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공포영화의 장르가 별로 없었으며 공포에 대한 스토리도 1931년[미국의 토드 브라우닝 감독, 벨라 루고시 주연]의 드라큘라가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것이 전부다.사실 이밖에 프랑켄슈타인이나 늑대인간과 좀비와 같은 류의 공포물은 사실상 공상영화와도 같은 류로 분류되어 그렇게 큰 흥행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것도 영국의 괴기소설가 B.스토커의 소설 '흡혈귀 드라큘라'를 영화와 한것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소설이니 만큼 그렇게 흥행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차후에 1992년 드라큘라를 제조명하면서 만든것이흥행을 성공하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 일어날수 있는 공포에 대한 영화의 흥행은 1973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 가 있었다. 이 영화 또한 성공 할수 있었던 배경이 실제 있을수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상영 당시 화제는 극장 안에서도 발생했다. 충격적인 화면에 비명을 지르는 것은 예사였고(요즘은 흔한 일이지만 이 당시 극장에서 소리를 지르는 행위는 비신사적인 행위로 욕먹거나 나가라고 했다), 토하거나 졸도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또한 다수의 여성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기도 했으며, 극장 앞에는 늘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순식간에 톱뉴스가 되었고, 각기 다른 삼사의 네트워크 뉴스가 한날 한시에 이 영화에 대한 얘기를 보도한 적도 있었다. 종교와 의학계의 권위자들은 이 영화에 대해 토론을 벌였고,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세인트 루이스 병원에서의 심령 주술 기록을 점검했다. 1949년에 행해진 이 주술은 한 신부가 환자를 위해 의사들의 입회 하에서 했던 것이다. 개봉 당시 1억 6,500만불을 벌어들였다.
그 만큼 사람들은 실제 있을수 있는 공포를 더 실감나게 느낄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슈와 사건 속에서도 이 영화는 70년대 개봉한 영화 중 '죠스'와 '스타워즈'의 아성을 따라 잡지는 못했다.
그럼 죠스라는 영화는 어떻게 탄생 되었는가...
식인 상어를 소재로 한 해양 공포 영화의 대명사로서, 헐리웃 영화 사상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한 대흥행작이자, 스필버그 감독의 첫 상업 영화 데뷔작.
흥행적인 요소 외에도 이 작품은 "관객을 긴장으로 몰아넣는 영화적 구성에 있어서는 하나의 완벽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묘하고 극적인 구성과 카메라워크를 가진 뛰어난 영화였다.
서서히 다가와서 비명이 저절로 나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길이 20피트의 거대한 식인상어의 모습, 얼어붙는 긴장감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휴식을 절묘하게 교차시키는 연출의 기법, 섬뜩하게 울리는 배경 음악, 3인의 주연 배우들의 완벽한 조화, 극적인 긴장감과 현장감을 보여주는 촬영과 편집 등이 한데 어울려 멋진 해양 드라마의 걸작을 창조했다.
해양소설 전문 작가 피터 벤칠리(Peter Benchley)가 작은 해변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는 거대한 식인 백상어의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는 필치로 전개시킨 소설 '죠스'는 550만부가 팔린 대 베스트셀러였다. 헐리우드의 저명한 제작자 팀인 리차드 재너크(Richard Zanuck)와 데이빗 브라운(David Bronw)은 이 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17만 5천 달러에 사들였다. 처음에는 벤칠리 자신이 직접 각색을 하기로 계약을 했다가, 도중에 각본은 다섯번이나 수정되면서 칼 고트리브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제작비로 1,200만 달러가 예정된 이 작품의 감독으로는 당시에 쟁쟁한 이름의 감독들을 물리치고 불과 26살의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가 발탁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신예 감독들 중에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고, 이러한 그의 재능을 인정한 재너크-브라운 팀은 그를 과감히 기용한 것이었다.
촬영은, 스필버그의 고집대로 실제 해안 마을에서 로케이션을 감행했다. 그곳은 마사즈 바인야드(Martha's Vineyard)라는 곳으로서, 처음에는 마을 환경이 파괴될 것을 염려해 소극적이었던 주민들도 이 영화가 히트하면 마을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될것이라는 유혹에 동의를 해주었다.
훈련이 잘된 20피트 길이의 거대한 백상어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모형 제작자 조 알브스는 특수효과 전문인 로버트 A. 매티(Robert A. Mattey)를 기용하여 인조 상어를 제작했다. 그는 디즈니의 54년 SF 걸작 에서 잠수함 노틸러스호를 공격하는 거대한 오징어를 창조했던 사람이다.
매티는 '브루스(Bruce)'라는 이름의 인조 상어 3마리를 만들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유압식으로 작동되는 이 상어들은 각각 1.5톤 무게에 15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었다. 이를 동작시키는 데에는 스쿠바 다이빙 장비를 갖춘 13명의 기술자가 필요하였다. 우선 2마리는 지느러미만 출현하는 장면에 사용되었는데, 오른쪽과 왼쪽 각각 한마리씩 제작된 것이다. 반대편 쪽이 도려내어 기계 장치가 훤히 보였기 때문. 당시 기술로는 상어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영화 제작 초반에는 많은 애를 먹었다.
많은 기술적인 어려움 등을 극복, 촬영을 마치고 75년 여름에 개봉되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가 몰아친 '상어 증후군'은 세계 각국의 해수욕장 수영객 수를 줄여버렸고, 상어 사냥이 새로운 인기 스포츠로 부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세계 영화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물로 부상했고, 자신의 소신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을 이룸으로써 이후의 명작들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그해의 흥행수입만 약 1억 3,000만 달러를 기록해 헐리웃 사상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한 작품이 되었고, 2004년까지의 역대 랭킹에서 19위를 차지하고 있다.(랭킹 20위권중에 70년대 작품은 죠스와 스타워즈 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한 명의 스타는 바로 음악의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이다. 상어의 습격을 예고하는 소름끼치는 불협화음의 음악으로 긴장감을 극적으로 높히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해 아카데미상에서는 작품, 녹음, 음악, 편집의 4개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은 라는 막강한 상대에게 내주었지만 나머지 3개부문은 전부 차지했다.
