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즉 법률의 제·개정은 신중해야 한다. 국민의 삶을 직접 규율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충분한 심의 과정을 거쳐 입법한다.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국가의 중요 정책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는 경우에는 특히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엠비(MB) 악법’의 입법 과정은 민주주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참여정부에서 이루어진 사법개혁 법안 입법 과정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졸속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배심원 재판 제도, 형사절차의 대폭적인 개선을 담은 사법개혁 법안은 국회에 제출하기까지만 2년~2년3개월 정도의 기간이 걸렸다. 그사이에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 대통령 산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법안을 성안하고 입법예고,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의결, 필요한 경우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등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엠비 악법들은 대부분이 의원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법안의 성안과 국회 제출 과정에서 여론수렴 과정이 전혀 없었고, 위헌성 여부나 파급효과 등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사법개혁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입법 협조를 부탁했을 때 한나라당의 당직자와 관련 상임위 위원장들은 정부에서 아무리 오랜 기간 논의를 했다고 해도 국회에서 최소한 1년 이상 심의하겠다고 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와 연계하여 모든 법안에 대한 심의 자체를 거부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직권상정은 없었고, 결국 한나라당도 동의하는 가운데 본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엠비 악법들의 경우 국회에 제출된 이후의 기간이 너무 짧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심의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충실한 심의는 고사하고 관련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국회에서 최소 1년 이상 심의하겠다던 한나라당의 태도는 어디로 갔는가? 국민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법안의 경우, 국회에서 공청회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법안들은 국회 제출 과정에서 여론수렴이나 검증이 부족했으므로 더더욱 국회 심의 과정에서 시간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절실하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는 법안은 철회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법개혁 법안 가운데 군사법제도 개혁 관련 법안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로 폐기되고 말았다. 엠비 법안들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입법 시도를 철회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2012년 4월까지 절대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그때까지 국민과 야당을 설득해서 입법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군사작전 벌이듯 무리하게 일거에 처리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엠비 법안의 내용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부자만을 살찌우는 것이어서 국민 동의를 얻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에게 수십 개의 법안을 직권상정해서 일방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게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그것은 전두환이 쿠데타 이후 급조한 국가보위입법회의이지 어떻게 국회이겠는가? 민주사회의 국회가 아니라 파시스트 국가의 들러리에 불과하다.
국회의 권위와 민주주의의 토대를 지킬 과제는 국회의장의 어깨에 달렸다. 엠비 법안이 직권상정에 의하여 무더기로 통과하게 된다면 엠비와 함께 김형오 국회의장도 역사에 길이 오명이 남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선수 변호사
출처: 한겨례(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312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