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남자] 예술적 시각

카케찌 작성일 06.08.24 14:04:44
댓글 3조회 1,899추천 7
115639588210450.jpg

- 영화내공 : 어중간


서양에서 바라보는 예술의 시각
그리고 동양에서 바라보는 예술의 시각.

김기덕 감독의

서양에서 바라보면 나쁜남자라는 영화는 굉장히 자극적이고 비열하며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한 예술영화다. 두얼굴을 가진 야누스라고 표현해야
옳을까... 선화라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천국에서 지옥을 끌어들이듯 낚아채어
가장 밑바닥 인생이라 불리우는 창녀로 만들고 거울로 만들어진 밀실에서 선화가
하는 행위를 엿보며 자괴감에 빠진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일까?
일단 겉으로 보면 선은 선화다. 악은 한기이고..
하지만 껍질을 벗기듯 속을 들여다 보자 선화의 마음 속에는 욕망과 추잡함이 가득하고
한기의 마음은 맑은 영혼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다면 맑은 영혼을 가진 한기는 왜 선화를 밑구덩이로 데리고 갔는가?
그것은 선화가 한기의 맑은 영혼을 못보고 겉멋에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욕망에 가득차 있는 선화는 맨 처음에는 한기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고, 한기는 선화를
막는 존재로 표현된다. 다시 빛으로 돌아가고픈 선화와 그러한 선화를 막는 어둠속에 사는
한기. 하지만 점차 한기의 맑은 영혼에 동화되어 선화는 한기에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영화에서 한기가 위기에 쳐했을 때 선화가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절대로 죽어서는 안된다고 외치는 선화의 목소리.
그리고 위기에서 벗어난 한기는 선화를 원래 있던 빛의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재회하는 한기와 선화. 그리고 다시 선화는 어둠에 몸을 맡긴다.

왜 하필 바닷가일까? 그것은 바닷가가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이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의 경계선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선화는 왜 다시 어둠에 몸을
맡긴 것일까? 세상에서 바라보는 관점에서 빛은 우리가 평상시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고,
어둠은 한기가 살아가는 뒷골목길 인생을 말한다. 하지만 빛이라 불리는 생활은 겉에만
빛으로 감싸고 속은 욕망에 넘쳐나는 추잡한 모습이며, 뒷골목길 인생은 겉만 추잡하고
속은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빛과 어둠의 모습이다.

이렇게 보면 나쁜남자는 예술영화가 많다. 수많은 장면에서 수많은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사상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보단 서양에서 더욱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나쁜남자.
성경에서 말하듯이 조물주에게 반역을 한 대천사의 모습을 인간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날개 뜯힌 천사는 지상에 추락하여 욕망에 휩쌓여 타락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욕망을 벗어던지고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 표현한다. 그것은 시점의 차이일 뿐이다.
반역과 혁명처럼...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반역이 된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보면 성공하면 반역이고 실패하면 혁명이 되는 것이다.
시각과 관점의 차이.

하지만 내가 보았을 때 나쁜남자는 처절하게 추잡한 영화이다.
김기덕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몇줄안되는 대목에서 나온다.
빛=어둠, 어둠=빛 그리고 야누스.
그것은 김기덕 감독의 모든 작품에서 나온다. 사마리아에서 그리했고, 빈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섹스는 욕망이며, 성스러운 행위이다. 그것이 나쁜남자에서 표현하는 사상이다.
섹스. 동양에서는 음양합일이라 불리며, 남성과 여성이 결함하듯 하늘과 지상이 만나고
우주가 조화로워진다고 풀이하는 것이다. 조화가 이루어지면 하늘은 비를 뿌리고,
땅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난다. 이것을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고 하며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섹스는 성스러운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나쁜남자에서 나오는 섹스는 추잡한 섹스일 뿐이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조화로운
사상에 반하는 그저 욕망에 충실한 기계적 반복적 행위일 뿐이다.
그것은 마지막에 트럭에 채우고 돈을 받으며 다른 남자에게 베푸는 행위에서도 말할 수 있다.
좋게 표현하면 나눔의 미덕. 하지만 결국은 추잡한 행위일 뿐이다.
거기에서는 음과 양의 조화도 없으며, 빛과 어둠의 경계도 없다. 욕망에 충실할 뿐이고,
돈에 충실할 뿐이다. 사랑도 없으며, 애정도 없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도 없으며
있어도 밟아 죽이는 잔혹한 행위이다. 나쁜남자는 그러한 영화이다.
철저하게 한국의 사상에 반하며, 자유로운 여성이 아닌 오히려 그 시대보다
더 억압적이고 노예적인 표현이다. 여성이 바라보면 불쾌한 시선이 바로 그것이다.
나쁜남자에서 나오는 선화는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시각보다는 그저 욕망이란 이름을
대표하는 표현일 뿐이다.

야누스의 두얼굴. 이중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이 언어인 것처럼
이 나쁜남자는 이중적 영화이다. 하나는 예술이고, 하나는 추잡하다는 것이다.

난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저급한 영화인지는 모른다.
그저 내가 봤을 때 좋으면 예술이고, 나쁘면 저급이다.
서양적인 평가도 없으며, 서양에서 좋은평가를 받았다 할지라도 내가 봤을 때
아니면 저급한 영화일 뿐이다. 가끔 전문가들의 평가를 읽을 때면
이들이 한국사람인지 외국사람인지 헷갈리 때가 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항상 객관적이라 말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외국에 영향을 받은 주관적 평가같다.
카케찌의 최근 게시물

영화리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