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6년 초까지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지만 미국의 강한 반대로 계획을 중지했음을 보여주는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비밀 유지 기간 최소 30년을 넘어서 외교부가 오늘부터 공개하는 1970년대 외교문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왕선택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지난 1975년 1월 17일 캐나다 주재 한국 대사인 김영주 대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외교전문을 보냅니다.
2년 전인 1973년부터 진행된 캐나다형 원자로 도입 교섭 현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전문 내용에는 놀랍게도 핵무기 제조 문제가 포함돼 있습니다.
캐나다형 원자로를 활용하면 연간 3개에서 6개를 제조할 수 있지만 우라늄 원료에 대한 통제를 받을 경우 은밀한 제조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입니다.
또다른 원자로인 NRX를 도입할 경우에는 이에 필요한 중수를 어디에서 공급받는지가 문제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김 대사의 보고 내용은 오타와 대학의 연구원인 한국인 이영 박사의 기술 자문을 인용했습니다.
미국은 당시 한국 정부의 은밀한 움직임을 포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1975년 9월 25일 주한 미국 대사인 리처드 스나이더는 당시 한국 정부가 프랑스로부터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포기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재처리 시설이 연구 설비이며 외화 절약을 위해 필요하다고 버텼던 한국 정부는 결국 재처리 시설 도입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물러선 뒤 원자로 도입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1976년 1월 26일이었습니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건설이 시작된 원자로는 1983년 4월 준공됐고 월성 1호기로 명명됐습니다.
<YTN 왕선택>
- 박정희 대통령 암살의 배후는 미국이라는 설도 있죠... 과연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