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장관과 대검 중수부장 언제까지 버티려나
--시사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책임론에 맞서 검찰이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하자 민주당 등 야권이 국정조사와 특검제 도입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법무부 장관과 중수부장이 사퇴해야 한다는데….
[91호] 2009년 06월 09일 (화) 14:36:07
정희상 기자 minju518@sisain.co.kr
6월2일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팀을 피의사실공표죄로 서울 남부지검에 고발하는 민주당 당직자.김경한 법무부 장관, 임채진 검찰총장,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비판받는 박연차 게이트 검찰 수사 지휘 라인이다. 시민사회단체와 야권은 이들의 사퇴를 촉구하는 한편,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중수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에 대해서는 ‘피의사실공표죄’로 서울 남부지검에 형사 고발했다.
국민적 책임 추궁에 시달리던 임채진 검찰총장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직후인 6월2일,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그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상할 수 없는 변고로 인해 국민을 슬프게 하는 결과를 초래 한 데 대해 수사를 총지휘한 검찰총장으로서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죄한다”라는 사퇴의 변을 내놓았다. 전날까지 대검 검사들을 모아 박연차 사건 수사 과정의 정당성을 강변했지만, 그로부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검찰의 역부족’을 실토하며 사직서를 낸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기회에 검찰을 사상 최대의 위기로 몰아넣은 노 전 대통령 수사 라인의 인적 청산은 물론이고 제도 개혁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검 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은 정당했다’는 결의를 한 직후 익명을 요구한 한 대검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수사가 정당했다는 주장은 수사팀 소속 검사 중심으로 나온 자기변명이라서 대놓고 면박은 못했지만 솔직히 일선 검사들은 여기에 공감하지 않는다.” 그는 이어 노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중수부 수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검찰총장만이 아니라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행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적잖은 일선 검사들의 견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현직 검사는 “이번 사건 수사를 강공으로 몰고 간 책임자는 이인규 중수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이다. 검찰 내부에서 이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 만한 이들은 다 안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연차 회장의 무리한 대질신문 추진, 그리고 노 전 대통령과 가족을 소환조사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무차별 공표한 피의사실 등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또 수사팀 일부 관계자는 여권 실세와 조·중·동에 이른바 ‘빨대’를 심어놓고 각종 수사 관련 정보를 흘렸다는 의심도 받는다. 홍만표 기획관 스스로도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의 고가 회갑시계 선물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검찰 내 빨대를 색출해 처벌하겠다’고 격앙되게 반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검찰 내에서는 당시 그가 말한 ‘더러운 빨대’가 자기 윗선이어서 흐지부지 끝냈다는 말이 나돌았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오늘과 같은 국가적 혼란을 몰고 온 가장 큰 책임은 수사 책임자인 이인규 중수부장에게 있다. 모시던 검찰총장을 지휘책임 문제로 물러나게 한 중수부장이 계속 검찰에서 버티겠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중수부 출신 변호사 “수사 방식 잘못됐다”
과거 대검 중수부에서 일했던 베테랑 검사 출신 변호사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중수부 수사 검사였던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노 전 대통령 조사 과정을 보며 옛날 중수부 수사관행과는 크게 달라 이상하게 생각했다. 피의자들에게 자꾸 이메일로 뭘 보내고, 그 내용을 언론에 흘린 뒤 당사자 반응을 떠보고, 부인하면 미주알고주알 반박하고…. 이런 우유부단한 수사는 필연적으로 검찰의 몰락을 자초한다. 과거에는 권력자를 조사할 때 모든 조사를 마친 뒤 오직 골인(구속)시키는 순간에만 소환했다.”
참여정부 초기 대검 중수부 수사 간부로 있었던 다른 한 변호사는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수사관행상 언론에 브리핑을 하더라도 결정적이고 세세한 내용보다는 큰 수사 방향만 간담회 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이번 노 대통령에 대한 중수부 수사 브리핑 과정은 ‘어제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뭐가 나오더라’는 식으로 이뤄져 처음부터 우려스러웠다.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당한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본다.”
이처럼 검찰 안팎에서 이인규 중수부장 체제의 수사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만 정작 수사팀 내에서는 ‘박연차 수사 과정의 정당성과 당위성’만 내세운 채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검찰 출신 김희수 변호사(50)는 “수사팀이 자기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잘못이 없다고 버티면 결국 검찰은 외부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검찰 조직이 건강하다면 내부 과오를 자정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갈 정도까지 스스로 절제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검찰권은 ‘악마의 도구’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으며, 검찰 조직 스스로 이들에게 메스를 가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국민의 이름으로 검찰이 수술대 위에 올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대검 중수부는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표적 수사와 정치 보복성 수사를 했다는 국민의 의심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런 의혹을 불식시키겠다며 살아 있는 권력에 해당하는 천신일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제대로 수사한 내용이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 수사팀으로서는 죽은 권력인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토록 철저히 뒤지더니 산 권력에 대해서는 무능하거나 봐주기식 수사를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결국 박연차 리스트 관련 수사 마무리와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몰고 온 수사팀의 위법행위 관련 고소·고발사건 수사는 현재 검찰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정치 보복성 수사 논란의 핵심 인물인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는 이 사건을 계속 현 검찰에 맡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국세청 조사4국을 시켜 지난해 태광실업을 세무조사토록 한 한상률 전 청장은 박연차씨와 노 전 대통령 가족 간의 돈거래 내용을 이상득 의원에게 보고하고, 여권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은 뺀 채 청와대에 직보해 검찰 수사가 이뤄지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이런 한씨에 대해 검찰은 그동안 소환은커녕 출국금지 조처도 취하지 않아 올해 초 유유히 해외로 도피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여권 핵심 실세들이 한씨를 기획 출국시켰다는 설이 파다했다. 의혹이 번지자 검찰은 마지못해 해외 도피한 한씨에게 형식적인 이메일 조사만 했을 뿐이다.
결국 박연차 게이트를 둘러싼 제대로 된 마무리 수사는 특별검사제를 통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부른 검찰 수사 과정의 불법 혐의에 대한 고소·고발사건 수사 역시 특검에서 진실이 규명돼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최근 이와 관련한 특검 법안을 제출했다. 또 천신일씨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고소하고, 해외로 달아난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해서도 ‘뇌물 수수’ 혐의로 정식 고소장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