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바이, 웬디

latteup 작성일 18.06.19 09: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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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을 앓고 있는 '웬디'의 세상은 좁고 규칙적이다. 그녀는 요일마다 입는 옷과 하루 일과가 정해져있고, 마켓 거리를 넘지 않는 공간까지만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익숙하고, 안전한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날, 웬디로 하여금 위험하고 예측불가능한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만드는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스타트랙 시나리오 공모전이다.

 

웬디는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트랙 광팬이다. 실제 자폐아들이 어느 한 가지에 놀라울 정도로 집착해 뛰어난 능력을 보임을 떠올려보면, 꽤 설득력있는 설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필 그 대상이 '스타트랙'인 이유는, 웬디가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애를 먹는 '스팍'에게 남다른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웬디는 시나리오가 채택되어 계약금을 받으면, 다시 가족와 함께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처럼 이 시나리오는 웬디에게 있어 시나리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웬디로 하여금 익숙한 세상을 떠날 용기와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었으리라. 그리하여 웬디는 낯선 사막에 표류된 자신의 시나리오 속 주인공들처럼, 그리고 시나리오 공모전 제목처럼 미지의 세계에 '용감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캘리포니아에서 LA까지. 누군가에겐 버스 하나만 타고 가면 되는 간단한 여행이겠지만, 자폐가 있는 웬디에겐 일생일대의 모험이다. 그래서 여행 중 벌어지는 소소한 일들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효과를 주고 있다. 무엇보다 가보지 않은 곳, 해보지 않은 일들은 자폐증의 여부를 떠나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웬디가 평소 두려워하거나 닿을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씩 정복해가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모습은 비록 작은 범위라 할지라도 짜릿함과 흐뭇함을 선사한다.

 

물론 바깥 세상은 웬디에게 마냥 친절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웬디는 선의와 불의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기지와 강인함을 발휘해나간다. 여행 중 생기는 위기와 해결과정도 재미있게 짜여져 있는데, 특히 스타트랙 팬인 경찰과 '클링온어'로 소통하는 장면은 단연 인상적이다. (스타트랙 팬은 어디서나 형제라는 의미일까.) 결국 웬디의 성과를 보고 그녀를 자폐아라는 틀에 가두고 바라본 것에 대해 반성하는 센터장 '스코티(토니 콜레)'와 언니 '오드리(앨리스 이브)'. 웬디 역시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저마다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할머니의 말을 통해 언니의 사정도 살피게 된다. 스코티가 이 여행을 통해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이야기도 곁가지로 진행된다. 이처럼 '여행'을 통해 모두가 한발짝 '성장'한다는 점에서 <스탠바이, 웬디>는 전형적인 성장영화이자 로드무비의 형태를 띄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지점은 자폐아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다. 비록 웬디는 남들보다 느리고 서툴지만, 엄연히 직장도 있고 400여장의 시나리오를 쓸 정도로 창작욕을 불태울만한 꿈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웬디는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끼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 이렇듯 장애를 앓고 있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말하는 영화의 따스한 태도는 '벤 르윈' 감독의 전작 <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에서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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