영화 는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에서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미 소설을 읽은 사람들도 흥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고 영화만이 가지는 매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한 스필버그의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우선, 인물 구성에 있어서 해양학자 후퍼의 캐릭터는 원작과 완전히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원작의 후퍼는 상당히 고뇌하는 청년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밝고 명랑하기만 하다.
또 원작의 후퍼는, 도시에서 살다 남편을 따라온 때문에 욕구 불만인 브로디 서장의 아내 엘렌과 불륜의 관계를 맺지만, 영화에서는 완전히 생략되고 엘렌은 현모양처로만 나온다. 또한 상어를 직접 보기 위해서 들어간 쇠창살 우리 속에서 상어에게 죽고마는 후퍼를, 영화에서는 해저로 피했다가 라스트에 다시 살아나오도록 했다. 상어를 마지막에 처치하는 방법과 퀸트의 죽음도 다르다.
영화에서는 퀸트가 상어에게 물려 죽고 상어는 산소 탱크 폭발로 죽지만, 원작에서는 헤엄을 계속 치지않으면 질식해버리는 상어의 생리적 특성을 이용해 부력이 강한 통들을 작살에 매달아 상어 몸에 꽂히게 함으로써 상어가 지쳐서 죽도록 되어있다. 소설속에서 퀸트의 죽음은 통을 매단 밧줄에 발이 얽혀서 상어와 같이 바다속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처음 시작 장면에서 전라로 수영을 하다가 첫 희생자가 되는 아가씨 역을 한 배우는 수잔 백크리니(Susan Backlinie)라고 한다. 그녀는 한장면 찍고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것도 전라수영 30여초 만을 찍고..)
헐리우드의 유명한 관광 코스인 유니버살 스튜디오 투어(Universal Studio Tour)의 코스에, 인공호수 하나가 추가되고 여기에 애미티 마을의 실물크기 세트가 세워졌다. 그리고 '브루스'가 직접 출연하여 관광객들을 즐겁게(놀라게) 해주도록 하였다. 관광객들이 탄 차가 호수 위를 얕게 지나가면, 별안간 상어가 바로 옆에서 튀어올라 간담이 서늘해지는 쇼크를 맛보게 된다.
해양 전문가들은 이 영화 는 우리 시대 가장 요란한 허풍이며 거짓말이라고 한다. 해마다 전세계에서 상어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은 약 100여 명, 그 중에서 사망한 사람은 20여 명 정도이나 한 해 수 억의 사람이 바다를 찾는다고 할 때 바다에서 상어에게 물릴 확률은 1/10만로 이 수치는 자신이 집에서 자동차를 타고 해안까지 사고없이 무사히 갈 수 있는 확률보다도 더 희박한 것이다. 전작 상어의 입장에서 해마다 식용으로 상어가 수 없이 잡히는 것을 볼 때 진짜 무서운 것은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존 윌리암스의 테마 음악은 마치 효과음처럼 긴박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앨범은 당시 디스코 뮤직의 열풍속에도 순수 영화음악으로서는 보기드물게 앨범 차트 30위까지 올라갔다.
이 후 영화계에서는 센세이션이 일어났다. 영화 제작비 증가와 블록 버스터 라는 신종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이것으로 인해 블록 버스터 영화들은 모두 여름에 개봉되기 시작하였다. 죠스라는 영화는 해수욕장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잘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영화들도 죠스와 같이 성공하고 싶어서 같은 계절대를 노린것이다.)
하지만 죠스라는 것이 가지는 영화속 생각및 의미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크다. 영화 죠스가 개봉할 당시의 배경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과거 행적등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유태인이라는 서러움을 받으며 대학생활과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스필버그는 덩치큰 아이들에게 많이 맞기도 했다. 또한 미친 영화광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까지 영화에 집착을 하기도 했다.
어두운 곳에서 보이지 않은 엄습한 공포 이것은 냉전사회가 내놓은 가장큰 공포라고 할수 있다. 다음에 올릴 에일리언이라는 영화 평을 읽으신다면 그 이야기와 일맥 상통하는 경우기도 하다.
같은 70년대 배경으로 냉전시대적 아픔을 공포로 승환해 나타내는 것이다. 외부에서의 공포... 절대적 타협이 되지 않는 존재를 상어로 그려낸 것이다. 이를 물리치는 것 또한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국가의 경찰이라는 점이 이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잘 묘사해 주는 것이다.
일반 주민들은 바다(세계)는 평안한줄 알고 모두들 뛰어든다. 또한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보트(민주주의 사상)등은 죠스에 의해 무참히 짖 밟히고 죽어간다.
첫장면에서도 벌거벗은 여성이 남성이 수영하기 싫다고 하지만 혼자 바다속으로 뛰어들어 수영하다가 죽음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페미니즘에 빠져있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70년대에 점차 커지기 시작한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개념이 여성들에게 가장 먼저 깊게 퍼지면서 이런 장면이 나오기도 한것이다.
자유를 갈망하며 세계로 뛰어드는 사람에게는 그 당시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것을 미국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미국의 안에서는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메시지 또한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이 영화의 요지이기도 했다.
저번에도 이야기 했지만 영화는 그 시대의 사상과 시대적 배경을 함축해 놓은 메시지와 메신져이다. 죠스라는 영화를 플레이 하는 순간 이제 여러분도 공산주의의 무서움을 느끼실 준비가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