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300-가슴을 뒤흔드는 야성

NEOKIDS 작성일 07.03.19 00:35:42
댓글 13조회 1,825추천 36

117423251441331.jpg


 

 

[스포가 좀 있습니다. 유념해주세요.]

 

 

좀 뜬금없는 서두이지만, 오늘 영화잡지를 사서 보다보니 하얀거탑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얀 거탑의 원작과 일본드라마가 훨씬 더 낫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후로는 선입견이 생겼었지요. 네가 훌륭하면 얼

 

마나 더 훌륭하겠니. 그래봤자 누군가는 고민한 것들이고 누군가는 이미 해놓은 것들이잖아. 이런 선입견은 좀처럼

 

가시질 않죠.

 

 

그런 면에서, 원작이 있는 것들은 개인적으로 원작을 더 쳐주는 편입니다. 해리포터니 뭐니부터 시작해서 그럭저럭

 

그런 편이었죠. 하지만 씬시티를 본 이후, 그것에 대한 만화적인 구도를 미리 짜놓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고 나서야, 후에 그 작품의 원작을 접해볼 기회가 생겼죠. 그의 전설은 거의 로보캅2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더군요. 처음엔 데어데블과 엘렉트라, 그리고 배트맨 나이트 리턴스로 떠오르면서 받은 각광, 로보캅2 제작에 참여

 

하면서 얻은 좌절, 그리고 씬시티에 이르러서 획득한 완전한 독립.

 

 

그런 사전정보가 없었을 때 씬시티의 원작을 접한 느낌은 그랬습니다. 프랭크 밀러 이 사람은 그 자체로도 대단하지

 

만, 다른 사람들을 더욱 대단하게 만들어줄 역량을 지녔구나, 라는 식의. 즉, 원작으로든 영상으로든, 작품 자체의 원

 

류적 퀄리티를 그대로 지켜낼 수 있는 그런 분위기랄까요....

 

 

실제 300, 프랭크 밀러 원작도 지금 양장본으로 큼지막하게 출판되어 서점에 걸려 있습니다. 가격도 그다지 부담은

 

없죠. 18000원 정도? ㅋㅋㅋ~ 하지만 전의 씬시티를 접하고 나서도 느낀 것이, 그의 그래픽 노블은 적어도 비주얼을

 

욕심내보고픈 사람들에겐 거의 길을 알려주는 성전이나 마찬가지의 느낌이겠죠. 씬시티에서 로드리게즈가 왜 그렇

 

게 집착했는지 알만도 합니다. 쿠엔틴타란티노, 로드리게즈, 모두 비주얼이 주는 어떤 흥겨움에서 자신들의 강점과

 

쌓아온 요소들을 드러내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리고 그건 잭 스나이더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전정보들을 접하면서 한편으로 걱정되었던 것은, 이것이 그에 대한 찬양시는 될지언정 작품이라는 것에서

 

는 프랭크 밀러의 입김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라는 부분도 문제겠지요. 마치 슈퍼맨 리턴스의 브라이언 싱어가 리

 

차드 도너의 슈퍼맨 1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듯이. 그건 이 300영화 도중 프랭크 밀러가 이런 장면을 이렇게 바꿔

 

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잭 스나이더를 비롯한 제작진들이 아냐, 안돼. 그대로 가자. 하고 밀어붙였다는 에피소드의

 

맥락에서도 읽혀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적어도, 브라이언 싱어식 실패의 재탕 따위는 아주 쓸

 

데없는 걱정이었구나, 라는 것이었죠.

 

 

프랭크 밀러의 비주얼이 가진 강점은 빛입니다. 그 빛이 보여주는 음영의 미학 자체로, 그는 그림의 완성도도, 그리

 

고 영상매체가 가질 수 있는 상상력의 공간을 뭉개지 않는 정도의 여백도 함께 획득한다는 데 그 독특한 입지가 있습

 

니다. 비주얼을 욕심내는 사람들에게 성전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됩니다. 그림과 그림의 연결

 

선상에서 잭 스나이더와 그의 편집진은 짜낼 수 있는 한계까지 짜내어 영화를 만들었다는 고심의 흔적이 역력합니

 

다. 중요한 장면들은 반드시 프랭크 밀러의 장면들을 차용하면서도 장면의 연결선상에서는 확실히 그들만의 상상력

 

과 연출력을 보여줍니다. 제1차 접전 장면에서 레오니다스가 전진하면서 페르시아 병사들을 베어나가는 장면들의 롱

 

테이크나, 이후 중반 장면에서 두 병사의 전투 장면 등이 그 지점의 가장 백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만이었다면 그것은 그래픽 노블<300>과는 큰 차이가 없겠죠.

 

 

원작 그래픽 노블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해 제작진은 원작이 가진 빛이라는 무기 이외에 두 가지의 꼼

 

수를 씁니다. 하나는 색, 하나는 슬로모션의 적절한 차용. 모노크롬질의 투박하고 먼지가 낀 화소입자가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벌어지는 전투의 비쥬얼은 사상최강이라고까지 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날것이 가지는 장중한 무

 

게감을 드러냅니다. 게다가 원래 총이 아닌 맨손의 격투는 어떻게 합을 짜고 편집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만큼 느낌이

 

극대화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있다는 것에서, 300은 기술적으로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스펙타클, 원래 영화가 가진 힘이 화면 내에서 미친듯이 진동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만약 파이널판타지 어드밴스칠드런 류의 빠른 템포만을 선호하는 분이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

 

겠습니다만....) 게다가 씬시티에서는 구도와 빠른 움직임으로 승부를 보였던 밀러식 비주얼의 현현법을 슬로모션이

 

라는 기존의 방법으로 타개한 것도 높이 사줄만한 아이디어였죠. 정지화면과 움직임의 그 중간지대에 위치하면서 영

 

상도 들어맞고, 그래픽노블의 성향도 들어맞는 그런 비주얼감.


