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는 기간제 및 파견근로의 최대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청부입법 형태로 발의하고자 했으나, 이에 협조하는 국회의원이 하나도 없자 정부안으로 발의했다. 여당은 기간 연장이 저항에 부딪히자, 정규직 전환 조항의 적용 유예라는 방식으로 동일한 효과를 거두고자 기도하고 있다.
기간 연장이든 적용 유예든 이런 방안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09년 6월10일 의견을 표명한 바와 같이, 비정규직 확산을 초래하여 비정규직 남용 억제와 상시적 업무의 정규직화 유도라는 본래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비정규직법안이 논의될 때인 2005년 4월 국제 노동기준을 두루 고려하여 비정규노동자의 인권보장을 위해서는 기간제노동자의 사용을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하는 ‘사유 제한’ 규정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비정규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런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예정되었던 것이다.
기간 제한 방식을 채택한 비정규직법에 한계가 있긴 했지만, 양심적인 사업주들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노력했고, 실제 비정규직이 감소하고 정규직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노동부가 기간 연장 방침을 밝힌 이후 사용자가 정규직 전환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아가 노동부 장관은 100만명 실업 대란설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협박하더니, 현장까지 방문하여 기간 연장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다. 양심적인 사업주가 설 땅을 없애버렸다.
비정규직법의 입법 취지는 기간 제한을 통해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확산과 남용을 억제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촉진하는 것이었다. 정규직 전환의 시점이 도래하기 시작하는 지금 노동부가 할 일은 사업주들을 상대로 정규직 전환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지원책도 제시하고, 탈법적으로 악용하는 경우에 대비한 강력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부는 거꾸로 비정규직법을 무력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고, 그 최선봉에 노동부 장관이 있다. 노동부가 중앙 행정부처로 존재할 이유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부가 경영계를 상대로 정규직 전환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탈법에 대한 강력한 대처 의지를 표명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노동부와 노동위원회는 임금차별 시정명령을 하면서도 신청 기간인 3개월분에 대해서만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권한도 축소하는, 말도 안 되는 해석을 했다가 서울행정법원에서 뒤집혔다. 권한을 확장 해석해 주었는데도 항소를 하겠단다. 노동부가 비정규 업무에서 손을 떼는 것이 비정규노동자들을 돕는 길이다.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간사 3인과 노동계 대표 2인 등이 비정규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5인 연석회의’ 틀을 마련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국민과의 소통을 철저히 외면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배제하고, 국회가 중심이 되고 이해관계자가 함께 모여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입법을 하는 것이 현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길로 보인다.
비정규 문제는 인권의 문제요, 정의의 문제이며, 사회통합의 문제이다. 새로운 취약계층인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지 않는 한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객관적인 사유 없는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사유 제한 방식의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출처: 한겨례(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6264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