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동생(35)·처남(37)과 함께 회사에 다녔다. 회사가 경영 위기로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가고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동생과 처남은 정리해고 대상이 됐다. 김씨만 제외됐다. 노조원들 표현을 빌리면 김씨는 '산 자'였고, 동생과 처남은 '죽은 자'가 됐다. 김씨의 동생은 고민 끝에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동생은 김씨에게 "회사가 정상화되면 다시 고용하겠다고 했으니 일단 믿어 보겠다"고 했다. 처남은 공장 안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김씨가 "싸움 없이 해결해야 한다"고 하자 처남은 "끝까지 안에서 싸우면 '다시 살 수 있다'고 들었다"며 농성대열에 합류했다.
5월 22일 점거파업이 시작됐다. 쌍용차 직원들이 "살 길은 정상 조업뿐"이라며 공장에 들어가려 하자 노조원들이 "혼자만 살려고 한다"면서 쇠파이프 등으로 위협했다. 6월 26일 김씨를 포함해 쌍용차 임직원 3000여명이 "더 이상 공장 가동을 못 하면 진짜 망한다"고 외치며 공장에 들어갔다. 노조원들은 지게차와 쇠파이프를 사용해 몰아냈다. 김씨는 이때 지게차에 쓸려 부상했다.
김씨는 머리와 얼굴, 배, 팔, 다리에 있는 상처를 보여줬다. "노조원들이 쏜 볼트·너트에 맞고, 민주노총 시위대에게 쇠파이프로 맞아서 그렇다"고 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직원들이 '동료'라 불렀던 노조원들에게 그렇게 당했어요. 그런데 외부 세력들은 '그들에게 물 안 주고 식료품 안 준다'면서 우리만 욕해요. 같은 사람인데, 감정이 좋을 리 있겠습니까?"
김씨는 물끄러미 깨진 창밖을 내다봤다. 조립 3·4공장 앞에서 정상 출근한 직원들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옥상에 진입하려던 경찰에게 던졌던 자동차용 휠과 타이어가 군데군데 보였다. 차를 만드는 데 쓰여야 할 부품들과 이들을 저장해 놓았던 천막이 쓰레기로 변해 산을 이뤘다. 김씨는 "어떻게 자기가 만든 차를 불태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쌍용차 직원이라는 자존심도 버린 것 같다"고 했다.
6일 쌍용차 노사 협상이 타결돼 농성노조원 974명 중 48%인 468명은 1년 동안 무급휴직이나 영업직 전직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다시 '쌍용차 직원'이라는 신분을 얻게 된 것이다. 김씨와 같이 정리해고에서 제외된 직원들은 1~2년 뒤 노조원들과 한 일터에서 일해야 한다. 김씨는 "몸에 난 상처들은 그사이 낫겠지만 가슴에 남은 응어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협상 시작할 때부터 반대하던 직원들이 많았죠. 제 동생같이 회사 방침에 따라 희망퇴직을 신청한 1600여명은 억울하잖아요? 떼쓰는 사람은 들어주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손해 보고…. 쌍용차 노사 관계가 망한 게 이것 때문이에요. 이제부터라도 이런 걸 고쳐 나가야 합니다."
김씨 사무실이 있던 자재하치장은 리모델링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김씨가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어차피 공사할 건데 직접 안 치워도 되지 않느냐"고 하자 김씨는 "남은 서류 정리작업도 해야 하고… 한쪽으로 치워놔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우리들 꿈은 하나"라고 했다. "똘똘 뭉쳐 일해서 회사를 빨리 정상화시켜야죠. 처남은 6일 파업 끝내고 나와서 '회사도, 노조도 싫다. 다른 일 찾겠다'고 했지만, 동생은 아직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해요. 제 동생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할 겁니다. 쌍용차 공장에서 동생하고 다시 함께 일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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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쓰는 놈들 말은 들어주고
가만히 있는 놈은 손해보고
뭔짓거리냐