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다크나이트 리뷰라기보단 고 히스레져 에대한 글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하 글은 egloos에서 활동중인 wideawake님의 블로그 ordinary story에서 발췌한 글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보면 벌써 올해 초였던가, 놀란의 새 배트맨에 대한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할 때에, 난데없는 부고장이 턱 날아들었다. 그가 새로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무시무시한 소문들이 조금씩 비어져나올 무렵이었기에 더욱 당혹스럽기만 했던 소식. 매일 방안에 틀어박혀 조커의 일기를 썼을 정도로 역에 몰입했다고 했던가, 그야말로 킬링 조크, 지금 생각해봐도 거짓말인 것만 같은 히스 레저의 죽음이었다.
아직도 몇 페이지쯤 전에 그가 죽었을 때 어떻게든 써보려다 끝내 끝내지 못한 글이 남아 있다. 워낙에 황망한 소식에 할 말이 없기도 했다만, 당시 이 배우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실히 마침표를 찍어내기가 곤란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사 윌리엄'의 금발 미남스타 정도의 시작에서 '브로크백 마운틴' 속 과묵한 카우보이까지, 짧지 않은 시간동안 이런저런 영화들 속에서 보일듯 말듯 꾸준히 영역을 넓혀오던 과묵한 연기자. 정말 아까운 명배우가 갔다. 라기보담 이제 막 뭔가 해보이기 시작할 땐데...쯤의 망연자실이었으리라. 그때까지의 히스 레저에 대한 인상이라면. 그래서였을까, 영화가 공개되고 과연 조커에 대한 극찬들이 쏟아질 때에도, 잔뜩 기대하는 한편으로 내심 마냥 환호를 보내거나 혹은 안타까워하기에는 뭐랄까, 뭔가 머쓱한 데가 있었다. '아임 낫 데어' 속 히스 레저, 육분의 일의 밥 딜런을 볼 때와 같은 기시감. 나는 그를 알고 있는 것일까? 혹은,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할 만큼 그를 알려고 했던 적이 있던가?
그리고. '다크 나이트'를 보았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싱잉 인 더 레인' 에 맞춰 춤추던 알렉스를 처음으로 맞닥뜨렸던, 혹은 아무 마음의 준비 없이 철창 속의 렉터 박사와 대면해야 했던 당시 관객들의 심정을 이제야 알겠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 하나가 어떻게까지 플롯이니 개연성이니 하는 것들 위를 훌쩍 뛰어넘어서 극 전체를 쥐었다폈다할 수 있는지. 작은 입꼬리 올리기 하나까지도 다 계산된 것만 같은-순전히 그 인물이 되어 몸에 익혔기에 가능했을- 치밀한 제스처들 위에 엄청난 양의 철학적인 대사들이 쏟아진다. 한 명의 배우가 치열하게 파고든 끝에 죽음과 맞바꾼 캐릭터의 극한이 여기에 있다. 잭 니콜슨의 조커가 코믹스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해냈다면, 히스 레저의 조커는 캐릭터의 면면은 그대로 옮겨오되 좀더 현실 가까이까지 손을 뻗어온다. 실제로 우리 옆에 얼굴에 분칠하고 다니는 *이 있다면 저럴 것만 같은 느낌. 전자가 환상적이어서 매력적이라면 후자는 꼭 진짜 같아서 기분 더럽다. 스크린 위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불안해지는, 저 *이 다음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도저히 알 수 없게 하는, 완전한 아나키즘, 혼돈 그 자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장악해버린 다음에야, 거꾸로 매달린 조커의 모습을 바로 마주할 때, 비로소 그 얼굴은 가면 너머의 또 다른 자아가 된다. 정말이지 이렇게 연기해놓고 난 다음에야 그런 주제를 이야기할 힘이 받쳐주는 법이다.
그래서, 숨가쁜 세시간여가 지나가고 크레딧에 히스 레저의 이름이 뜰 때, 비로소 서글퍼졌다. 이젠 이 배우를 좋아한다고, 조금은 이 배우에 대해서 알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지게 해놓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자기 배역의 뒤로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이제는 조커의 무시무시한 캐릭터의 얼굴을 들여다 볼 때마다 걸작의 짜릿한 기억과 동시에, 분칠한 얼굴 뒤의 배우 히스 레저를 떠올리게 되겠지. 정말 멋진 배우가 아깝게 떠났다. 이제야 편히 쉬란 말을 조심스레 꺼내본다. 안녕히, 히스 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