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슬픈 코미디였다. 아니 결국은 썰렁 개그로 끝났다. 그것도 토건주의와 안보불감증이 잉태한 개그물로 말이다.
#1. 2009년 2월 3일 낮, 국회 국방위원회 공청회장
제2롯데월드 신축 이후 성남 공군기지(K-16)의 항공기 이착륙 안전성에 대한 공청회장. 찬성 측에서 김광우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 박연석 공군 제15혼성비행단장, 한국항공대학교 송병흠 교수, 기준 롯데물산 사장, 송영건 성남시 부시장 등 5명이, 반대 측에선 김성전 예비역 공군중령, 이진학 전 공군기획관리참모부장, 한양대 조진수 교수(기계공학) 등 3명이 진술인으로 참석했다.
불합리와 오만으로 치달은 찬성 논리
▲ 3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제2롯데월드 신축관련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조진수 한양대 교수가 제2롯데월드 모형앞에서 항공기 충돌 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뭔가 코미디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국방부 고위관료나 K-16기지의 책임자가 앉을 진영은 반대 쪽일 것 같았는데, 정작 반대 쪽 진영에 포진한 인사는 공군 OB들이었다. 형님이 아우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당사자는 괜찮다며 귀찮아하는 형국이라니.
게다가 제2롯데월드 신축 이후에도 K-16의 안전에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찬성 쪽 발언은 불합리와 오만의 극치였다.
먼저 "동편활주로를 3도 변경한다고 해도 제2롯데월드와의 이격거리가 최대 1500m밖에 되지 않아 최소 안전 이격거리인 장애물 회피기준(1852m)을 확보할 수 없다"는 민주당 안규백 의원의 문제제기에 대해, 김광우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은 "(동편활주로 3도 조정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있지만 안전은 보장되며 작전수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15飛단장은 경제 걱정, 롯데 사장은 안전 强辯
애처로운 코미디의 주인공은 피해 가능 당사자인 박연석 비행단장이었다. 그는 "작전 수행에 지장을 주는 요소가 제거된다는 조건에서 기업이나 국민이 건축을 요청했을 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며 "더구나 국가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군이 '작은 불편'을 감수하지 않은 채 경제 활성화의 기회를 가로막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 사람 군인인지, 경제인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기준 롯데물산 사장은 한술 더 떠 "공인 충돌위험모델(CRM) 시뮬레이션 분석결과 초고층에 충돌할 확률은 1000조분의 1로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강조했다. 롯데물산이 비행안전을 다루는 전문기관인지 몰랐던 대중의 무지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제2롯데월드를 다른 곳에 지을 계획이 없느냐는 질의에 "땅이 없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지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쯤 되면 오만을 넘어서 "배 째라!"다. 어디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는 내뱉기 어려운 워딩(wording)이다.
OB 입 틀어막은 空軍 YB
공청회를 이끈 국방위 소속 의원들의 태도 역시 기묘했다. 고용창출을 내세워 재벌의 '바벨탑 쌓기'를 두둔하는 정부 방침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 상식일 제1야당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 데 비해, 여당인 한나라당은 외려 까칠하고, 뾰족했다.
유승민 의원은 "공군 조종사의 75%가, 관제사의 85%가 충돌 위험이 있다고 했다는데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군이 허용한다고 했겠느냐"고 따졌고, 김옥이 의원은 "공군 지휘관이 장병들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기는커녕 인위적으로 위험을 만들려 한다"고 꼬집었다.
이날 공청회의 압권은 유승민 의원의 휘니시 블로우. 유 의원은 당초 반대 쪽 진술인으로 내정됐던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또는 김규 전 방공포사령관), 최명상 전 공군대 총장 등 공군 예비역 고위 장성들의 불참이 "공청회에 나가지 말라는 국방부와 공군의 압력이 워낙 완강했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공청회 찬반 진술인의 5 대 3 불균형은 그래서 나온 것임이 확인됐다.
#2. 2009년 2월 5일 낮, KBS 1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이규원입니다'
3일의 해프닝 이후 제2롯데월드 신축 담론은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특히 정부(국방부)의 궤변이 강도를 더해 가면서 자연스레 썰렁 개그로 바뀐다.
국방부, K-16을 첵랍콕과 같이 치부
공청회에서 찬성 쪽 진술인으로 나왔던 김광우 국방부 군사시설기획관은 5일 KBS 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이규원입니다'에 출연해 "(제2롯데월드) 건물이 지어지더라도 실제 우리 공군기가 정확한 경로로 정확하게 이ㆍ착륙하고 있다는 것을 초고층 건물에 계시는 분들이 직접 보면 오히려 더 신뢰할 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 기획관은 외국 사례를 들며 "홍콩 어느 공항에 보면 빌딩 숲 사이로 커다란 점보기가 그대로 이착륙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그런데 그 공항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한다. 홍콩의 첵랍콕 공항을 말하는 것 같은데, 첵랍콕과 K-16기지를 같은 성격의 '공항'으로 보는 것은 비행장에 대한 기초가 결여된 시각에서 출발한 왜곡에 다름 아니다.
