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경 옷 벗겨지고 두들겨 맞는데 법대로 진압 않는 정부에 실망해

노게인 작성일 08.08.04 08: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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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80443939089.jpg“시위대가 전경들을 발가벗기고 폭행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법치국가 맞습니까.”

1일 밤 본지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수일(59·사진)씨였다. 김씨는 1996년 8월 한총련의 연세대 점거 농성 당시 시위대가 던진 기물에 머리를 맞아 숨진 김종희(당시 20세) 상경의 아버지다. 그는 “아들이 시위 때문에 숨졌는데 12년이 지난 지금도 개선된 게 없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김씨는 촛불시위대에 “전·의경도 집에서는 ‘피라도 날까’봐 애지중지하며 기른 자식들이다. 제발 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3일 김씨를 만나 심경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발가벗겨진 의경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그들이 입은 수치심과 마음의 상처는 평생 치유가 안 될 것이다. 한참 예민할 나이 아닌가. 차라리 맞는 게 낫다. 나처럼 시위대에 평생 적개심을 품고 살 거다.”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심정은.

“불법시위를 법대로 진압하지 않는 정부에 실망했다. 군사정권 때처럼 정통성이 없는 것도 아닌데, 청와대에 계신 분이 제일 원망스럽다. 아들이 숨진 직후 김영삼 정부의 ‘시위 엄정 대처’ 방침이 나와 한동안 공권력이 제대로 집행됐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공권력이 죽어버렸다. 강기갑 의원 같은 분은 미국·홍콩에선 법 지키며 시위하면서 우리나라에선 왜 지키지 않나.”

-시위 현장에 직접 가봤나.

“7월 초에 가봤다. 거리를 점거하는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질 것 같아 집회만 봤다. 주위에 앉아있는 의경들에게 라면·초코파이를 사다줬다. 한번은 화가 나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불광동에서 광화문까지 혼자 거리시위 하겠다’고 했다. 촛불시위대는 매일 거리 점거를 하는데 나도 막지 말라고 했다.”

-지금도 시위 중 다치는 전·의경이 많은데.

“시위로 부상당한 전·의경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20일 전쯤 경찰병원을 찾았다. 아들 장례식도 거기서 치렀다. 병실마다 팔다리에 붕대를 맨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문병 온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는 의경의 눈이 맑았다. 아들 생각이 나 ‘아들이 311기 의경이었다. 몸은 좀 괜찮으냐’고 말을 걸었다. 다친 의경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아들이 죽은 후 어떻게 지냈나.

“건축 노동을 했는데 사고 직후 몇 년간 일을 쉬었다. 술이 늘어 거의 매일 마셨다. 아들이 사고를 당한 지 5년 후 형기를 마친 한총련 간부들이 찾아왔다. 그래서 아들이 묻힌 동작동 국립묘지에 함께 갔다. 그들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긴 했지만 죽을 때까지도 용서는 안 될 것 같다.”

 

 

다행히 주말 시위에서 큰 무력충돌이나 부상자가 없었다고 하네요.

 

이유야 어찌되었건

 

사람이 사람 때리고 다치고 피흘리는 사태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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