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 가면 쓴 -거꾸로 민주주의

owenfan 작성일 09.06.16 13: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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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가면 쓴 ‘거꾸로 민주주의’

--시사인--

 

서울대 교수를 시작으로 대학교수의 시국선언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을 비롯해 정국 흐름을 매번 바꿔놓았던 대학교수의 시국선언이 촉발된 이유는 무엇일까?

newsdaybox_top.gif [91호] 2009년 06월 09일 (화) 15:14:23 고제규·박근영 기자 btn_sendmail.gifunjusa@sisain.co.kr newsdaybox_dn.gif    대학교수들은 이명박 정권 들어 민주주의가 뒷걸음질하고 있다고 말한다. 위는 6월3일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항의하는 보수 단체 회원.6월3일 오전 11시 서울대 신양인문학술정보관 3층 국제회의실. 이준호 교수(생명공학과)가 기자회견 시작을 알리자마자 고성이 터져나왔다. “북한이 핵폭탄을 터뜨리는 마당에 이따위 소리나 하나.” “호국의 달에 왜 대통령을 비판하느냐.”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가 함께 그려진 배지를 단 ‘대한어버이연합’ 소속 노인들은 기자회견장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교수는 “이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소란이 있은 뒤 서울대 교수들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을 지켜보던 지식인들이 마침내 봇물 터지듯 비판을 쏟아냈다. 첫 물꼬는 서울대 교수 124명이 텄다. 이날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2004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처음이다. 이번 시국선언에는 진보적인 교수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지지한 교수도 상당수 참여했다. 서울대 교수들은 이 대통령에게 △소통과 연대의 정치를 선언하고 △표현·집회·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며 △검찰의 전직 대통령 수사에 대한 사과 및 검찰 수사를 개선하고 △용산 참사 희생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 계층의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25쪽 상자 기사 참조).

이날 오후 중앙대 교수 68명은 서울대 교수에 비해 한층 더 높은 수위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중앙대 교수들은 ‘다시 민주주의의 죽음을 우려한다’는 시국선언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한국 민주주의의 종언을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자행하고 있는 헌정 파괴 행위를 고발하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교수들은 이 대통령에게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대국민 사과 △내각 총사퇴 △주상용 서울시 경찰청장 파면 △신영철 대법관 사퇴 △미디어 관련 법안 등 MB 악법의 즉각 중단 따위를 요구했다. 연세대·성균관대·경북대 교수들도 시국선언 바통을 잇는다.

정국의 흐름 바꾼 교수들의 시국선언


우리 사회에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민주주의 수준을 알리는 척도 구실을 해왔다. 민주주의가 파괴되거나 후퇴해 임계점을 넘어선 순간마다 교수들이 직접 나섰다. 그래서 고비 때마다 터진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정국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1995년 검찰의 5·18 공소권 없음 결정과 1997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사건 때가 대표적이다. 1995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궤변에 고려대를 시작으로 전국 대학교수들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5·18 특별법을 제정했고, 검찰은 태도를 180도 바꿔 수사에 나섰다. 1997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에도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랐다(이명박 대통령도 당시 의원 신분으로 표결에 참여했다). 역시 정부는 노동법을 재개정하며 ‘백기 투항’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 봇물이 터진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6월 항쟁의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했다.

이번에도 양상은 비슷하다. 대학교수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뒷걸음질하고 있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명박 정부는 ‘법치 회복’이라고 강변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우선 이명박 정부를 향한 국제 인권단체 시선부터 싸늘하다. 국제앰네스티는 매년 연례보고서를 발표한다. 6월3일에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인권 상황을 담은 <2009년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2009년 연례보고서>는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상황을 담고 있는데, 이것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연례보고서를 비교해보면 인권 후퇴 징후가 뚜렷하다(24쪽 표 참조). 김대중 정부 당시 연례보고서는 주로 사면, 국가보안법, 사형제 등을 다루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국가인권    지난해 입국한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담당관(오른쪽)이 국내 인권 상황을 조사했다.위원회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설치 등 긍정적인 개선 내용도 포함되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사형제, 양심적 병역거부 등이 다뤄졌다. 2007년 한·미 FTA 반대 집회 등으로 구속자가 발생하면서 <2008년 연례보고서>에 표현의 자유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지만, 노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이나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도입 등 긍정적 내용도 함께 담겼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 상황을 담은 이번 연례보고서는 ‘과도한 공권력’ 집행으로 시작된다. 위안부 생활지원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을 빼면 인권 개선 등 긍정적 내용은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연례보고서 한국편에서는 한동안 사라졌던 ‘표현·집회·결사의 자유’ 문제가 다시 지적되었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은 “거의 10여 년 만에 한국편에 표현·집회·결사의 자유 문제가 주요 내용으로 등장했다”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오는 7월부터 3개월간 한국에 앰네스티 조사관이 다시 파견된다. 보통 3주간 머무는 조사와 달리 3개월 동안 조사가 이뤄지는 지역은 버마 등 인권침해 논란이 심한 곳이다”라고 덧붙였다. 앰네스티가 한국의 인권 상황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고 보는 방증인 셈이다. 