 

하지만 작품의 비주얼만으로는 프랭크 밀러나 잭 스나이더의 문제들이 완만히 해결되어지진 않습니다.

 

 

확실히 스파르탄들의 300명 희생은 그 나름대로 장엄하고 힘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이

 

용되는가겠죠. 이데올로기라는 케케묵은 시각에서 보자면, 이 300은 많은 논란거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

 

닙니다. 입이 떡 벌어지는 비주얼의 뒤로 뭔가 불편했던 감정이 솟았던 건 그 지점입니다. 스파르탄들의 모든 단점에

 

도 불구하고 그들의 장엄함을 부각시키느라 안타고니스트가 되는 크세르크세스의 페르시아 집단들은 죄다 방탕하

 

고 악한 분위기를 풍겨야만 하는 비극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이란에서는 자신들의 선조에 대한 모독으로 300을 상영

 

금지조치했다는 뉴스까지 접했습니다. 차라리 자유 운운하는 것보다는 국가 운운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었을

 

지도 모르고, 시대설정 상으로도 자연스럽지 않았나 하는데, 자꾸 자유와 영광 만을 부각시킵니다. 그런 대사들은 아

 

무리 좋게 봐줄래도 이데올로기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죠.

 

 

또 한가지, 300너머에 관련된 또다른 어두운 점 하나를 느끼게 됩니다. 그건 영화 자체에 관한 것이죠.

 

 

두 개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하나의 기사는 영화평론가들이 재밌게 보는 영화와 관객들이 재밌게 보는 영화

 

의 괴리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 또 하나의 기사는 영화의 방식이 점점 더 복잡한 스토리라인보다는 한 큐에 해결되는

 

단선적인 스토리흐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300은 그 단선적인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모범적인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이상 간단할 수가 없어요. 거

 

기에다 스파르탄들의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그림자에 겹칠 수밖에 없는 그 이데올로기, 그 때의 그리스문

 

물로 대표되는 서양문물의 수호신이자 우월감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하지만 이런 설정도 어쩌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합니다. 페르시안들은 스파르탄들이 '저 야만인들을 죽이자'라고 말할 때의 그 야만인이 아닌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가진 정복자로 말이죠. 정복자가 합리성을 가져봤자겠지만, 그래도 사실 좋은 편과 나쁜 편이 싸우는 것보

 

다는 좋은 편과 좋은 편이 싸우는 것이 더 강렬한 스토리가 되니까요. 그것부터 시작해서 이제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가 점점 이런 쪽으로 선회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기우도 생겨나고 말이죠.


 

300은 간만에 영화가 잊고 있던 야성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야성에 압도되어 하지만 그 뒤의

 

배경에 그들이 깔려하지 않아도 깔려있는 것들은 관객의 판단에 맡겨야겠죠.

 

 

 

 

 

 

사족 1.

거기다 그 페르시아에 묘하게 미국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도 재밌었죠. 저항하는 스파르탄들도 미국인의 단면이지

 

만, 그에 맞서 압제하려는 페르시안들도 미국의 단면이라고 드는 생각이 참 묘했습니다.

 

 

사족 2.

개인적으로 김훈씨의 소설 칼의 노래 시나리오를 끄적거려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기술적인 도움이 많이 되는 장면들

 

이 보여 아주 흐뭇했죠.

 

 

사족 3.

여성학쪽에서 그렇게 씹어대던 마초성의 표현이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반갑기도 합니다.

 

남성성=마초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상당히 궁금해지네요.....ㅋ

 

 

사족 4.

실제로 그리스 쪽에서 연합국가간 전쟁이 일어날 때는 아주 간단합니다. 전쟁할 사람들만 모여서, 장소 정해서 들판

 

에 모인 후, 창과 방패로 만든 진이 정면충돌하는 방식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니 전쟁은 하루만에 끝나는 경우도 허

 

다하지요. 그런 면에서 아마도 크세르크세스 이전의 제1차 페르시아 침공때 충격을 받은 것이 많았을 거라는 상상도

 

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죠. 하지만 더욱 재밌는 건, 실제로 스파르타는 그렇게 호전적인 힘을 기르는 국가풍에도 불구

 

하고 자신들의 힘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했을 뿐 실제로 전쟁 등의 형태로 휘두르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겁니다. 이 점

 

은 도널드 케이건 교수의 전쟁과 인간이라는 서적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아, 그리고 원래 스파르타는 왕이 둘이라네

 

요. 왜 다른 왕은 가만히 있을까, 라는 것도 상당히 궁금하구요.....(아니.....그 놈이 왕이었었나......의회에서 깔짝대

 

다 왕비한테 칼침맞는.....)

 

 

사족 5.

 

아니! 반지의 제왕 섭정의 둘째 왕자가 지옥 문턱까지 갔다오더니 피맛을 알았나.....

 

어느 사이 스파르탄이 되었단 말이냐! ㅋㅋㅋㅋ~에오윈 공주는 어쩌고~

NEOKIDS의 최근 게시물

영화리뷰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