어가는 프리스는 가장 살고자 했던 자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데커드에겐 세 번째 임무완료일 뿐 차갑도록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로이는 프리스의 죽음으로 슬픔에 젖지만, 그의 죽음으로 인해 생존이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이는 데커드를 죽일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데커드를 살려준다. 충분히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고, 오히려 죽을뻔한 데커드를 살려준다. 그가 죽어가면서 하는 대사는 이 영화의 위기를 마무리 짓는다. 왜 레플리컨트가 인간에게 대항했는가와 복제인간의 존재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하게된다.
그를 통해 관객은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파악하게 되고, 지금까지 얽어왔던 이야기구조를 하나로 풀어놓을 수 있게 된다. "공포 속에서 사는 기분 어때? 노예 속에서 사는 기분이야... 기억은 모두 사라지겠지? 이제 죽을 시간이야(Time to Die)."
한편, 데커드와 레이첼은 조사를 하려는 사람과 조사를 받는 사람으로 만나게 된다. 이 관계는 영화의 끝까지 계속된다. 데커드는 레이첼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감정의 상태를 발견하게 되었고, 둘사이에 사랑이 존재함을 표현한다. 특히 레플리컨트가 인간보다도 더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은 레이첼이 데커드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레이첼은 끝까지 자기는 복제인간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레옹을 죽인 이후, 급속하게 데커드와 가까워지면서 그 사실은 복잡한 미로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진짜로 레이첼이 복제인간인가?
그러나, 레이첼은 수동적 여성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도대체 레이첼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위기에 처한 데커드를 위해 방아쇠 한 번 당긴 일이 그녀가 한 일 전부이다. 물론 데커드의 감정적 이완을 돕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데커드가 감동을 받고 레플리컨트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로이때문이지 데커드때문은 아니다. 더군다나, 데커드의 성적인 대상이 되는 것은 더욱 그녀를 수동적으로 만들게 된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줘... 키스해 달라고 해."라고 주문(?)하는 데커드의 요청에 그녀는 그대로 따라한다. 그리곤 사랑한다.
당시 80년도 영화에서는 여성은 수동적으로 표현되었고, 영화 속 눈요기의 하나일 뿐이였다.(79년에 개봉한 에이리언이라는 영화는 그만큼 그 당시로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영화라는 평을 받았던 것이다.) [스타워즈]의 레이아 공주만큼이나 하는 일없이 예쁜 얼굴만 내밀고 있다는 점에서 기분나쁜 캐릭터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레이첼이 주거하는 공간은 첫 번째 레플리컨트를 찾게 되는 단서를 제공한 사진을 얻게 되는 장소이고, 마지막 데커드가 레이첼을 데리고 영화를 마무리하는 해결공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블레이드 러너]는 이러한 인조인간과 복제인간, 그리고 기계보다 못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미래사회의 도시구조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미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에일리언(79)]에서 컴퓨터가 통제하는 건조한 미래사회를 암울하게 그리는 데 성공한 바 있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어둡고 음침한 도시구조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설정하는데, 그리고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함을 복제인간과 인간과의 갈등 속에서 뿐만 아니라 차가운 도시구조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타이렐의 저택이나, 조로증에 걸린 청년의 집, 그리고 비가 계속해서 내리는 길거리 등은 우리가 꿈꿔왔던 분홍빛 미래사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이 암울한 미래도시는 안드로이드와 인간과의 대립상황을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 도시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존재하며, 인과율의 원인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는 37년도 후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 모두들 암울한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로 해석하며 분석했지만 앞으로 10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떠한 의미로 재해석될지 10년 후의 미래를 그리는 [블레이드 러너]를 직접 경험해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