지난 1월8일 <프레시안> [시론] '오호 통재, 대한 공군!'에서도 밝혔듯이 서울공항으로 불리는 성남비행장은 단순한 공항이 아니다. 공군 15혼성비행단과 북한군 침투를 저지하는 KA-1 경(輕)공격기 대대, 미 육군 2사단 2항공여단 2대대 등이 배치된 전략 기지다. 게다가 북한이 300여대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An-2같은 레이더 회피 저속·저공항공기로 수도권에 화생방 공격을 감행할 경우, 이를 중화시킬 중화제를 싣고 이륙해 뿌려야 할 임무 까지 지니고 있다.
유사 시 국가원수를 비롯, 핵심 지도부의 이동을 책임지는 기지인 동시에 적지 정찰임무 수행기종이 계류하는 곳으로 미국 워싱턴DC인근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와 같거나 외려 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기지다.
"제2롯데월드와 K-16 윈윈 가능하다"?
김 기획관의 무모한 해석은 이어진다. 15년 동안 안전과 안보를 이유로 반대한 공군이 정부 출범 1년 만에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지난 12월 롯데 측에서 필요한 조치를 부담하겠다고 입장표명을 해 전향적인 방향 모색이 가능했다"고 답변했다.
공군이 돈 때문에 입장을 바꿨다는 얘기다. 공군이 돈독이 올라도 한참 올랐다는 얘기를 국방부가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한술 더 떠 "제2롯데월드가 신축되더라도 서울기지는 지금 위치에서 지금과 같은 작전 임무를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라며 "서로 윈윈 하는 방향 모색이 바람직하다"고 덕담까지 한다. 그의 화법에서 주목할 게 한 가지 더 있다. 항상 제2롯데월드를 먼저 말하고 이어서 공군( 또는 성남기지)를 말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김 기획관의 발언. 하지만 그 모든 발언이 얼마나 썰렁한 건지는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이진학 전 공군 기획관리참모부장의 발언에서 김 기획관의 화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가, 아니 어처구니없는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김 기획관 출연에 앞서 프로그램에 나온 이 전 부장은 "밤에 항공기가 불만 번쩍 켜고 다니는데 (제2롯데월드에서 보면) 평상시보다 가까워 보이고, 날씨가 나빠 앞이 보이지 않으면 소리만 들릴 것"이라며 "제2롯데월드 입주자들은 비행기가 충돌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 기획관의 발언과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다.
종국엔 "방 빼!"
그는 "동편 활주로 각도를 3도 틀면 지금보다 한 500m정도 더 멀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항공기 이동속도로 보면 불과 5~6초 정도의 여유가 생길 뿐"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항공기가 바람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접근항로를 벗어날 수가 있고 또 조종사가 버티고(vertigo ·비행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장의 발언 중 결정적인 것은 바로 다음 대목이다. "입주자들도 불안하고 또 그 옆으로 다니는 조종사들도 높은 장애물 때문에 굉장히 불편할 것이다. 서로 상대방이 불편한 상대가 되니 성남기지와 제2롯데월드는 공존할 수가 없다. 결국 충돌 위험성에 대한 제2롯데월드 입주자들의 집단 민원으로 K-16의 이전이 불가피할 것이다."
참고로 필자는 1월15일 <프레시안> [윤재석의 감론을박] '軍, 그런 정신으로 어찌 싸우나'에서 [종국에 가선 "방 빼!"라는 얘기가 ? 나올 게 뻔하다]는 논지의 예측을 낸 바 있다.
▲ 제2롯데월드 조감도. ⓒ프레시안#3. 요즘 제2롯데월드 부지 근방
롯데 측이 제2롯데월드 부지라고 우기고 있는 잠실 근처에선 요즘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제2롯데월드 신축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잠실 지역의 부동산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재미있지만 기실은 끔찍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대규모 충돌 사고나 환경 교통 지옥 상황이 벌어질 것을 생각하는지 안하는지.
또 하나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 잠실 재향군인회관에 입주한 재향군인회와 성우회가 쥐죽은 듯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 안보 현안에 대해선 과도하리만치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던 두 단체가 성남기지 훼손-제2롯데월드 신축 공방에 대해선 입을 봉하고 있는 점이다. 군 원로라는 분들의 침묵 행태. 비겁하기 아니면 무책임 둘 중 하나다.
그리고 앞으로 부탁하고 싶다. 제발 국가 안보가 어떻고 저떻고 입에 올리지도 마시라고.
#4. 2014년 잠실 롯데 4거리(예상)
우여곡절 끝에 지상 130층, 지하 5층, 건물 높이 600m의 세계 최고층 빌딩 제2롯데월드가 완공된다. 롯데와 정부는 2조원을 들여 조성한 이 건물의 완공으로 2만30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그해 말 국방부는 성남기지 주둔 부대를 김포공항과 K46(원주기지), K13(수원기지)로 분산 이전키로 했다고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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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제 생각엔
때려짓고서, 아니면 때려짓는 중에라도
비행기 한번 제대로 격돌해서 대참사가 일어나든가 해야 정신차릴듯 하군요.
삼풍백화점 때를 돌아보면 여전히 정신 못차릴 것도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