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는 정치학 개론

gubo77 작성일 08.09.30 12: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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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사정으로 오랫만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밌는 얘기를 하다 말았는데, 검색해 보니 글이 사라졌군요.

 

더 이야기 된 것들이 있었다면 글의 방향성을 잡기 쉬웠을 텐데 아쉽습니다.

 

할 수 없이 원론적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관계자 외에는 무시하시길 권합니다.

 

 

1.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고 이야기 할때 정치란, 정말 단순 명쾌한 의미의 정치일 듯 싶습니다.

 

요번 종부세 문제와 같이, 그냥 몸으로 느껴지는 이해 실익의 문제 그 자체를

 

의미할 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법치주의' 같은 문제가 되면, 이 정치란 것은 이제 아리송해 지게 되죠.

 

먼저번의 예를 계속 들자면,

 

'특정 기업인에 대한 특별사면을 법치주의 위반으로 욕하던 동일인이,

 

반독재 폭력시위를 지지함으로써 법치주의를 위반한다'

 

같은 문제가 되겠습니다.

 

 

이에 대해 몇몇 분들이 말씀해 주셨지만, '실질적' 법치주의니, 법의 '이념' 이니 같은 것들이 있기에,

 

모든 사안에 대해 단순한 형식논리를 적용해서는 안되고 그 '실질적' 내용을 살펴야 하게되죠.

 

 

 

다시 말해, 법치주의란 것은 결국 '정의'의 실현을 위한 하위의 도구라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이제 이야기의 본론이 시작되는군요.

 

애초에 정치란 아주 단순 명쾌한 것이었지만, 정치가 '정의'의 문제가 되어 버림으로써

 

정치는 아주 아리송송해 졌습니다.

 

 

 

그리고 이 정치를 '정의'의 문제로 만든 사람이 바로 '플라톤'입니다.

 

 

 

이 플라톤 이후에 수많은 사상가들이 '이데아' 주석달기에 열중하였으며,

 

지금도 그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로써는 이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인식할 수 없는것 정도라는 것이

 

학계의 유행인듯 싶군요.

 

 

 

어쨌든 법치주의란 것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제 우리는 그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의'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인식할 수 없는 '가치'란 점에서

 

수 세기동안 사람들을 괴롭혀 왔죠.

 

'정의=신' 의 등식을 폐기한 이후에는 더욱 말이죠.

 

 

 

2.

 

플라톤의 '이데아' 즉 진리의 문제에 대해 아주 색다른 이야기를 꺼내든 사람이 있습니다.

 

정의? 진리? 가치? 법?

 

그딴건 전부 지배계급이 지배를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지,

 

인간 사회 이전부터 존재하던 '절대적 진리'도 '고귀한 가치'도 그 뭣도 아니라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이 맑스 아저씨는 플라톤의 '이데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였지만,

 

플라톤에 대한 주석달기는 그칠줄 모르는 반면 맑스에의 관심은 아주 미미한가요?

 

 

 

 

3.

 

어쨌든 플라톤의 '정의' 즉 '절대적 진리'의 문제를 폐기하고 나니, 문제는 좀 간단해 졌습니다.

 

 

 

 

'사회 계약'에 의해 형성된 근대의 민주주의는 '절대적 진리'의 문제 대신에 '무엇이 가장 이익이

 

되는가'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라던지, '배부른 돼지 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

 

 

라는 것이죠.

 

 

이제 누가 옳고 그른지는 알수 없게 되었지만, 어떤 것이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는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는군요.

 

이제 누가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인종, 성별, 사상, 외모, 기타 등등의 이유로 인해 그 누구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성립하게 되죠.

 

비록 그가 '사회주의자' 라 할지라도, 그의 사상은 '차별없이 인용'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똥같은 생각만 하는 새끼'라 할지라도, 그의 사상은 '차별없이 인용'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것은 그 내용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죠.

 

mb를 욕하던, 옹호하던 민주주의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mb를 욕하면 민주주의에 조금이라도 기여할까요?

 

이건 팹시를 좋아하냐 코카콜라를 좋아하냐의 차이 정도 밖에 없어 보이는군요.

 

 

중요한건 그가 하는 '생각' 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이죠.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비난한다면, 그게 바로 '파시즘'이죠.

 

 

 

5.

 

여기까지 오면 이제 좀 억울해 지기 시작합니다.

 

'친일파'도 '전괴수'도 다 인용하란 말이냐!! 하는 것 말이죠.

 

만약 여전히 '정의'의 문제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렇다'가 되겠죠.

 

여전히 누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맑스처럼 '정의'의 문제를 포기해 버린다면, 문제는 정말 간단해 집니다.

 

 

 

'올고 그른건 상관없어. 정치란 '이해 상관'의 문제일 뿐이니까.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 싸울 뿐'

 

 

이라는 것이죠.

 

친일파도, 누구도 모두 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의 사상도 나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 점에서 나는 그를 존중하지만,

 

 

 

나의 이익에 반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를 '공격'할 정당한 이유를 갖게 됩니다.

 

남은 문제는 '나의 이익이 전체의 이익'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뿐이겠죠.

 

 

 

6.

 

하지만 여전히 '정의'의 문제는 포기되지 않고 있죠.

 

앞으로도 그럴거 같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 위해 파시즘을 차용하는 건 좀 우스워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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