집회의 자유가 후퇴한 조짐은 국제앰네스티 보고서뿐 아니라 법원행정처가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8년 집시법 위반죄로 기소된 사람은 470명이다. 2007년 318명에 비해 무려 47.8%가 늘었다.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된 사람도 2007년 5394명에 비해 23.7%가 늘어난 6671명에 달했다. 집시법 위반자나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부터 강조한 ‘떼법’ 청산 의지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경찰관이 법 집행 과정에서 다소 상대방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입힌다 하더라도 정당한 공무집행이면 면책하도록 하겠다”라는 경찰 면책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적극적인 물리력 행사를 부채질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법조계에서는 ‘듣보잡’ 발언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판사도 아닌 법무부 장관이 면책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삼권분립을 침해할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앰네스티, 한국 인권 ‘빨간불’


그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 이후 집회 자체를 원천봉쇄하거나 불허하는 횟수도 늘었다. ‘촛불 트라우마’에 빠진 정부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서울광장을 12일 동안 법적 근거 없이 봉쇄했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침해라고 지적한 다음 날에야 경찰은 봉쇄를 풀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6월4일 경찰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한 해 서울경찰청은 집회를 149건 불허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넉 달 동안 불허한 집회가 164건으로 지난해 한 해 전체 불허한 건수보다 많았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의 불허 기준이 뚜렷하지 않고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경찰이 집회를 불허하며 주로 근거로 든 조항은 교통소통 제한(집시법 12조1항) 항목이다. 지난 4월까지 불허한 집회 164건 가운데 51건(31%)이 ‘교통소통을 방해하면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는 이 조항에 근거해 열리지 못했다. 그런데 교통 흐름에 대한 판단은 집시법상 관할 경찰서장이 하게 되어 있다. 한지연 민가협 간사는 “경찰서장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집회 허가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지난 15개월간 민주주의 후퇴를 알리는 빨간불은 여러 번 켜졌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경고등을 무시하며 일방 통행을 해왔다. 지난해 국제앰네스티는 촛불집회와 관련한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노마 강 무이코 앰네스티 동아시아담당 조사관을 파견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10월 이와 관련한 최종 공식 보고서에서 “경찰의 공권력 집행과 관련한 인권침해 주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즉각 실시해 책임을 묻고, 모든 시민이 구금의 두려움 없이 평화롭게 집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앰네스티 조사 발표에 대해 경찰과 법무부는 비상식적으로 대응했다. 법무부는 “국제앰네스티 조사보고서는 시위대의 일방적 주장에 근거해 편향적으로 작성돼 유감스럽다”라고 반박했다.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은 “법적 대응을 하겠다”라고도 했다. 그로부터 꼭 석 달 뒤 용산 참사가 일어났다.

이번 교수들의 시국선언에도 청와대는 ‘마이동풍’이다. 한 청와대 인사는 기자들이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해 묻자 “서울대 교수가 전부 몇 분인 줄 아느냐. 1700명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그러나 6월 항쟁의 버팀목이 된 1987년 시국선언 당시 참여한 서울대 교수는 122명이었고, 1997년 노동법 날치기 정국 당시 정부의 백기 투항을 이끌어낸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도 131명이었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대로 전체 교수에 비해 소수이지만,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나선 뒤 결과는 매번 정부가 두 손을 드는 것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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